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소식

분류없음 2016/02/09 02:13

 

제목: 반가운 소식 외 

 

 

"캐롤 (Carol, 2015)"의 선전에 부쳐 

 

며칠 전 파트너와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 캐롤이 한국에서 개봉하지 못하면 어쩌나, 영화관에 걸리더라도 금방 내려가버리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했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이명박근혜 세상 이후로 시절이 너무도 하 수상하니까. 이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를, 오로지 감정으로만 승부하는 이 이야기를 한국에 있는 괜찮은 사람들이 꼭 봤으면 싶은데... 파트너는, 당신은 그런 생각 - 나처럼 괜한 걱정 - 은 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칸과 오스카 후광 때문인가. 아니면 케이트 블란쳇 (Cate Blanchett) 때문일까. (영화) 자본의 힘 때문이라는 게 맞는 말이겠지. 회사 동료들과 영화 캐롤 이야기를 하다가 "케이트 블란쳇 등짝이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숨막혀 죽을 뻔했어" 라고 했더니 우리반 언니 한 명이 배를 잡고 웃었더랬다. 

 

어쨌든 한국에서 선전하고 있는 영화 캐롤 소식이 오늘의 반가운 소식. 스크린을 몇 개 잡고 시작했는지 알 순 없지만 예매율 3위라니까 그럭저럭 잘하고 있는 거 맞지? 허허허. 엊그제 아마존을 통해 쌀을 주문하면서 DVD도 함께 프리오더했다. 쌀도 DVD도 언제 도착할 지 알 순 없지만 흐뭇하다. 쌀은 아마도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한 미국에서 오는 거니까 봄이 가기 전엔 오겠지. DVD도 올해 봄에는 꼭 올 것이다. 너는 나의 봄이다!  

 

 

한편, 조선일보에 실린 리뷰를 어떤 이유로 읽고는 영 형편없어서 조금은 실망했었다. 그럼 그렇지, 라고 할 순 없고 아마도 이런 방식으로 이 영화를 소화하는 게 한국사회의 대세로서는 최선일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이동진이 뭔가 사고를 쳤다는 소식도 접했다. 이동진은 구구절절 해명이란 걸 했는데 "가장 먼저 말해야 할 것은, 저는 동성애를 논한 게 아니라 '캐롤'이라는 영화를 논했다는 사실입니다" 라는 대목에서 그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진작에 알아버렸다. 아마도 비이성애가 한국사회에 놓인 맥락 (주류적/정상적) 에서 그리고 당일 있었던 라이브톡의 분위기에 "알맞게" 조응하느라 그런 실수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비평가 이동진으로서는 그런 실수를 해서는 안되었고, 했더라도 그런 방식으로 쓸데없는 해명을 해서는 안되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발언력이 큰 양반들이 점잖게 사과하는 게 이토록 어렵구나. 뭐, 그런 걸 재삼 확인했다고 해야 하나.   

 

일단 토드 헤인즈 (Todd Haynes) 의 개인적-영화적 색깔과 영화 캐롤의 원작 소설 및 저자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Patricia Highsmith) 와 각색자 (Phyllis Nagy) 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면 마지막으로 두 가지 핵심 키워드인 시대배경 (전후 50년대 미국 뉴욕) 과 그 시대에서 레즈비언 동성애 (homosexuality) 가 놓인 위치를 알고 있었다면 영화 비평가인 이동진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됐다. 이동진은 분명 영화의 원작소설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이스미스가 왜 이 소설을 가명으로 출판했는지 그 이유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전후 50년대 지독히도 음울한 당시 시대적 분위기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른바 남성동성애자들은 범죄자 취급이라도 받았지만 여성동성애자들은 정신질환자로 취급받거나 존재조차 부정당했던 당시의 분위기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쩐지 이동진의 그 길고 긴 해명이 여전히 껄쩍찌근하다. 이 모든 걸 이동진이 몰랐다면 - 아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 어쩌지. 이런 경우는 생각해보진 않아서... 

 

 

 

 

 

 

 

인디와이어 리뷰를 읽다가 건진 감독 인터뷰. 12:30, 30:20 즈음에 캐롤과 트뢰즈의 관계를 그 시대의 관점에서 대상화하는 표현이 나온다. "언어가 없었다" "설명하는 방식이 없었다" 정도로 이해했는데 이게 참으로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남자인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거 같은데 내가 이상한건가, 그건 동성애라고들 하던데, 범죄라고 하던데, 하나님이 벌 준다고 하던데, 회사에서 짤릴텐데, 그런데 나는 아닌데, 나 그렇게 이상한 사람 아닌데... 남자들은 감방이라도 가고 하나님한테 회개할 여지라도 있고 회사에서 짤릴까봐 걱정이라도 하는데 여자들은 뭥미? 대체 이건 뭐지... 이건... 이 감정은, 이 관계는, 이 세상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나 어트게 해야 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당연히 들지 않을까. 사실 캐롤이나 트뢰즈나 매 한가지였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캐롤은 맥락 상 베스트프렌드인 애비 (Sarah Paulson) 와 뭔 사단이 있기는 있었다. (사실 제일 불쌍한 사람은 애비 Abby 같다. 내 눈엔 애비가 여전히 캐롤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 사랑의 방식이 다를 뿐) 갈팡질팡하지만 다만 캐롤은 그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행동해야-적응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자신이 취하는 사랑의 방식을 정의하지 못한다. 트뢰즈 또한 벼락같이 찾아온 (out of the blue) 감정의 정체를 정의하지 못하기에 그 때까지만 해도 가장 유사한 감정적 동질감을 느껴온 남자친구, 리차드에게 묻는다. 아, (씨발) 너 남자 사랑해본 적 있어. 이 질문을 할 때 트뢰즈의 표정은, 정말이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 (씨발) 진짜 사실대로 말해줘. 뭐 좀 알고 있으면 알려줘봐, 제발 (씨바). 

 

이 둘의 사랑을 레즈비어니즘적 사랑이라고 정의하지 않고 그저 인간 대 인간의 사랑이라고 눙치면 이제 이 둘은 어찌해야 할까. 애써 돌고돌아 각자 존재의 정의, 존재의 가치를 찾아냈는데 그래서 그것이 가장 고귀한 것으로 되어야 하는데 그냥 인간 종 (種, species) 으로 되돌리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 가혹하다. 가령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절대적으로 먹고 싶은데 같은 아이스크림 카테고리인 브라보콘이나 쳐먹으라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하겐다즈 사먹을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걸어가면 편의점이 널렸는데 말야. 이런 기분을 이성애자들은 정말 알기는 알까? 

 

리뷰를 읽다가 감독이 어디에서 어떤 맥락으로 말한 건지 출처도 알 수 없는 이런 글도 읽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바이든 막론하고) 마지막 질문과 답을, 거봐 감독도 사람과 사람의 사랑이라고 하잖아, 라는 식으로 해석해서 제 논에 물을 대는 것 같다. 만약 그 "사랑"에 방점을 찍는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맥락을 조금 더 잘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

트뢰즈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어쩔 땐 데뢰즈로 들리는 것도 같다) 참으로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루니 마라 (Rooney Mara) 가 그토록 요상한 매력을 지닌 배우였는지 몰랐다. 인형은 잘 몰라요 기차가 어때요 (!), 왜요? 내가 왜 이상해 보여요? (!) 침대로 가요 (!), 캐롤, 당신이 보고 싶어요 (!) 흐리멍덩한 그 눈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고르는 캐롤을 뷰파인더로 들여다볼 때 가장 많은 흰자위를 노출했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잭은 그녀의 왼쪽 어깨를, 캐롤은 그녀의 오른쪽 어깨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녀는 왼편의 유혹을 지나 마침내 오른편의 유혹으로, 그 운명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갔다. 그녀는 용감하고 씩씩하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강인한 여성이었다. 스스로 사랑을 쟁취한 멋진 여성, 사랑받을 자격, 충분하다. 꽃개도 그런 씩씩한 여성이 되어야겠다. 

 

 

 

"제국의 위안부"에 부쳐 

 

얼마 전 "제국의 위안부" 를 PDF로 다운받아 읽다가 파트너의 친구가 한국에서 보내준 페이퍼백을 읽고 있다. 이 생각의 부스러기들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덩어리로 만들어 정리해야겠다 싶은데, 그러다가 페이스북을 통해 박유하와 목수정 등의 (전체 공개로 되어 있는) 글들도 읽었다. 목수정은 박유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박빠"로 일컬었다. 개탄스럽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혹은 키보드로 꾸려지는 말들이 지지리도 궁상인 세상이다. 베갯잇 송사나 일기장에 써야 할 말들과 연단에 올려 나부끼는 말들이 너무나 뒤죽박죽인 칠푼이 세상이다. 이것도 트렌드라면 트렌드일까. 페이스북에서 만난 박유하의 단상들은 오히려 나를 끌어당기고 있더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연례 화재 경보기 테스트에 부쳐 

 

지난밤 오버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오늘이 바로 연례 화재 경보기 점검을 하는 날이다. "연례" 라는 말은 모든 아파트 가가호호 테스트를 한다는 말.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삑삑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어 포스팅을 했고 일정 마쳤다. 아... 밤이, 아니 낮이 길다. 

 

 

 

2016/02/09 02:13 2016/02/09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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