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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이란 숫자를 세발짝 앞두고서

액면가 30.

얼굴만 봐서 나이 30세로 보인다는 말.

나이 30세를 넘긴 사람이야 들어서 나쁠 건 없지만, 방년 18세 고등학생 때부터 이말을 들었다면 사정은 달라지겠다.

 

그 덕분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나이트(클럽)도 별다른 제재 없이 드나들 수 있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동년배에게 '선생님~' 소리를 듣거나, 멋모르고 따라나온 사촌동생 때문에 애엄마 소리를 듣는 것은 달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뒤로 나잡빠질 충격이었다.

 

그 때마다 지인들, 삐져나오는 실소를 꾹꾹 누르며, "야! 넌 키가 커서 사람들이 성숙하게 보는거야"라고 위로하곤 했는데 나이 따라 키도 큰다면, 우리 할머니는 천장을 뚫고도 남았을 거다!!!!!!!!!!

 

그렇게 어느덧 나도 액면 뿐만 아니라 물리적 나이도 30에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 앞머리를 낸 것을 두고도 몇몇은 "낼모레 30, 니나 발악을 하는구나"라고 안타까워 하는데, 아무리 '큐티'를 연발하며 염원했다손, 176센티 거구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과감히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라 자부하며.."발악은 아닌데.....정 그렇다면 차라리 몸부림 정도로 하자"라고 한 발 물러서고 있다. 물론 다소간 어려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스탈만 변해서는 젊게 살 수 없다는 갑자기 찾아온 그 분, 나를 요가의 길로 이끌었다.

대체로 건강하게 살아 나쁠 것 없으니 돈도 시간도 투자할만 하다는 반응이다. 지난 2년간 '운동' 못하고 '참세상'에서 불려온 몸이 차츰 다듬어지는 것을 몸소 느끼며 현재까지 약 2주 요가수업을 받았다.

 

어제 10일, 늦은 8시 요가학원으로, 운동도 중독이라 하루라도 빠지면 몸이 찌뿌둥해 하루 걸러보자는 마음을 다잡고 가장 늦은 8시30분 타임 요가를 듣겠다는 심산이었다. 딱 맞춰 나왔다 싶었는데, 차도 안 밀리고 예상보다 10여분 일찍 도착해 요가실 밖 마루에서 매트를 깔고 기초스트레칭에 매진하고 있었다.

 

요가학원에서는 숨쉬기도 코로만 하기를 권하기 때문에 도통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땔 기회가 없는데, 이날 처음으로 데스크에 앉아있던 언니가 말을 걸어왔다.

 

"요가는 좀 하셨어요?"

"아니요"

"유연하신 편인가봐요"

"네 그런가요"

"83?" 

"네?? 아니요 81이예요"

 

83.....그건 분명 몸무게도 아니고, 키도 아니고 나이를 뜻하는 숫자, "요가선생님이 다른 곳보다 전문적인 것 같다"느니 "요가 2주 됐는데 몸이 가벼워졌다"느니 그 때부터 나 말 무진장 많아졌다. 

 

듣기 좋은 소리는 귀를 접으라고 했는데, 접기는 커녕 팔랑대기까지. 요가학원에서 요가수강생에게 듣기 좋은 소리로 다음달 요가도 끊기를 유도하는 상업적 수사라고 치부하기에는 귀에서 머리보다 가슴이 더 가까웠던 듯 싶다.

 

요가 끝나고 비오는 거리를 거의 날으다시피 정류장으로 향하며 가벼운 농이 통할 정도의 친구 몇에게 '83'과 연관된 문자까지 했다.

 

'나 오늘 83이냐는 소리들었다 경위는묻지마라 여튼 협박은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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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버스에 앉아서 자문했다.

 

나는 왜 어려보이고 싶은 걸까?

 

사회에서 요구하는 생산력 무능 '늙은 여자', 그 모호한 경계를 줄타기 하며 언젠가는 자연스레 놓아야 하는  젊다는 특권을 기득권 삼아 저항하기 보다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여성들에게는 마지노선처럼 상징화된 30이란 숫자를 세발짝 앞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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