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외

분류없음 2016/06/27 03:53

 

건강검진 

 

아침 아홉시 반 약속 시간에 맞춰 짝꿍과 클리닉 도착. 아마도 오늘의 첫손님이지 싶다. 패밀리닥터를 만나기 전 어시스턴트와 함께 혈압, 몸무게, 키 따위의 기본적인 것과 흡연 여부 및 금연 동기와 스케일 등 대화를 나눴다. 몸무게가 48kg 이니 많이 줄었다. 키는 조금 컸다. 아싸 여전히 자라고 있어! 아임스틸그로잉업! 환호를 했더니 깔깔깔 웃는다. 몸무게가 적당하지 않으니 의사와 얘기를 나누라고 했다. 의사를 만나도 딱히 특별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프로틴/단백질을 섭취하라는 얘기. 고기를 먹으라는 얘기. 고기는 냄새 때문에 힘들다고 했더니 단백질보조제를 먹으란다. 내 나이에 단백질이 부족하면 위험하다면서. 의사들은 원래 다 이렇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저렇게 신기할 정도로 진지하게 말한다. 응 알았어. 시도해볼께. 사실은 가끔 단백질 파우더를 먹고 있기는 하다. 지난 육개월 생리주기를 기록한 노트를 가져가보여줬다. 똥은 잘 싸고 있지. 홀딱 벗고 몹시 거친 가운을 입고 누웠더니 몸을 전체적으로 관찰하고 만진다. 괜찮단다. 자궁경부암 검사 (pap smear) 생검을 하긴 했는데 나중에 짝꿍에게 인터코스 성관계 (intercourse sex) 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할 필요없다는 얘길 했다고. 왜 나한텐 그 말을 안한겨. 만지고 들여다보신 김에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건강하단다. 감사. 피검사/ 소변검사를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주에서 발행한 건강보험증 (OHIP health card) 을 달란다. 짝꿍과 나는 아직 그게 없다. 대신 짝꿍의 학교에서 지원하는 보험을 쓴다. 돈을 내란다. 돈을 냈다. 지불하면서 패밀리닥터에서 받은 패키지를 건네 주었다. 기다리는데 이름을 부른다. 갔더니 내 피를 뽑을 어시스턴트가 패키지를 달란다. 이미 네 동료에게 줬어. 잠깐 리셉션에 다녀오더니 없단다. 순간 성질이 나는 걸 꾹 참고 네가 괜찮으면 리셉션에 가서 직접 물어보고 싶어. 괜찮겠지? 했더니 마뜩찮은 표정으로 응, 그래. 뚜벅뚜벅 리셉션으로 걸어가는 나를 졸졸졸 따라온다. 내 패키지 어디 있지? 하고 물었더니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너네들은 돈 받는 것만 열심이고 사람을 케어하는 데엔 관심이 없구나 (You people are only interested in taking money not taking care of customers) 매우 드라이하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다섯 명이 모두 뜨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동안 피를 뽑기로 한 그 직원이 찾았다고 말한다. 사실은 정말 찾았는지, 남의 패키지를 들고 찾았다고 하는 건지 그것도 잘 모르겠지만 고맙다고 말한 뒤 다시 피를 뽑는 곳으로 돌아가 앉았다. 바바라라는 이름의 그 직원은 계속 눈치를 살핀다. 미안해. 네 잘못이 아니니 괜찮아라고 했더니 그래도 우리는 팀으로 일하는 거니까 미안해. 알았어. 아침부터 열을 내고 나니 기운이 쪽 빠진다. 나만 손해다. 화내지 말아야지. 결과는 6주 후에나 알 수 있다. 젠장. 참으로 빠르구나. 

 

 

브렉시트 

 

영국이 결국 유럽연합에서 나가시겠다고. 국민투표 결과가 나왔다. 결과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많은 가운데 신기한 것은 탈퇴에 동의한 좌파가 많았다는 거. 뭐 이유는 좌파들이 늘 그러하듯이 쌀로 밥짓는 소리 - 유럽연합은 신자유주의의 한 축일 뿐이고 신자유주의 아래 핍박받는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유럽연합 그것은 전혀 복무하지 못한다... 따위의 이야기. 예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깔대기. 맞는 말이긴 한데 뭐랄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마치 몇년 전 17대 대통령 선거 운동 당시 금민 후보의 벽보를 보면서 어머니께서 하셨던  "참 좋은 소린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던 말씀에 빙의한 느낌적 느낌. 당장 파운드화는 급락했다. 국민투표 결과의 소소한 영향 가운데 하나인 이 사실을 탈퇴에 적극 동의한 노령층-노동자계급들은 예상하셨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들의 연금은 대부분 주식에 들어가 있다 (어느 나라나 그러하듯이). 연금운용탄력성 또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아랍-러시아 부호들은 이 기회에 런던에 부동산이나 사야겠다, 얼씨구나 덤벼들겠구나. 당장 영국본토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 영국을 떠나 유럽에서 일할 이주노동자들에겐 위기감이 들 것 같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유럽연합이 신자유주의의 한 축인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그것을 부정할 이는 없다.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가, 그래서 유럽연합이 그들 스스로 판 무덤이라면 그래서 폐절해야만 할 어떤 것이라면 그래도 우리는 거기에서 그 무덤에서 시작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 무덤조차 우리에겐 자산이다. 나는 생산수단도, 돈도, 부동산도,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평범한 노동자다. 하지만 나의 현실, 박봉과 삶의 우울함에서 벗어나려해도 그 현실에서, 박봉에서, 우울함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늘에서 뭔가 뚝 떨어지기를, 복권에 당첨되기를, 혹은 그 암흑같은 무덤을 없앨 취지로 핵폭탄을 떨어뜨릴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어차피 노동자계급의 팔자란 단 한 번 그 승리 이전까지는 자본주의가 싸대는 똥을 잘 치우고 문제적인 시스템을 잘 갈고 닦아서 나중에 전취했을 그 때에 우리의 도덕에 맞게 잘 쓸 준비를 하는 그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빈체제에 버금가는 반동, 신고립주의가 활개를 치는 이 마당에 넋놓고 있다가는 다음 손님이 분명한 "전쟁" 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건 분명한 수순이다. 짝꿍의 본인의 페이스북에 공유하신 한 장의 사진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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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b-an

 

 

 

 

 

 

 

사람을 대하는 노동

 

마야 안젤루 (Maya Angelou) 의 한 말씀으로 시작. 

 

People will forget what you said
People will forget what you did
But people will never forget how you made them feel.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을 신나고 즐겁고 기분 좋게 만들 것까지는 없다. 그건 나의 일이 아니니까. 나는 엔터테이너가 아니니까. 하지만 상대로 하여금 "하찮은 취급"을 받았다는 그런 느낌을 줄 것까지는 없다. 우리는 로봇이나 식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끝. 

2016/06/27 03:53 2016/06/27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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