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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 가야금 연주단의 <Let it be>

숙명 가야금 연주단의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Let it be'에 대한 잡상들-

 

지금 나는 그 유명한 비틀즈 할아버지들의 ‘Let it be'를 듣고 있다. 'Let it be'를 가야금이 연주한다. 가야금들은 ’Let it be'를 비롯한 비틀즈의 곡들과 ‘슈베르트의 추억’ 이나, ‘고엽’, ‘사계’ 등을 연주하고 끄트머리에 이르러서야 ‘영산회상’이나 ‘사랑가’, ‘뱃노래’등을 연주하고는 앨범을 닫는다.

가야금 현으로 연주되는 ‘Let it be’는 너무 아름답다. 수십 개의 가야금 현들이 산속에서 물방울들이 후두둑, 연달아 떨어지듯 맑고 경쾌한 음을 울리며 화음을 이룬다. 세상의 어떤 악기도 이만큼 아름다운 소리로 ‘Let it be'를 연주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만큼 가야금에 익숙치 않은 대중들에게 이 음반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Let it be’와 ‘영산회상’


익숙한 곡들이 몇 곡 지나고 나면, ‘영산회상’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경쾌하게 통통거리던 가야금 현들이 갑자기 진지해지면서 분위기는 갑자기 차분한 궁중 연희의 한 장면으로 전환된다. ‘영산회상-타령’과 ‘영산회상-군악’이 지나면 황병기 선생이 정남희제 가야금 산조의 명맥을 이어 새롭게 창작한 ‘정남희제 황병기류’가 연주되는데 이쯤 되면 어느새 종전의 경쾌한 기분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마음이 한없이 차분해지고 만다. 가야금 본연의 소리는 여기서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전까지 ‘Let it be’를 비롯하여 귀에 익숙한 리듬을 즐기던 이들에게 돌연 기분을 가라앉히고 마는 ‘영산회상’은 결국 지루할 뿐이다. 가야금 연주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귀에 익숙한 팝송과 양악을 전면에 다수 배치하고 본래 가야금이 연주하던 국악은 뒷부분에 몇 곡만 배치한 이들의 의도도 결국 이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같은 이유로, 최근 몇 년 새 인기를 얻고 있는 해금, 가야금 음반이나 각종 국악 음반들이 대부분 서양의 클래식이나 팝송, 탱고 연주를 주로 하는 음반이라는 사실은 그런 면에서 참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정원에 하나씩 돌을 늘어놓는 기분으로’


황병기 선생은 ‘서양음악은 화성 위주로 음을 벽돌 쌓아가듯 작곡하지만 동양음악은 정원에 돌을 늘어놓는 기분으로 소리 하나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양악의 화려한 화음에 익숙한 우리에게 조용히 하나씩 음을 내려놓는 국악의 곡조는 당연히 낯설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씩 하나씩 연주자의 감성에 따라 내려오는 그 음들을 함께 느끼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마음까지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게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의 역사는 언제나, 대중의 흐름만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이 가진 장르 고유의 특성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그 음악을 새롭게 창조하고 성장시켜온 이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

국악이 대중에게 다가서면서도 자신이 가진 고유의 빛을 잃지 않는 길은 국악기로 대중의 취향에 보다 가까운 음악을 연주하는 형식적 변화가 아니라 국악 자체를 보다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알리고 새롭게 창작해내는 노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어느 새 세 개의 음반을 발표한 ‘숙명 가야금 연주단’의 연주는 분명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연주를 들으면서 미안하게도 이런 생각들이 들고 말았다.

다음 번 그들의 음반에는 보다 많은 ‘국악’ 연주가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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