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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이모의 육아일기(2)

육아에서 본능에 의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 유선이 발달되는 것 이외에, 그리고 아이가 젖을 찾는 것 이외에 본능에 의한 육아를 따로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최근 조카와 함께 하면서 학습되고 있는 나는 종종 언니에게서도 학습된 육아의 형태를 본다. 그 한가지, 아이의 청각 발달을 위해 엄마가 아기에게 하는 대화구의 언어에서다.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안하던 언니였던 터, 아기와의 소통을 위해 눈높이를 맞춘 대화법이 익숙하지 않고 서툴다. 또 한다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이도 익숙해지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러워질려나..  

 

나는? 거의 아기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 쭉쭉, 찍찍, 뽕뽕 정도의 단발성 의성어 이외에 두세문장이 합쳐진 긴 문장을 어지간해선 잘 하지 않는다. 뭐 한다면 "아이구 똥 쌌네~", "아나줄까~?", "왜 슬포? 배고퐈?" 정도.

 

이후 내가 하는 말이 이 아이의 청각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까 싶다가도 아기의 플렌에 뒤쳐질까봐 어색하지만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한다. 내가 언니를 봐도 그런데, 정말 내가 생각해도 나의 대화법은 무진장 어색하다.

 

아이가 자라는데도 나름 플렌이 있다고 한다. 여고시절 가정시간에 배운 육아플렌을 더듬어보면 3개월에는 목을 가누고, 6개월 이후부터는 옹알이도 하고, 생후 1년이 지나면 차차 걷기도 한다더라.

 

생후 약 20개월이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의 언니가 "우리 시은이가 말할 때가 됐는데, 아직 엄마정도라서 걱정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주변에 말많은 이모들과 할머니를 둔 시은이가 아직 '엄마' 이외에 말을 별로 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면 분명 시은이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심지어 생후 3,4개월 되어가는 사촌동생을 얻은 뒤로는 걷던 것도 기어다리려고 한다는 친구 하모양의 걱정으로 볼 때 아기에 따라서 그 플렌은 몇 개월 혹은 몇 십개월에 걸쳐 탄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장의 근거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세상의 인식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어떤 기준에서 정해진 플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플렌에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우리 아기에게 문제가 있지 않는지 걱정하고, 조금이라도 빠르면 우리 아기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구나 하며 팔불출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른바 일반적인 정상(?)가족 안에서 육아된 아기에 맞춰진 것으로 보이는 이 육아플렌은 농아인 등 장애인의 육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짐작된다. 네이버로 검색되는 수많은 육아 관련 사이트는 하나 같이 육아에 대한 무궁한 정보를 담고 있지만, 아기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멘트나 장애인을 위한 육아 정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유아기를 지나 유년기, 청소년기....장년기까지 때되면 학교가고 때되면 결혼하고 때되면 아파트 사는 플렌이 기준이 되어, 특수 계층(?)을 제외한 많은 인간들이 평균에 목매며  때되면 학교가고, 때되면 결혼하고, 때되면 아파트 사는 일조차도 어려워 조급한 인간이 많아진 이 시대가 서글프지만, 게다가 그 놈의 평균은 어떤 기준에 의해 설정된 것이며 그런 플렌과 무관해질 순 없는지..부당함을 넘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 25세, 이 시대 평범한 20대 플렌에서 얼만큼 뒤쳐져 있는지 모르고 이유모를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는 나. "남들 다 하는 그 잘난 연애 한번 못해보고 뭐 하고 있나.."

 

"서준아, 살다보면 조금 늦게 걷고, 늦게 말하기도 한단다. 그런데 언제 걷고, 말하고는 사실 크게 상관이 없어. 언젠가는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너에게 가능성만 있다면 걷고 말하는 것은 언제든 주변 조건과 관계 없이 가능하게 되어 있단다. 심지어 무뚝뚝하고 과묵한 이모가 있는 너도 말야. 사실 연애하는 것과 걷고 말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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