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브랜드와 금의주행 그리고 금의야행(錦衣夜行)

 

옛날에 어떤 사람에게 비단 옷이 생겼다. 그런데 값진 옷이 생겼으니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개 씨는 캄캄함 밤인데도 불구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어서 급한 김에 비단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다. 캄캄한 밤이고 보니 앞이 안 보였다. 더구나 전기도 없던 시절이고 보니 자기 모습을 봐주는 사람도 없고 “좋은 옷을 입으셨습니다.”고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도 없다.

값지고 좋은 옷을 입었으면 공치사일망정 인사 한마디쯤은 건네받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다. 그러나 비단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선 아무개 씨는 인사를 받기는커녕 캄캄한 밤에 혼자 생 쇼를 하고 만 격이었다.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는 말은 그래서 공을 세우고도 누가 알아줄 사람이 없다거나 아무리 출세를 해도 칭찬을 하거나 기쁨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음을 빗대어 말할 경우에 자주 쓰이는 말이 됐다.

‘옷이 날개다’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금의야행과는 다소 좀 다른 경우라 할 수 있다. 평소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사람인데 어느 날 보니 신수가 훤해 보였다. “가만히 보자.” 눈을 부비고 자세히 보니 아주 값비싼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야 옷이 날개네!” 복잡하게 말할 것도 없이 감탄 섞인 말을 무심결에 내뱉았다. 허름한 옷을 입고 빌빌 거리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기에 좋은 옷을 입은 모습을 보니 제법 폼이 나는구나 하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하긴 물자가 귀하고 살기 어렵던 시절에는 비단 옷이 갖는 의미가 대단했다. 몸에 비단 옷을 걸친다는 것은 신분의 고하를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부와 귀천을 재는 척도가 됐다. 비단 옷을 입으면 일단 폼이 난다. 옷 태깔이 자르르 흐른다는 이야기다. 착용감도 그만이다. 따뜻하면서도 가벼워서 옷을 여러 벌 껴입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하여튼 비단 옷은, 입은 사람이나 보는 사람 입장에서나 선망하는 옷이 아닐 수 없었다.

‘비단 옷을 입으면 이웃’까지 따뜻하다는 말도 재밌다. 비단 옷 한 벌 입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둘러싸여 있는 사람의 환경은 척박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병풍이 괜찮은 사람이란 말이다. 비단 옷깨나 입고 얼굴에 기름기가 제법 도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래도 풍요로운 모습이 연상된다. 아무튼 비단은 보존과 손질이 뒤따르는 수고가 만만치 않은 옷이다. 하여 비단 옷을 일상복처럼 매일 입을 수도 없고,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입을 수도 없다. 자신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는 때와 장소라고 여길 때나 잔치 혹은 귀한 만남이 있을 경우에 입는 옷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의생활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재다. 그런데 요즘 중고생 사이에서는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2~3년 전에는 노스 페이스라는 패딩 잠바가 등골브레이크였고 이제는 ‘캐몽’으로 불리는 캐나다 산 구스와 몽크레르를 합성한 말인 캐몽이 등골브레이크로 새롭게 등극한 모양이다.

강남 학생들 사이에서 너도 나도 7.80만원 하는 노스페이스가 부모들의 등골을 빼먹는다고 해서 등골 브레이커였는데 올해 캐몽은 노스페이스 보다 한술 더 떠든다. 100만원에서 200만원을 호가하며 새롭게 유행한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어째서 명품브랜드들이 들어오기만 하면 톡톡히 재미 보는 나라가 됐는가. 등골 브랜드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문제인지, 부모 등골이 휘는 것을 보면서도 명품 유명브랜드를 못 걸쳐서 안달복달 하는 아이들 중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 모르겠다.

체면이 밥 먹여 주는가 보다. 그래서 캐몽만 입으면 기가 펄펄 살고 친구들 앞에서 으스대고 한 폼 잡을 수 있는 맛이 장난 아닌가 보다.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볼만한 점도 적지 않다. 등골브랜드가 아이들에게 휘두를 수 있는 당근과 채찍이 될지도 모른다. “아무개야 네가 해달라는 것을 다 해줬으니 공부 열심히 해야 돼!” 또는 “200만 원 짜리 등골브랜드까지 사줬으니 딴 짓 말고 약속대로 공부 열심히 해야 돼!”하고 마음껏 몰아붙일 수 있는 당근과 채찍 역할을 톡톡히 할 대상일지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예전에 금의야행에 해당하는 경우는 순진하달 수 있다. 요즘은 너나없이 금의주행(錦衣晝行) 아니겠느냐 말이다. 대통령부터 TV와 카메라가 비치는 숫한 기회마다 놓치지 않고 갖가지 옷을 갈아입고서 폼 재고 나타나는 모습을 보인다. 나라가 엉망인데, 취임한지 10달이 다 돼가도록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데, 여전히 빨.주.노.초.파.남.보 등 듣도 보도 못한 온갖 색깔의 옷을 갈아입고 나오며 그저 혼자만 행복하고 혼자만 우아한 미소를 짓는다.

이것이 정상인가? 중, 고등학생들은 부모 등골 빠지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100만원에서 200만 원씩이나 하는 옷을 막무가내로 고집해서 입고, 대통령은 나라는 엉망인데 혼자서만 시간마다 요일마다 물불 가리지 않고 동지섣달 꽃 본 듯이 국민을 상대로 행복한 미소만 날린다.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차라리 금의야행(錦衣夜行)이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더 되내이고 싶다.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은 서로 잘 났다고 금의주행(錦衣晝行)에 환장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누가 봐줄이도 없는데 발길에 비단 옷을 입고 나가는 금의야행의 경우는 출세를 했어도 알아 줄이 없고 같이 나눌 상대가 없어서 걱정한 경우라지만 도대체 오늘 날의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나라 되가는 꼴하고는 상관 없이 백주 대낮에 시간 단위로 예쁜 옷 입고 나와서 구름위에 노니는 선녀 콘셉트로 행복한 듯 우아한 미소만 날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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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14:03 2013/11/2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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