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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을 둘러싼 최근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 <의견서 1>

 

최근 민주노총을 둘러싼 사태에 부쳐


정 영 섭 | 노동차장


1. 사태의 역사적 성격

기아차노조 광주지부의 채용비리 사건과 뒤이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사태는 2002년 발전파업에 대한 연대파업 철회사태보다 훨씬 더 큰 파장으로 노동운동을 뒤흔들고 있다. 후자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사유화 저지투쟁 과정에서 이에 대한 연대파업 추진이 철회되어 노동운동 내적으로 연대성과 지도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면(공동의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유실시킨 문제), 전자는 사회적 교섭이라는 대립적인 사안을 놓고 발생한 물리적 충돌이 기층 조합원과 일반 대중에게 일파만파로 뻗쳐 대사회적으로 민주노총의 조직적 정당성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민주노조운동의 정당성 자체를 뒤흔든 문제). 따라서 노동운동사적으로 볼 때 이번 사태는 97년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응하는 대안적인 노동자운동의 전략 정립이 지체되고 방어적인 투쟁만이 반복되면서,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운동의 모순이 부정적으로 폭발한 것이다.

“혼란과 분열만이 남았다... 현직 노동조합 간부로서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는 어느 활동가의 고백은 비단 한사람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노동자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모든 활동가들이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향후 운동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사태 발생 전이나 좋았던 과거의 상태를 만들자는 것 혹은 봉합하는 것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현 상황을 노동자운동의 미래에 대해 근본적으로 토론하는 계기로 삼아서 역사적인 전환점 또는 새로운 운동의 출발점으로 만들어갈 순 없을까?



2. 다양한 해법, 근본적 한계

지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이후 사태에 대한 해법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우선 민주노총 지도부를 위시한 소위 국민파의 대응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조직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폭력성은 뿌리뽑아야 한다는 입장을 제출하고 있다. 민주노총에서는 2월 3일 기자회견을 통해 기아자동차 간부 비리사건과 대의원대회 폭력사태에 관한 대국민 사과, 조직내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폭력을 행사한 반조직 행위에 대한 조사와 엄중한 처리, 조직의 총체적 위기상황에 대한 무한책임감에서 임시대의원대회 개최전까지 위원장 스스로 근신하며, 선출기관인 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 재신임 여부 최종결정, 조합원과 간부들의 단결과 혁신으로 민주노총 위기 극복 호소 등을 밝혔다. 그리고 8인으로 구성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논란이 된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는 당사자들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노무현정권이 비정규 노동법개악안을 통과시키면 사회적 교섭은 폐기하고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만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격렬한 반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인 표결만 강행하여 민주성을 스스로 훼손했음에도 도리어 폭력을 빌미로 민주주의 운운하는 것은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하는 자기정당화일 뿐이다.

경제위기하에서 신자유주의 정권이 요구하는 것이 위기관리와 이에 대한 책임분담으로서 노동자운동 상층의 포섭과 전투적 부위의 배제인데 그 허구적인 사회적 합의주의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을 말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모순이거나 망상이다. 더 나아가 이를 사회연대적 노동운동으로 포장하는 것은 위기와 이행 문제에 대한 사고없이 이를 사회적 타협으로 대체하려는 우익적 전망이다.


한편 대의원대회 사태를 주도했던 진영은 물리력행사는 정당했고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개진하면서 비정규 노동법개악에 맞서는 총파업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위기는 언제나 투쟁으로 돌파해왔다는 주장이 곁들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역시 경제위기와 대중의 우경화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 없이 방어적인 전투성과 지도부 비판으로만 경도되고 있다. 허구적인 사회적 합의주의와 전투적 실리주의를 넘어 노동자운동의 근본적인 혁신과 대안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고, 그 결과 이번 사태에 대한 성찰 없이 반대세력 비판에 기반한 자기정당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극한의 생존적 위기를 겪으며 수동화된 대중은 날로 우경화되는 노동조합의 알리바이가 되었다. 그리고 점차 자신의 능력 및 구체적인 활동성과에 기초하지 못한채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이러한 탈운동적인 연쇄가 대중적인 불신의 대상이 됨으로써 대중, 운동, 정파 사이의 분열과 괴리는 더욱 깊고 복잡한 악순환에 빠지게 되었다.


보다 고민을 집중해야 하는 것은 민주노총, 노동자운동이 갈 데까지 갔고 희망이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을 해체해야 한다는 수구보수언론의 입장은 차치하더라도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의 즉자적 반응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으로 대표되어온 노동자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을 터인데, 대기업 정규직 남성노동자의 이해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운동에 대한 불신과 원망에 기인한다고 보여진다. 즉 평균적인 노동자들의 이해와는 동떨어져서 일부 집단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과 그 내부의 사태에 대한 강한 회의감이다. 정권과 언론의 여론호도가 작용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대중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민주노총 지도부가 고개숙여 사과하고 내부 자정을 하겠다고 해도, 총파업을 하자고 호소해도 쉽사리 바꿀 수 없다. 역사적으로 쌓여온 문제가 폭발하여 민주노총과 노동자운동의 표상이 그렇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운동의 표상을 중단기적으로 새롭게 구축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노동자운동의 사상과 이념, 조직형태, 주체형성, 대중운동, 이데올로기 등 총체적인 면에서 노동자운동을 보편적 해방운동으로 새로이 만드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3. 무엇을 할 것인가?


1) 차기 대의원대회에서 어느 일방이 의도한 형식적인 결과(표결에 의한 사회적 교섭안 통과 혹은 또 한번의 결렬)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이번 사태를 노동자운동의 전환점으로 만드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것이다. 오히려 위기를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이 고민과 토론의 분위기를 만드는 시작이다. 따라서 활동가들은 금번 사태에 관해 광범위하고 개방적인 토론을 다양한 수위에서 의식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2) 보편적 해방운동을 지향하는 노동자운동의 지향을 수립해야 한다. 그것은 경제위기와 세계화, 전쟁이라는 조건을 아래로부터 바꿔낼 수 있는 사회운동적 지향이다. 예컨대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그러한 조건에서 가능하지 않다. 현재의 체제를 장기적인 이행의 과정으로 간주하고 그에 맞는 운동을 창출해야 한다. 사회화와 노동에서 밝힌 바, 대안세계화운동에 적합한 노동자운동, 여성운동과 함께가는 노동자운동 등이다.


3)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운동의 표상을 바꿔내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운동이 어렵고 힘없는 노동자들을 중심에 놓고 운동한다는 표상을 획득하는 문제이다. 흔히 비정규직, 중소영세, 여성, 이주노동자들로 드러나는 이들의 문제는 기존 노동자운동에게는 도전이자 부담이다. 그러나 연대성의 확장과 계급형성을 위해서도 이는 핵심적인 과제이다.


4) 따라서 비정규, 중소영세,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주체화가 무엇보다 관건이다. 노조운동을 포함하여 노동자운동은 이 방향에 적합하게 스스로의 운동방식과 구조를 바꿀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최저임금 현실화문제, 근로기준법준수 문제 등을 전면에 놓고 노조 바깥의 노동자들의 불만을 조직해내야 한다.


5) 이는 기존의 노조 조직체계를 넘어서는 문제일 수 있다. 또한 경제위기 하에서 일정수준 이하의 기업들에서 노조설립이 폐업이나 자본도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노동조합이 아닌 지역에 기반한 노동자운동체가 필요하게 된다.


6) 노동자운동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의 민주성 역시 쟁점이다. 현재 민주노총 의결구조 내에는 비정규직 등이 적절한 대표성을 행사하지 못하는 과도기적인 상황이다. 총연맹의 구조 뿐 아니라 각급 연맹과 지역본부 등도 비슷하리라 보여진다. 노조내부에서 대표되지 못한 부위와 노조로 포괄되지 못한 노동자 역시 노동자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 형성과 구조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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