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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봄날의 음악, ‘Slow 6'의 <Grand A.M>

나른한 봄날의 음악, ‘Slow 6'의


봄이다!

비록 뒤늦게 내린 눈송이들이 아직 세상을 덮고는 있지만 오후 한낮이면 따스한 햇살이 스며들어 대략 정신을 멍해지게 만들고 마는, 봄이 온 것이다!

하늘이 파랗고 약간의 구름이 귀엽게 두둥실. 마냥 평화로워 보이는 창밖을 보며 지금 ‘Slow 6(June)'의 음악을 듣고 있다.

나지막한 그의 노랫소리와 살짝살짝 튕겨지는 통기타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마음은 어느 새 푸른 풀밭 위에서 한가로이 뒹굴고 있다.


‘오, 브라더스’에서 김현철까지


혼자라는 게 때론 나를 자유롭게도 하지만

가끔씩 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 있고 싶기도 해


새로운 얘기 변해가는 잊혀지는 모든 것

그 속에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날 만들어


외로운 날들 잊으려 했지만

외로움은 또 다시 밀려와

가만히 앉아 살며시 웃다가 멀리 떠나가네


기대할 수도 기다릴 수도 없는 것 같아

모래알 같은 시간 속에 나는 흠뻑 잠겨 있네


-<모노로그>-


그는 인디밴드 ‘오, 브라더스’의 멤버였다. ‘오, 브라더스’를 아는 사람이 그의 음반을 듣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그런 탱글탱글 튀는 음악을 하는 밴드와 함께 있었을까 의아해질 것이다. 하지만, 뭐 그리 의아할 건 없다. 음악적 감수성이란 본디 한 곳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니까. 때론 트로트의 감성이 힙합과 맞닿기도 하고, 클래식의 감성이 재즈나 탱고, 심지어 하드락 계열과 어울리기도 하니 말이다. 그의 서정적이고 나른한 감성 역시 ‘오, 브라더스’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냈을 것이다.

여하간, 그가 이제는 자신의 감성으로 가득 채워진 음반을 내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그의 음악은 흔히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김현철이나 박학기 등의 음악과 비교되고는 한다. ‘어떤 날’이나 ‘춘천 가는 기차’를 사랑했던 이들에게 비슷한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Slow 6'의 음악이 한동안 그들의 음악에 목말라했던 사람들의 갈증을 촉촉이 적셔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그룹 ’스웨터‘의 리더 신세철의 프로듀싱이 더해져 음반은 한층 세심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깔끔하게 완성하게 되었다.


느리고 나른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졸린 봄

햇볕은 따뜻한 낮잠을 조용히 부르고

어느덧 계절이 다시 또 흐른 걸 이제야 알았어


포근한 구름을 조그만 방안에 몇 조각 띄우고

서랍장 깊숙이 숨겨 둔 레코드 달콤한 멜로디에


어느새 널 다시 불러 보지만

아무 말도 없는 거울 속의 넌 항상 웃고


- <졸린 봄> -


슬로우 쥰은 어느 인터뷰에서 “새로운 시작 같은 느낌의 새벽 시간대를 좋아해서 ‘그랜드 A.M.’이라고 타이틀을 정했다”며 “아무 이유 없이 새벽 시간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을 위한 편안한 음악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정말 편안하게 누워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의도에 꼭 맞게, 순조로운 출발을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제 2 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상' 후보에까지 올라 대중과 음악인들로부터도 그 성과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라 그의 ‘느린’ 음악이 더욱 반갑다.

그 자신의 음악처럼 앞으로 그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조금씩 편안하고 평화롭게 변화해가는 성장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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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 가야금 연주단의 <Let it be>

숙명 가야금 연주단의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Let it be'에 대한 잡상들-

 

지금 나는 그 유명한 비틀즈 할아버지들의 ‘Let it be'를 듣고 있다. 'Let it be'를 가야금이 연주한다. 가야금들은 ’Let it be'를 비롯한 비틀즈의 곡들과 ‘슈베르트의 추억’ 이나, ‘고엽’, ‘사계’ 등을 연주하고 끄트머리에 이르러서야 ‘영산회상’이나 ‘사랑가’, ‘뱃노래’등을 연주하고는 앨범을 닫는다.

가야금 현으로 연주되는 ‘Let it be’는 너무 아름답다. 수십 개의 가야금 현들이 산속에서 물방울들이 후두둑, 연달아 떨어지듯 맑고 경쾌한 음을 울리며 화음을 이룬다. 세상의 어떤 악기도 이만큼 아름다운 소리로 ‘Let it be'를 연주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만큼 가야금에 익숙치 않은 대중들에게 이 음반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Let it be’와 ‘영산회상’


익숙한 곡들이 몇 곡 지나고 나면, ‘영산회상’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경쾌하게 통통거리던 가야금 현들이 갑자기 진지해지면서 분위기는 갑자기 차분한 궁중 연희의 한 장면으로 전환된다. ‘영산회상-타령’과 ‘영산회상-군악’이 지나면 황병기 선생이 정남희제 가야금 산조의 명맥을 이어 새롭게 창작한 ‘정남희제 황병기류’가 연주되는데 이쯤 되면 어느새 종전의 경쾌한 기분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마음이 한없이 차분해지고 만다. 가야금 본연의 소리는 여기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전까지 ‘Let it be’를 비롯하여 귀에 익숙한 리듬을 즐기던 이들에게 돌연 기분을 가라앉히고 마는 ‘영산회상’은 결국 지루할 뿐이다. 가야금 연주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귀에 익숙한 팝송과 양악을 전면에 다수 배치하고 본래 가야금이 연주하던 국악은 뒷부분에 몇 곡만 배치한 이들의 의도도 결국 이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같은 이유로, 최근 몇 년 새 인기를 얻고 있는 해금, 가야금 음반이나 각종 국악 음반들이 대부분 서양의 클래식이나 팝송, 탱고 연주를 주로 하는 음반이라는 사실은 그런 면에서 참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정원에 하나씩 돌을 늘어놓는 기분으로’


황병기 선생은 ‘서양음악은 화성 위주로 음을 벽돌 쌓아가듯 작곡하지만 동양음악은 정원에 돌을 늘어놓는 기분으로 소리 하나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양악의 화려한 화음에 익숙한 우리에게 조용히 하나씩 음을 내려놓는 국악의 곡조는 당연히 낯설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씩 하나씩 연주자의 감성에 따라 내려오는 그 음들을 함께 느끼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마음까지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게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의 역사는 언제나, 대중의 흐름만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이 가진 장르 고유의 특성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그 음악을 새롭게 창조하고 성장시켜온 이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

국악이 대중에게 다가서면서도 자신이 가진 고유의 빛을 잃지 않는 길은 국악기로 대중의 취향에 보다 가까운 음악을 연주하는 형식적 변화가 아니라 국악 자체를 보다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알리고 새롭게 창작해내는 노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어느 새 세 개의 음반을 발표한 ‘숙명 가야금 연주단’의 연주는 분명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연주를 들으면서 미안하게도 이런 생각들이 들고 말았다.

다음 번 그들의 음반에는 보다 많은 ‘국악’ 연주가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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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 음반

박노해, 20년, 정태춘에서 싸이와 N.EX.T 그리고 ‘Stop crackdown’까지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 음반-


발표되기 전부터 관심을 끌었던 음반이 있다.

박노해 시인의 대표적인 시집 ‘노동의 새벽’ 20주년을 맞이한 헌정 음반이다.

그 유명했던 ‘빨갱이 불순분자’ 박노해 시인의 시와 소위 ‘운동권’들이나 불렀던 ‘민중가요’를 신해철이라는 대중가수가 ‘헌정’을 하겠다고 프로듀싱 해서 싸이니, ‘언니네 이발관’이니 ‘Ynot'이니 하는 어르신들은 알지도 못하는 가수들과 정태춘, 장사익, 소리여울에 이주 노동자 밴드 ’Stop crackdown', 거기다가 황병기, 전순옥(전태일 열사의 동생)까지 같이 모여 만든 음반이라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이냐! 이게 웬 사건이란 말이냐 말이다!

뭐, 그래서 그 조합만으로도 앞으로 여기저기서 말이 많을 음반이기에 굳이 그 ‘감상문’을 올릴까 말까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입이 근질거려서 아무래도 참을 수가 없다.

그 몇 가지 키워드를 여기 주절거려 본다.


박노해, 20년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가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가 끝내 못 가지


-‘노동의 새벽’ 중-


1958년 전남 함평 출생

1983년 <시와 경제> 제2집에 '시다의 꿈'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1991년 사회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한 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안기부에 검거, '반국가단체 수괴'로 무기징역을 선고

1998년 8월 15일 정부수립 50주년 경축 대통령 특별사면 석방


어느 검색 사이트에 나온 박노해 씨의 약력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한 ‘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중앙위원’이라니!

이런 무시무시한 사람이 쓴 시를 ‘헌정’ 한다니!

조갑제 씨가 보면 땅을 치고 분노하며 장문의 논설을 게재하고 박홍 씨가 보면 ‘어둠의 세력들아,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니 썩 물럿거라!’고 외칠 일이다.

그런데 섭섭하게도 아직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분들께서 이 사태의 중차대함을 모르심일까?

어찌된고로, 이런 국가의 위기 상황을 경계하기는 커녕 여기저기서 소개를 하는 지경에 왔느냔 말이다. 심지어 조선일보까지도!

잡설이 길었다. 본론을 말하자면 ‘박노해’가 가지는 상징성의 변화를 말하고자 함이다.

마치, ‘인간 체 게바라’처럼 말이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미싱 기계 앞에서 꽃이 피는 봄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낙엽 지는 가을과 흰 눈 소복소복 쌓이는 겨울에도 공장에서 일만 하는 노동자의 노래 ‘사계’가 힙합 가수의 노래가 되어 젊은이들의 춤 속에 묻혀지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노래방에서 구애의 노래가 되어 불리우고, 투쟁 속에 서로의 힘을 북돋우고 동지애를 확인하는 노래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가 동요처럼 불리우는 지금이다. 그러니, 사형을 구형받고 선 법정의 최후 진술에서 “나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했던 그 박노해가 이제 체 게바라처럼 ‘대중적 위인’이 된 것이다.

‘노동의 새벽’ 출간 이후 20년의 세월은 도리어 열악해져 가는 노동 현실에는 무력하면서도 체게바라나 전태일, 박노해의 삶에는 감성적 동경을 지니게 만든, 바로 그런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이 음반이 나온 지금,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언니네 이발관’과 ‘Stop crackdown' 사이


이번 앨범에서 ‘언니네 이발관’은 ‘가리봉 시장’을 감성적 모던락으로 노래하고, ‘Ynot’은 민중가요를 부르던 이들이 ‘사람들아 너무 걱정 말라/나는 신세 조진 적 없네’하며 절절하게 부르던 ‘아름다운 고백’을 가벼운 펑크 스타일로 바꾸어냈다.

그래, 민중가요라고 해서 꼭 애절하고, 소리치고, 전투적기만 할 필요야 있겠는가.

시대가 바뀌는 만큼 표현의 방식도, 도구도 달라질 수 있고 그로 인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그 가사가 의미하는 바에 공감할 수만 있다면 이 역시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이들의 노래에서는 아무래도 ‘음악적 감성’외에 ‘노동자의 심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박노해가 시에 담았던 ‘이데올로기’나 ‘노동해방’ 보다는 ‘휴머니즘’과 ‘음악적 표현’ 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주 노동자 밴드 ‘Stop crackdown’이 부르는 ‘손무덤’은 비록 발음은 정확하지 않더라도 ‘기계 사이에 끼어 팔딱이는 손을 비닐봉지에 싸서 넣고서 화사한 봄빛이 흐르는 행복한 거리를 미친놈처럼 헤맨 후에 노동자들의 피땀을 위해 잘려진 손들이 기쁨의 손으로 살아날 때를 기다리며 자신의 손을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고 눈물을 흘리는’ 노동자의 심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이들에게는 그 가사가 그대로 자신들의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씨가 부르는 ‘시다의 노래’ 역시 마찬가지이다.

간간이 들리는 미싱 소리에 오래 전 음반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전순옥 씨의 노래소리는 힙합과 춤으로 나이트클럽에서 소비되는 ‘사계’의 주인공, 비좁은 공장에서 하루 종일 섬유 찌꺼기와 먼지를 마시며 폐렴으로 쓰러져가던 시다의 아픔을 그대로 전달해준다.

이 앨범에는 20년의 세월만큼이나 다른, 그런 정서와 시대적 현실이 이렇게 담겨 있다.


‘노동의 새벽’은 아직 현실이다.

 

한 달 생계비 50만원도 안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사측의 손배 청구로 몇 년치 월급을 차압당한 채 살아가던 노동자가 결국 목숨을 끊어야 하는 나라. 아이가 굶어죽고, 돈이 없어 온 가족이 동반 자살을 하고, 남의 집 대문을 훔쳐서라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 그래도 어느 한 쪽에서는 수백만 원씩 들여 아이의 생일 파티를 차려주는 나라, 아직 우리는 이런 나라, 이런 현실에 살고 있다.

‘노동의 새벽’은 ‘헌정’될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이 절망 벽 깨뜨려 솟구칠 억센 땀방울 피눈물 속에서 숨 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투쟁, 희망과 단결을 위해’ ‘쟁취’해야 할 ‘아직 오르지 않은’, ‘노동자의 햇 새벽’인 것이다.


거대한 안기부의 지하밀실을

이 시대의 막장이라 부른다.


소리쳐도 절규해도 흡혈귀처럼

남김없이 빨아먹는 저 방음벽의 절망

24시간 눈 부릅뜬 저 새하얀 백열등

불어 불엇! 끝없이 이어지는 폭행과

온 신경이 끊어 터질 듯한 고문의 행진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무너질 수는 없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 그것은

우리들 희망의 파괴

우리 민중의 해방 출구의 붕괴

차라리 목숨을 주자

앙상한 이 육신을 내던져

불패의 기둥으로 세워두자


서러운 운명

서러운 기름밥의 세월

뼛골시게 노동하고도 짓밟혀 살아온 시간들

면도날처럼 곤두선 긴장의 나날 속에

매순간 결단이 필요했던 암흑한 비밀활동

그 거칠은 혁명투쟁의 고비마다

가슴치며 피눈물로 다져온 맹세

천만 노동자와 역사 앞에 깊이 깊이 아로새긴

목숨 건 우리들의 약속 우리들의 결의

지금이 그때라면 여기서 죽자

내 생명을 기꺼이 바쳐주자.


사랑하는 동지들

내 모든 것인 살붙이 노동자 동지들

내가 못다 한 엄중한 과제

체포로 이어진 크나큰 나의 오류도

그대들 믿기에 승리를 믿으며

나는 간다. 죽음을 향해 허청허청

나는 떠나간다.


이제 그 순간

결행의 순간이다.

서른다섯의 상처투성이 내 인생

떨림으로 피어나는 한줄기 미소

한 노동자의 최후의 사랑과 적개심으로 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

마지막 생의 외침

아 끝끝내 이 땅 위에 들꽃으로 피어나고야 말

내 온 목숨 바친 사랑의 슬로건


"가라 자본가세상, 쟁취하자 노동해방"


-‘마지막 시’ -

 

** 참고로 이 음반의 수익금은 전액 이주노동자 후원에 쓰여진다고 한다. 열심히 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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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nescence> 중후하고, 아름답고, 달리는.

중후하고, 아름답고, 달리는.

I've been sleeping a thousand years
it seems got to open my eyes to everything
without a thought without a voice without a soul
don't let me die here
there must be something more
bring me to life

나는 마치 1000년 동안 잠들어 있었던 듯.
생각 없이... 목소리 없이... 영혼 없이...
모든 것에 내 눈을 열어야 할 것 같아.
날 여기 죽게 내버려 두지 마.
분명히 무언가가 더 있을거야.
나에게 생명을 줘

- 'Bring me to life' -


‘Evanescence’. ‘증기와도 같이 사라지는 덧없음’이라는 뜻이다.
밴드의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나 음반 표지는 영락없이 ‘데스메탈’(Death Metal)인데, 영화 의 삽입곡 ‘Bring me to life'를 듣다보면 멜로딕한 연주에 이어 갑자기 튀어나오는 랩에 황당해진다. 그런데 이에 더해 그들을 세계적인 위치에 올려놓은 앨범 을 듣고 있노라면 도대체가 이 밴드의 음악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당황스러워지기에 이른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들을 고쓰 락(Goth Rock)과 메탈의 사운드에 '뷰욕'을 연상시키는 하는 몽환적인 발라드, 거기에 '린킨 파크' 스타일의 하드코어 래핑까지 짬뽕된 이른 바 '하이브리드 락 (Hybrid -잡종의- Rock)' 의 선두주자라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음악적 기저는 분명 ‘고딕’(Gothic Rock)에 있다. 이들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음반을 통해서이지만 사실 그 전에 이들은 이미 이라는, 고딕적  분위기로 꽉 찬 음반을 내놓은 바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아름답고 유려한 멜로디를 강조한 고딕성향의 발라드로 채워졌던 비공식 데뷔 앨범 에는 에 수록된 ‘My Immortal’,‘Imaginary’, ‘Whisper’ 외에도 ‘Lies’, ‘Even in death’ 등의 중후하고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곡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으며 ‘Where Will Go’나 ‘Field of Innocence’,‘Anywhere’ 등의 감동적인 발라드도 존재한다. 특히 여성 보컬 에미미 리의 음색은 ‘Evanescence’의 음악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데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사실 극단적인 마초 익스트림 애호가들 사이에서 파괴하고 공격하는 대신 청승맞고 우울하게 슬픔이나 장엄하게 연주하는 고딕(Gothic)은 천대받는 장르였다. 심지어 ‘여성 보컬’ 이라니! 애초에 ‘메탈’ 이란 ‘강하고 파괴적인 남성들의 음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클래식한 요소와 암울하면서도 장엄하고 서정적인 멜로디, 그러면서도 강하게 뭉그러지는 사운드를 함께 녹여낸 고딕 락은 마초 메탈 매니아들의 꾸준한 안티 속에서도 대중성을 가지며 곧 자리 잡게 되었다.
고딕락의 이러한 특성에 ‘Evanescence’는 강력한 디스토션을 더하고 에이미의 호소력 있는 보컬과 ‘린킨파크’ 분위기의 랩핑까지 더해 전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다.

Your face it haunts my once pleasant dreams
Your voice has chased away all the sanity in me.
These wounds won't seem to heal,
this pain is just too real,
there's just too much that time cannot erase.

I tried so hard to tell myself that you're gone.
But though you're still with me,
I've been alone all along.


너의 얼굴, 그것이 나의 즐거운 꿈에 출몰해
너의 목소리, 그것이 나의 이성을 쫓아냈지
이 상처들은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이 고통은 너무 현실감이 느껴져
시간으로 치유가 되기에는 상처가 너무 많아

나는 너무도 많이 내 자신에게 네가 떠났다고 말을 했지
네가 아직 내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계속 혼자였던 거야.

- 'My Immortal' -



조용하게 흐르는 피아노 소리, 그 위에서 중얼거리듯 노래하는 에이미 리의 목소리에 곧 이어지는 현악기의 선율. ‘My Immortal’의 이와 같은 분위기가 사실은 ‘Evanescence’의 음악적 출발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곧 강렬한 사운드로 돌변하고는 하는 이들의 종횡무진 앨범을 들으며 앞으로 보여질 이들의 행보에 더욱 기대를 걸게 된다.
게다가 최근 발표된 라이브 앨범에서는 이들이 가진 이 모순적인 두 개의 분위기 - 서정성과 폭발성-이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 이 똑똑하고 당돌한 밴드가 앞으로 기대에 부응하는 훌륭한 성장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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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우울한 독백 'Eels'

아름답고 우울한 독백 'Eels'

Eels 의 음악을 처음 접한 건 그들의 1집 에 담긴 첫 곡 ‘Novocaine  for the soul'을 통해서였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마치 꿈 속을 걸어다니고 있는 듯한 사운드와 내던지듯 노래하는 보컬의 목소리에 완전히 취해 몇 번이고 다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영혼을 위한 마취제’라는 그 제목처럼, Eels 와 그 곡들은 그렇게 금방 내 영혼을 마비시키고 말았다.

동화 같은 앨범 재킷과 동화적 환상을 배신하는 가사

‘Eels' 의 앨범 재킷은 대부분 그림 동화책 속의 한 장을 옮겨놓은 듯 예쁘거나 신비롭다.
1집 재킷의 눈만 동그랗고 큰 여자아이와 4집 재킷의 빨간 바탕에 양을 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어딘가 공허하고, 2집 과 3집 의 그림들은 마치 그림 동화책 속의 한 장을 옮겨놓은 듯 귀엽고 예쁘다.
하지만 가장 예쁜 그림이 그려진 2집의 주제는 예쁘고 귀여운 이미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배신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2집을 준비하면서 Mark Everett(그는 프로젝트 밴드 ‘Eels' 의 리더이자,
'Eels'의 작사, 작곡, 연주까지 모두 해내는 천재적인 음유시인이다. 대부분 그를 ‘E'로 칭한다.)는 여동생의 자살과 어머니의 불치병에 의한 사망을 겪어야 했고 2집에서 그는 자신이 겪은 혼란과 무표정한 우울을 그대로 녹여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우울은 바닥으로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는, 그런 우울이 아니며 그의 혼란은 한도 끝도 없이 번잡스럽기만 한, 그런 혼란이 아니다.
그는 죽음을 다루면서도 그 죽음을 둘러싼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관에 꽃을 던져 넣으면서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그녀의 죽음, 그리고 그렇게 그녀를 잊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녀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졌다는 그의 독백은 ‘죽음’(특히 그녀의 동생의 경우와 같은 자살)과 그에 관한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냉소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그 이후에도 2집을 관통하는 그의 냉소적인 우울은 ‘Cancer for the cure'의 그런지 퍼즈톤 기타를 통해 쏟아내는 무겁고 소란스런 사운드를 통해 더욱 증폭되고, 재즈풍의 ’Hospital Food'와 동요 같은 느낌의 ’Last stop - This town'를 지나며 점점 내면으로 잦아든다.
동화 같은 그림의 재킷 이미지와 그에 상반되는 음반의 정서가 그러하듯이 ‘Eels’의 음악은 희망이 가득 찬 듯 아름답게만 그려지는 세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짜 현실’속에서 매 순간 느끼게 되는 모순과 소외감, 그 우울과 슬픔을 냉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작은 진실일 뿐.

It's like I dressed up in my mama's clothing.
It's like I'm talking to a voice that doesn't exist.
It's like I got a wire crossed upstairs.
But all I want is just a little truth and that's it.
마치 엄마 옷을 입은 느낌이야.
마치 존재치도 않는 목소리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아.
마치 위층에서 줄이 엉켜버린 것 같아.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작은 진실이고, 바로 그뿐이야.

They say I'm mental but I'm just confused.
They say I'm mental but I've been abused.
They say I'm mental 'cause I'm not amused by it all.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하지만 난 단지 혼란스러울 뿐.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하지만 난 단지 학대당해 왔을 뿐.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하지, 내가 어떤 것에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니까.

Another anchorman is on the TV.
He's got that far-away and vacant look in his eyes.
I turn the channel but nothing is changing.
The only truth is that everything is a lie.
또 다른 앵커맨이 TV에 나왔어.
그의 눈빛은 너무나도 공허하고 멍하지.
채널을 돌려 보지만 전부 다 똑같애.
유일한 진실이란, '모든 것은 거짓이다'라는 것이거든.

There's truth in everything, there's truth in lies.
With all this knowledge, well,
I think I'm gonna be wise.
모든 것에는 진실이 있고, 거짓 속에도 진실이 있어.
이런 지식들이 있으니, 음,
아마 난 현명해질 것 같아.

- 1집 의 ‘Mental' 중에서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효신은 혼이 나간 듯 자신의 시를 중얼거린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있다. 그러나 없다. 아닌가 있나?
없는 것 같아. 아니야 있어. 없다고 했지?
그것은 진실. 진실은 있다. 있다는 거짓. 거짓은 있다. 있다는 진실.
아무도 몰라. 아무도 없어. 그래서 몰라. 아무도 있어. 그래도 몰라.
정답은 있다. 아니다 없다.
있다는 진실. 없다는 진실. 없다는 거짓. 있다는 거짓. 진실은 거짓.
거짓은 진실.
나는야 몰라. 아무도 나야. 나는야 아무다.
누구도 나도 나는야 누구도 될 수 있다.
진실이 거짓이 되듯...


모순된 세상에서 열여덟의 효신이 느꼈던 혼란을 그는 똑같이 느꼈나 보다.
처참한 전쟁의 소식을 전하면서도 마치 전투기 게임의 한 장면을 전달하듯 무기 자랑과 불꽃쇼 화면을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는 TV와 연신 구매 충동을 부추기는 무수한 광고들과 겉으로는 웃음 지으면서도 돌아서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양면성을 보면서 그도 효신처럼, 그리고 나처럼 아마도 많이... 아팠나보다.

하지만 그는 ‘거짓이 곧 진실이고 진실 속에 거짓이 있는’ 이 세상 속에서 타인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사랑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리고 2003년에 발표한 5집 에서 그는 이렇게 ‘사랑을 전하자’고 노래한다.

don't have too many friends
never felt at home
always been my own man
pretty much alone
i know how to get through
많은 친구들도 없어
집 같은 느낌도 결코 없어.
항상 나는 나 홀로야
거의 혼자야
나는 어떻게 빠져나오는지 알아.

and when push comes to shove
i got something that you need
i got the love
love of the loveless

그리고 자꾸만 밀어붙여질 때
나는 당신이 필요한 뭔가를 가지고 있지
나는 사랑을 갖고 있어
사랑 없는 이에게 사랑을.

all around you people walking
empty hearts and voices talking
looking for and finding
nothing

당신 주위를 사람들이 걸어갈 때
빈 마음들과 말들을 할 때
찾았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지

If there a god up there
Something above
God, shine your light down here
Shine on the love
Love of the loveless

만약 신이 위에 있다면
뭔가 위에
신은 당신의 빛을 이곳에 내려 비추고 있어.
사랑을 비추고 있어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 5집 의 ‘Love Of The Loveless’ 중에서 -


오늘, 한 없이 우울하다면 Eels의 음악을 들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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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iott Smith, <From a basement on the hill>

 

 

 

 

 

 

 

 

 

 

 

 

 

 

아마 Elliott Smith라는 이름을 모르더라도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제가 'Miss Misery'는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Elliott Smith는 그 음악으로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표정한 그 얼굴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그런 이들에게 언제나 스타덤이란 영광이라기보다 마치 자신에게 맞지 않는 무겁고 어두운 옷을 입은 듯 영 견디기 힘든 짐이 되는가보다.
그리고 결국, Nirvana의 Curt가 그랬듯이, 그 역시 그 답답한 옷을 벗기 위한 방법으로 이 세상에서 자신을 없애는 편을 택하고 말았다. 그리고 2003년 10월 21일, 그는 가슴에 스스로 칼을 꽂고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A passing feeling'

지금 나는 여기 틀어박혀 찰나의 느낌을 기다린다
나는 여기 틀어박혀 찰나의 느낌을 기다린다

스스로도 기대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는 쉬지 않고
저 아래 이미 끊긴 전선을 통해
구조 요청을 보낸다
도움의 손길 속에서 나는
그저 존재하기만을 바랄 뿐
일어서기까진 그토록 오래 걸렸으나
무너지는 데는 단 한 시간밖에

- ‘A passing feeling' 중에서 -


그는 시인이었다.
고독하고 우울한 듯 하면서도 시니컬한 그의 가사와 그런지의 분위기를 내면서도 어쿠스틱 선율로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낸 그의 음악은 팔에 새겨진 문신과 울퉁불퉁하고 퉁명스런 그의 얼굴과는 다르게 매우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다.
Elliott Smith의 본명은 Steven Paul Smith이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 중 Steven을 싫어해서 학창 시절부터 Elloitt으로 불리웠다. 그의 음악의 특별한 분위기는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어린 시절의 경험과 일찍부터 흥미를 가졌던 피아노 연주 경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는 이미 피아노 신동이었고, 십대 시절부터 작곡을 했다. 그러나 재혼한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부모의 잦은 다툼과 불편한 가족관계가 그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그의 앨범에는 가족에 관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는 곡이 많다. 그러나 그 외에도 그의 가사에는 약이나 술에 관한 내용, 사진, 영화, 사랑과 실연, 자동차, 달, 비, 유성 등 다양한 일상의 이미지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대게 그것들은 Elliott의 음악 속에서 오묘하고도 우울한 분위기로 나타난다. 그는 그 주제들을 일관되게 다루어 왔으며 사람들은 Elliott을 기억할 때 그의 음악 속에 담긴 그것들의 이미지를 함께 기억해낸다.
한편 몇몇 곡에는 사회에서 그가 느낀 역겨운 장면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이 담겨있다.


 

 




'A distored reality is now a necessity to be free'
(뒤틀린 현실이야말로 지금 자유로워야 할 이유)

부활절 오후 내내
나는 검은 풍선 안에 들어가 떠다니고 있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얘야 깨끗하게 있어야지, 중간이란 없단다”

하지만 당신들 신사 숙녀 여러분
중간이야말로 당신들이 그나마 보고 겪은 전부
어울리지 않게 입고 현장을 정돈하고
그녀를 순결한 순백으로 치장하는

당신들에 실망했다
세상을 착취하여 긁어모으는 당신들에게
악마의 문서는 당신들에게
가여운 검은새의 심장을 팔아 넘기는구나

빛을 다오
내 마음속에는 비가 내리기에

일렁이는 빛 속에 떠오르는 이글거리는 태양
공기가 만들어 내리는 독한 산성비
뒤틀린 현실은 이제
자유로워야 할 이유

너무 실망스럽다
처음엔 나도 전부 운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모른다, 왜 지금 이 나라가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지는

빛을 다오
내 마음속에는 비가 내리기에
나를 환하게 비춰다오
마음속에 비가 내리는 이 나를


이번에 발매된 그의 유작 앨범 'From a basement on the hill'에는 그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작은 버튼 두 개가 함께 담겨 있다. 음반 앞에 새겨진 ‘한정판매’,‘특별선물’이란 말이 무색하게 그의 무뚝뚝한 얼굴은 죽은 후에 마저 스타로서 판매되는 자신의 이미지를 그닥 반가워하지 않는 듯 하다.
이제 그만 Elliott을 자유롭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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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a Bar> Vol.Ⅴ

영혼을 불러내는 이국적 판타지의 세계, Vol.Ⅴ

 

 는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바의 이름이자, 이 바의 대표 Dj 클로드 샬이 바에서 녹음된 음악들을 모아 낸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1996년 문을 연 이래 바 한 가운데 커다란 불상이 놓여진 독특한 분위기의 인테리어와 클로드 샬을 비롯한 Buddha bar의 재능 있는 Dj들이 빚어내는 Buddha bar 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로 어느 새 파리에서 손꼽히는 바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는 2002년에 이들의 음반이 처음으로 소개되었으며 현재 Vol.Ⅴ까지 발매된 상태이다. 특히 최근의 Vol.Ⅴ에는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재즈 가수 나윤선 씨가 ‘Road'라는 곡에 한국어 가사로 참여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혼을 불러내는 듯한 선율과 자유롭고도 몽환적인 리듬, 아랍계의 이국적 분위기가 테크노 사운드와 결합되어 빚어내는 환상적인 세계로, 오늘 여러분을 안내한다.


그 리듬에 영혼을 실어...

 

 와 같은 분위기의 음악을 흔히 라운지 음악(Lounge Music)이라고 한다.

여기서 라운지란, 다들 알다시피 ‘호텔 라운지’할 때 그 라운지를 말한다. 그래서 이를 두고 혹자는 음악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느니 뭐니 불만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호텔’이 가지는 호화스럽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아니라 ‘라운지’가 가지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이기 때문이다.

그저 라운지의 어딘가에 한가로이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 평온함과 자유로운 여유를 즐긴다는 생각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바로 ‘라운지’ 음악인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만이 가지는 종교적이면서도 평온하고 가슴 깊숙이 들어와 울리는 독특한 평화의 분위기는 특별하다.

ddha bar> Vol.Ⅴ의 첫 번째 CD에서는 조용한 새 소리로부터 시작되는 첫 곡‘Nie Kantshaietsa'에서부터 그 독특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아랍풍의 기타 스트링과 현악의 선율 속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Bielka Nemirovski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감성을 한층 자극한다.

특히 여덟 번째 트랙 ‘Tamtra Tibet'은 일렉트로닉 기타와 바이올린의 선율, 타악기의 리듬, 흥얼거리듯 읊조리는 목소리가 테크노 사운드와 묘하게 어울려 제목처럼 흡사 티벳의 한 자락 즈음에 홀로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첫 번째 CD가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데 반해 두 번째 CD는 전반적으로 클럽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활기차고 역동적인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곡의 리듬과 곡조도 귀에 익숙한데 특히 여섯 번째 트랙인 ‘Meglio Stasera’, 아홉 번째 트랙 ‘Sphynx'은 쉽고 익숙한 리듬과 멜로디로 저절로 몸을 들썩이게 한다.

그 밖에 다섯 번째 트랙 ‘Salaam', 열두 번째 트랙 ‘Wonderlande'도 특유의 아랍풍 분위기 테크노로 흥겹고도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으로 추천할 만하다.


Buddha bar를 즐기는 방법 하나.


라운지 음악은 그 탄생이 그렇듯이 흔히 테크노 클럽이나 바에서 접하게 되지만 ‘Buddha bar'처럼 독특한 분위기의 앨범은 색다른 방법으로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자, 조용한 새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할 때 이어폰을 귀에 꽂고 머리 속으로 파고드는 조용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보자. 이내 은은하고도 풍성한 현악의 선율과 낮은 목소리의 읊조리는 여성의 노랫소리가 머리 속을 가득 메운다. 쌀쌀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모자를 눌러쓰고 외투 자락을 여미면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내 곁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여운을 그대로 느끼면서 머리 속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 새 군중 속에서 나만의 결계가 형성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 동안 걷다가 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공원의 벤치에 누워 떨어지는 햇살을 그대로 온 몸에 가득 담아보자. 그렇게 눈을 감고 햇살에, 음악에 빠져 있다 보면 아마도 곧 당신은 그 평화로움에 중독될 것이다.

그렇게, 그대로...

 

* Buddha bar의 앨범은 CD 두 장씩 한 묶음으로 5만원 선이며, 벅스뮤직에 가면 를 들어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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