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쵸어

분류없음 2016/10/07 04:47

 

제목: 하우스쵸어 (House Chores)

 

 

오프일 때는 주로 가사노동 (house chores)을 한다. 간간이 책도 읽고 블로깅도 하고 산책도 하고 여타 다른 사회활동도 하지만 아무래도 우선 순위는 가사노동으로 된다. 파트너와 함께 살면서 우리는 이 노동을 어떤 식으로 분담하고 있는지 딱히 따져볼 일이 없었다. 무난하게 둘 다 큰 불편불만없이 잘 하고 있다. 그런 것 같다. 파트너는 아마도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 생각의 차이가 있거나 만족스럽지 않으면 서로 어떤 방식으로든 티가 나는지라, 그리고 금방 알아차리는 편이라 이 문제에 관한 한 큰 이견이 없다고 여기고 있을 뿐이다. 처음에 함께 살게 되었을 때 함께 작성하고 서명한 일종의 계약 (contract) 이 있다. 그 가운데 가사노동에 관해서는 "서로 가사노동을 이유로 스트레스를 주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둘 다 하기 싫으면 그냥 내버려둔다. 반드시 해야 할 때에는 가사노동 전문가를 고용한다" 정도로 정리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직까지 둘 다 너무 하기 싫은데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 따라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는 한 번도 이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가운데에도 꽃개만 하는 일, 꽃개의 파트너만 하는 일이 따로 있다. 서로 이렇게 합시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살다보니까 그렇게 되어버렸다. 일단 청소기 청소 (vacuuming) 나 대걸레질 (mopping) 은 꽃개가 한다. 청소기는 무겁고 소음이 강하고 대걸레질은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그냥 꽃개가 맡았다. 둘 다 청소기 소음에 진저리를 치는지라 파트너가 언젠가 작은 빗자루 세트를 구입해오셨다. 간단히 정리정돈할 때는 그 도구를 쓴다. 변기청소 등 화장실 청소와 냉장고 청소는 파트너가 한다. 행주와 면생리대를 삶는 일도 파트너께서 하신다. 다른 일은 둘이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알아서 하거나 같이 한다. 가령 요리와 설겆이 등 부엌 일은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사람이 한다. 이브닝이나 오버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파트너가 식사를 준비해두실 때가 많다. 특히 이브닝 퇴근길에 "국수 끓여놨어요" 와 같은 텍스트메세지가 오면 너무너무 감사하고 그 순간이 행복하다. 인생의 행복이란 게 별 게 있나 싶나. 바로 이런 거지. 역으로 파트너가 오후 근무나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 사이 꽃개가 집에 머물게 되면-  파트너가 잡수실 식사를 준비한다. 때로 귀찮다. 그런데 내가 느꼈던 그 행복한 순간들, 어쩌다 파트너가 아프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퇴근했는데도 또 다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내가 먹을 식사준비를 했던 그런 순간들을 떠올리면 스르르 몸을 추스려 저녁 준비를 하게 된다. (내가 먹을 것을 내가 준비하는데도 억울한 그런 때가 있다. 풀썩.) 다행히 파트너는 꽃개가 하는 음식을 무엇이든 불평없이 아주 잘 드신다. 꽃개에 비해 성격이 무난하고 긍정적이고 서두르지 않는 (laid-back) 편이다.  꽃개는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음식에 이러쿵저러쿵 불평불만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어머니께서는 아무말없이 잘먹고 고맙다는 말을 들어보면 소원이 없겠다, 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뚝딱 군소리없이 잘먹는 파트너를 보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꽃개도 나름대로 잘 먹으려 애쓰는 편인데 파트너 말씀에 의하면 꽃개는 얼굴이나 행동에서 티가 난다고 하신다. 그리고 맘에 들지 않는 음식엔 두 번 다시 손을 대지 않는다고. 저런, 내가 그랬구나. 몹시 송구스러운 상황이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습관이란 무섭다.

 


처음엔 식사를 세팅해놓으면 세월아네월아 기다리게 만드는 일이 몇 번 있어 파트너와 말다툼을 했다. 그런데 점차 서로 차이를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되어 그냥 혼자 알아서 먹는다. 서로 다른 것을 억지로 맞춰 살 순 없는 노릇이니까. 상황이 허락해 여분의 식사를 준비해놓고 출근하거나 외출할 수 있을 땐 따로 편지를 써놓고 나가면 된다. 그리고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같이 먹거나 외식을 한다.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한다. 아무리 같이 사는 사람일지라도 각자의 일상이 있으므로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꽃개가 처음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 어릴 적에 자취할 때에는 동거인들과 무진장 많이 싸웠다. 각자의 차이를 차이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의 기준을 상대에 맞춰 재단했기 때문이다. 파트너와 함께 살면서, 이 나라에 와서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바꾸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조금씩 변한다. 변할 것이다.  

 

 

그 외에 빨래, 빨래널기와 개기, 쓰레기정리와 버리기, 그로서리쇼핑과 리스트만들기, 집세나 여타 돈나가는 일 정리하고 연말정산 보고하기, 계절별 옷가지 정리, 침구정리, 가재도구 고치기와 정리… 끝도 한도 없다. 때론 자동으로 옷걸이/ 옷장에 옷이 착착 잘 정리되어 있고, 일터에서 돌아오면 자동으로 청소, 빨래,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자못 환상적인 상황을 꿈꿀 때가 있다.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나도 "아내" 가 있었으면 하는 꿈도 꾼다. (물론 나는 인건비를 지불할 능력도 용의도 없다). 따라서 결혼만 하면 자동으로 풀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그것도 공짜로 해주는 아내를 원하는 일부 남성들의 바람을 이해못하는 바도 아니다. 이런 서비스를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뭣하러 상대적으로 어렵고 몸을 많이 써야하는 길을 선택하겠는가. 혹은 일부러 너저분하게 일처리를 하면 (예를 들어 설겆이를 지저분하게 하면) 아내나 엄마나 누나가 더 이상 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이이들은 잘 알고 있다. 어차피 다시 해야 하니까 그냥 내가 해버리고 말지. 대부분 여자들의 생각이 그럴 것이다. 그렇게 자랐으니까. 수동공격적 행동 (passive aggressiveness)이 이런 거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에게 처음부터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말라고 처음부터 잘하면 계속 시키니까 조심조심 봐가면서 하라는 훈계조의 글을 남초사이트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야구를 전문으로 다루는 엠사이트라고는 말 못해.)

 


만약 파트너가 처음부터 꽃개보다 가사노동을 못했다면 꽃개는 꽃개의 성격상 꽃개가 다 떠안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불평하고 불만을 쏟아놓고 싸웠을 것이다. 결국 아마도 지금쯤 각자 완전한 남남으로 살고 있겠지. 또 만약 꽃개가 일부러 못하는 척하고 수동공격적인 태도로 가사노동에 임했다면, 그리하여 파트너의 노동을 고의적으로 교묘히 착취하고 살았다면 아마 지금쯤 각자 완전한 남남을 넘어 웬수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진작에 쫓겨났겠지.

 


가사노동에 대한 다른 생각들, 단상들을 조만간 정리해봐야겠다. 건조기에 들어있는 빨래를 찾으러가야 하니 이만.

 

 

2016/10/07 04:47 2016/10/07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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