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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상징물 철거론자의 괴상한 논리


[비평] 손석춘은 왜 인과관계를 고정시키는가? 
 
오마이에 실린 "'맥아더 동상 철거론'이 미숙한 주장인가 [손석춘 칼럼] 악다구니가 토론을 누르는 사회"에 대한 비평이다.

 

노파심에서 먼저 변명부터 꺼내야겠다.  아닌 경우 맥아더 상징물 철거론자들로부터 보수, 수구 혹은 몰역사적이라는 딱지를 붙여야 할 세태니 말이다.  과거 위정자나 친일, 친미 주류계층에 의해 왜곡되어 미화된 맥아더를 두둔하자는 차원이 결코 아니다. 동성철거론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숙되지 않은 역사의식의 행태이다.

 

역사에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면에서 손꼽히는 인물을 꼽자면 히틀러나 무솔리니라 할 수 있겠다. 이들의 지시에 의해서 세워진 건물 기타 관련 유물등을 철거하지 않고 존치하고 있는 국가들은 미성숙한 역사의식을 가진 국가들이라 낙인을 찍어야 일관된 논리일 듯 하다.

 

손석춘이 인용한 문맥에서 알 수 있듯 원폭투하를 현실적으로 저지한 사람(들)은 미국 합참이다. 그의 논리라면 현실적으로 원폭투하를 제지하여 한반도를 구원한 사람은 합참이다.  다른 한편 맥아더가 원수라면 그런 인물을 선임한 미국도 그 궁극적 책임을 벗을 수 없으며 따라서 미국도 철거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라고 한다면 맥아더 상징물 존치론자들이라는 현실적 벽을 숫적 우세로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혹은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소영웅주의적 오만한 자세에서 혹시 비롯되는 것은 아닌가를 자문해 볼 일이다.

 

부정적인 인물의 조형물이라 하여 철거해야 한다는 식의 역사청산은 미래전향적인 자세도 아니며 그 태도 또한 관철되고 있지도 않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철거론은 미성숙한 역사의식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바꾸어 말하면 서민들은 호구지책으로 등골이 휘어 무관심한데 시간이 남아도는 한량들의 이념의 관철 혹은 위명을 위한 악다구니를 상호 쏟아내고 있는 듯 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까닭은 손석춘을 비롯한 동상철거론자들의 논리는 이상하게도 그 인과관계가 맥아더에게 딱 고정돼 앞 뒤로 움직이지 않고 붙박혀 있다는 점이다. 그래야 하는 당위라도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볼 일이다.

 

손석춘식으로 동상을 철거하는 일을 정당화 한다면 그 인과관계를 조금만 넓혀 소급한다면,  일제 때 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공간조형물인 총독부 건물이랄지 시청건물이랄지 철거해야 할 건물들도 많다. 그것 뿐인가?  맥아더가 군대를 이끌고 오게 만든 남침의 장본인 북한에 대한 비난, 나아가서는 북한의 사상적 지반인 이데올로기도 비난하는 것이 그러한 자세를 관철하는 것이 될 것이다.

 

커밍스가 인용한 문헌에 따르면 분단의 단초(38선)는 일제의 기획이라고 한다.  철거론식 역사청산이라면 더러운 일제및   세계사적 안목으로는  K. 맑스가 자신의 이론을 창안하게 된 동기가 당시 초기자본주의의 폐해에서 야기된 노동계급의 목불인견의 참상으로부터 비롯된 인도주의적 계기였다고 온전히 긍정적인 면만을 쳐다본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의 유물사관때문에 이른 바 공산주의 혁명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는 인권유린이 자행된 것은 공지 사실이다. 이 시각에도 북한에서 자행되는 동포의 인권유린은 결국 뿌리를 찾자면  K.맑스에게 있고 또 38선으로 동강난 한국의 냉전이념대립도 한 축은 그에게 원인이 있다.

 

그리하여 한반도 냉전체제의 한 축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맑스이니  만약 진보정당이나 좌파진보주의자들이  철거적 역사청산의 관점을 철저하게 관철하려면 과거 왜곡되어 미화된 맥아더동상 철거만  아니라 현재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당면한 인권유린및 제한적 이산가족상봉만을 허용하는 반인륜적 태도도 비난해야 할 것이고,  맑스의 사상적 기반도 부정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맑스와 대척점에 있는 또 한 축의 이념들도 사회에서 철거하기 위해 격리시키자는 주장도 나올 법 하다.

 

필자눈으로는 맥아더상징물의 적극적 존치옹호론자들은 그들이 매우 올바른 뭔가를 행한다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심리나 정신자세라면 그들의 신념에 의한 반대차원에서 빚어지는 폭력등은 그대로 불의에 대한 정의수호의 관점으로 확신하고 있을 법 하다.

 

그러한 확신범들은 양심수와도 같다. 그리하여 그 양심범들은 자신들을 비난하는 측에 대해 맹렬한 반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동상철거주장이나 행동들이 결국 과거에 사이비 보수세력이 자행했던 빨갱이 사냥과 질적으로 하등 다름이 없는 파쇼적 작태로 자리매김 돼 있을 법 하다.

 

철거를 강행하려는 측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측의 구체적 행태는 양으로 따진다면 비난가능성이 다를 것이지만,  강제로 자신의 주의 주장을 관철하려 한다는 점에서 질적인 차이가 전혀 없다. 따라서 언론에서 그 본질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차원이 아닌 특정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강정구처럼 궤변과 견강부회로 맥아더동상을 철거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려 하지 말고, 맥아더를 영웅으로 알고 있는 이들의 무지를 일깨우고 왜곡된 맥아더 미화작업을 담당했던 지식인과 위정자들을 추적하여 친일인명사전처럼 역사의 심판대 위에 세우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맥아더 상징물은 국민들로 하여금 사이비 보수의 역사 왜곡(미화)을 상기할 수 있는 교훈적 상징물로 남겨놓는다는 것이 거시적으로 훨씬 더 가치롭고 유익한 것 아닐까?

 

손석춘은 기독교단에서 예수를 박해한 제정로마나 인물들을 왜 성서에서 철거(?)해 버리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맥아더 동상 철거론'이 미숙한 주장인가
[손석춘 칼럼] 악다구니가 토론을 누르는 사회 : 손석춘(ssch) 기자    
 
 
 
더글러스 맥아더. 그의 동상을 둘러싸고 빚어진 충돌은 쓸쓸한 풍경임에 틀림없다. 동상을 지키던 젊은 전경은 대나무에 찔려 실명위기에 몰렸다. 경찰 쪽에서 날아온 돌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된 사람을 비롯해 부상당한 시민도 20여명에 이른다.

병원구급차를 막아선 장면에선 하릴없이 서글픔이 밀려온다. "저 안에 빨갱이가 타고 있다" 소리치며 병원으로 가는 차를 막아선 사람들을 보라. 섬뜩하지 않은가.

하지만 어떤 살풍경도 '유혈충돌'이 아무런 교훈도 남기지 않은 채 넘어가는 모습만큼 스산하진 않다. 침묵해도 무방했을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동상철거 시도는 "성숙하지 못한 역사의식"으로 매도했다.

미국을 의식해서일까. 미국에 간 노 대통령은 반대 의지를 거듭 밝혔다. 이 총리도 국무회의에서 '엄정대응'을 강조했다. "불법적인 동상철거 시도"는 한미간의 우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된 역사의식에도 반한단다.

동상 철거시도는 성숙된 역사의식에 반한다?

참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무엇이 '성숙'인가. 누가 누구에게 '성숙'의 잣대를 들이미는 행위만큼 오만한 일이 더 있을까. 역사의식의 성숙을 들먹이는 청와대의 이병완 비서실장이 전두환정권 시대에 어디에 있었는지 돌아보면 실소마저 나온다.

동상철거론은 맥아더를 마치 '구국의 신'처럼 추앙하는 우리 사회의 일각에 경종을 울려주었다. 한국현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가 <김정일 코드>에서 분석했듯이, 맥아더는 전쟁초기부터 원자폭탄 사용을 요구했다.

1950년 7월 9일. 전쟁이 벌어진지 겨우 보름 남짓 되던 날이다. 미국 합참은 다행히 맥아더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해 10월 중국군 참전을 명분으로 맥아더는 다시 원자폭탄 투하를 열망했다. 맥아더는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기 위해서는 26개의 원자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맥아더를 보는 찬반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당시 그가 한 말을 차분히 톺아볼 때가 되었다.

"동해로부터 서해에 이르기까지 코발트 방사선으로 막을 형성할 것이다. 그 지역의 생명체는 60년, 혹은 120년 후에야 다시 소생할 것이다."

그랬다. 그게 더글러스 맥아더의 진실이다. 만일 그의 미친 구상이 실현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진지하게 성찰해 볼 일이다.

브루스 커밍스만이 아니다. 미국 국무부에서 역사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역사학자 마이클 샬러는 <더글러스 맥아더>에서 맥아더가 더 큰 권력을 추구했다고 증언했다. 검은 색안경과 목도리, 파이프와 말채찍으로 자신을 상징화하거나 자신에 호의적 기사를 쓴 언론인들에게 '보답'을 아끼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부시정권의 핵공격 위협은 맥아더의 연장... 논쟁 활성화해야 한다

맥아더가 만일 해임되지 않았다면, 그가 망발을 한 시점에서 "아직 60년 혹은 120년이 지나지 않은" 이 땅에는 "동해로부터 서해에 이르기까지" 생명체가 없는 회색지대가 거의 전역을 형성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맥아더를 떠받드는 수구언론에 분명하게 묻고 싶다. 과연 그래도 좋은가.

더 심각한 문제는 맥아더의 광기가 비단 과거에 머물지 않는 데 있다. 무엇보다 오늘 이 순간도 미국 조지 부시정권은 평양에 선제 핵공격을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다. 맥아더 동상을 둘러싼 논란을 지금 어정쩡하게 마쳐서는 안 된다. 언론도 토론과 논쟁을 활성화하는 데 나서지는 못할망정 악다구니로 방해는 말아야 한다.

대체 누가 감정적 대응을 하고, 누가 성숙하지 못한 역사의식을 지니고 있는가. 한가위 둥근달 아래서 냉철하게 짚어볼 때다. 
 
 
2005/09/15 [07:34] ⓒ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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