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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우리집은 공장을 했다. 아버지는 직원이 열명이 채 안되는 작은 공장을 운영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잘 이해하기 힘들지만 우리집이 공장이었다. 집에 공장시설이 있었다. 당연히 일을 하는 시간에는 집이 시끄러웠다. 나는 시끄러운 집이 싫어서 학교에 갔다오면 거의 대부분 동네를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쯤엔 공부에 지장이 있다고 해서 공장을 딴데로 옮기고 우리는 이사를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다닐 땐 집에 오면 항상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엔 나이가 어린 오빠들도 있었다. 그 오빠들은 집이 지방이어서 우리 집에서 숙실을 해결했다. 쉬는 시간에는 나와 만화책을 같이 보기도 했다. 그 오빠들 중엔 직장을 옮겨서 다른 데로 간 뒤에 내게 잘 지내냐고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어릴 때는 애교가 많고 붙임성이 있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답장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난 그때 편지 내용을 잘 이해하지도 못했다. 언젠가 이주노동자와 압류를 하러 갔는데 집행관이 집 안으로 들어가고 그 사람은 자긴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사장과 부딪치기 싫어서 그런가보다 했더니 하는 말이 그 집에 나이 어린 딸이 있는데 마주치면 안된다고 한다. 그 사람은 그 소녀가 자신을 반가워할까봐, 자신이 여기 왜 왔는지 그 이유를 알까봐, 그 소녀가 상처받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집행관들이 나오자마자 사장이 달려나와 우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우리는 성급히 집행관의 차를 타고 거길 빠져나왔다. 내가 예전에 만난 사장들은 인간말종들도 있지만 대부분 돈없는 사장들이다. 이주노동자때문에 몇 백만원짜리 원단을 손해봤다는 둥, 말도 없이 그만둬서 손해를 엄청 봤다는 둥 하면서 괘씸해서 돈을 못주겠다고 하면 돈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니까 끈기를 갖고 기다려야 한다. 저도 사장님 심정 이해합니다. 하면서 이해하는 척 하다가 사장님 임금 지급안하시면 검찰에 가서 조사받습니다. 하고 사무적으로 말했다가 이 두개의 설득과 협박을 반복해서 하다보면 사장도 결국 탈진해서 괘씸해서 다는 못준다고 한다. 그러면 노동사무소에 가셔야겠네요 하면 또 그때부터 내가 범죄자냐고 내가 왜 노동사무소에 가냐고 노발대발한다. 그러길 또 한시간. 보통 이런 사장 만나면 공장에서 나올땐 녹초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장들은 돈이 없어서 못준다고 한다. 나는 그가 정말 돈이 없는지, 없는척하는건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내가 상대하는 사장들이 못배우고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이라는건 사실이다. 언젠가 찾아갔던 공장에선 임금을 못줘서 직원들이 다 떠나가고 사장 혼자서 힘겹게 일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이 힘들다고 그 사람까지 힘들어야하는건 아녜요, 임금 지급하세요. 하고 말하지만 저런 사장들 상대로 싸워야 하는 내 처지가 서글플 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장들은 난 아가씨처럼 배우질 못해서.. 라고 항변하다. 그런 말 정말 듣기 싫다. 나도 한 때 조직가가 꿈이었던 적이 있다. 조직화를 할 수 있는 사업장에 들어가려고 했고, 친구들이 일자리를 알아봐주고 있었다. 그 땐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경제가 어려워서 그런지 폐쇄하는 사업장은 있어도 새로 사람을 뽑는데는 별로 없었다. 얼떨결에 어떤 노조에서 상근하게 되었다. 그 노조가 있는 사무실은 서울에서도 보기드문 노동자구역이다.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미로처럼 되어있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작업장들이 있었다. 점심 때는 노변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직도 그 곳에선 차꾸러미를 들고 가는 여종업원이 있고 퀵서비스 오토바이들이 질주를 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걷다간 다칠 수 있다. 나와 함께 사업장을 둘러보러 같이 다녔던 부지부장은 기계나 작업공정에 대해 세심히 설명해주었다. 부지부장은 기계를 가리키며 저걸 보라고 했다. 안정장치가 벗겨져있었다. 화학연맹에 가입해도 될 정도로 화학약품이 많아서 머리가 좀 아프다고 했더니 어딜 가면 시야가 뿌옇고 골이 뱅글뱅글 돌아서 처음 간 사람은 쓰러진단다. 여자들은 거의 대부분 단순노동을 하고 있었다. 일하는데 손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손놀림이 빨랐다. 얼마나 하면 이렇게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일년, 아무것도 안하고 이 일만 일년하면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여자들은 이렇게 십년 일해도 한달에 80만원 넘게 받기 힘들다. 토요일은 당연히 저녁 6시에서 8시까지 일한다. 일요일에도 바쁘면 출근해야하고. 내가 그 노조를 그만두었을 때 부지부장이 일을 좀 배우는게 어떻겠냐고 해서 한동안 고민했는데 나는 결국 내 모든 꿈을 접었다. 되도 안는 영세사업장 조직화를 위해 하루종일 그 지겹고 끔찍한 단순노동을 해야한다니. 정말 노동자 조직이 필요한 저 사람들에게는 조직이 없었다. 사장의 지급능력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잉여가치를 나누어달라고 할 수 있지만 아마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자기가 다니는 공장이 문 안닫고 임금 안밀리고 일하다 사고 안나고 안정되게 직장 다니는게 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죽도록 일만 하고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나이가 될 때 그들 손에 돈 몇 푼이나 쥐어지며 그들 삶을 누가 보상해줄까.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여의도에서는 어디 가서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모두 주식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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