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오늘날 세계의 여러 가지 노조운동론] 1970년대 이래의 선진국들에서의 노조운동의 위기

경제침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그리고 ‘자본의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 이차대전 이후 약 30년간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장기간의 호황을 누렸음. 이 시기, 이 나라들에서는 사민주의 성향의 정당들이 집권했고, 케인즈주의-포드주의적 경제, 노동, 복지국가정책이 펼쳐졌으며, 나라에 따라서 구체적인 모습에 있어서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코포라티즘 체제가 성립, 유지되었음.


- 한편, 이차대전 이후 세계자본주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국제경제체제로서의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해 왔음. 1944년 출범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한 축으로 하고,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화, 달러화에 대한 각국 통화의 환율 고정, 외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게될 나라들을 지원하기 위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의 활동 등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국제자본운동의 틀을 제공했음.

 

- 70년대 들어,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성장률 둔화, 무역수지 악화, 재정적자 증가, 실업률 급증 등 나쁜 증상들이 나타났음. 석유위기가 이 나라들을 강타했고, 신흥공업국들의 세계시장 진출 역시 이 나라들의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음. 기업들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부심하는 가운데, 이 나라들에서는 기업 경쟁력에 불리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지는 사민주의, 케인즈주의-포드주의 체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음.


- 한편, ‘쌍둥이 적자’, 즉 대규모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브레튼-우즈 체제’를 일방적으로 파기, 금융자유화 정책을 펼치고 영국이 그 뒤를 이으면서 세계적으로 금융자유화 움직임이 확산되고, 그것의 영향에 의해 세계화 과정에 더욱 속도가 붙게 되었음.


- 미국과 영국은 내부적으로는 소위 영.미형 자본주의 시스템을 갖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가장 왕성하게 초국적자본 활동을 벌이는 나라들로서, 1970년대 말이래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가게 되었는데, 다른 많은 나라들도 국내 조절방식의 재편에서나 국제경제교류방식의 재편에 있어서 신자유주의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됨.


-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시대의 조절원리’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화와 더불어서 더욱 영향력을 키워감. 여기에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관해서 알아보기로 함.


- 신자유주의는 시장 기능의 극대화를 위한 탈규제와 유연화, 국.공유기업의 사유화, ‘기업 조세부담 경감->재정 긴축->복지 감축->인플레이션 억제’, 경영권을 위협하는 산업민주주의의 해체, 자유로운 계약을 위협하는 단체협약의 철폐, 산업민주주의 및 단체협약의 한 쪽 당사자인 노동조합의 해체 등을 주요한 주장으로서 내세움. 이런 주장들은 자본측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대단히 반노동자적.반민중적임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자들은 그것이 결국은 모든 이들에게 선택의 자유와 번영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함.


- 신자유주의는 또한 위와 같은 주장의 논리적 연장선상에서 민족들 사이의 경제교류 역시 오직 시장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함. 자본(상품자본, 생산자본, 화폐자본 모두)이 오직 시장 원리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끔 민족국가들은 국제 자본이동에 관한 모든 규제들을 철회해야 한다는 것임. 신자유주의자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런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민족들이 이익을 얻게 된다고 주장함.


- 신자유주의의 주장은 이처럼 크게 민족 내부의 과정에 관한 측면과 국제적 과정에 관한 측면 등 두 측면으로 구별될 수 있음. 그리고, 논리적으로 보자면, 이 두 측면은 별개의 것임.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신자유주의는 이 두 가지 과정 모두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 왔음.


- 원래부터 케인즈주의-포드주의형의 복지국가에 대한 비판으로서 제시되었던 신자유주의는 이차대전 후 30년간 지속되었던 소위 ‘복지국가의 황금기’ 동안에는 영향력을 키울 수 없었음.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주요 복지국가들이 특히 경제적 효율성과 관련하여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내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짐. 소위 ‘복지국가의 위기’ 징후의 노정과 함께 대 국민 설득력을 키워가던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등이 집권하면서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의 경제정책, 노동정책, 사회정책 등에 실제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됨. 뒤이어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탈냉전이 가져다주는 현실적, 이데올로기적 효과의 영향도 받으면서, 신자유주의 담론은 더욱 영향력을 키워 감. 그리하여, 미국을 필두로,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의 주요 정치인과 관리, 그리고 언론과 학자들의 담론에서는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주조를 이루게 됨. 심지어 종래 복지국가를 지향했던 유럽의 다수 좌파 정당들마저도 스스로 신자유주의 쪽으로 접근해 가는 모습을 드러내게 됨.


- 한편, 세계화로 인한 경쟁(특히 국제 경쟁)의 격화가 그런 추세에 박차를 가했음. 세계화를 추진해 온 가장 중요한 세력은 ‘글로벌 순환’을 하는 초국적 독점 산업자본 - 생산과 판매 모두에서 세계를 무대로 삼는 자본, 세계를 무대로 하는 제약 없는 운동을 자신의 축적 조건으로 삼는 자본 - 들과 더 최근의 금융자본들,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 기원의 그것들임. 이 자본 분파들의 요구가 경제적 국경을 없앨 것을 내용으로 하는 개방화, 자유화인데, 이들의 요구가 바로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 미국 등의 주도에 의해 초민족적 규범으로 등장하게 됨. 그리하여 국제적 과정과 관련해서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게 됨. 그리하여 경제의 개방화, 자유화가 대대적으로 진전되게 됨. 그것은 GATT의 발전과정에 반영되어 있음.


- 제네바라운드(1947)에서부터 우루과이라운드(1986-94)로의 GATT의 진보는 경제활동의  점증하는 국제화를 토대로 한 것이고, WTO의 창설은 GATT의 역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음. GATT 출범 초기, 미국과 다른 주요국들의 주된 관심사는 무역(상품자본의 이동)에 대한 각종 제약의 경감이었음. 그렇다고 하더라도, 초기의 GATT는 발전도상국들에 대한 보호조처나 자유무역 예외 품목들을 인정하고 있었음. 그러나 라운드가 거듭되면서 이것들은 약화되어 갔음. 우루과이라운드에 이르러서 GATT 체제는 질적 변화를 겪게 됨.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은 단순히 무역에 관한 합의이기를 넘어서 국제투자에 관한 합의로까지 발전해 감. 이 협정의 중심적인 지향은 제약 없고 규제 없는 투자 및 실현 입지들의 연결망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음. 그리하여, 우루과이라운드에 이르러서는 모든 종류의 공산품은 물론, 서비스와 농산물조차도 거의 전면적으로 개방화, 자유화되게 되었고, 지적 소유권에 대한 보호조치가 강화되었으며, 금융과 투자도 대폭 자유화됨.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1995년, 드디어 GATT는 상품과 서비스의 전면적인 자유무역을 규정하는 최대의 초민족적 경제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로 대체됨. 그리고, 바로 지금 시점, WTO의 주도에 의해 해외투자와 관련해서 여전히 남아 있는 일부 제약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다자간 투자협정”이 추진되고 있음.


- 경제의 가속적인 개방화와 자유화는 국제경쟁의 격화를 불러옴으로써 다시금 국내적 조절의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의 개편을 재촉함.


- 요컨대 경제적 실적의 부진과 사민주의적 신념에 대한 회의, 그리고 세계화로 인해 더욱 치열해져 가는 국제경쟁 등이 유럽 나라들로 하여금 신자유주의로 눈길을 돌리게 함. 신자유주의는 그렇지만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강자의 논리’이며, 신자유주의에 의해 인도되는 세계화는 이 ‘강자의 논리’의 적용범위의 세계화임. 그것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이 전통적으로 비판해 왔던 자본주의의 온갖 문제점들의 현대판을 드러내게 되는 과정이기도 함. .

- 경제적 실적의 부진과 경쟁의 격화로 인해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던 노동자계급은 이제 자본과 국가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의해 더욱 타격을 받게 됨. 대대적 사유화를 통한 공공부문 - 강력한 노조의 온상 - 축소, 노동운동 탄압, 심지어 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한 파업 유발, 오래 동안 관행화되어 있던 중앙집중적 단체교섭의 일방적 폐기와 교섭 수준 하향 조정, 그리고 이를 통한 노조 지도부의 무력화,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라고 불리는 린-생산의 확산, 구조조정, 슬림화, 외주 확대 등,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자본측의 대 노동 공세가 강화됨.  그 결과 실업률이 올라가고, 고용안정성이 파괴되고, 노동조건이 악화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많은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내려가고, 노동강도가 강화됨.


-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은 노동자들이 자본에 대한 고난에 찬 투쟁을 통해 역사적으로 쟁취해 온 것들을 자본이 회수해 가는 과정이라고 일컬어지게 됨. 이름하여 ‘자본의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임. 여기에서 생산입지를 옮기겠다고 하는 자본의 위협은 민족국가와 노조에 대한 초국적자본 측의 효과적인 무기가 되어 ‘바닥을 향한 경주’를 낳음. 거기에는 복지와 환경에 대한 자본측의 고려가 약화되는 것도 포함됨.


- 노동자 계급의 상대적 수가 감소하고,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기술 수준에 따른 분절화와 원심력의 강화가 진행되고 있던 상황에서, 이처럼 자본측의 공세가 강화되자, 노동자계급과 노조는 수세에 몰리게 됨. 조직률이 떨어지고, 각 노조 내부의 단결력, 그리고 노조들 사이의 연대가 약화됨. 이념적으로도 수세에 몰린 상태에서 노조운동은 활로를 찾지 못하고 위기에 빠지게 됨.


- 선진국 노동운동이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신사회운동이 발전하고 남아공, 브라질, 뒤이어 한국 등 일부 제3세계 나라들에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의 성격을 갖는 운동들이 나타나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게 됨.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