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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여성위 활동 보고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민중재판 여성총회

12월 2일 목요일 저녁 7시, 고려대학교에서 전범민중재판 여성총회를 진행했습니다.
비정규 개악입법 저지를 위한 타워크레인 농성을 벌이셨던 분들의 해단 집회도 있었고, 철도 파업 전야제도 있었지만, 그래도 40여분의 기소인들이 참여하셨습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인들의 인종말살정책과 이에 따른 크로아티아 인들에 대한 폭력, 그 중에서도 여성에게 가해진 집단강간과 같은 폭력의 문제를 다룬 영화, "유령을 부르며: 강간, 전쟁,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상영하는 것으로 여성총회를 시작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여성기소인 모임에서 준비한 토론 제안문을 발제했습니다.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의 의미와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에서 여성이 주체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함께 토론해보고자 준비한 제안문이었습니다.
이어 자유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민족주의에 기반하여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과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이 함께 할 수 있느냐하는 다소간 논쟁적인 쟁점이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단일한 결론을 내지는 않았으나, 앞으로 여성기소인 모임이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을 계속 벌여가는 과정을 만들어가고,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토론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토론제안문에는 여성총회 이후에 여성기소인 모임에서 계속 진행할 사업에 대해 간략한 제안이 있었습니다. 우선 이라크 전쟁에서 드러나지 않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를 가시화하는 활동을 지속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신문, 자료들을 모으고, 그를 여러 곳에 알려내면서 이라크 전쟁에서 자행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제거하는 문제에 대한 인식과 관점이 확산될 수 있는 노력을 지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모아 내년 3월 20일을 전후로 하여 토론회 등을 개최해보자는 제안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12월 11일 전범민중재판까지 여성기소인 모임에서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여성기소장 작성, 자료 및 신문 스크랩 등을 지속하는 것, 12월 3일 서울 증언대회에서 여성총회의 내용을 발언하기, 12월 11일 전범민중재판 당일에 포장마차를 설치하여 그 주변을 여성총회의 내용을 꾸미고, 수익금은 전범민중재판에 일부 후원, 이후 여성기소인 모임 사업기금으로 활용하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안을 박수로 결의하고, 이후 '대학로 4번 출구'분들의 문화공연이 있었습니다. 어제부터 매일 대학로 4번 출구에서 노래와 퍼포먼스 등으로 전범민중재판운동과 평화의 문제를 알려내고자 실천하고 계신 분들이십니다. '대학로 4번 출구'의 멋진 문화공연은 여성총회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셨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평화유랑단 오두희 씨께서 전범민중재판운동의 기간 활동과 그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여성총회라는 자리를 염두에 두시고, "우리는 이미 여성으로서 겪는 아픔과 상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실천은 당연히 '여성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실천이다"라는 말씀과 함께 자그마한 실천이라도 열심히 해나가자는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좋은 말씀을 해주신 오두희씨께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원래는 함께 평화의 글씨를 쓰는 순서가 준비되어 있었으나, 장소가 허락하는 시간 관계 상, 평화의 글씨는 포장마차는 하면서 그 주변에서 여러 기소인들과 함께 쓰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여성기소인 모임이 활동을 시작한 것도 매우 늦었고, 여성총회를 애초에 이라크 여성의 증언대회로 기획했던 것이 무산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여성으로서 전쟁을 반대하는 의미를 찾고, 전쟁반대 운동을 힘차게 벌여내고자 하는 의지를 모으기 위한 자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12차 세미나(전쟁과 여성3)

일시와 장소: 12월 14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사회진보연대 회의실
검토 자료: ‘War and Gender’, 조슈아 골드스타인

전쟁과 여성’을 주제로 열린 세 번째 논의에서 다루었던 내용은 전쟁에 참여했던 여성들의 역사적 사례를 담은 자료를 검토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여성전사들’이라는 제목의 단락에는 여성전투참여의 사례들이 세 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1> 여성전투부대(여성들로 구성된 전투부대)
2> 혼성 부대
3> 여성 전사들 개개인의 사례

여성전투부대의 사례로는 노예거래 시대의 다호메이의 아마존 군대와 2차 세계 대전에서의 소련의 공군 여성 부대를 살펴보았다. 아마존 군대는 남성과 비슷해지도록 훈련을 받고 “우리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라는 정체성을 형성하였으며, 남성들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었던 왕궁의 친위대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는 기록을 살펴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소련군은 2차 세계 대전 과정에서 남성 전투력의 부족이라는 상황에 직면하여 여성공군부대를 조직하였다. 이들 중 ‘밤의 마녀들’이라 불린 야간 폭격부대는 낮 동안 소련 남성군과의 전투에 지친 독일군에게 밤 동안 공격을 가하는 역할을 주로 수행하였다. 그러나 결국 자신들이 손쉬운 공격의 목표가 되었다.

혼성부대의 경우, 빨치산 등의 게릴라 부대에서의 여성 전사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들 중 전-유고연방의 여성게릴라들은 전시에 남성과 동등하다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남성과 비슷한 훈련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군대 내의 낮은 지위의 업무를 담당했다. 1960년대 베트남 공산주의 전쟁과 니콰라과 산디니스트 게릴라전 등에서 여성들은 전쟁 동안에는 민족을 위한 자기희생의 모델로 미화되었다가(한 손에는 아기를, 한 손에는 총을 든) 전쟁 이후에는 폄하되고 잊혀지곤 했다. 여성의 전투 참여는 2차 세계대전의 경험에서 비롯되어 현재의 군에서의 남녀 통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여성 인력의 확대는 국가의 문화적 정치적 규범에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수용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군의 대규모적인 통합은 군대에서 여성이 수행하는 노동의 젠더화된 분업을 보다 가시화했다는 점등에서 여러 가지 쟁점을 낳고 있다.

역사 기록에서 가장 널리 찾아볼 수 있는 예는 여성개인전사인데, 가장 흔한 예는 남장을 한 여성의 전쟁 참여이다. 뮬란 등에서 시작해 미국 남북전쟁 기간동안의 여성들은 군대의 딸(사기 진작을 위한 위안부) 나 ‘어머니’로 불리며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남장을 한 여성들의 군 입대는 쉽게 탄로나 제대조치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공개적으로 여성으로서 군대에 참여한 여성들은 특출한 능력을 가진 존재였으며, 여성 군인 지도자의 경우도 잔다르크와 같은 성스러운 존재, 예외적인 존재로서 인정되는 것에 국한되었다. 여성들의 불리한 신체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례들은 전투에서의 여성의 다양한 역할수행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여성전투참여의 사례들을 여성이 신체적 조건이 남성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거나 천성적으로 평화를 애호한다는 관념이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전쟁과 여성 내지는 전쟁에 있어서의 남성과 여성이라는 평화주의적 구분법에 대해 질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음을 공유하며 세미나를 마치고, War and Gender의 뒷부분을 더 검토해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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