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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을 둘러싼 최근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 <의견서 4>

 

민주노총 대대 이후


박 준 형 | 회원 (공공연맹)


민주노총 대대가 있던 2월1일 바로 전 주말에는 비정규운동 대토론회가 진행되었습니다. 98년 금융위기와 구조조정 이후 비정규직 운동이라는 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5년여가 흘렀습니다. 98년 노사정위를 통해 정리해고/파견법이 법제화된 후 7년만에 새로운 노사정위는 비정규악법을 유사한 방식으로 민주노총과 합의처리할 것이라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보아도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마침 비정규운동 대토론회가 있던 전날인 28일에는 지역의 공공부문 비정규,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조직인 광주전남공공서비스노조가 출범했습니다. 출범까지 오는 지난한 과정에서 주체들이 기울인 노력과 투쟁, 이 조직의 의미를 생각해볼 때 지켜보는 저로서도 무척 가슴 뿌듯하고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출범과정에서 조직 구획 등 문제로 작은 논란이 있었는데, 지자체 비정규직 중 상대적으로 조건이 좋은 '상용직' 중 도청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이미 존재하는 '상용직'노조가 아니라 공공서비스노조에 가입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분들이 공공서비스노조에 가입한 이유는 (1) 자신들보다 숫자가 더 많은 민간위탁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조직에서 싸우지 않으면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없으며 (2) 상위비정규직인 '상용직'만을 배타적 조직대상으로 하는 '상용직'노조는 운동적 대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청 비정규직 주체 중 한분은 전노협 시절 광노협에서 활동하셨던 분이었습니다.)

비정규직이 '정상적' 고용형태가 된 현실에서, 이제는 오히려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연대를 요청해야할 시기일 것이라는 점, 전노협과 함께 노동조합운동에서 밀려났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조합으로 다시 노동운동에 진입한다는 점 등에서 상징적인 일이죠.

29~30일 비정규직운동대토론회에서도 여러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새로운 노동자대중이 진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빈곤과 불안정화에 내몰리는 이들은 확실히 90년대를 거치면서 제도화된 노동조합에 속한 조합원들과는 다른 종류의 운동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민주노총과 같이 (전투적) 경제주의에 빠지거나 제도화전략의 미망에 빠질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2월1일의 대의원 대회에서 일어난 일들은, 이러한 조건에서 이해되어야할 것같습니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적 합의 안건을 계속 상정하고 강행하려는 이유는 총파업을 해봐야 법안처리를 막을 수 없으며, 그나마 사회적 합의기구에 들어가는 것이 (누구의?)'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강력하게 항의한 주체들은 (비록 정파적인 입장이 반영되었다고 하더라도) 비정규직 운동 주체들이었는데, 이들은 민주노총의 이러한 행태에서 투쟁을 회피하고 비정규직을 배신한 정규직노조의 한계를 그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충돌에서 전선은 비록 그 외양으로는 국민파:현장파(좌파)의 구도일지라도(중앙파는 시종 애매한 입장과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 안쪽에는 신자유주의 하 노동자운동의 단절선을 따라 형성된 전선이 착종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정권의 입장에서는 노동정치 체제의 재편의 마지막 단계를 추진하는데 있어 민주노총 집행부와 협력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민주노총의 2월 중 대대 강행, 이해찬의 법안 처리 연기 가능성 시사 등 모든 정황은 구체적으로 민주노총 집행부와 정권 차원의 교감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98년 노사정위 합의는 교원/공무원노조 합법화 등 집단적 노사관계의 유연화/제도화와 하나의 패키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개별적 노사관계, 노동시장에 있어 유연화를 추진하고 노동운동을 제도화시켜 파트너로 만드는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노동개혁의 연장선입니다.(이는 이미 95년 이후 김영상 정권 때부터 매시기 마다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2005년 노사정위도 마찬가지로 노사관계 로드맵이라는 집단적 노사관계의 유연화와 제도화, 비정규악법이라는 개별적 노사관계, 노동시장에서 유연화를 동시에 추진하기 위한 기획입니다. 이 두가지의 연관과 결합 때문에 노동자운동 안에서 쟁점은 이번 비정규악법저지투쟁-사회적합의 두 안건의 대대 동시 상정과 논란처럼 다소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이 함께 제기되도록 만듭니다.(민주노총의 두 안건은 계급투쟁의 당사자로서 개입하는 국가가 드러나는 두 장면인 셈입니다.)

문제는 민주노총이 대대에서 안건을 공식적으로 통과시키고 노사정위에 들어가는 요식행위를 하지 않았다 뿐이지 이미 대세는 결정났다는 것입니다. 남한의 노조운동은 95년 민주노총의 출범과 함께 지속적으로 제도화 전략을 취해왔습니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공식 협상파트너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왔고 이번 대대에 올라온 사회적 합의 안건은 그 귀결일 뿐입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노사정위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노사정대표자회의 등 각급 채널을 통해 정부와 이런저런 협의를 진행해왔습니다. 또 민주노총의 각급 조직들은 이미 각종 위원회 참가, 정부지원 등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일 뿐 아니라 국가장치 그 자체와도 몸을 섞어 왔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 되어있습니다. 80년대말, 90년대 초를 거치면서 90년대 중반 제도화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의 노동자운동,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이 운동이 '제도화'의 마침표를 찍고 있을 뿐입니다. 민주노총의 비극이라면, 자신은 충분히 제도화되더라도 이미 노동자대중의 소수로 전락한 정규직 노조의 협소한 기반으로는 국가와 이렇다할 제대로된 타협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점, 이에 따라 조직적 불안정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민주노총 대대에서 벌어진 현장파, 좌파,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항의는 이미 그 결과가 예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시도일 것입니다. 또 그런 점에서 비록 민주노총 집행부의 '될 때까지 한다'는 입장 속에서, 거수기 대의원들로 이루어진 민주노총 대대의 구조 속에서 결국 이길 수는 없겠지만 정당한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이 취해온 노선의 최종적 귀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역사적 평가를 남겨야하기 때문입니다. 또 격렬한 충돌을 통해서 노동자운동의 균열이 가시화되어 있다는 점을 확연하게 드러내주었고 그 의미를 활동가와 대중 모두에게 사고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폭력적인 방법'이 옳냐 그르냐 하는 것은 전혀 쟁점일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번 대대에서 드러난 그 '균열'의 의미를 올바르게 사고하고 평가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번 대대는 단지 국민파의 타락한 시도인 것은 아닙니다. 이미 민주노총 조직의 수년간 운영의 필연적 귀결이었다는 점에서 중앙파, 현장파.좌파를 포함한 기존의 민주노총 정파들 모두에게 자기반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또 그런 점에서 이 균열의 선이 기존의 정파들의 균열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로질러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합니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전면화되는 과정에서, 정권이 그것을 법적으로 제도화하고 전면화하려는 시점에서,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운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사회적 교섭' 안건을 두고 이러한 균열이 폭발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것입니다. '새로운 계급주체의 형성'이라는 과제가 더욱 실천적으로 전면화되어야할 시점인 것같습니다.


- "..따라서 노동자 조직들 (특히 계급정당)은 결코 노동자 운동의 총체성을 '대표'했던 것이 아니며 노동자 운동과 주기적으로 모순에 처해야만 했는데, 그 이유는 노동자 조직의 대표성이 산업혁명의 특정단계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한 '집합 노동자'의 특정분파를 이상화하는 것에 토대를 두었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 대표성이 국가와 정치적 타협의 특정한 형태에 조응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존 노동자 조직의 실천적 형태들에 반대하여 노동자 운동이 재구성되어야하는 순간이 항상 도래했다." [발리바르/계급투쟁에서 계급없는 투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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