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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난 돌이라 생각하며

모난 돌이라 생각하며


‘모난 돌’은 흔하게 사용되는 말이다. 그 단어가 요즘 내 주의에서 서성이고 있다. 마치 끙끙대며 말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 집 앞에서 서성거리듯이. 몇 날 며칠에 걸쳐 쌓여 있던 것을 토해내려고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스트레스가 극치를 이른 오늘 골방으로 가지고 와서 이렇게 풀어내려고 용을 쓰고 있다. 불평불만을 스스로한테 조근조근 이야기조차 못하는 것을 보며 틀림없이 모가 나도 엄청 나있는 것 같다.

 

지난주에 고향이라는 곳을 모자 꾹 눌러 쓰고 갔다 왔다. 밤늦게 도착해서 술친구이자 동지이자 뭐 그런 사이인 선생님을 보고 왔다. 이야기하지 못해서 병이라도 난 것처럼 밑도 끝도 없이 무게 잡으며 맥주 몇 잔에 풀어 놓았다. 여전히 나의 말을 차근히 듣고는 아기 달래듯 달래주었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일 것이다. 여태껏 어리광 제대로 부리지 못한 것 같다. 코흘리개였을 때는 콩가루 집안이 그래도 살 만했는지 이래저래 투정도 부린 것으로 기억하지만, 반항으로 가득 차 있던 사춘기는 아니었다. 사춘기 때는 분명히 그랬다고 말할 수 있다. 상처 난 곳을 빨간 약 발라주며 괜찮다고 따뜻하게 대하는 엄마를 찾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골방에서 잠을 깰 때면 엄마라는 그 언저리가 희미하게 지나간다. 아침부터 우울해져 집을 나서기가 매일인 것 같다.

 

고향이라는 곳은 대낮에 고개 쳐들고 찾아 갈 수 없는 곳이라 했던가. 분명 그렇지 않는 놈들도 있을텐데. 도둑고양이처럼 찾아 갔다가 야한 비디오 틀어주는 여관에 잠시 눈을 붙이고는 허둥지둥 동네 아저씨라도 마주칠까 걱정이 앞선 채 고개 푹 숙이고 빠져나와야만 하는 그 곳. 언제쯤 그 짓을 그만 둘 수 있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게 찾아간 날, 가방에 넣어 갔던 어쭙잖을 책을 해장을 하기 위해 선생님 기다리다 펼쳤다. 맑은 햇살 가득한 토요일, 하교 길의 여중학생을 보며 소주가 생각났다.

 

“고향은 피의 더러움과 성장기의 불우를 그때마다 확인시키던 ‘낙인’은 아니었던가.”

 

시발,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시는 이 지긋지긋한 곳을 안 올 것이라. 맹세하고 돌아서지만, 파도에 모래성이 사라지듯 다시 몰래 찾아오고 만다. 풀고 싶다. 근데 정말 풀리지 않는다.

꼬인 실타래처럼 꼬여만 간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받을수록 말을 잃어간다. 오히려 맞받아서 싸우고, 주사 부리듯 말을 더 해야 할터인데. 침묵으로 일관한다. 말을 잃어가고 말을 더듬는 것이 불안하다.

 

난 결코 그럴 수 없겠지만, 취직하고 열심히 싸이질로 뻔질나게 살고 있는 연락을 끊은 친구가 괜히 부럽기도 하며 심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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