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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의 재도전, 김영희의 재도전

  • 등록일
    2011/03/24 01:22
  • 수정일
    2011/03/24 01:24

지난주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참 말이 많다.

뭐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본방으로 볼 수도 없고, 재방으로라도 보고 있지 않지만,

이소라가 몇곡 부른 거만 찾아서 들어보기는 했다.

 

이 프로그램은 7명의 가수가 노래로 대결하는데,

적당한 때가 되면, 7위를 한 가수를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지난 방송에서 김건모가 7위를 했다는데,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기로 했단다.

뭐, 이건 좀 어이가 없는 일이다.

7위를 한 사람을 탈락시키기로 해놓고, 막상 7위가 나오자,

그가 김건모였든 아니었든 간에, 다시 재도전 기회를 준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들의 규칙을 번복한 일이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김영희 PD가 사과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는 뭐,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되는 것이 그나마 적절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타이밍에 MBC에서 심한 오바를 했다.

PD를 교체한단다. 시청자와의 약속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그것도 자신이 기획했을 프로그램을 남에게 넘겨줘야 하다니.

누군가가 책임져야 하고, 김영희 PD가 굳이 물러나야 한다면,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없애는 게 맞지, PD만 교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이젠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 안의 문제가 아닌 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걸 기대하는 게 아니었지.

 

생각해 봐야 할 점은

님들의 지난 방송에 대한 비판은 '규칙을 지켜라'밖에 없지 않느냐는 거다.

그건 시청자와의 약속이라고 한다.

규칙을 만든 사람들은 방송국 관계자들인데, 시청자들하고 언제 약속했나?

 

이 문제를

정해진 규칙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꼴도 보기 싫다는 태도와

막상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내걸었던 규칙을 가수들이 거부하는 것에 대해서

프로답지 못한 처사라느니...

이렇게 막말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질문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도대체 그 규칙, 7위를 탈락시켜야 한다는 것을 왜 지켜야 하는가?"

"어느 누구도 그 규칙을 거부하거나, 번복해서는 안되는 일인가?"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규칙을 지키라고 배우지만,

그것을 왜 지켜야 하는지는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운동장에 애국조회를 하려고 줄을 설 때, 줄을 똑바로 서지 못한다고 야단을 맞지만,

왜 그 줄을 똑바로 서야 하는지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7위를 탈락시키는 규칙은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그것에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7위를 탈락시키는 목적을 이정도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누가 다른 이유가 있다면 좀 알려주길 바란다.

그리고 이 정도 이유라면, 나는 7위를 반드시 탈락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매우 즐겁게 음악을 하려는 사람들일테니까.

 

누군가는 이것을 불공정 사회의 표본이라고 비난하던데,

나는 그렇게 우기는 것이야말로,

현재의 불공정 사회의 작동 방식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공정 사회는 공정한 경쟁이 아닌 상태에 대한 판단이지,

공정한 경쟁 이후의 결과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불공정 사회의 표본이 되려면, 김건모를 제외한 다른 6명의 가수들은 가만히 있는데,

김건모가 제작진과의 로비만으로 재도전의 기회를 얻었어야 했다는 점이다.

김건모는 다른 6명의 가수들의 의견들 때문에 재도전의 기회를 얻지 않았는가?

그게 과연 불공정한 일인가?

기다리고 있는 다른 출연자가 김건모때문에 출연하지 못하게 되나?

그렇다면 출연진을 8명으로 바꾸라고 하면 되지 않는가?

 

분명히 가수들은 서바이벌 방식의 프로그램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적응을 잘 하고 있지 못한 게다.

그걸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예능인으로서는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수로서의 자질은 달라질 것은 없다.

 

다른 6명의 가수들이 김건모를 탈락시키면 안된다고 요구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규칙에 순응하는 사람들만이 방송을 할 수 있다면 그것참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방송을 통해서 양산하는 이미지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가수들의 무대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절대자들이 내리는

규칙과 명령에 대한 복종만이 남을 뿐이다.

김영희 PD는 애초에 이 프로그램을

단순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만들 계획이 없었던 듯한데,

이제 MBC 방송국에서 PD를 교체한다고 난리치는 것은

복종의 규칙이 깨어지는 그 꼬라지를 방송에서 더는 두고볼 수 없다는

빅브라더의 전형에 불과하다.

그리고 자기들의 규칙을 '시청자와의 약속'이라는 말로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깟 재도전 기회를 줄 수도 있고, 주지 않을 수도 있고,

재도전의 형식이 뭐가 될 지도 여러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는데,

김건모와 함께하겠다는 다른 가수들의 의지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짓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재도전의 기회를 부여한 PD의 결정은

당신의 의견과도, 또 나의 최초의 의견과도 다르겠지만,

그 또한 방송의 일부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기회를 주는 것은 사실 시청자 마음이 아니라, PD 마음이다.

이건 애초에 PD가 사과할 일도 아니었다.

시청자들의 판단은 간단하다.

그래서 재도전의 기회를 준 것에 대해서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방송을 보지 않으면 된다.

어차피 그 규칙은 긴장감을 조성하여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시청률이 떨어지면 어떻게든 변화를 모색하겠지.

그 프로그램의 규칙의 변화에 불만있다면 안 보면 된다.

그래도 음악을 듣고 싶다면 보면 되고.

그들은 시청자들에게 욕먹을만큼,

아무 이유없이 인신공격을 당할만큼 잘못하지 않았다.

 

덧 : 김건모든 누구든 재도전을 한다면,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다른 가수들에 대한 피처링이나

Background Vocal의 형식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분명히 다른 가수들의 무대이니, 뭐라 할 수 없는 문제가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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