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구나

분류없음 2017/10/06 15:44

한국인이 하는 그로서리에서 나눠준 달력에 빨간 날들이 있는 것도 그냥 무심히 지나쳤다가 어제 동네 세탁소에 들른 길에 추석인 것을 알았다. 중국인 부부 주인이 음력/ 양력이 함께 있는 달력을 카운터에 걸어놨는데 그걸 들여다보다 아차 싶었던 것. 해피 댕스기빙, 했더니 매우 당연하다는듯이 문케잌 (월병) 을 먹었냐고 묻는다. 한국인은 추석에 월병을 먹지 않아, 했더니 하우컴? (왜?) 그럼 니네는 송편 처뮥냐? 고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다른 걸 먹어. 라고 시크하게 넘겼다. 오늘 역시 일터에서 일주일에 두 번 근무하는 파트타이머 중국인에게서 월병 먹었냐는 질문을 듣고 또 다시 구질구질하게 설명. 하우컴? (왜?) 그 남자의 관심은 왜 추석에 맵쌀로 만든 떡을 먹냐는 것. 일 리 있는 질문이다. 햅쌀이 나오긴 이른 때인데. 아마도 묵은쌀로 하는가보지, 대충 넘겼는데 생각해볼 문제... 그런데 왜 니덜은 월병을 먹느냐? 그 미치도록 단 것을 뭐하러 먹느냐? 물었더니 그쪽도 딱히 그럴만한 대답을 하지는 못한다. 하여간 중국인들은 지들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안다. 동(남) 아시안들은 의당 중국식으로 사는 줄 알고 당연하다는 듯이 묻는데 이젠 아주 그냥 지쳤다. 그냥 그렇다고 넘기는 것도 껄쩍찌근하고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귀찮아. 중국인들이 물어보면 그래 그냥 하고 넘기는데 허여멀건 족속들이 월병 먹느냐고 물어보면 식겁하게 된다. 새해에 씨뻘건 봉투를 보여주면서 (물론 돈은 안 들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하고 씨익 웃으면 으이구 저걸 그냥 하다가도 그냥 같이 웃어 넘기게 된다.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가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러나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무엇보다 일일이 따지고 살 기운이 없다. 기력이 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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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들 중 매우 따뜻한 - 겨울이 없는 곳에서 온 사람들의 다른 기준 때문에 몹시 시달리고 있다. 시간 개념이 다르다. 가령 아침 아홉 시에 스탭 미팅을 하면 열 시 전에 온다. "아홉시 (09:00)" 라는 기준을 그들은 아홉시 일 분부터 (09:01) 아홉시 오십구분까지 (09:59) 다채롭게 적용한다. 클라이언트 미팅도 마찬가지라서 클라이언트의 원성이 자자하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노동의 밀도, 시간의 사용, 약속의 적용, 클라이언트 관리 모두 엉망이다. 기준이 다르니 당연하다. 시프트 파트너와 대체 이유가 뭘까. 왜 그럴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화차이 (cultural difference), 시간 관리 (time management) 의 유래, 막스 베버 (Max Weber) 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등등 별의별 이야기를 다 나누게 됐다. 시프트 파트너의 아버지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을 겪고 캐나다로 망명온 체코 출신 사회주의자. 사회복지를 전공하기 전에 아버지의 영향 (이라기보다는 압박) 으로 정치학을 전공했고 맑시즘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데 그이도 나도 북미대륙의 사회적 맥락 (Societal context) 에서 비춰볼 땐 이건 아니지 않나... 의견의 일치를 이뤘다. 따뜻한 나라에서 온 이들의 규범파괴적인 (혹은 영혼이 매우 자유로운) 행동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훈련이 덜 된 게 아닌가 싶은데 과연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하기는 할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불가능하겠지. 그럼 대안세상에서는 가능할까? 글쎄, 잘 모르겠다. 일주일에 이틀이나 하루만 일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면 모두가 다 잘 어울려 불만없이 살 수 있는 유토피아가 가능할까. 아니면 직장 문화를 바꿔야 할까? 시간약속 없이 아무 때나 원하는 시간에 나타나서 일하고 적당한 시간을 채우면 퇴근하거나 아니면 아예 집에서 공원에서 도서관이나 바에서 원하는대로 일하면 괜찮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무엇보다 나의 일은 사람을 케어하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더욱 더 이런 "영혼이 무척이나 자유로운" 집단을 이해하는 게 곤혹스럽다. 매니지먼트 레벨에 있는 사람들이 이 집단의 사람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면서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가도 고개를 계속 갸웃하게 된다. 사람의 본성 (substance) 이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머무르거나 반동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는 뽈 부제 (Paul Bourget) 의 명언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누가 그랬는데...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라고...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대로 쓰면 좋은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시스템이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다. 아아아아아 그들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 아니, 이해는 하겠는데 내게 다가오는 피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것도 시스템의 일환이려니 하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당연히 클라이언트들에게 피해가 가고 나의 업무에도 지장을 주니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다.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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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짝꿍과 나의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로 굉장한 선물을 보낸 이가 오래전 힐끔힐끔 보던 진보넷블로거라는 사실, 뚱산의 야구팬이라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그나저나 트윈스 너네는 왜 만날 그짝이냐) 짝꿍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아마도 내게 말을 했겠지만 온라인에서 만났던 인연들을 오프라인에서 명실이 상부하도록 꿰는 일은 아무래도 여전히 쉽지 않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 회로를 지녔나보다. 세상은 이렇게 좁구나.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한 나머지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곱씹고 있다. 오늘도 피곤으로 곯아떨어진 곱게 잠든 짝꿍을 보면서 이렇게 부족한 나와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잘 살아봅시다. 보름달을 보고 빌어본다. 백세세상이라서 아직 반백년도 더 살아야하는데... 아이고... 어떻게든 잘 살아지겠지. 잘 할 수 있어. 

 

 

2017/10/06 15:44 2017/10/0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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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슨대 2017/10/19 12:50 Modify/Delete Reply

    어머 뒤늦게 봤네요 결혼 축하드려요!!! 예전에 제 결혼식에 오신 걸로 사진 합성했던 거 생각나요 ㅋㅋㅋㅋ 행복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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