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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13
    씨앗을 뿌리는 사람
    A's people

씨앗을 뿌리는 사람

 

                                                                                                    미류 _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


 


가브리엘, 나 이렇게 얘기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그동안 메일도 한번 주고받아본 적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네요. 늘 너무 익숙한 사람이었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가브리엘을 자주 만나기 어려운 요즘 느끼는 시린 마음이 어색하기 그지없어요.

나, 이런 얘기해도 되나? 나누리+ 활동하면서 가브리엘 만난 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 이런 얘기해도 되겠지? 처음엔 나, “아,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거야?” 하는 생각에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회의할 때마다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하며 이런 건 이렇게, 저런 건 저렇게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하는 가브리엘 모습을 보면, “윽, 저걸 어떻게 다해?”, 이런 생각만 들더라구요.

회의 자리에서 가브리엘은 늘 새로운 소식을 말해줬지요. 에이즈에 대한 통계가 나오거나 새로운 치료제가 연구되고 있다거나, 아프리카 어디에서 임상실험이 됐다더라, 중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피를 팔아서 돈을 벌려다가 HIV에 감염된다더라, 질병관리본부에서 무슨 정책을 발표했더라, 하는 끊이지 않는 소식들. 그리고 어떤 감염인이 직장에서 해고됐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 어떤 감염인은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하는데 입원을 시켜주지 않는다던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가브리엘은 늘 새로운 고민꺼리를 던져주었고 이제 막 에이즈인권운동을 고민하기 시작한 나는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쫓아가기 어려울 정도였지요.

그 얘기들이 지금의 에이즈인권운동이 이만큼 걸어올 수 있었던 씨앗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조금 버겁고 답이 보이지 않은 채 맴돌기만 했던 얘기들을 우리가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덕분에, 여전히 답이 보이지 않는 얘기들로 가득하지만,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는 거요. 그래서 가브리엘의 자리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아, 물론 아직 가브리엘은 여기에 있지요. 여기, 우리들과 함께, 여전히 의약품접근권을 고민하고 감염인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실천을 만들어가는 이 자리에 가브리엘이 있지요. 하지만 가브리엘이 많이 아프다는 걸 가브리엘도, 나도, 우리도 조금씩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약자본들이 어떻게 이윤을 더 올릴 수 있을까 궁리하는 회의장에서 쩌렁쩌렁 울려퍼질 목소리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감염인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더욱 많은 사람들과 그 고민을 나누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나가던 그 발길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가브리엘이 하고 싶었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새삼 떠오르곤 합니다. 가브리엘, 나는 친한 사람들이 ‘자기’라고 부르는 거 별로 안 좋아했어요. 좀 웃기잖어. 남더러 왜 자기래? 이런 생각 했었죠. 그런데 가브리엘은 다른 사람들더러 ‘자기’라고 잘 불렀잖아요. 이상하게 그 호칭이, 참 다른 느낌이더라. 뭐랄까, 가브리엘이 좀 나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워낙 허울이 없는 느낌이기도 했고 다른 활동가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기도 했고, 음, 그랬어요. 나도 언젠가부터 가브리엘더러 ‘자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 같구요. 그래서 지금, 이런 생각이 들어요. 자기, 우리가 자기의 꿈을, 자기의 삶을 나누고 이어가는 건 어떤 걸까. 지금 여기에서 에이즈인권운동의 또다른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부디 건강해요,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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