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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와 정보인권

  • 등록일
    2007/04/08 13:11
  • 수정일
    2007/04/08 13:11

군대에 있을 때, 나는 1년 2개월동안 행정병의 업무를 했다.

인사, 경리, 군수, 작전에 관한 업무를 혼자서 모두 담당했고,

심지어 키포너의 역할까지 했다. 

 



그런데, 그 당시 내가 인사나 경리 업무상으로 가지고 있던 자료에는

내가 담당하던 100여명의 병사에 대한 개인정보가 거의 다 들어있었다.

계급, 이름, 군번, 주민등록번호, 입대일, 전입일, 전역예정일, 본인사진, 학력

휴가, 포상, 징계현황, 집주소, 전화번호, 재산(동산과 부동산을 분리해서),

통장계좌번호, 종교, 키, 몸무게, 혈액형, 운전면허증 소지 여부, 다른 자격증,

가족정보(가족의 수와 가족 구성원의 나이, 직업, 연락처 등등 포함),

친구정보(심지어 이성친구의 경우, 그녀와 섹스를 했는지의 여부까지...) 등등

 

물론 이 자료들은 다 내가 필요해서 만든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인사와 경리 업무를 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자료는

계급, 이름, 입대일, 전입일, 전역예정일, 휴가, 포상, 징계현황,

그리고 통장계좌번호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중대장들이 요구하는 자료들이고, 그걸 내가 보관하고 있을 뿐이었다.

신병이 들어오면, 중대장이 신상명세서를 나눠주고, 그걸 강제로 쓰게 한다.

(나는 그 신상명세서를 만들어주는 일을 했다지...-_-)

물론 이렇게 하는 데에 있어서,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설득하는 논리는

마치 지문날인이 사람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듯이,

병사들을 '잠재적인 탈영병'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급부대에서 군번과 주민등록번호는 거의 모든 서류에서 요구받았다.

(물론 그 상급부대라는 곳도 더 높은 곳에서 요구받은 거겠지만...)

사실 그들도 휴가, 진급, 전역을 시키는 것과 봉급을 주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일인데, 이와 같은 일에는 최소한 주민등록번호는 필요없다.

군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입대일과 전역일에 대한 정보가 다 있다.

봉급에 대해서는 계급별로 지급하는 것이므로, 계급만 알면 된다.

그런데, 모두들 군번을 요구한다.

본인확인을 위해서는 군번만큼 편한 것도 없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병장을 갓 달았을 때쯤에 알게 된 사실이

그 동안에 전입온 신병중에 군번이 바뀌어서 온 녀석이 있었다는 거다.

그 녀석은 훈련소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동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 동기의 군번으로 우리 부대로 보내진 것이다.

즉, 같은 군번의 병사가 두명이 되었다.

이렇게 된 사실을 이 녀석이 일병이 되고 나서 2개월 후에 알았다.

나는 결국 이 녀석의 제대로 된 군번을 찾아주어야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은 6개월 동안 남의 군번으로도

아무런 문제없이 행정적인 처분을 받았다.

그 동안에 진급도 했고, 봉급도 잘 받았다.

즉, 군번은 행정 시스템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게 바로 불필요한 정보인데, 상급부대에서 끊임없이 수집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이 녀석의 군번은 결국 소속에 대한 근거를 통해서 찾을 수 있었다.

 

사실 다 필요하지 않은 자료들이고, 제대로 확인할 일도 없는 자료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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