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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1/20
    이 명박시장의 궤변과 반시대적인 경부운하건설론
    시민25
  2. 2005/09/03
    펌)영남패권주의의 온상 추미애 프리미엄(1)
    시민25

이 명박시장의 궤변과 반시대적인 경부운하건설론

이 명박 서울시장(이하 경칭 생략)이 작년 5월 '서울 봉헌'발언에 이어 '청계천 복원'의 공을 하나님께 돌렸다는 보도를 읽었다.

 

종교인들의 독선 혹은 위선

 

필자는 어떤 종교단체의 끈질긴 거센 항의로 광주광역시 북구청사의 벽에 그려진 초대형벽화(홍성담화가의 작품)의 일부가 '무속적 상징'이라고 썬팅 한지로 작가의 허락도 없이 덮혀 버렸던 사건을 기억한다.

 

이 배타적 특정종교단체의 입장을 일관되게 관철한다면, 불국사나 석굴암 기타 유교적 유물들이 국보 혹은 보물로 지정돼 있는 것도 모두 종교적 차별로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될 법 하다. 이 배타적 입장을 일반화하여 모든 종교단체에게 평등하고 차별없는 입장을 견지하는 경우, 즉 모든 종교단체(혹은 종교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모든 종교적 작품(유물)들은 모두 특정 종교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들로서 거부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거론해야겠다. 존경하던 어른이 이승을 하직하여 조문하는 장면에서 기독교인이 전통적인 큰 절로 조문하지 않고 기독교적 예절로 조의를 표하는 것을 보았다. 그럴 수 있다. 격식이나 예의는 자기 방식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유교적 사회윤리가 지배하던 조선후기에 기독교도들에 대해 일정한 격식을 강요하며 반체제적 외양이란 탓으로 탄압이 저질러진 각종 사화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시의 강요와 오늘날의 자기 방식의 고수가 시대를 넘나들어 서로 배타적이라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보여진다.

 

이런 사건들을 놓고 생각할 때, 이 명박시장의 서울특별시나 청계천복원건에 대한 하나님께 봉헌의 발언은 시장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서울특별시란 공간은 비종교인, 종교인(기독교인, 불교도, 이슬람교등)인 평등한 시민들의 보금자리이며,  청계천복원공사에 들어간 천문학적인 재원은 모두 그들의 호주머니로부터 나온 세금이다. 따라서 광주광역시 북구청역사의 벽화가 배타적종교단체나 특정인들의 입장에서  끈질긴 항의끝에 가려진 것처럼 이명박의 서울시장퇴진론이 대두될 법 하다.

 

이 명박이 서울특별시장이며 교회장로로서 특정교회의 행사에 참석해서 할 법한 발언은 청계천이나 서울틀별시가 거론되지 않는 보다 일반적인 종교적 발언일 때 서울특별시장의 직위와 분리되어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봉헌발언에 대한 비난에 대해 “때와 장소에 따라 연설은 달라질 수 있다”는 이명박의 항변은 이런 관점에서 독선이거나 궤변이거나 기독교도들에 대한 환심사기용 정략적 발언으로서 순수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신성해야 할 교회가 정상모리배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이 명박의 경부운하론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탓인지 이 명박은 청계천복원공사를 완수하여 하나님께 봉헌하였다. 이어서 터져 나온 것이 경부운하건설이다.

 

일제의 대륙침략의 통로로 경부선, 경의선이 먼저 건설된 탓에 근대화과정에서 경부축에 개발이 편중되었고 부산이 교역관문화하여  불균형적으로 성장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주지하다시피 경부고속도로는 69년에 착공하여 70년에 완공된 산업화도로이다. 참고로 애초 목포까지 계획했던 호남고속도로 노선을 광주, 순천으로 우회결정됨에 따라, 30여 년이 지난 2000년대가 되어서야 서해안 고속도로의 노선이 목포까지 연결되었다.

 

결국 독재자 박정희의 성장제일주의 불균형적 경제개발정책과 의도적인 지역소외정책추진이 지역격차를 고착화 하였던 것이다. 오늘 날 정치권에 몸 담고 있는 이들이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란, 오랜 기간동안 소외되었던 지역에 대해 적극적인 배려를 통하여 동서화합과 각종 양극화를 완화하여 국민통합을 모색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이다.

 

그런데 대권을 넘보는 이명박이 다시 경부운하건설을 거론하는 것은 동서화합이나 국민통합, 사회양국화 완화라는 시대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경부축위주의 불균형적 국토개발을 영구히 고착시켜 소외지역을 경부축에 들러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소영웅주의적 치기어린 발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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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영남패권주의의 온상 추미애 프리미엄

부제: 영남패권주의 척결의 과제:  문화적 측면의 선결 필요성  


적어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지역주의의 병폐는 지역등권으로 풀어야 한다는데 커다란 공감을 표하곤 한다. 


그러나 지역등권이라는 출중한 정책 대안의 채택을 강고히 방해하는 현실조건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심각히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내 견해로, 그 장애물은 정치구조의 훨씬 하부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저작권: 국회사진기다단


민주앙들의 정치인 추미애에 대한 애증을 읽다보면 그 하부구조의 실체가 자연히 드러나고 만다. 


한 때 우리들의 가슴에 슬며시 다가온 적이 있던 민주당 전 의원 추미애, 그녀가 어떻게 호남인들의 큰사랑을 받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 합당한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추미애가 한 전라도 출신 대학 선배와 연애를 하고 결국 결혼을 하여 잘 살고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그녀가 전라도라는 <집단>에 대한 한국사회의 비우호적 관점이나 영남우월주의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보는 것은 심히 위험한 가정이다.  


자신과 개인적 친분을 맺게 된 특정 개인에 대한 관계를 근거로, 그 개인의 배경이 되는 집단 전체에 대하여마저 그의 편견이 다 해소된 것으로 판정해주는 것은 큰 실수다.


어느 한 <개인>에 대한 호불호는 그가 가진 배경보다는 그가 갖고 있는 인간적 매력과 지위와 능력 등 거의 전적으로 개인적인 면모에 의해 결정된다.   적어도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면들에 의해서 판단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가지는 어느 한 <집단>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간의  문제처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면들에 대한 검증을 거쳐 결정되지 못하고, 자신이 그 집단에 대하여 이미 내면에 쌓아두고 있었던 파편적인 이미지를 제 구미에 따라 선택적으로 짜깁기하므로써 결정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집단에 대한 호불호는 매우 피상적인 정보의 파편들과 자신내의 이기적인 실속 추구에 따라  갈리는 법이어서, 사람은 그 안에 자기가 끝내 거부하고 마는 집단을 꼭 모셔두면서도 그 집단의 중추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는 어느 특정 개인에 대한 호감은 동시에 보이는 모순된 일을 얼마든지 한다. 


이렇듯 사람이 어느 한 <개인>과 어느 한 <집단>에 대하여 호불호를 결정하는  메커니즘은 서로 완전히 다르자료: 추미애 홈페이지므로 그 사람이 어느 한 개인을 지지했다고 하여, 그가 그 개인이 가진 특정 배경을 공유한 집단까지를 모두 지지하는 것이며 그 집단에 대한 편견을 다 버린 상태다라는 증거로 삼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논리적 오류다.  

특정지역에 대한(즉, ‘집단’에 대한) ‘편견의 극복’이란, 그 지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겨우 아니다.   그것은 그 지역에 대한 자신 안의 비뚤어진 ‘인식틀’을 고쳐 바르게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자신안의 상대적 우월주의 등의 사고편린들을 하나하나 성찰하여 깨끗이 클린징할 것을 요구한다.  마치 담배를 끊듯이 단 한번의 옹골찬 결단으로 완벽한 이별을 고할 수 있는 한번의 <사건>이 아니고, 뇌수에 숨어있는 편견의 찌꺼기들이 남모르게 자라나 어느새 반란을 일으킬까 초조한 심정으로 내내 감시하는 <과정>인 것이다.

추미애가 영남의 상대적 우월주의 문화에 대한 영남인으로서의 반성을 조금이라도 보였던 적이 있는지가 나는 심히 의문이다.  

그녀가 전라도인 남편(개인)과 살고 있다는 것이 곧 그녀가 전라도(집단)에 대해 갖는 각별한 사랑의 표현인 양 브랜드화된 것은 통탄스러운 한국의 저급문화 풍토 때문이다.  .  

추미애가 호남며느리가 된 것이 그녀의 정치적 프리미엄으로 작용토록 허용하는 문화는, 전라도 총각이 혹시라도 영남사위가 되기 위해서는 영남인들의 전라도인에 대한 혐오를 상쇄하고도 남을 메릿을 필히 제공해야 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것은 또한 그럴만한 능력이 안되는 수많은 호남의 처녀들이 영남의 며느리가 됐을 때 영남식구들에게 잘보이려 두 배 이상 애써야만 할 것이라는 문화적 압력을 깔고 있다.  지금 막 태어나는 아기도 그가 전라도산(産)이면 이미 이 멍에는 씌워진 셈이다.  그 아기가 영남산이면 추미애와 같은 프리미엄을 품고 태어난다.  영남인 한 사람의 가치와 호남인 한 사람의 순수 가치가 미리부터 평등하지 않다는 가치규준이다.  다시 말해, <불공평>이 버젓이 규범으로 자리잡은 문화다. 그 문화는 영남패권주의의 공기다.

추미애는 자신의 ‘전라도인 며느리’ 이미지가 하나가 엄청난 정치적 프리미엄이 되어 정당치 못한 혜택을 간단없이 누려온 것에 대하여 부채감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그것이  일말이라도 시위된 적이 있는가?   그녀는 전라도인 편에 서서 이 불평등 구조에 정면으로 대항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을 위해 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조금이라도  희생시켜본 적이 있는가?  

오히려 추미애는 그 <불공평 프리미엄>을 극대화키켜  저 자신의 정치적 패권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그간 얼마나 추한 모습을 노정해왔더란 말인가!  (물론 그 결정판은 그녀의 삼보일배 쇼였으렷다.)  

나는 그녀가 거저 줏어먹은 이 프리미엄의 실체가 영남우월주의 사고에 찌든 노무현이 “통째”로 줏어먹은 전라도 “현찰”의 실체와  어디 한 점 다름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인간’ 추미애와 ‘인간’ 노무현은 완전 별개의 개인들이다.  그러나 ‘정치인’ 추미애와 ‘정치인’ 노무현은 ‘전라도차별/경상도우월주의’라는  이 나라의 야비한 문화풍토병을 그 자궁으로, 그리고 “전라도 현찰”이라는 마르지 않는 젖줄기를 빨고 자라난 한 뱃속 오빠 누이지간이다.

이 나라의 모오든 정치인들의 출생 배경과 성장과정이 그러했으나, 특히 추미애는 이제껏 그 누구보다도 넘치수갑, 차꼬게 누려왔던 경상도프리미엄 부스럼을 자신의 피부에서 온전히 벗겨낼 일이다.  지금 혹 추미애한테 남들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면 오해다.  그녀의 정치적 잠재력을 아껴서 이말을 하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녀의 정치적 성장 문제와는 아무 상관없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혜택만 받아온 정치인으로서 그녀가 이 땅의 불공평, 그 왜곡된 가치규준들을 바르게 돌려놓는데 이제라도 일조하기를 요구하는 것 뿐이다. 아니 그저 반성만이라도 할 수 있기를 요청하고 있을 뿐이다.

“영남인이 전라도인과 부부의 정을 맺어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영남인은 전라도인이나 마찬가지제…” 라고 생각하는 호남인들의 사고는, 부단히 대항하고 극복해나가야 할 당사자들마저 정작 영남패권이데올로기에 이미 깊이 물들어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결정적으로는, 이들 전라도인의 사고방식이 오늘의 추미애를 키워온 비옥한 토양이었다.  본의 아니게 영남패권 구조를 견고히 하는데 호남인들이 반지원, 반동원됐던 셈이다.

‘영남’ 자체가 우리의 일상 문화와 정치영역을 관통하여 프리미엄으로 우대되는 이 기이한 현실의 형성에 부역한 것을 호남인들부터 통절히 자성할 일이다.  그와 함께  정치인 추미애는 그러한 영남패권문화를 최대로 향유해왔던 장본인임을 지금부터라도 심히 부끄러워 하고 통렬한 비판을 수용할 일이다.  그녀가 제2의 노무현이 되지 않으려면 더욱 그러하다.

오늘도 이 사회를 휩쓰는 영남패권이데올로기  문화와 노무현혼돈, 그리고 작금의 추미애증후군은 모두 한 묶음이다.  

지역등권으로 가는 우리의 길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깊은 늪은 결코 영남패권집단이나 영남민만이 아닌, <영남패권이데올로기>라는 이 사회의 광범위한 <문화>다.  그 문화는 노무현이나 추미애 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노무현 복제인간을 끊임없이 양산해낼 것이다.  가치관이 잘못된 인간을 우대하는 문화를 우리가 가지는 한, 이 사회는 지역등권의 길을 영영 거부할 수밖에 없다.  


원제목 : 영남패권주의를 온존시키는 토양: 추미애의 예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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