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의일

분류없음 2016/06/17 13:38

첫째. 

파트너가 친구의 부고를 듣다. 얼마간 파트너 눈치를 살피느라 얘기를 하지 못하다가 장례식에 가는 날, 이런저런 준비를 하며 농담을 하고 그리고 다녀온 그날 뒤로 얘기를 나눴다. 파트너는 많이 울었던 것 같았다. 

 

둘째. 

올란도 학살. 49명의 목숨을 단 한 사람이 빼앗다. 그리고 그 곳 학살의 현장은 "게이 클럽"이었다. 며칠 기운이 쪽 빠져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들의 연속. 어제, 교회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 한사람 한사람,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나오는데 눈물을 쏙 참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눈물을 계속 흘렸다. 곁에 파트너가 없었다면 아마도 쓰러졌을 것 같았다. 

 

셋째. 

이틀 연속 열린 워크샵 (Harm Reduction) 에 다녀왔다. 사회자 가운데 한 명은 이 도시에서 잘 알려진 성노동자 운동가. "성노동 (Sex Work)" 하면 대번 "인신매매 (Human Trafficking)" 를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그게 자발적으로는 도대체가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 "맨 정신"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아무래도 부지불식간에 인식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성노동에 "돈을 쉽게 벌려고" 라는 레테르를 아무 생각없이 쉽게 붙인다. 무슨 일이든 여성이 하는 일은 쉽게 보이는 모양이다. 바라보는 이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 여성은 -그리고 여성의 노동은- 그만큼 대상화되어 있다. 

 

넷째. 

박유하 선생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 아무래도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양반, 반도를 넘어 전지구적 발상을 하는 양반, 더리버벌리스트오브리버럴이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안타깝기도 하고 연구자로서 홀로 자유로운 연구를 지속하는 와중에 저런 급진성을 띨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어메이징하다 할 수밖에. 그토록 급진적이고 맑스주의적이던 남성 연구자들은 대체 지금 뭘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독도공유론"은 아무리 생각해도 탁월한 것 같다. 탈근대적, 초인류적, 비국가적인 그리하여 따라서 가장 평화적인 훌륭한 발상이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해봤을까. 시간을 되돌려 생각해도 나에겐 그 지경에 닿을만한 그럴만한 계기가 없었다. 생각의 자유로움. 학자에게, 운동가에게, 그리고 "자유로운 개인"에게 필요한 덕목. 그 덕목을 나도 지니고 싶다.

 

다섯째. 

일터 한 곳은 가난한 흑인과 중국인들/베트남인들이 모여사는 동네에 있다. 퇴근길 버스를 기다릴 때마다 담배와 동전을 구걸하는 이들을 두어 명 반드시 만난다. 오늘도 역시... 퇴근길 버스 정거장으로 걸어가는데 한 사내가 졸졸졸 시가렛, 체인지 하며 따라온다. 미안해. 정류장 근처를 배회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가렛, 체인지... 그이가 벤치에 던져놓은 더플백이 살짝 열렸는데 그 틈으로 시크교도들이 지니고 다니는 칼 (Kirpan) 이 보인다. 아, 이런... 나는 커뮤니티가디언도 아니고 카우보이 보안관도 아닌데 괜한 걱정이 든다. 어쩌지... 그이의 동정을 살피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동시에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그런 다짐을 한다. 사랑하는 파트너를 만나야 하고 그이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해야 한다. 나는 그래야 한다. 정거장에 도착한 버스를 타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 돌아와 이 이야기를 하며 박장대소했다. 내가 웃는 게 - 그게 사실은 웃는 게 아니다. 

 

 

2016/06/17 13:38 2016/06/1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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