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냄새

분류없음 2015/05/01 07:15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김치를 산다. 북쪽 말고 다운타운 근처 코리아타운에 정통 김치의 맛을 거의 90퍼센트 재현하는 가게가 있다. 다른 곳들은 김치의 맛이 영 아니(올시)다. 직접 담그면 좋겠지만 물김치 정도 말고는 직접 하지 않는다. 왜? 절차가 복잡하고 노동시간이 많이 든다. 한국 음식은 대부분 노동집약도가 높다. 다른 이들에게, 특히 여성들에게 한식 조리를 권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알차게 착취하는 음식, 한식. 특히 김치. 이럴 땐 한식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못내 웃프지만 어쩔 수 없다. 국적과 민족적 특징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지 않나. 

 

 

정통 김치라서 그런가. 냄새도 정통이다. 특히 깍두기, 총각김치 등 무우로 만든 김치 냄새는 익으면 익을수록 "가관"이다. 김치 냄새가 주는 정겨움과 입맛을 북돋우는 독특한 향은 논외로 치고 이 무우나, 배추가 발효하며 익을 때 나는 냄새는 너무나 강력하다. 냉장고 안의 모든 냄새를 평정한다. 누구는 중국인들이 먹는 취두부가 갑이라는데 내 경험으론 여전히 한국 정통 김치, 답 없는 냄새의 왕이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아침에 김치를 먹지 않는다. 아니, 출근하기 전에 학교가기 전에 김치를 먹지 않았고 지금도 아침 나절엔 김치를 먹지 않는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주 어릴 적에,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니 아마 일곱 살 정도? 친할머니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가는 길이었던 것 같은데 하필이면 출근길 버스를 탔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꽉 찬 그 버스 안에서 할머니 무릎에 앉아 있었다. 양복을 빼어입은 어떤 아저씨가 내 옆에 서 있었는데 갑자기 내 머리 위로 트름을 했다. 꽉 꽉 들어찬 사람들이 내뿜는 온갖 냄새에 그 아저씨의 트름 냄새가 범벅이 되어 안 그래도 멀미에 시달리던 나의 마지막 스위치를 눌러버렸다. 그 아저씨의 양복 바지에 토했다. 아저씨가 욕을 했나 싶은 찰나에 할머니가 "아이가 깍두기 냄새가 너무 역해 토했나 보오. 미안하오" 라며 손수건을 줬다. 아마 지금쯤이었으면 단박에 개저씨로 불리웠을 그 아저씨는 계속 궁시렁 욕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 뒤로 나는 아침 나절에 깍두기 혹은 김치를 먹으면 그 아저씨처럼 될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 같다. 일종의 트라우마. 

 

 

아마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강력한 김치 냄새를 친구에게 추천하고 싶을만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있을까. 옷에 스며들어도 "어머 내 코트에 스며든 이 냄새 너무 좋아, 고향의 냄새, 우리 클라이언트와 함께 나누고 싶어. 비즈니스의 냄새론 김치가 짱이지", 이럴 한국인이 있을까. 김치를 그 냄새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는 비한국인들에게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이러면서 억지를 부릴 한국인들이 있을까. 아마 없겠지. 있을까? 있을 수도 있겠지. 사람은 모두 다르니까. 

 

 

하지만 김치는 맛있다. 맛있는 김치는 정말 맛있다. 

 

* 덧: ‘버드맨’, 김치 비하 논란에 대한 세련된 대응법

 

 

 

 

 

 

 

 

 

 

2015/05/01 07:15 2015/05/0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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