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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그건 우리의 숙명인 걸...

[2호] 가난.. 그건 우리의 숙명인걸...성 평등... 그것도 배운 사람들이나 써먹는 말이지... 박 인 선 | 민주노총 여성연맹 1. 지하철 청소용역 여성노동자... 나는 그녀들을 대상으로 결성한 청소용역 노동조합에서 현장조직과 실무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나를 그녀들은 '노조아가씨' 혹은 '박 간사'라고 부른다. 대부분이 50-60대의 여성노동자들인지라 때로는 간사라는 호칭을 잘못 이해해 '박 강사' '박 감사'라고 부르곤 하는데, 사실 그녀들에겐 위원장, 부위원장, 국장, 간사라는 직책이 가진 노조 운영과 체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별로 익숙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다. 그냥 '노조' 면 다 정리되는 것이다. 그녀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자신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입지를 위해 고려할 만큼 정치적이지도 않으며 그녀들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는 지극히 협소하기 때문에 노조 활동도 일하는 현장으로 국한되어 외부와 단절되어있다. 그녀들에게 있어 노동조합이란, 임금인상을 해주는 곳이고,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애쓰는 곳이고, 사회적으로 약자인 자신들의 유일한 빽이 되어 주는 곳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노조에 대해 맹목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긴 있지만 매우 비주체적이다. 2. 도시철도의 경우 노조를 결성할 당시 만해도 그녀들은 스스로를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라고 규정하고 당당히 내세우기를 꺼려했었다. 우선은 '청소노동'의 사회적 지위 때문이고, '여성'이라는 성적주체의 사회적 차별과 열등감 때문이다. '청소'와 '여성' 그리고 '노동자'의 결합은 자본주의적 경제논리가 지배하고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시장 안에서 이미 주변화되고 저 지위인 최하층 노동력일 뿐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한지 얼마 안되어 현장을 방문했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 그리고 아직도 끈질기게 해오는 그녀들의 충고는 '어서 시집가서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젊고 배운 사람이 할 일도 많은 데 하필이면 청소 일하는 아줌마들하고 무얼 별 볼일 있다고 함께 있느냐는 것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그녀들 스스로를 포함해) 뼈 속까지 느껴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인식을 바꾸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것을 푸념과 충고에 섞어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 같은 노동자라도 그 내에서 가진 편견과 배제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것이기도 하다. '여성'이 수적으로 다수 포진되어 있거나, '여성들이 일차적으로 담당해온 재생산 노동' 또는 그 재생산 노동이 직업화된 경우를 통칭해 '여성노동'이라고 할 경우 여성노동은 자본의 이해인 생산성을 잣대로 그 가치를 평가 절하 당해왔다. 여성들이 가족 안에서 책임져왔던 가사노동과 양육과 같은 재생산 노동은 사회적으로 낮은 가치의 노동 혹은 주변적인 노동으로 간주되어 여성노동력을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한다. 청소용역직 여성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청소노동은 -지하철 뿐 아니라, 건물 및 공공기관의 청소 대부분을 여성노동자들이 담당한다. 그녀들은 일반적인 제조업, 사무직 노동자들의 생산력을 높히기 위한 쾌적한 환경 조성, 업무효율의 증대, 고객 서비스 제공이란 명목으로 화장실 청소(남녀 화장실 구분 없이)부터 사무실 내의 청소까지 청소전반을 담당하면서도, 그 노동의 가치는 청소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최저임금이라는 위치로 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3. 사실 사회적으로 여성(재생산)노동은 특별한 교육과정이나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비숙련 노동으로 취급되지만 동시에 '여성'에게만은 여성의 삶 속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숙련되어야 할 소양이라는 이중적 기준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은 재생산 노동의 가장 숙련된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이라는 위치와 '여성노동의 사회적 지위'라는 이중 잣대로 노동시장 내에서도 소외 받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소득분배 구조에 의해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으로 고용되며 각종 복지로부터 배제당하는 최하위의 노동력으로 시장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러한 현실을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이나, 가난과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들의 생존방식은 조금 더 적게 쓰고, 조금 더 안 뺏기고, 작은 돈에도 민감하며, 강자가 지배하는 사회구조에 능숙하게 편승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4. 그녀들은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가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전보배치, 해고, 성폭력 등의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줄 보험과 같은 것으로 노동조합을 생각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또 다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그녀들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이전에 아내로서 어머니로 살아왔기 때문에 '여성권', '남녀평등'이라는 말은 자신들에게는 해당되지도 않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런 말은 교육을 받고 배운 여성들이나 써먹는 말일뿐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혹시나 그녀들에게 그렇게 좋아하는 임금인상을 위해 아내의 자리를 소홀히 하고, 어머니의 역할을 그만두라고 요구한다면 그녀들은 아무런 미련 없이 임금인상과 노동조합에 등을 돌려버릴 것이다. 그녀들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아이들을, 남편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여성들을 얼마나 냉정하게 바라봤던가. 정규직 노동조합의 남성노동자들처럼 경제투쟁 뿐 아니라 그들의 형제애, 동지적 연대라는 거창한 울타리를 만들고, 사회적 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노동조합의 의미는 잘 모르지만, 그녀들은 지난 3-4년간 청소용역 노동조합의 경험과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노동조합은 신나게. 투쟁은 화끈하게. 조직은 빵빵하게" 라고... ... 나는 자식들에게마저 청소노동을 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집보다 30분, 1시간을 더 가야 하는 역에서 청소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녀들을... 용역대기실을 방문하면 쓰레기를 치우면서 발견한 아직은 쓸만한 물건들을 쓱쓱 닦아 가지라며 주는 그녀들을 ... 건네주는 물건을 체면상 거절이라고 하면 두 번 권하지는 않는 그녀들을 ... 끼니를 거르는 모습은 그 누구라도 못 봐주고 안타까워하는 그녀들을 ... 아직은 미혼인 내게 빼놓지 않고 '결혼'과 '가정'을 가지라는 조언을 하는 그녀들을 ... 주변의 보아 둔 총각들을 중매해주겠다고 떼를 쓰는 그녀들을 ... 자신들을 도와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본능적으로 구분할 줄 아는 그녀들을 ... 하지만.. 나와 결코 다르지 않는 그녀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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