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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쪽지-삶의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삶의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죽느냐 사느냐

내게는 선택권이 없다

육체를 순환하는

붉고 따뜻한 피가

타인의 더러움을 정화시킬때

나에겐 절망이

죽음의 공포가 다가온다

하루의 시간이 저물때

오늘도 내가 존재한다는 안도감과

내일에 대한 슬픔이 교차한다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빛 없는 어둠속에서

마지막의 희망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다시 한번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

피는 따뜻한데도

육체는 늪 속으로 잠겨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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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쪽지

3월 16일 에이즈인권운동가 윤가브리엘 후원의 밤에 오신

많은 분들께서 가브리엘에게 전하는 희망쪽지를 주셨습니다.

 

가브리엘을 처음 만나는 분

집회에서, 거리에서 만났던 분

친구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찾아오신 분

몇달, 몇년만에 가브리엘을 만난 분들께서

 

시와 메시지를 가브리엘에게 전해주셨습니다.

가브리엘이 현재 시력을 잃어서

여러분들의 글씨 모양하나하나, 쪽지에 내려앉은 눈물자욱들을

볼수는 없지만

한줄 한줄, 한마디 한마디

귀 기울여 들으면서 감사해하고 힘을 얻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희망쪽지에 적어주신 마음과 지지를

더 많은 HIV/AIDS감염인들과,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곳에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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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저녁 후원의 밤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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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와 후천성인권결핍사회

  "에이즈보다 무서운 '후천성인권결핍증'"
  [기고]인권위 권고를 접한 에이즈 감염인의 호소
 
  2007-03-11 오후 4:11:34  
 
   
 
 
  "에이즈 확산 방치해 국민 생명권 침해할 건가", "인권위, 현실과 이상 사이"….
  
  지난달 27일자 신문에 실린 사설 및 칼럼 제목들이다. 하루 전 나온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비판한 내용이다. 당시 인권위는 보건복지부가 입법 추진 중인 '후천성 면역결핍증 예방법 일부개정 법률안' 등이 인권을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유흥업소 종사자에 대한 에이즈강제검진 조항을 삭제하고 HIV(AIDS발병 바이러스)감염인의 익명성을 보장하라고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에게 권고했다.
  
  대부분의 매체는 인권위의 이런 권고를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인권위가 왜 이런 권고를 했는지에 대해 주목한 매체는 거의 없었다. 당시 인권위 권고안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지켜본 한 의과대학 교수는 "대부분의 언론이 HIV에 대한 초보적인 상식도 갖지 못 한 채, 인권위 권고를 처음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를 일방적으로 따라갔다"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인권위가 이런 권고를 한 이유는 HIV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상당부분 편견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인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악수, 포옹 등의 일상적인 접촉을 통해서는 전파되지 않는다. 또 HIV에 감염돼도 별 증상 없이 지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최근 의학의 발전에 따라 HIV 수치를 현격히 떨어뜨리는 치료법도 나왔다. 다른 질병에 비해 전염율이나 위험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이미 HIV에 감염된 인구가 너무 많아서 기존의 통제 중심 대책이 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도 중요한 이유였다. 인권위는 당시 "질병관리본부에 집계된 HIV감염인은 3750명에 불과하지만, 실제 감염인은 훨씬 많아 에이즈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통제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감염인에 대한 지원ㆍ예방ㆍ교육정책을 통해 자발적인 치료 의지를 극대화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인권위 권고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해 의료 전문가들은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림대 의과대학 최용준 교수는 "체액을 통해 전파되는 에이즈에 대해 다른 질병보다 더 엄격한 통제를 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공기나 음식, 물 등을 통해 전파되는 다른 전염병에 비해 감염 위험이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HIV감염인들은 이런 편견이 아주 익숙하다고 말한다. 언론만이 아니라 정부와 학교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보편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숙한 편견이라해서 그들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인권의식이 성숙해도 변하지 않는 편견 때문에 더욱 절망하는 경우가 많다.
  
  에이즈로 투병 중인 윤 가브리엘 씨가 인권위 권고안을 접한 소감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이 글에서 윤 씨는 에이즈 환자들에게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은 뒤, 기본적인 인권적 배려조차 하지 않는 우리 사회, 그리고 정부의 태도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윤 씨는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에이즈 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불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암과 마찬가지로 에이즈도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며, 환자들이 스스럼없이 검사에 응하도록 하려면 에이즈 환자에 대한 편견을 허물어야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윤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그러나 감격은 잠시뿐
  
▲ 사진은 지난 2005년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에이즈 운동가들이 '침묵의 행진' 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 이들은 에이즈 환자들의 인권존중을 촉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뉴시스=로이터

  나는 HIV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 7년이 됐고, 현재 투병 중인 에이즈 환자다.
  
  지난 2월 26일에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가 발의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하 에이즈예방법) 개정안에 대해 권고를 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드디어 일어났구나."
  
  한국에서 HIV감염인이 발견된 1985년 이후, 처음으로 국가기구에서 감염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올바른 에이즈 정책을 마련하도록 에이즈예방법을 개정하라는 의견을 내놓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음날 나온 언론의 보도를 보며 나의 희망은 고개를 숙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에이즈가 처음 발견됐을 당시의 편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에이즈가 아니라 정부와 언론이 만들어놓은 '후천성인권결핍사회'에 감염인들이 면역이 되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안 변하는 구나", "또 시끄럽구나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굳어지고 희망을 아예 놓아버리는 일이다.
  
  에이즈가 발견된 지 22년이 지났다. 그동안 감염인들이 얼마나 차별받으며 살아왔는지 이 지면을 다 채워도 모자란다.
  
  "콘돔 없는 성행위, 처벌하겠다"…에이즈에 대한 지겨운 편견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에이즈에 대해 어떻게 말해왔고, 감염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걸리면 그냥 죽어버리는 공포의 질병', '문란한 이들에게 신이 내린 천벌' 등 에이즈를 단순한 '질병' 이상의 것으로 바라봤다. 감염인에게 '문란한 삶의 결과'라는 낙인을 찍고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취급을 해 왔다. 에이즈 예방 이야기가 나오면 감염인을 더욱 감시하라는 목소리를 일제히 높여왔다.
  
  이런 잘못된 정보와 편견으로 인해 HIV감염인은 직장에서, 병원에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버림받으며 사회적 죽음 속에서 신음해 왔다.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하고, 민간보험은 가입조차 안된다. 직장건강검진에 에이즈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그 결과가 사업주에게 전달돼 해고로 이어진다.
  
  감염인의 주민등록번호, 성 정체성, 성 행태 등에 관한 정보까지 질병관리본부에 차곡차곡 쌓이고, 이 정보들을 '질병관리'라는 명목으로 함부로 사용한다. 에이즈에 감염된 외국인은 한국에 들어올 수 없고, 감염이 확인되면 강제출국 당한다.
  
  심지어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행위를 했을 경우 처벌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공무원이 여러분들의 성행위를 감시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것은 엄청난 인권침해이고, 불가능한 규제이다. 이 규정은 감염인을 악의적,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다.
  
  이런 차별을 합법화하는 것이 에이즈예방법이다. 에이즈예방법은 1987년에 제정된 이후로 에이즈예방을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에게만 예방 책임을 강요하고, 감염인을 감시하도록 하고 있다.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행위를 했을 경우 처벌하게 하는 조항, 감염인을 관리∙감시하게 하는 신고·보고 조항, 외국인과 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제검진조항 등 감시와 통제가 본질을 이룬다. 에이즈예방법은 에이즈 예방에 있어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통제는 국민 건강권 위한 것?
  
  한국정부가 반인권적이고, 에이즈 예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금까지 취해 온 조치들은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첫째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무시하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다. 심지어 "HIV감염인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과 차별은 법이나 제도, 정부정책에 기인된 것이라기보다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신은 다르다는 차별의식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에이즈 예방법 개정방향 모색토론회. 2006.11.27).
  
  세 번째는 감염인의 인권과 국민의 이익이 서로 상충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이익을 위해서 감염인을 감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고, 감염인들은 지은 죄가 있으니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이 말하는 감염인의 죄는 '성적 문란함'이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의 이익은 일부일처제를 따르는 순결한(문란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의 성생활이다. 우리사회에서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키고 일부일처제를 따르지 않는 모든 경우는 문란하다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가?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 사회는 억지로 부정한다. 그 정점에 동성애자와 성매매여성이 있다. 에이즈를 받아들이고 감염인의 인권을 존중하면 이 사회가 문란해지고, 문란한 그들이 에이즈바이러스를 퍼트려서 국민의 건강권을 해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네 번째는 특정집단에게만 에이즈예방책임을 강요하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감염인에게, 2차적으로는 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여성들에게 말이다.
  
  에이즈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병일 뿐
  
  즉 한국정부는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고 겁을 주고, "문란하고 부도덕해서 에이즈에 걸린다"고 편견을 조장하고, 감염인들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퍼뜨린다고 낙인을 찍음으로써 감염인을 비난하고 멀리하는 것이 에이즈를 예방하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에이즈는 수혈과 성행위를 통해서,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산모에서 태아에게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감염되어 면역력이 약해지는 질병이다. 의학이 발달된 지금은 에이즈 치료제를 복용하면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관리할 수 있는 만성질병이 됐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미국의 한 연구는 현재 미국에서 에이즈감염인의 평균수명이 24년이라고 발표했다. 물이나 음식을 통해 감염되는 콜레라나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결핵과는 달리 에이즈는 혈액이나 유즙(乳汁, 젖) 등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는다.
  
  의학적으로 보더라도 에이즈 예방은 성관계를 가지는 모든 이들, 그리고 수혈이나 헌혈 등 혈액을 다루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된다. 특정 집단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적인 기준에 따르면 동의 없는 에이즈 검진은 모두 강제검진으로 규정하고 금지하고 있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도 이런 기준을 따른 것이다. 즉 특정한 이들에게만 에이즈예방 책임을 강요하는 것이 반인권적일 뿐아니라 성공적인 에이즈예방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정책대로 감시와 통제에 기반하여 에이즈를 예방을 하려면 성생활을 하는 모든 국민에게 강제로 에이즈검사를 시키자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연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할 때 에이즈검사확인서를 제출할 의무를 두는 사회를 만들자는 말인가?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검사를 꺼리게 만든다
  
  한국정부는 자발적인 에이즈 사를 받도록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꺼리게 만든다. 조기 암검사를 잘 실행하기위한 방법을 생각해보자. 많은 이들이 조기 암검사를 받도록 하기위해서는 암이라는 질병에 대해 올바로 알려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게 만들어야하고, 초기에 발견하면 고통을 줄일 수 있고 예후가 훨씬 좋다는 조기검사의 필요성을 잘 알려야 한다.
  
  그리고 비용 때문에 주저하지 않도록 무상검사가 되어야 하고, 치료의 기회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조기암검사는 성공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에이즈도 질병에 대해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질병의 예후와 나와 파트너의 건강을 위해 검사를 해야 할 필요성을 잘 알려야 한다. 무상검사와 치료기회 역시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터부가 없어져야 검진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에이즈예방법과 복지부의 개정안은 무상검사 이외에는 다른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고 알려져있고, 에이즈 양성판정을 받으면 외국인은 치료는커녕 강제출국을 당하고, 대부분의 감염인들이 가족, 친구, 동료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직장을 잃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는 상황에서 누가 검사를 받겠는가? 검사를 받아서 예방을 하고, 치료를 받고, 나름의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검사를 받고 싶은 동기나 이유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 정부와 언론이 만들어놓은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편견, 감염인에 대한 차별은 오히려 에이즈 예방을 가로막고 있다. 누구나 에이즈 예방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이즈 감염인이란 사실을 당당히 밝힌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지지와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줄도 모르고, 에이즈 검사를 받을 엄두도 못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감염인을 감시하고 외국인, 성노동자 등 몇몇 집단에게만 에이즈 검사를 강요하고, 콘돔만 던져준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건강권을 방치하는 길이다. 감염인 인권보장이 에이즈 예방의 지름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제까지 우격다짐으로 인권 침해를 강요할 건가?
  
  22년동안 인간의 권리를 빼앗긴 채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억울하다는 말한마디 못한채, 아프다는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죽어나간 이들의 설움을 아는지 모르겠다. 죽어서도 이름을 숨겨야하는 슬픔을 아는지 모르겠다. 나를 비롯한 감염인들은 참 질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언론과 정부의 지독한 폭력을 다 참아내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더 이상 감염인들이 그리고 우리사회가 인권결핍사회를 참아내고 두고보기를 바라지 않는다.
  
  과거 문둥병, 폐병이라고 부르면서 격리시키고 천대시했던 한센병 환자들과 결핵 환자들의 경험을 반복할 참인가? 전염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음에도 언제까지 우리 사회는 비과학적이고 우격다짐격으로 인권결핍사회를 살아갈 것인가? 에이즈 감염인에게 억울하게 빼앗긴 인권을 돌려줘야 한다.
   
 
  윤 가브리엘/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이 글은 윤가브리엘이 프레시안에 기고하여 기사화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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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사람

 

                                                                                                    미류 _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


 


가브리엘, 나 이렇게 얘기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그동안 메일도 한번 주고받아본 적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네요. 늘 너무 익숙한 사람이었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가브리엘을 자주 만나기 어려운 요즘 느끼는 시린 마음이 어색하기 그지없어요.

나, 이런 얘기해도 되나? 나누리+ 활동하면서 가브리엘 만난 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 이런 얘기해도 되겠지? 처음엔 나, “아,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거야?” 하는 생각에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회의할 때마다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하며 이런 건 이렇게, 저런 건 저렇게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하는 가브리엘 모습을 보면, “윽, 저걸 어떻게 다해?”, 이런 생각만 들더라구요.

회의 자리에서 가브리엘은 늘 새로운 소식을 말해줬지요. 에이즈에 대한 통계가 나오거나 새로운 치료제가 연구되고 있다거나, 아프리카 어디에서 임상실험이 됐다더라, 중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피를 팔아서 돈을 벌려다가 HIV에 감염된다더라, 질병관리본부에서 무슨 정책을 발표했더라, 하는 끊이지 않는 소식들. 그리고 어떤 감염인이 직장에서 해고됐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 어떤 감염인은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하는데 입원을 시켜주지 않는다던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가브리엘은 늘 새로운 고민꺼리를 던져주었고 이제 막 에이즈인권운동을 고민하기 시작한 나는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쫓아가기 어려울 정도였지요.

그 얘기들이 지금의 에이즈인권운동이 이만큼 걸어올 수 있었던 씨앗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조금 버겁고 답이 보이지 않은 채 맴돌기만 했던 얘기들을 우리가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덕분에, 여전히 답이 보이지 않는 얘기들로 가득하지만,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는 거요. 그래서 가브리엘의 자리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아, 물론 아직 가브리엘은 여기에 있지요. 여기, 우리들과 함께, 여전히 의약품접근권을 고민하고 감염인들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실천을 만들어가는 이 자리에 가브리엘이 있지요. 하지만 가브리엘이 많이 아프다는 걸 가브리엘도, 나도, 우리도 조금씩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약자본들이 어떻게 이윤을 더 올릴 수 있을까 궁리하는 회의장에서 쩌렁쩌렁 울려퍼질 목소리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감염인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더욱 많은 사람들과 그 고민을 나누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나가던 그 발길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가브리엘이 하고 싶었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새삼 떠오르곤 합니다. 가브리엘, 나는 친한 사람들이 ‘자기’라고 부르는 거 별로 안 좋아했어요. 좀 웃기잖어. 남더러 왜 자기래? 이런 생각 했었죠. 그런데 가브리엘은 다른 사람들더러 ‘자기’라고 잘 불렀잖아요. 이상하게 그 호칭이, 참 다른 느낌이더라. 뭐랄까, 가브리엘이 좀 나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워낙 허울이 없는 느낌이기도 했고 다른 활동가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기도 했고, 음, 그랬어요. 나도 언젠가부터 가브리엘더러 ‘자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 같구요. 그래서 지금, 이런 생각이 들어요. 자기, 우리가 자기의 꿈을, 자기의 삶을 나누고 이어가는 건 어떤 걸까. 지금 여기에서 에이즈인권운동의 또다른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부디 건강해요,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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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는 아픈 이들에게 재앙입니다

한미FTA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한미FTA 협상은 협상 개시부터 비민주적인 절차와 국내 농업기반의 붕괴, 의료/교육/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정책을 훼손할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양 국 정부는 협상 체결에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지적재산권 분야는 미국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될 가능성이 큽니다. 저작권, 특허 등 지적재산권은 국내의 문화(산업)과 공공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됨에도 불구하고, 국내 상황에 대한 고려없이 미국 국회에서 정해진 법이 한국에 강제되는 것입니다. 다국적 문화자본과 제약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내 문화산업의 붕괴와 공공적 보건의료정책의 훼손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한미FTA 협상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한미FTA 협상을 막아내기 위한 투쟁에 동참해주시길 절절한 심정을 담아 호소드립니다.

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



[호소문] 한미FTA는 아픈 이들에게 재앙입니다.

윤 가브리엘

저는 에이즈양성판정을 받은 지 7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벼랑 끝에 서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에 놓여있어요. 국내에 있는 에이즈치료제에 내성이 생겨서 각종 기회감염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힘들게 투병중입니다. 한국에서는 13가지 에이즈치료제가 판매되고 있고, 대부분 1990년대에 개발된 약입니다. 이 약들에 대해서는 보험적용이 되어서 무상으로 공급받습니다. 이 약들도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리지널 약이라 건강보험과 한국정부에서 지출하는 약값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지금 제가 먹는 1년 치 약값이 1300만원 가량 이에요. 그런데 한국에서 에이즈가 발견된 지 20년이 지나 이 약들에 대해 내성이 생긴 에이즈환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한국에서 판매되는 13가지 치료제에 모두 내성이 생겨서 효과가 없어요. 약이 없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2000년 이후에 미국에서 승인을 받은 에이즈치료제는 약제성분기준으로 12가지이지만 한국에서 시판허가를 받은 것은 3가지뿐이에요. 이 중에서도 실제 판매가 되고 있는 것은 2가지뿐입니다. 다국적제약회사 로슈(Roche)는 푸제온(Fuzeon)에 대해 2004년에 우리나라에서 판매허가를! 받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팔리는 가격을 요구하면서 판매를 하지 않고 있어요. 연간 2만달러(약 2천만원)를 요구합니다. 미국에서도 푸제온 가격이 너무 비싸서 문제가 되었었어요.

제가 지금 살기위해서는 적어도 연간 3000만원이 넘는 돈을 구해야합니다. 한국에는 에이즈 환자수가 적어서 돈벌이가 안 된다고 제약회사가 약을 팔지 않거나 아주 높은 가격을 요구하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약을 구해야 합니다. 전 세계의 에이즈 감염인이 모두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듯이, 한국에서도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직장생활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더욱이 저처럼 몸이 많이 안 좋아진 환자는 어떤 일도 하기 힘들어서 소득이 없습니다. 40년을 살아왔지만 저의 통장 잔고는 100만원이 안됩니다. 1년에 2만달러를 주고 푸제온을 구한다는 것은 저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에이즈치료를 하려면 보통 3가지 약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푸제온 외에도 2가지 신약에 대한 약값을 마련해야해요. 에이즈환자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약값만 1년에 3000만원 가량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거예요. 게다가 에이즈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질병이기 때문에 각종 기회감염을 치료하는데 많은 비용이 듭니다. 저는 현재 면역력이 떨어진 에이즈환자들이 잘 감염되는 거대세포바이러스(CMV) 때문에 치료를 받고 있는데 ?! ? 달에 200만원이 들어요. 이 약은 보험이 안돼서 희귀의약품센터에서 사서 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거대세포바이러스는 우리몸속에 누구에게나 있지만, 저처럼 면역력이 낮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이에요. 이 주사약을 끊으면 거대세포바이러스가 망막을 침투해 실명할 수 있고, 신경계를 손상시켜서 마비상태가 될 수도 있고, 뇌에 침투하면 뇌사상태에 빠질 수도 있답니다. 이 비용역시 감당할 수 없어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요. 신약을 기다리는 사이 저는 오른쪽 시력을 잃었고, 걷기도 힘들게 되었어요. 면역력이 낮다보니 사마귀바이러스도 제 얼굴이며 팔, 다리, 온몸에 사마귀를 주렁주렁 매달아놓았지요. 병원에서는 하루빨리 신약을 써서 면역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지만 제약회사가 약을 팔지 않거나 약값을 너무 높게 요구해서 신약을 구할 수가 없으니 버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두렵기도 하고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 맞고 있는 거대세포바이러스 주사약값만으로도 하루하루를 허덕이는 상황에서 로슈가 요구하는 비싼 새 에이즈치료제를 산다! 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약이 있어도 약을 먹을 수 없는 문제가 저만의 문제가 아님을 잘 압니다. 저는 2004년부터 친구들과 함께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라는 단체에서 에이즈감염인의 인권을 위한 일을 하고 있어요. 작년 초에 한미FTA 협상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우려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보건복지부가 작년 5월에 약제비를 줄이기 위해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발표했을 때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반대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했어요. 저는 그 당시에 이미 몸이 많이 안 좋았지만 다국적제약회사가 뭐라고 말하는지 듣고 싶었어요. 그들은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반대하는 이유가 환자들에게 신약접근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어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말하는 신약접근권이란 그들이 원하는 터무니없이 높은 약값을 인정해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들은 왜 약값을 비싸게 결정해야하는지, 연구개발비가 얼마인지, 생산원가가 얼마인지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 이유도 없이 높은 약값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에이즈환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저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살 수 있는 방법이 있! 는데도 제약회사가 약을 팔지 않아서, 약값이 너무 비싸서 제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것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나는 에이즈환자입니다. 로슈는 푸제온을 왜 그렇게 비싸게 팔려는지 대답하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어요. 약이 있어도 제가 약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약제비적정화방안때문이 아니라 특허약이라는 이유로 약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 후 미국협상단은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똑같은 이유를 들어 한미FTA 2차 협상을 결렬시키더니 7차 협상까지 오면서 한국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어요. 의약품 특허기간도 연장해주고, 약값을 결정할 때 미국제약회사가 이의를 신청할 수 있는 기구도 만들기로 했고, 제약회사가 의료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까지 내주었어요. 이제는 고위급회담에서 무역구제와 의약품, 자동차간에 빅딜을 한답니다. 환자의 생명을 웬디커틀러와 김종훈의 두 사람의 손으로 주고받기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지요?

얼마 전 태국에서는 특허 때문에 비싸서 먹지 못하는 약을 싸게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발표했어요. 이 방법을 의약품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라고 부르는데,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인정을 하고 있고, 우리나라 특허법에서도 가능한 방법입니다. 두 가지 에이즈치료제와 심장질환을 치료하는데 사용하는 혈전치료제를 태국국영제약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해서 특허약보다 1/2~1/10 싸게 공급할거라고 합니다. 태국국영제약회사에서 생산할 수 있는 준비를 할 동안 인도에서 값싼 복제약을 수입해서 사용하기로 했대요. 계속 값비싼 특허약을 사용할 경우 태국정부에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무상공급을 포기해야하고, 약을 필요로 하는 모든 환자에게 공급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한국과 태국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아요. 태국도 미국과 FTA 협상중이고, 의약품 특허를 확대하고 독점기간을 연장하도록 요구를 받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같은 약이라도 용도, 용량, 색깔과 코팅조차도 특허가 가능하고, 기존 약물의 혼합도 특허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효과를 가진 새로운 물질에만 특허를 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특허권?! ? 받아서 독점기간을 늘리고 있어요. 미국은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과 FTA 협상을 하면서 제약회사가 돈을 더 많이 벌도록 미국처럼 하라고 요구를 하고 있어요. 저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독점기간이 늘어난 만큼 비싼 약값을 제약회사에게 주어야 하고, 약값을 결정할 때 제약회사 맘에 안 들면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을 걸고, 한국의 의료제도나 정책이 제약회사의 기대에 못 미치면 정부가 소송을 당하고 지면 우리가 낸 세금으로 보상을 해줘야 하는 과정들이 기가 막힙니다. 지금도 다국적 제약사들이 특허라는 명목으로 비싼 약값을 요구하고 약이 있어도 못 먹고 죽어가고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랫동안, 얼마나 더 많은 환자들이 제약회사의 돈벌이를 위해서 죽어가야 할까요?

병원에 갈 때마다 치료를 받는다는 생각보다 진료비와 약값걱정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일어서야한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고 약해지는 마음을 계속 다잡고 있지만 현재 한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FTA 협상은 저의 의지를 꺾으려 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한미FTA를 반대하는 목숨을 건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특허권과 비싼 약값 때문에 에이즈 감염인이 하루에 8000명씩 죽고 있습니다. 전 세계 에이즈 감염인에게 FTA는 생명포기각서와 같아요. 에이즈는 더 이상 죽음의 병이 아닙니다. 치료제를 잘 복용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가난한나라의 사람들이 에이즈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 목숨을 잃는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생명의 가치를 단지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치부해버리는 다국적 제약사한테 따져 묻고 싶어요. 우리 에이즈환자들과 감염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할 일이 너무나 많아요. 그런데 미국이 추진하는 FTA는 저같은 에이즈환자에게 치료할 수 있! 는 기회를 빼앗아 갈 것이고, 이것은 에이즈를 확산시키는 길입니다. 에이즈 뿐만아니라 고혈압, 당뇨, 암처럼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평생 치료를 해야하고 새로운 약이 필요한데, FTA가 체결되면 신약을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보험이 안 되는 부분 때문에 건강보험제도에 불만이 많지만 FTA가 체결되면 머지않아 우리는 지금의 혜택도 못 받게 될 거예요. 한미FTA는 아픈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호소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에이즈환자만의 문제로 여기지마시고, 우리 국민 모두 건강하게 살아야갈 수 있도록 소중한 권리를 위해,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FTA를 반대해야 합니다. 태국처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병들고 가진 것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야할 정부가 배부른 가진자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해 서둘러 FTA를 체결한다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정부는 3월 8일~12일까지 8차 협상을 서울에서 하고 4월초에는 타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저는 제 온몸을 보여주고 싶어요. 제약회사가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되면 환자는 어떻게 되는지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인터넷 상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한국정부의 태도에 대해, 한미FTA에 대한 우려스러움에 대해 친구, 가족, 동료들에게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3월에 농민, 빈민, 노동자, 영화인, 방송인, 학생, 의사, 약사들이 8차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할 때도 많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픈 이들에게 사망선고와 같은 한미FTA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호소드립니다.

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1가 13-1 정봉원빌딩 5층
전화 : 02-717-9551 | 이메일 : ipleft@jinbo.net
홈페이지 : http://nofta-ip.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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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브리엘 후원의 밤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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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브리엘 후원회 뉴스레터 3호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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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언제나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

 
희망은 언제나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
에이즈 인권모임 나누리+ 윤가브리엘을 만나다
강곤 | 기자 19호 | 2007년 1월
윤 가브리엘(39세)은 동성애자이고 에이즈 환자다. 이 한 줄의 글이 가진 폭력성과 선정성을 우리 사회는 아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6년 전부터 그리 대수롭지 않은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지만 에이즈 환자에게는 폐렴이나 중추신경계의 장애를 가져올 수 있어 치명적인 CMV 바이러스와 질긴 싸움을 해오면서 한편으로는 에이즈 인권모임의 대표로 활동의 최전선에 서 있던 활동가이다. 지난 해 들어서 급속도로 몸이 악화되면서 벌써 다섯 차례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 중인 그를 찾아갔다.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을 가다

 


오른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아요. 의사가 치료 불가능한 단계라고… 하지만 한 쪽이라도 보이는 게 천만다행이죠. 아직은 걷는 것도 힘에 부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어제는 병원 안에서 조금 걷는 연습도 하고. 문제는 CMV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주사인데 그동안 맞던 주사가 부작용이 생겨 다른 것으로 바꿨어요. 그런데 바꾼 약이 보험 적용도 안 되고 병원에도 없는 약이라서 희귀약품센터에 직접 주문해서 맞고 있어요. 한 달에 약값만 190만 원 정도 들고…. 돈도 돈이지만 이 약도 부작용이 생길 경우 대책이 없죠. 지난 달(2006년 11월)에 잠시 퇴원을 하면서 의사한테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어요. 그 얘기 듣고 엉엉 울었죠. 갑자기 무섭더라구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지 않아요. 지금 같아서는 조금만 더 회복하면 곧 활동할 수 있을 거 같은데….

99년도에 폐렴과 결핵을 심하게 앓았죠. 그때 입원을 하면서 감염 사실을 알게 됐어요. 너무 늦게 알고 치료도 늦게 시작한 탓인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에이즈 치료제는 전부 내성이 생겼고 다른 기회감염도 많은 편이죠. 처음 에이즈에 걸렸단 것을 알았을 때는 나도 보통사람들처럼 편견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면서 한 6개월 동안 연락도 끊고 잠적을 했죠. 당시만 해도 감염인 모임이나 에이즈 인권단체들이 전무했어요. 혼자서 끙끙 앓다가 10년 넘게 사귄 친구에게 털어놨는데 고맙게도 너무 따뜻하게 나를 위로해줬어요.

 


그 후 그는 동성애자인권연대의 문을 두드리면서 조심스럽게 인권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그의 말대로라면 “우연한 기회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2003년 ‘에이즈 인권모임 나누리+’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대표까지 맡게 된다. 그 뒤로 그는 HIV/AIDS 감염인 당사자이자 에이즈 인권활동가로서 감염인의 인권과 관련된 국내외의 현장을 쉼 없이 누벼왔다.

 


2003년 당시에 언론에 에이즈 환자에 대한 진료 거부라든지 감염인 부부가 낳은 아이가 감염이 되어 감염인은 임신을 금지시켜야 한다든지 하는 내용이 나왔어요. 왜 우리는 사람대접도 못 받고 숨어 지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동성애자에다가 에이즈 감염인이란 사실 때문에 꺼려지는 게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결국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활동을 하면서 사실 보통사람들은 워낙 모르니까 오히려 설명하고 설득하기 쉽죠. 감염인들에게 호소하는 게 훨씬 어려워요. 그들이 나서는 게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단 한명이라도 나를, 우리를 지지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그런 어느 날 캠페인을 하는데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자기도 에이즈 환자라며 고맙고 수고한다는 거예요. 캠페인을 하면서 감염인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는데….

 


윤 가브리엘의 긍정의 힘

 


 

그는 2006년 활발했던 HIV/AIDS 감염인 인권에 대한 활동도 많은 침묵하는 감염인들이 어딘가에서 지켜보며 지지를 보내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런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그의 태도는 에이즈 인권활동가 이전의 삶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에 집을 나왔어요. 중2 땐가. 위로 누나 하나와 세 명의 형들이 있었는데 누나는 아주 어릴 때 시집을 갔고 부모님하고 형들과 같이 살았죠. 그런데 나만 배다른 동생이었어요. 그래서인지 큰 형이 참 많이 나를 괴롭혔어요. 때리기도 많이 때리고. 어떤 날은 ‘너 오늘은 반찬은 먹지 말고 밥만 먹어’ 하면 그래야 했어요. 오줌 쌌다고 벽을 보고 서있다 쓰러져 잠든 적도 많았죠. 아버지는 택시를 했고 어머니도 장사를 해서 늘 밖에 있었으니까, 형의 주먹보다 무서운 건 없었죠. 둘째나 셋째 형은 그렇지 않았는데 큰 형만 유독 나를 괴롭혔고 아무도 거기에 대들지 못했어요. 그러다 도저히 이대로는 못살겠다 싶어서 중학교 2학년 때 가출을 했어요. 그리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간 곳이 전자제품 뒤편에 들어가는 기판에다가 구멍을 뚫는 일을 하는 공장이었어요. 거기서 일하면서 졸다가 손가락을 구멍 뚫는 기계에 넣어 이렇게 다친 거예요. (그의 왼손 가운데 손가락은 약간 짧다. 아예 마디가 다 잘렸다면 이어붙일 수도 있었지만 반 마디가 뭉개져서 그마져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는 일도 어렵지 않고 늦게까지 시키지도 않아 좋았는데 어느 날 공장 앞에서 우연히 아는 친구를 만난 거예요. 가족들이 찾아올까봐 사장에게 맡겨놨던 월급 통장도 못 챙기고 그길로 도망쳤죠. 나중에 주민등록증을 만들 나이가 되어서 집을 물어물어 찾아가봤는데 아버지는 내가 집 나오고 얼마 안 있어서 당뇨로 돌아가셨고 키워준 어머니는 다른 분하고 지금 지방에서 살고 있어요. 친어머니야 찾을 길이 없죠. 아버지가 살아 있었더라면 혹시 몰라도….
그리고 간 곳이 동대문 평화시장에 있는 봉제공장이에요. 거기서 미싱보조로 시작해서 아프기 전까지 10년 넘게 일을 했죠. 하루에 18시간씩 일을 했어요. 그러면 바지 한 벌에 몇 천 원씩 나한테 떨어지는 거예요. 거기서 기억나는 게 일한 것 밖에 없어요. 당시에는 청계피복노조가 활발히 활동할 때였지만 대부분 이렇게 도급제로 일을 하다 보니 우리가 오히려 불빛을 가리고 몰래 일을 했지요. 그래야 수입이 느니까. 사실 그때는 노조가 뭐 하는 곳인지 그런 것도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죠.

 


그러면서 그는 스물한 살 때 네 살 연상인 여자와 동거도 했다고 한다. 성 정체성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딴에는 나름대로 자신의 문제에 대해 치료를 해보려는 노력이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동거를 했으니 여자한테는 정말 미안하죠. 지금이라도 다시 만나면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못 만나게 되네요. 손가락과 예전부터 앓던 중이염으로 군대를 면제를 받고나서도 나는 슬프고 우울했어요. 군대를 갔다 오면 남자다워질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마저도 가지 못하게 됐으니…. 왜 나는 남들 다 가는 군대도 못 갈까 절망을 했죠. (웃음) 남들은 돈 벌었다고 하며 남의 속도 모르고 좋겠다고 떠드는데.

 


사람에게 희망을 걸다

 


그런 그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고 더 나아가 에이즈라는 치명적인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넘어 활동을 하게끔 했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열아홉 살이었던 86년 어느 날인가 라디오에서 한영애 씨의 노래를 들었죠. 어, 우리나라에도 이런 여자 가수가 있다니… . 충격적이었죠. 그 목소리와 독특한 창법에도 반했지만 음악이 얼마나 철학적인지 몰라요. 삶을 진지하게 돌아볼 기회랄까, 세상살이에 대한 가르침이랄까 하는 것을 한영애 씨의 노래를 통해 얻고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사춘기부터 시작되었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어릴 때부터 받았던 폭력이 겹쳐서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왜 나는 이렇게 살기 힘든 것일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어릴 때는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슬퍼서 노을을 보면서 울기도 많이 했어요. 지금도 어릴 적 생각을 하면 그때가 아련하게 떠올라요. 그냥 어디론가 떠나면 나를 구해줄 사람이 나타나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죠. 성인이 될 때까지 누구도 나에게 세상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 뭐 이런 것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는데 한영애 씨 노래가 그런 세상에 대한 목마름을 달래줬죠. 그래서 한영애 씨의 노래는 내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에요.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마감할 때 제일 아쉬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를 지원해주고 도와줬던 이들에게 미안한 거 하나 하고 또 하나는 이제 더 이상 한영애 씨 음악을 못 듣는다는 거예요.(웃음) 노래 중에 ‘말도 안 돼’란 노래가 있는데 거기 가사 중에 ‘희망은 너와 내가 맞잡은 손에 있다’는 부분, 그게 지금까지 내 삶의 신조가 된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그는 지난 해 5월 백혈병 환자로 에이즈 인권모임 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김상덕 씨(본지 2006년 7월, 13호 人터뷰 참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지금도 한 쪽 팔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라며 상실감을 표현했다.

 


상덕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별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통하는 그런 사이가 됐어요. 아픈 사람끼리 모이면 아팠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얼굴만 봐도 서로 그런 얘기도 할 필요가 없는 처지란 것을 알았던 거죠. 상덕이는 다국적 제약회사와 싸웠던 경험도 있고 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사실 활동을 시작하면서 내가 못 배웠다는 것,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많이 주눅 들어 있었어요. 처음 만나서 학번이 뭐냐고 물어오면 ‘대학 안 나왔다’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은 하지만…. 어디 회의를 가서도 제발 내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으면 하고 앉아있게 되죠.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감염인 당사자로서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하는 고민이었어요. 그런 부분에서도 상덕이는 참 도움이 많이 되던 친구였죠. 지금도 기억에 남는 말이 “인권활동이 감염인 단체를 쫓아가서도 앞서가서도 안 된다. 감염인과 함께 가야 한다. 그리고 절대 이익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거예요. 깊은 얘기도 못했고 오래된 친구도 아니었지만 늘 전화할 때면 서로 “제발 아프지 마라”며 끊었죠. 그 친구 추모 글에서도 “거기서는 제발 아프지 마라”고 썼지요.

 


든든한 동지이자 벗이었으며 선배이기도 했던 이를 떠나보낸 그는 지금 많이 지쳐 보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있다. 몸이 회복되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뭐냐는 질문에 “그동안 밀린 활동을 어서 해야죠.”라고 조금의 주저도 없이 대답한다. 그런 것 말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말해달라고 하니 역시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한영애 씨 공연 보러 가야죠.” 돌아와 그가 말한 한영애의 노래가사를 찾아본다. 그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래도 희망은 너와 내가 손잡은
사람에게 걸 수밖에 희망은 언제나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있게 마련이지

 


사진 박김형준 |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jinbo_media_23&id=192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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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는 별을 꿈꾸는 A's People 윤가브리엘

 [2006년 12월,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에 기고한 글입니다]

 

차별없는 별을 꿈꾸는 A's People 윤가브리엘


권미란(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 HIV/AIDS감염인과 감염인의 인권을 지지하는 활동가들은 에이즈확산을 막고 편견과 차별을 넘기 위해 유시민 복지부장관이 해야 할 일은 감시와 통제를 본질로 하는 에이즈예방법 전면개정과 한미FTA협상중단이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유시민 장관이 바로 에이즈확산의 주범이 될 것임을 경고하려고 하였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서 후원한, '편견과 차별을 넘어'라는 제목의 기념행사에서 감염인의 입장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행사장 진입도 제지를 당했다.

감염인의 목소리를 배제한 반면, 버시바우 미국대사의 격려사가 행사장을 채웠다. 버시바우 미국대사는 부시대통령이 2003년 에이즈구제를 위한 대통령긴급계획을 마련하여 아프리카의 감염인을 위해 지원을 하고 있고,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기금에도 제일 많은 돈을 냈다며 에이즈확산을 막는데 미국이 최선에 서 있음을 자랑했다. 부시의 긴급계획은 복제의약품 사용금지, 금욕 등을 옹호하는 국가에 직접 지원하는 형태를 고수하면서 초국적제약자본에게 이윤을 몰아주고, 자신이 원하는 보수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에이즈를 이용하고 있다. 자신을 위해 에이즈를 악용하고 금욕과 순결을 에이즈예방이라고 떠들고 있는 부시를 칭찬하면서 기념행사는 끝이 났다. 억울함과 분노사이로 가브리엘에 대한 그리움이 차올랐다. ‘새로운 에이즈치료제를 구할 때까지 이를 악물고 버틸게. 우리 같이 싸우자’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는 눈물이 쏟아졌다.


한국다국적제약협회의 약제비적정화방안 반대 기자회견장. ‘에이즈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약을 먹을 수 없어서 죽는 것이다’라는 영문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들고 초국적제약자본이 말하는 신약에 대한 환자의 접근권이 거짓말임을 폭로하는 가브리엘 (사진: 정우혁. 네트워커)

 

6월 15일 한국다국적제약협회(KRPIA)가 약제비적정화방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한 기자회견장, ‘환자의 신약에 대한 접근을 저해하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의욕을 감소시킬 것’이라며 약제비적정화방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투자를 철수하겠다고 협박을 하자 기자회견장은 소란스러워졌다. 이때 한 HIV/AIDS감염인의 목소리에 기자회견장이 순간 조용해졌을 뿐 아니라 단상에 앉아있던 제약회사 대표들은 당황해 했다.

"나는 에이즈환자입니다. 로슈는 푸제온을 왜 그렇게 비싸게 팔려는지 대답하십시오"


8월 15일 국제에이즈회의가 열리고 있던 캐나다, 활동가들은 애보트가 주최한 심포지움이 시작되자마자 단상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애보트는 에이즈치료제 노비르(성분: lopinavir)와 칼레트라(성분: lopinavir/ritonavir)를 판매하고 있다. 노비르와 A에이즈치료제를 함께 복용하면 A의 효과가 증대된다. 애보트는 다른 제약회사의 에이즈치료제와 노비르를 함께 복용하는 것을 막고 칼레트라의 시장을 확대하기위해 미국에서 노비르의 가격을 500%인상한 바 있다. 게다가 칼레트라의 가격은 환자들이 사먹을 수 없는 수준이고,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있으며, 냉장보관을 해야 한다. 전 세계 HIV/AIDS감염인의 2/3가 살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냉장보관을 해야하는 약은 먹을 수 없는 약이다. 애보트는 8월 13일에 ‘개발도상국에서 lopinavir/ritonavir에 대한 접근을 확대하기위해 새로운 시도’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아프리카와 최빈국에서 연간 환자당 500달러로 인하하겠다는 것이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의 민중에게 연간 500달러는 죽음을 부르는 가격이다. 한 HIV/AIDS감염인이 행사장 단상에 있던 애보트 광고판에 기습적으로 락카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는 애보트측에 의해 행사장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졌다.


4000:3800=100:30 말이 안되는 이 등식은 전 세계 HIV/AIDS감염인의 현실이다. 보고서(UNAIDS, 2006)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HIV 감염인이 40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2600만 명으로 전 세계의 HIV 감염인의 2/3를 차지한다. 아시아에는 830만 명,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150만 명, 라틴아메리카에는 160만 명의 HIV감염인이 살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전체 에이즈치료제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아시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HIV/AIDS감염인 약 3800만 명에게 공급되는 에이즈치료제는 전체 에이즈치료제 시장의 30%도 안된다는 얘기다. 2005년 한 해 동안 410만 명이 새로 에이즈에 감염되었고, 280만 명이 에이즈로 숨졌다. 하루에 8천명이 에이즈로 사망하고 있다. 약이 있어도 약을 못 먹기 때문에 죽어가고, 에이즈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11월 30일, 태국에서는 최초로 의약품에 대한 강제실시계획이 발표되었다. 태국 국영제약회사가 에이즈치료제 에파비렌즈를 미국의 제약회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보다 30배이상 싸게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번 강제실시 결정은 태미FTA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태국 HIV/AIDS감염인들의 강제실시 투쟁은 1998년부터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1998년 태국 의약품특허재조사위원회가 과도한 의약품 가격이 공중보건의 이해에 반할 경우 강제실시를 촉구하도록 권고를 했다. 당시 태국국영제약회사는 에이즈치료에 사용하는 화이자의 플루코나졸과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의 디다노신에 대한 강제실시를 통해 싸게 공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자 미무역대표부와 미제약협회는 무역보복을 가하겠다며 강제실시 폐지, 의약품특허재조사위원회 폐지,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감시강화, 독점보호기간 연장을 요구하였다. 결국 태국정부는 에이즈치료제를 포함하여 필수의약품의 강제실시는 제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태국 감염인들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2004년 2월에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이 디다노신에 대한 특허권을 태국에 양도, 2006년 8월에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콤비드에 대한 특허권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 2006년 11월 에파비렌즈에 대한 강제실시에 이르게 되었다.


다국적제약협회앞에서 '로슈는 왜 푸제온을 비싸게 팔려는 겁니까?'라고 외쳤던, 애보트 행사장 단상에 락카를 뿌려대던 가브리엘은 병원에 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13가지 에이즈치료제에 모두 내성이 생겨서 새로운 치료제가 필요하다. 2000년 이후에 미FDA승인을 받은 에이즈치료제는 약제성분기준으로 12가지이지만 한국에서 시판허가를 받은 것은 3가지. 이 중에서 실제 판매가 되고 있는 것은 2가지뿐이다. 로슈는 푸제온에 대해 시판허가를 받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팔리는 가격을 요구하면서 판매를 하지 않고 있다. 연간 2만달러(약 2천만원). 다행히 인도 제약회사에서 한국에 판매되지 않고 있는 신약 중 2가지에 대해 복제약을 생산하고 있다. 가브리엘은 인도 제약회사의 복제약과 미국의 에이즈구호단체로부터 푸제온을 구하고 있다. 하루하루를 어렵게 버티면서 새로운 에이즈치료제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가 더욱 기다리는 것은 몸이 조금이라도 나아져서 함께 싸우는 것이다.

태국의 강제실시 발표에 누구보다 기뻐하는 가브리엘, 차별 없는 별을 꿈꾸며 싸울 준비를

한다. 걷기가 힘들어졌지만, ‘다리가 한결 부드러워졌어’라며 가브리엘은 오늘도 재활운동을 한다.

에이즈운동가 윤가브리엘 치료비 마련을 위한 후원인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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