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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를 다녀왔다.

  • 등록일
    2007/07/02 05:20
  • 수정일
    2007/07/02 05:20
[대형마트에서 라면 다섯개를 샀다.]와 관련된 글. 토요일 낮에 과외하러 갈라고 집을 나서려는데, 아래층에서 맛있는 냄새가 올라왔다. 라면냄새였다. 채식을 하면서 라면은 먹지 않지만, 여전히 냄새만으로도 무슨라면인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라면을 무쟈게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과외 두 군데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애써 지하철을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려서 대형마트에 몇 개월만에 갔다. 물론 채식라면을 사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대형마트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매장이 몇층으로 구성된 정도의 마트를 의미한다. 나는 분명히 그 마트에서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막상 가보니 채식라면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마트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결국 30분만에 사리면을 사갖고 나왔다. (이것 역시 성분 써 있는 거 보고, 달걀 안 들어간 것을 골랐다지.) 4봉지에 970원이었다. 고향집 근처에도 대형마트가 있는데, 나는 예전부터 거기서도 거의 수입맥주밖에 안샀다. 나는 대형마트에서 한아름 장을 봐 오는 데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 어쨌든... 사람들은 카트에 이물건 저물건 집어 넣고, 한꺼번에 계산대에서 토해낸다. 그리고 마트 직원이 계산대에서 하나하나 바코드를 찍는다. 계산이 끝났다. 돈을 낸다. 혹은 카드로 긁는다. 그리고 물어본다. 현금영수증, 포인트 적립... 물어보는 것도 많다. 너무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나는 대형마트가 불편하다. 나는 달랑 물건 하나 사갖고 나오는데,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리는 게 영 못마땅하다. 어쨌든 내 차례가 되었다. 사리면 4봉지가 함께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바코드 한번만 찍으면 된다. 찍었다. "얼마에요?" "970원이요." 내가 천원을 내자, 30원과 일반영수증을 휙 던져주고, 돌아선다. 그렇게 거래는 끝났다. 현금영수증이나 카드 등등... 안 물어봐도 짜증나고, 물어봐도 짜증난다. 안물어보는 건 겨우 970원이라고 무시하는 느낌이라서 짜증나고, 물어보는 건 어차피 내겐 해당사항이 없는 거라서 짜증난다. 아무래도 이상한 심보다.ㅋㅋ


계산이 끝나고, 나가면 되는 상태에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온갖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또 어떤 상품들을 찾기 위해서는 몇층으로 가면 된다고 적혀있기도 했다. 내가 라면을 찾던 곳에는 또 다른 누군가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다시 한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물론 라면은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가방은 물품보관함에 여전히 따로 있다. 그 순간 깨닫는다. 이 곳에서 개인의 욕구가 어떤식으로 제어되고 있는지. 돈을 내지 않으면 어떤 욕구도 충족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경우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가방은 물품보관함에 따로 넣고 들어오라고 한다. 이제 내가 산 사리면은 나의 욕구가 되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물건을 고르면서, 자신의 욕구를 들여다볼 것이다. 고기매장을 지나치고, 고기를 이용한 가공품(햄 같은 거)매장도 지나친다. 그것들은 시체지만, 분명히 누군가의 욕구다. 또 가전제품 매장도 지나친다. 또 채소매장도 지나치고... 어디를 가도, 우리가 바라는 것들은 잘 포장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의 욕구는 거기 시체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체들이 포장되어 다른 것인 척 하고 있는 것들에 있었다. 우리의 욕구는 시원한 바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원한 바람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에어콘, 그것도 잘 포장되고, 이상한 여러가지 기능도 있는 에어콘에 있었다. 그저 고를 뿐이다. 보이는 것들 중에 이제 당신의 욕구가 되어버린 것을. 그 짧은 순간에 놓쳐버릴 지도 모르는, 당신의 기이한 욕구의 정체. 섬뜩하다. 그리고 나는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그건 더 불안한 일이다. 대형마트의 세계는 그렇게 단조로워 보이면서도 매우 차가웠다. 온갖 사람들의 욕구가 탈정치적으로 놓여져 있어서 대형마트는 내게 불편한 공간일 뿐이었다. 누가 물건을 파는 건지 불분명한 이상한 공간. 그 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가 이상하게 통제되고 있는 것을 미처 신경쓰지 못한 채 끊임없이 물건을 고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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