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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과 장미

 


당신은 우리에게 언제나 든든한 힘이 되고 있습니다.

몇일 전 12월 1일 에이즈 감염인 인권주간 소속 활동가들은 세계 에이즈의 날을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로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 장소는 감염인을 시한폭탄으로 여기며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찬 에이즈 정책을 펼치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차별과 편견의 벽을 넘어’라는 제목으로 기념행사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감염인 인권증진이 에이즈 예방이며, 감염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한미FTA를 중단할 것을 외쳤고, 감염인의 발언권을 보장하라며 행사장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와 협회 관계자는 우리들의 진입을 막았습니다.  기껏 들어갔지만 행사는 이미 끝났고 우리의 요구를 알리기 위해 보건복지부 차관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려했으나 대한에이즈예방협회 관계자는 항의서한을 뺏으며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전달할 기회마저 박탈했습니다.


그 날 저녁, 기자회견 참가 활동가들이 가브리엘형이 있는 병실로 모였습니다.  저는 우리가 바라는 에이즈 감염인 인권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 수줍은 감수성을 들이밀며 빨간 색 장미 꽃 한 송이를 들고 병실로 찾아갔습니다. 형이 기자회견에 함께 참가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완강하며 절박한 행동을 만들지 못해 안타까워 하고 있을 활동가들이 떠올랐으며, 형이 질병과의 혹독한 싸움에서 이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제 자신의 마음을 강렬한 붉은 색으로 채우기 위해 형이 좋아하는 장미 한 송이를 가져갔습니다.  꽃을 받아들며 좋아하는 형이였으며, CMV로 시력을 많이 잃긴 했어도 붉디 붉은 꽃은 보이는 모양입니다. 


병실엔 꽃을 들고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전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건만 원래 모르는 사람처럼 당당히 ‘뒷 문’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갔습니다.  형은 꽃을 보고는, “혹시 앞에서 ‘저지’ 안하디?”했습니다.  순간 사람들은 왁자지껄 웃었습니다.  “어째 말을 골라도 ‘저지’래..  누가 활동가 아닐까봐.”...



붉게 물든 장미 보다 더 선명하게

전 형이 감염인인 사실을 안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심하게 아파 병원에 입원한 동인련 회원이 있다고 했을때도 그냥 입원했나 했습니다.  형에게 직접 감염인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라기 앞서 ‘절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야할 굳은 약속’을 얻기라도 한 것처럼 얼어버렸습니다. 


형은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2005년 동성애자인권캠프에서 형은 자신 삶의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병원진료를 거부당했던 일, 집안과의 관계... 캠프 참가자들은 형의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동성애자임과 동시에 감염인으로 ‘두 번의 커밍아웃’.  이 힘든 ‘커밍아웃’은 그 간 형이 겪었을 고난을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가브리엘 형은 불게 물든 장미보다 더 선명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

장미는 가브리엘 형이 자신의 예명을 로즈로 할 만큼 좋아하는 꽃입니다.  열정적인 자신의 끼를 ‘로즈’란 이름으로 표현하며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발족식에서 맘껏 펼쳐보였습니다.  태국에이즈컨퍼런스에서 세계 에이즈 활동가들의 밝고 역동적인 활동에 크게 고무받은 형은 깊고 구수한 끼를 선보인다며 한껏 곱디 고운 한복을 입고, 형이 좋아하는 ‘한영애’님의 노래를 립싱크하며 무대를 휘어잡았습니다. 


작년 APEC 회의가 열리는 부산에도 함께 갔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동인련 참가단과 함께 호모포비아 부시 반대! 전쟁에 쓰일 돈으로 에이즈치료제를!이란 피켓을 들고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며 부산 시내를 휘젓고 다녔습니다.  멀리 회담장소를 보며 ‘헤엄이라도 쳐서 갈까?’하던 형의 떨리는 목소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봄이 좀 더 빨리 오길 바라는 심정으로

온갖 미사여구를 끌어다 쓰는 글발 아닌 글발이 오히려 형의 활동을 미화하지 않나 쓴 글을 보고 또 보고 합니다.  하지만, 형과 함께 했던 순간을 기억해보면 언제나 그것은 저에게 활동의 좋은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병실에서 다리가 더 굳어지면 안된다며 앙상하게 뼈만 남은 두 다리를 떨며 운동하던 형, 밥힘으로 벌떡 일어나 함께 활동해야 한다며 새끼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한다는 형, 답답한 병실에서 굳건하게 에이즈 활동가들에게 힘을 불러 일으켜 주는 형...  봄이 빨리 찾아와 형과 함께 장미가 가득한 곳에서 걷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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