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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6호] 그리스 혁명과 전 유럽 노동자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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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혁명과 전 유럽 노동자혁명   

 

                                                          
 

홍수전

 

 


  지난 2월 13일 그리스 의회에서 잔인한 긴축안이 통과되자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 민중들이 거리 시위에 나서서 격렬한 가두투쟁을 전개했다. 수도 아테네에서만 시위대가 10만명이 넘었는데 2008년 시위 이후 최대 규모였다. 통과된 긴축안이 공공부분 노동자 1만5천명 정리해고, 노동법 개악, 최저임금 20% 삭감 등 자본의 위기를 철저히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내용이어서 이에 대한 항의투쟁도 그만큼 격렬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미 실업률도 21%에 이르렀는데 그 중 절반은 청년 실업이었다. 게다가 몇 주 뒤에 유럽연합(EU) 각료회의가 열리면 여기서 훨씬 더 가혹한 긴축조치를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돌면서 노동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리스 사회는 지금 압력이 팽팽해져 터지기 직전의 상태이다. 그래서 투쟁의 규모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전투성도 크게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긴축안에 대해서는 그리스공산당(KKE)과 급진좌파연합(SYRIZA) 같은 좌파 정당들만이 아니라 극우세력인 LAOS당도 반대하여 현 그리스 연정에서 탈퇴하기까지 했다. 나아가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당과 신민주당 소속 의원 43명이 의회에서 반대표를 던져 제명당하기까지 했다.

 

 

준혁명적 정세

 

  이런 현상들은 그만큼 그리스 사회 내 팽팽한 압력으로 인해 지배계급이 자신의 힘을 결집시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보수우익 경찰간부들이 장악하고 있는 그리스 경찰노조가 2월초에 “합법적 행동”을 통해 IMF 관리들에 대한 반대 시위를 할 것이고, 그리스 형제자매들에 맞서 싸우는 것을 피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정부에 대해 위협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런 모습들은 준혁명적 정세의 전형적인 특징들이다. 

 

  그 동안 대규모 노동조합들에 의한 총파업이 여러 차례 진행되었는데 그 때마다 중간계급과 소부르주아 대중들도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에 합류했다. 현재 이들 중간층들까지도 좌파가 해답을 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는 특히 그리스공산당과 급진좌파연합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현 상황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은 위기 전가에 대한 반대 투쟁을 넘어서, 심화되고 있는 위기에 대한 그 자신의 해결책을 실행하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상황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현재 노동자들과 함께 생존권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중간층이 점점 더 해답을 우익에게서 찾는 쪽으로 등을 돌릴 것이다. 긴축안에 반대한 LAOS당 탈당파들이 인기가 치솟고 있는데, 이들은 이제 극우 민족주의 노선을 내걸고 위기에 대한 해결사로 나서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경찰노조의 움직임은 정부의 통치 능력 약화를 상징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한 ‘지도자’를 찾고자 하는 태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공격이 부쩍 늘고 있는데 이 또한 파시즘이 대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결국 현재와 같은 준혁명적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이 권력 장악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다음 차례는 파시즘한테로 넘어가게 간다. 그래서 중간계급의 다수를 노동자 혁명 쪽으로 전취하고 경찰 같은 억압기구의 내부 규율을 해체할 수 있도록 노동자계급의 공세적인 투쟁이 필요한 때다. 그러나 그리스공산당이나 급진좌파연합 지도부들은 노동자혁명에 반대하고 기본적으로 선거를 통해 의회 다수를 장악하여 바꿔나가겠다는 노선을 고수하고 있어 지금 같은 준혁명적 시기에 파시즘의 대두를 위한 길을 열어주고 있는 꼴이다. 그리스 혁명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전략과 지도부가 필요하다. 의회주의 개량주의 정당이 아니라 새로운 혁명정당이 필요하다. 다행히 지도부의 의회주의와 개량주의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많은 평당원들이 있고, 이들 외에 전투적 현장활동가들, 신타그마광장 점거를 주도한 청년층들이 있어 이들 모두를 권력 장악 전략으로 규합할 혁명당이 빠르게 건설되어야 한다.  

 

 

유럽연합 탈퇴냐 고수냐? - 허구적인 딜레머

 

  혁명전위당의 부재로 인해 그리스 인민은 지금 잘못된 딜레마에 갇혀 있다. 유럽연합 탈퇴냐 아니면 유럽연합 고수냐 하는 두 가지 자본주의적 ‘대안’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물론 이것들은 전혀 대안이 아니다. 유럽연합 고수는 위와 같은 긴축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기본권을 말살하는 위기 전가를 통해 그리스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긴축으로 인해 공황이 더욱 심화되고 경제 파탄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공산당과 몇몇 소규모 좌파들, 그리고 극우 세력들이 주장하는 유럽연합 탈퇴는 어떠한가? 그것은 유로화를 포기하고 원래의 그리스 통화인 드라크마화를 다시 채택하는 ‘독립적인 자본주의 그리스’로 복귀하는 길이다. 이 독립 자본주의 그리스는 유럽연합 내 다른 자본가 국가들과의 경쟁 압박 속에서 더 혹독한 긴축과 재정감축을 위해 노동자 민중을 쥐어짜는 데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계급이 지배하는 그러한 그리스일 것이다. 유로화에서 이탈하는 데서 오는 초인플레와 실질임금 대폭 하락, 그리고 그리스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국제금융자본가 집단과 유럽연합 지배계급들에 의한 그리스 경제의 포위 봉쇄에 대해 독립적인 자본주의 그리스는 경제파탄의 고통을 온통 노동자 민중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리스공산당이 노동자혁명의 길을 회피하고자 극우세력과 손 붙잡고 제시하는 EU 탈퇴라는 ‘대안’은 노동자 민중들을 바로 이러한 상황으로 내모는 것일 뿐이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어느 일국에서의 노동자혁명과 그것의 남유럽 확산, 나아가 전 유럽적 확산이 아닌 한, 탈퇴하거나 고수하거나 현 자본주의 공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매 한 가지이고, 어느 쪽이든 자본가계급의 위기 전가 공격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제를 탈퇴냐 고수냐 사이에 선택하는 방식으로 제기하는 것은 그리스 노동자계급을 허구적인 딜레마에서 허우적거리도록 몰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스 노동자계급이 극우세력과 함께 민족주의적 해결책을 찾는 것은 자멸적이다. 그리스 노동자계급만이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남유럽의 모든 노동자계급들이 갈가리 찢겨서 각자 ‘자국’ 지배계급과 동맹하여 민족주의적 해결책을 찾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EU 각국의 노동자계급에게 탈퇴는 각 민족국가 지배계급의 노리개감으로 전락하는 길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유럽의 노동자계급은 전 유럽적 혁명전략1)을 추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일국으로부터 혁명이 시작하더라도 그 혁명의 전 유럽적 확산을 통해서만 오직 최종 승리할 수 있다. 이미 유럽연합이라는 준연방적 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노동자혁명 전략은 유럽연합 전체 노동자계급 차원의 전략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것도 현실성을 가질 수 없다.

 

 

유럽연합 탈퇴가 아니라 전 유럽 노동자혁명!

 

  자본주의를 살려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이러한 대안들은 모두 가짜 대안이다. 유일한 진정한 해결책은 ‘노동자 살리기’라는 정반대의 전제에 입각한 대안이다. 긴축으로부터 그리스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생활임금과 사회보장과 노동기본권을 살려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리스 국경을 넘어 전체 유럽 노동자들의 투쟁을 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투쟁이 전 유럽 차원에서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으로 나아가고, 유럽 자본가계급에 대한 수탈에 기반한 사회주의 계획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스탈린주의 진영에서는 그리스공산당을 혁명적 전위세력인 것처럼 추켜세우며 유럽연합 탈퇴를 옹호하고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 살리기를 전제로 하는 이 가짜 대안을 마치 혁명적 대안인 것처럼 꾸미고 있다. 그리스 탈퇴가 곧 유럽 혁명의 도화선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유럽연합 탈퇴는 ‘일국적으로 고립된 국가 및 그 민족국가 통화체제로의 복귀’를 낳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에서 변혁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이어서 “[유럽연합 탈퇴를 통해] 그리스 노동자계급이 유럽자본주의 착취사슬 중 가장 약한 고리를 끊어낸다면 이것이 남유럽과 유럽 전역의 연쇄적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노정협, 노동자정치신문 83호, ‘2012년 격화일로의 유럽 정세’)

 

  그러나 위에서 밝힌 것처럼 탈퇴는 ‘변혁’과 아무 관계가 없다. 또한 “착취사슬 중 가장 약한 고리를 끊어내는” 일국 혁명 및 혁명의 확산과도 아무 관계가 없다. 오히려 유럽 노동자계급을 각 민족국가 지배계급의 노리개감으로 전락시키는 길을 닦는 것이고, 그리스에서는 유럽연합 고수 못지않게 노동의 생지옥으로 몰아가는 길이다.

 

  “그리스에서 변혁”이나 “착취 사슬 중 가장 약한 고리를 끊어내는” 일국 혁명은 유럽연합 탈퇴냐 고수냐라는 허구적인 딜레마를 내던져버리고 오직 전체 유럽 노동자계급의 전 유럽적 혁명전략을 추진하는 데서만 성공할 수 있다. 유럽연합 탈퇴를 통한 독립적인 자본주의 그리스가 아니라 사회주의유럽합중국2)이라는 목표 속에서만 약한 고리를 끊어내는 일국 혁명이 국제 반동에 의해 와해되지 않고 국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연대 속에서 혁명의 연쇄적 확산을 위한 강고한 혁명 기지로 복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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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1) 이에 대해서는 양효식, <혁명> 창간준비 5호, ‘유럽 위기와 전 유럽적 노동자혁명 전략’을 참조할 것.
2) 위 노정신 인용글은 레닌이 유럽합중국 슬로건을 비판한 사실을 들어 “사회주의 유럽합중국 구호”가 “일국혁명과 세계혁명을 대립시키는 오도된 국제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레닌 당시 ‘유럽합중국’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공화주의 유럽합중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군주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유럽합중국‘ 슬로건이 일국의 부르주아 혁명 과제를 건너뛰고서 전체 유럽에 공화주의가 들어설 수 있는 것처럼 오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연합 내 어느 일국에서 전 유럽적 혁명으로 ‘건너뛰어’서는 안 되는 일국적으로 특수한 혁명 과제가 남아 있는가? “일국혁명과 세계혁명을 대립시키는” 것은 사회주의 유럽합중국 노선이 아니라 스탈린주의의 ‘일국 사회주의’ 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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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6호] <기고> 나꼼수 현상을 통해 바라 본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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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6호]

 

<기고> 나꼼수 현상을 통해 바라 본 한국사회1)

 

 

아방가르드

 

 

  요즘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나꼼수의 비키니 시위와 그로 인한 논란은 아직도 식을 줄 모른다. 여성삼국(인터넷 커뮤니티 여초카페: 소울드레서. 쌍화차 코코아, 화장발)은 사과를 요구한 적도 없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홀연히 자신의 길을 갔고, 정봉주는 사과 하였다. 그런데도. 이 논쟁은 SNS를 통해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삼국은 성명서 발표 이후 전혀 대응이 없는 반면에, 나꼼수 매니아들은 여성삼국의 해체를 주장하는가 하면 여성삼국에 대한 살생부를 올리고 여성삼국을 비난하는 트위터 맨션을 계속 올리고 있다. 이는 마치 중세식 마녀사냥을 연상케 한다.
 
  여성삼국에 대한 비난여론을 보면. 마치 개그콘서트 두분토론 남하당의 목소리를 연상케 한다.
 
  " 여자들이 나꼼수 방송을 듣는다는 자체가 문제입니다. 집안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어디 여자가 건방지게 나꼼수를 듣고 웃고 떠들고 있어. 남자들이 비키니 시위 보고 코피조심 하라고 농담할 수도 있지. 뭐? 성명서? 나때 여자가 성명을 말할 수 있었던 건 서방이 바람나서 이혼하자고 하면 그때서야 울면서 이혼서류에 성명 쓰고 도장 찍고 그랬어. 여자가 정치한다고 할 거 다하고 돌아다니면 소는 누가 키울 거야? 소는?"  한편의 코미디 같은 현실이 실제로 일어나서 웃기지만,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함을 지울 길 없다.
  
  문제의 본질은 비키니 시위에 관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외국의 알몸시위등을 거론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며 이 논쟁과 관련이 없다.
 
   비키니 시위 여성을 보고 느끼는 개인적인 감정은 자유이고 그것을 문제시 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방송이나 인터넷 게시판에 공개하는 것은 보는 여성으로 하여금 불쾌감과 치욕을 느끼게 한다. 특히, 입에 담지 못할  음란성 댓글들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여성에게 수치감이나 혐오감을 주었기에 엄연히 성희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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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권스 카페에 게시되어  있는 비난 댓글들 중 일부 캡쳐 사진, 클릭하면 크게 보인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댓글이 일부가 아니라 더 심한 욕도 다반사 이며, 이러한 비난이 비일비재 하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성희롱 뿐만이 아니라 성폭력 이다.>
 
 문제의 본질은 이것이다. 다른 어떠한 문제도 이것을 피하기 위한 비겁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자. 그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반박해 보기로 하자.

 

 

 1. (여성삼국은) 장자연 사건에는 왜 침묵하는가?
 
 이것이야 말로 여성을 동등한 관계로 생각하지 않고 치어리더로 생각하는 발언이다. 장자연 문제는 연예계 매니지먼트 스폰서를 통해 여성의 성이 상품화되고 그들이 재벌 등(언론재벌 포함, 조중동!) 지배계급의 노리개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한 여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연예계 전반 그리고. 사회전반에 관한 문제이다. 희생당한 여성은 장자연만이 아니다. 장자연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여성이 성명서를 내는 게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이 문제를 폭로하고 분개해야만 한다. 여성이기에 여성만의 문제를 다루라는 시각은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사고이며 여성비하적이다.


 
2.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는 논리는 강자가 약자에게 주로 써 먹던 논리이다. 이 발언은 해석에 따라 매우 위험한 발언이 될 수 도 있다.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정부는 (경제적인 위기와 상관없이) 계속 고통분담 이라는 미명하에 정리해고를 통해 자신의 위기를 노동자계급에게 전가시켰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쫓았다. 이것은 모두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결과이다. 나꼼수가 반MB정서 확산에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MB 정서는 나꼼수가 만든 것이 아니다. 지난 4년간. 부단히 싸워왔던 민중들과 이 명박 정권의 실정이 만든 것이다. 누가 중요하고 누가 덜 중요하고 이런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 또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
 
  요즘의 여성과 남성은 무척이나 달라졌다. 얼마 전, 사법고시 시험에도 남성보다 여성들의 합격률이 더 높아졌다. 이는 여성들의 능력이 남성을 압도할 수 있으며 남녀의 능력이 평등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한미 FTA 저지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 중에 70%가 여성이며. 한 대련 의장도 여성이며 각 대학의 총학생회장도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희망버스의 히로인 309일 동안 목숨을 건 고공 크레인 투쟁을 진행했던 소금꽃 김진숙 동지도 여성이다. (투쟁하는 사람들 중에 여성이 늘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여성이 상대적으로 많이 착취당하고 차별 받는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사회적인 의식은 변화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살고 있으며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전 인류에 걸쳐 남성중심의 역사는 모계 중심사회의 역사보다도 훨씬 짧다. 이러한 남녀를 차별하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구조 속에서 상대적으로 연약한 여성의 노동력을 더욱 착취하기 위함이다. 이번 비키니 시위를 통해 드러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저속한 성희롱 댓글들은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대를 위해 소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남성들의 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안타깝게도 남녀평등은 아직도 멀었다. 남녀평등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남녀차별을 강요하는 자본주의를 철폐하기 위해 부단히 투쟁해야 됨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절실히 확인한 셈이다.


 
3. 나꼼수를 비판하는 것은 조중동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다?
 
  언제는 조중동이 옳은 소리를 한 적이 있던가? 이는 비단 나꼼수만의 일이 아니다. 조중동의 왜곡행위는 모든 사람들. 매체가 통상적으로 겪어야 되는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비키니 시위 자체가 원래 사회적인 관심을 폭발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정봉주 의원은 현재 성욕 감퇴제를 복용하고 있으니 마음 놓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라는 말 자체가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란거리가 되리라는 사실을 나꼼수팀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일까?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나꼼수팀 에게 있는 것이지 여성삼국의 비판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자신들을 비판하는 세력을 조중동 알바로 몰고 조중동 프레임을 얘기하는 것은, 결국 책임회피이며 논란을 피하려는 아전인수식 프레임이다.


 
4.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논리는 오랫동안. 운동권(진보?)을 지배해오던 잘못된 논리였다. 이 논리는 타 정파의 논리를 묵살하기 위해서. 혹은 내부의 민주적인 의견을 묵살하기 위한 논리로써 오랫동안 사용되어져 왔다. 진보는 통합된 적이 결코 없다. 오히려. 다양한 정파와 분파의 비판과 견제를 통해서 상호 발전되어 왔다. 사물의 변화. 발전법칙도 마찬가지이다. 분열과 갈등과 운동을 통해서 발전된다. 나꼼수 또한 그러한 단계에 봉착한 것이다. 나꼼수 또한 스스로 자정작용을 거치고 스스로 발전하는 과정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를 두려워하지 마라. 나꼼수는 망하지 않는다. 진보 또한 분열한다고 해서 결코 망하지 않는다. 이 논리는 분명히 잘못 되었다. 그리고. 나꼼수를 비판하는 것은 아군에게 총질을 하고 분열을 획책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제대로 된 총구를 겨냥하기 위함이다.
 
  나꼼수 매니아들은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거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성적인 욕설과 댓글을 달고 도망친다. 어떠한 비판도 통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중증이다. 나꼼수가 도대체 무엇 이길래. 이들을 이렇게 중독 시켰단 말인가? 나꼼수가 사실상 새로 무엇을 하거나 새로운 무엇을 만든 것은 없다. 다만. 이미 확산 되어있는 반MB정서와 새누리당의 실정을 약간 구체화 시켰을 뿐이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동일시 현상을 일으키고 동질감을 준 것이다. 나꼼수를 통해 사람들은 어느새 동지적인 연대의식까지 느끼면서 그들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꼼수 개개인들의 불확실한 주관적인 추측이, 청취자들에게는 이제는 위대한 예언으로 들려온다.) 이제는 종교의 교리나 교시가 되어 버렸다.
 
  이는 한국사회가 그만큼 살기 어렵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각종 차별이 난무하는 사회. 학력차별. 성차별. 빈부차별, 가중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정리해고로 사람들은 일터에서 쫓겨나고 재개발로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부자들은 감세 및 각종혜택으로 오히려 쾌재를 부르는 빈익빈 부익부 사회가 슈퍼맨(메시아)을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의 절망을 버티기 어렵기에 누군가에게 절대적으로 기대고 싶은 심리이다. 그러나. 나꼼수는 결코 당신을 구원해주지 못한다.
 
  나꼼수 5만의 애청자들이 여의도에 모여서 나꼼수 공연을 보고 즐기다 돌아갔다. 적어도 그들이 시위현장인 여의도에 모였던 만큼 조금이라도 투쟁할 줄 알았다. 광우병 시위때 아프리카 TV를 보고 경찰의 폭력에 흥분한 사람들은 시위대열에 동참함으로써 즉자적이면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나꼼수를 보러 나온 군중들은 MB와 새누리당의 비리에 분노하면서도 투쟁하지 않았다. 그들은 왜 투쟁하지 않고 공연만 즐기다 가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용어 그대로 나꼼수의 프레임에 갇혔기 때문이다.
 
   4월 총선이 다가오기도 전에 가끔씩 투표하고 싶어 미치겠다고 말하는 나꼼수는 반 MB의 귀결을 총선의 테두리 속에만 묶어두고자 한다. 한나라당 돈 봉투를 말하면서도 민주당 돈봉투 에는 눈을 감는다. 나꼼수는 봉주2회에서 민주통합당 당대표 경선 특집을 방송하면서도 현재 가장 절실한 3대 사회적 의제인.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한미FTA저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꼼수에서 부각시키는 친노 개혁 성향의 정치인이 사실은 구 민주당보다도 훨씬 신자유주의로 우클릭 된 사람들이다. 나꼼수에서 그들이 가끔식 성대모사로 부각시키는 문재인은 현재의 FTA 반대논리가 과장 되었다고 언론에 발표하였다. 한명숙은 FTA 강불파(강건너 불구경파) 이기도 하자만. 지난 노무현 정권때 FTA 저지시위를 탄압하던 사람중의 한 사람 이었다. 한명숙은 당대표가 되자마자 새누리당과 협의를 하면서 석패율제를 협의하였다. 시민들의 비난여론이 트위터에 들끓고 있음에도 나꼼수는 이것에 관해서는 시종일관 침묵한다.
 
   FTA저지 투쟁을 하다가 한나라당의 등원요청에 과감히 등원해버리는 민주통합당. 때론 싸우기도 하지만 아쉬울 땐 서로 협조하는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은 자본가 계급과 그들의 체제를 수호하는 자본가 계급의 양날개이다. 나꼼수는 새누리당과 MB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낮춘다.
 
  한미 FTA저지만 해도 그렇다. 야권연대는 한미 FTA를 무조건 총선 이후로 미루었다. 총선이 끝나면 한미FTA 문제는 아마도 대선 이후로 또 연기될 것이다. 대선에서 FTA에 대해서 소극적인 문재인이 당선된다면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FTA문제는 몇 가지 절충 되거나 그대로 실현될 것이다. 이는 비단 FTA 문제뿐만이 아니다.
 
  유럽발 경제위기의 여파로 세계 경제 및 한국경제의 위기는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야권연대는 복지확대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들지만. 자본의 위기는 갈수록 심화되어 총선이 지나가면 자본가 계급은 다시 정리해고의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의 사회적인 의제가 결여되어 있는 총선은 기만이다. 또한. 3대 사회적 의제가 결여되어 있는 나꼼수 또한 기만이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고자 시작되었던 희망텐트에서 조차도 안타깝지만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노동자들의 죽음은 비단 쌍용만이 아니라 전국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또 이와 같은 죽음이 얼마나 어디에서 이어질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참혹한 현실이다. 한때나마 노동자 계급의 희망이었던 구 민노당과 진보신당 일부조차도 3자통합으로 자본가 정당과 결탁함으로써 (통합진보당!) 스스로 진보이길 포기했다. 도대체 믿을만한 정치인과 정당이 없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바뀔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사회와 정치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 혁명이 아니면 그 해답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나꼼수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다. 나꼼수가 반MB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다. 나꼼수가 추구하고자 하는 세상과 지난 4년간 민중들이 거리에서 부단히 싸워가며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분명히 다르다. 나꼼수가 부각시키는 개혁 가능성 없는 정치인과 정권교체는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 이들에 대한 환상을 제거하고 이들 자본가 정당과 단절하고 스스로 투쟁하지 않는 한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3월15일 한미FTA가 발효된다. FTA가 발효되면 총선이고 뭐고 한미 FTA 문제는 끝이다. 더 이상 가망없는 민주통합당이나 야권연대에  기대지 말고 , 민중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해서 막아야만 한다. 희망텐트 (3차 희망버스에서  경찰 차벽을 넘으려는 시도가 있었고 공권력과의 충돌이 있었기에, 희망버스와 그리고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촉발된 것이다.) 또한, 보다 공격적인 투쟁으로 사회적인 관심을 폭발시키고, 그 투쟁이 더욱 확산되어 전국적인 총파업 투쟁으로 나가야만 한다. 총선에 머무는 것은 우리가 그 한계속에 갇히는 것이다. 하지만. 총선보다 투쟁에 매진하는 것은 우리가 그 한계와 벽을 넘어서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우리들이 주저주저 하면서 차마 넘지 못했던 명박산성을 이제는 넘어야만 한다.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우리 내부의 모든 기회주의를 일소하고 이제는 반드시 경찰차벽과 공장차벽을 넘어 서야만 한다. 어제 통진당이 주최하는 한미 FTA 저지 집회에서 지루한 연설이 끝나자, 범국본은 또다시 광우병대책위와 마찬가지로 분출하는 시민들의 투쟁의지를 제한하고 만류하여 시민들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는 희망텐트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진입을 시도하려는 노동자들을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료상층부는 만류하였다. 왜? 다가오는 총선이 있기에? 지금도 아니 그전에도 투쟁하지 않고 자신들의 출세에만 사로잡혀 있는 자들, 정치인들에게 무슨 희망을 건단 말인가? 믿을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들 밖에 없다. 우리가 투쟁하는 이유는 그들이 추구하는 타협하는 세상이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 쟁취하고 건설하기 위함이다.
 

 

 
나꼼수나꼼수♬ 민주통합당(친노세력)의 깔때기♬
코피말고 그 입을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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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1) 정세월간지 <혁명>에 게재될 목적으로 쓰여진 본 기고글은 <혁명>지의 발간일정이 지연됨에 따라 필자에 의해 <진보넷 속보게시판>에 공개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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