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계산

분류없음 2015/04/26 14:45

꽃개의 인생에서 중고등학교 영어선생님, 대학교 전공 교수님들을 빼고 영어선생님들은 전부 "백인"이었다. 예외로 될 두 명의 아시안이 있긴 한데 한 명은 태어나자마자 미국으로 입양되어 스물이 넘어 자신의 뿌리 (?) 를 찾아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이. 그이는 한국어를 "전혀" 못했다. 또 하나는 홍콩에서 밴쿠버로 이민온 2세대. 그 역시 캔토니즈를 잘 못한다고 했다. 요즘 한국의 트렌드는 어떤지 모르겠다. 흑인이나 남아시안 같은 비백인들을 영어선생님으로 고용하는지. 꽃개가 한국의 영어사교육 시장에서 소비자로 존재하던 시절엔 비백인 영어강사가 드물었다. 이 나라에서도 영어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는데 저 위의 홍콩 이민 2세대가 유일한 비백인이었고 흑인은 아예 만나지 못했다. 심지어 이 나라에서 다닌 컬리지에서도 영어선생님은 "백인"이었다. 영어가 영국에서 유래했고 그 옛날 영국엔 백인만 살았다고 해도 이건 뭔가 심각한 불균형이다. 우리는 여전히 대항해를 시작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가? 아니지 않은가.



이 도시에서 만난 이십 대의 젊은 한 친구가 자신이 한국에 영어선생님으로 일하러 가는 것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 네가 좋아한다면 뭐. 일이 년 정도 투자해서 돈을 벌어오면 다시 대학에 다니든 그 돈으로 사업을 하든 쏠쏠한 목돈이 될테니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물었다. 한국에 사우스아시안 많이 살아? 인종차별은 어때, 심해? 



뭐라고 답하는 게 옳은 걸까. 응, 한국인들은 대부분 백인을 선호해. 특히 영어시장에서는 아무리 배운 게 많고 훌륭해도 반기문처럼 발음하면 딱 싫어하고 생긴 게 "이주노동자" 같으면 더 질색해, 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다만 여기에서 인종차별 같은 거 경험한 적 있어? 라고 물었더니 응, 물론이지. 라고 답한다. 한국도 사람사는 데니까 여기랑 비슷할거야. [백인을 선호하는] 인종차별은 백인들이 세상을 지배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내려온 탓에 대부분 사람들이 내면화하고 있는 거잖아. 안 그런 곳이 지구상에 있을까. 



한 번은 일터에서 만난 흑인 동료가 한국에도 흑인이 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이제 갓 컬리지를 졸업한 그 친구도 외국에 나가 영어선생님으로 돈을 벌어올 심산에 물었던 것. 그녀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Where're you from?" "Okay, where are you ORIGINALLY from?" 이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며 투덜댔다. "응, 한국에도 흑인들이 있어" 라고 대답했지만 뭔가 많이 찜찜했다.

 

인생의 방향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종종 내가 먼저 걸었던 혹은 경험한 것, 알고 있는 것을 물을 때엔 조심스럽다. 내가 걸었던 그 길은 넓디넓은 한 길의 부분일 뿐이고 내가 겪은 일들은 72억 넘는 인류가--72억의 세계가 각자 담지하는 맥락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이들에게 닥칠 평지풍파를 알면서도 일부러 눈감아야 할 땐 정말 난감하다. 가령 똑똑하고 열정적인 여인네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여인네들이 한국 남정네와 결혼하여 "시집"이라는 사자아가리에 자진해서 걸어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축하한다"라는 말을 목구멍에서 억지로 끄집어내야했던 그런 기분. -- 이 말도 나중에는 잘 하지 않게 되더라.

물론 지금 나는 남의 일에 크게 상관하지 않는 편이다. 걱정도 하지 않는다. "오지랖"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기 전, 혹은 대화를 나누며 이 사람과 나의 거리는 얼마나 가깝거나 먼 것이 적당한가. 그것을 따지는 것이 더 힘들다. 여전히 훈련 중.

 

“네가 좋아한다면야; 뭐 그리 크게 다를까 싶어. 사람들이 사는 덴데 뭘; 한국엔 아프리칸도 있고 (흑인도 있고) 사우스아시안도 있어. “



긍정도 부정도 아닌 평범한 조언. 상대에게 조언하기에 앞서 일단 그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기. 이것이 참말 어렵다. 특히 누가 한국에 대해서 물어보면 더 어렵다. 던져두고 온 것과 관계맺기가 아직도 힘든 까닭이다.

 

 

2015/04/26 14:45 2015/04/2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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