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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그리고 홍진호

  • 등록일
    2010/08/10 00:00
  • 수정일
    2010/08/10 00:00

이 글은 빨간뚱띵이님께서 쓰신 [관련한 단상들]에 관련된 글입니다.

나름대로 이런 저런 지적을 하셨는데, 파시즘과 폭력성을 언급하셔서

도저히 가만히 있기가 싫어서 글을 씁니다.

 

빨간뚱띵이님은 laron 개인의 문제를 진보넷이라는 조직 전체에 문제를 확장시키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활동가'라는 이름을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고 사적인 표현은 어디까지 보장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여기에 대한 저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진보넷에 공개질의서를 보내야 했던 이유는 laron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진보넷 조직이 걱정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laron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데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진보넷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취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주의 문제는 어느 조직이든 피해갈 수 없는 문제고, 피하려고 들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문제입니다. 또, 진보넷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laron님이 말한 것과 같은 개념인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죠.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보넷측의 답변서에 답이 잘 나와 있으므로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둘째, 최소한 이번 일에 대해서는 공/사의 구분을 통해 laron님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조직의 활동가가 그의 조직의 운동주제와 부합하는 주제에서 논쟁이 붙었을 때, 그것이 아무리 블로그라고 해도, 그 조직의 입장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조직과 그 조직의 활동가가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공/사의 구분이 이번 일에 대해서는 최우선적인 구분이 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laron님이 진보넷의 정책활동가인 이상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빨간뚱띵이님은 "어쨌건 논쟁 중에 서로의 감정이 최대한 다치지 않는 방향을 고민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것이고 논쟁에 임하는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도 생각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뭔가 예의를 언급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예의에 어긋난 부분이 어떤 예가 있는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막연히 "laron님이 감정 상했다." 이런 식의 주장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파시즘이라는 말은 그 의미가 미치는 영역이 매우 넓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죠.

사전적인 의미부터 설명하자면,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파시즘]

그래도 저 링크에 나름 설명이 잘 나와서 링크만 걸어놨음.

 

하지만 그것보다 제가 전에 쓴 [은하해방전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소제목으로 "비합리성에 대한 동정표"라는 단락에 적어놓은 파시즘의 의미를

적용하는 게 좀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서 국가나 전체주의와 같은 것을 적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즉, 파시즘은 합리적이지 못한 방식의 다수의 광기나 조롱이 소수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죠.

 

빨간뚱띵이님은 이번 laron님의 글에 대한 논쟁에서 파시즘을 언급하셨는데,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laron님의 글에 문제제기한 사람들의 의견을 파시즘이라고 생각하셨는지, 구체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실 파시즘은 제가 오히려 laron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는 laron님이 파시스트라고 몰아붙이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laron님의 처음 글에서 나왔던 홍진호의 존재 때문이었지요.

 

E스포츠 10년의 역사에서 패잔병, 혹은 굴욕의 이미지가 가장 강한 프로게이머를 고르라면

게임을 오랜 기간 관심갖고 보셨던 분들이라면, 첫손가락에 홍진호선수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대의 라이벌 임요환과의 상대전적도 그렇게까지 밀리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홍진호에게 그런 이미지가 생긴 것은 중요한 경기마다 임요환에게 졌기 때문이죠.

특히 2004년 EVER 스타리그 4강전에서 임요환에게 3연속벙커링에 당하고 나서는

그 이미지가 거의 굳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홍진호의 별명인 '콩'도 별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현재 그 별명은 홍진호를 가리킬 때, 부정적인 언어로 많이 쓰이죠. "콩까다"라는 표현과 함께.

그런데 사실 홍진호선수가 게임에서 진건 진거고, 홍진호선수에게 굴욕의 이미지를 게임 외적으로도 유통시킬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여기서 laron님의 포르노에 대한 상상에 홍진호가 등장하는 맥락이 있죠.

laron님의 글 속에는 굴욕을 받는 대상이 필요했던 거죠. 그걸 laron님은 개드립이라고 한 거고요.

홍진호가 DC에서 굴욕의 상징으로 읽히는 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생각해 볼 점이 많은 대목입니다.

 

파시즘이 특정한 시기에 크게 유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이유는 파시즘이 제시하는 비하와 조롱, 그리고 억압의 코드들이

일반대중에게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던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블로거들께서 laron님의 글에 대해서 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이고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어찌보면 여기에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웃자고 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데,

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이야기도 웃자고 한거니까, 풍자로 받아들여라... 한다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대응한다면, 그 상처는 이 사회에서 치유할 곳이 없어집니다.

이와 같은 집단의 광기를 이용하여 개인을 억압하는 체제가 바로 파시즘이죠.

 

홍진호에 대한 이야기를 이 관점에 적용해보면

굴욕의 상징으로 읽히게끔 만드는 것 역시 DC에서의 네티즌들이죠. 소위 불특정다수라고 하는...

개그니까 괜찮다라고 한다면, 홍진호가 굴욕의 상징이 되어서 포르노에 등장할만한

홍진호 자신이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일반대중에게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조롱에 불과합니다.

그걸 그대로 쓴다면... laron님을 파시스트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파시즘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비판을 할 수 있겠죠.

 

파시즘에서 벗어나시려면, 개그와 풍자에 대하여, 진지해지셔야 합니다.

"개그니까, 풍자니까 괜찮다."가 아니라,

"개그니까, 풍자니까 상처받을 사람이 없을 지 몇 번이고 확인하자."여야 합니다.

파시즘과 폭력성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신다면,

개그와 풍자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비합리성에 대한 욕망, 그것이 개그와 풍자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당신의 마음속에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부터 진지하게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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