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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권위에 군림하려는 파시스트 도올 김용옥

최근 도올이 전라북도 소재 새만금방조제사업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저자거리에서 쓰는 어휘를 사용하여 대통령과 사법부와 입법부를 싸잡아 비난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실질적민주화는 최근 정치권에서 화두로 삼고 있는 사회양극화가 긴급한 현안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리 만큼 요원한 난제이다.  참여정부가 집권한 이래 양극화가 더 심화되었다는 각종 자료는 역대 정권의 방치에 덧붙여진 정권의 무능과 직무유기로 인한 것이라 비난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 중 양극화를 구조적으로 조장하며 고착시킨 최악의 정권은 유신정권으로 손꼽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90년대를 분기점으로 하여 흡족하지 않지만 형식적민주주의의 내용의 하나인 천부적인 '자유'를 시민들은 만끽하고 있다. 백화제방의 토론문화가 지구 문명이 시작된 이래 아마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정보화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에서 꽃피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에도 여전히  삼보일배니 단식투쟁이니 분신이니 하는 극단적 자기표현행위가 때로는 과다하게 미화되어 매스컴의 주목을 끌곤 한다.

 

이러한 극단적 자기표현행위가 명색이 참여정부라는 민주정부에서도 여전히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까닭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여 살펴볼 수 있겠다.

 

첫째는 다른 공동체구성원들에게 확신에 찬 신념에 바탕한 자기표현행위를 결과적으로 강요하고 관철하려는 파쇼적발상에서 시도되는 경우이다.


둘째는 소통의 통로가 경색되거나 합리적인 설득이 불가능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되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는 위 첫째와 둘째가 혼재하는 경우이다.

 

결과적으로 정보화시대이자 형식적민주주의인 토론이나 주장이 자유롭게 보장되고 있는 현실에서 극단적인 자기표현행위가 심심찮게 시도되고 있고 특히 도올이 여기에 가세하여 부적절한 어휘를 구사하며 자기주장을 관철하려했던 시위는 유감스럽게도 첫째의 경우라고 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이력이 화려한 도올이 평범한 일상의 모습으로 주장해도 그 뜻을 널리 널리 전파해 줄 진보매체나 환경관련매체등의 응원군이 우루루 달려갈 터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기간의 매스컴에서 다루지 않은 측면에서 도올이 시도한 새만금방조제사업과 관련한 극단적 자기표현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볼 기회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새만금사업은 행정부-노태우정권-가 입안하여 입법부가 추인하고 이례적으로 사법부를 통하여 사업의 지속여부를 판단받은 국책사업이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총괄하는 행정부와 입법부, 나아가 간접적으로 주권자의 위임을 받은 법률에 의해 임명된 사법기관이 지속여부를 판단한 것이다.
 
 이례적으로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는 과정에서 공사지연으로 천문학적인 국민의 혈세가 낭비된 바 있다. 결국 작달막한 도올과 그 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저지하여 관철하고자 하는 지금의 퍼포먼스는 결국 민주주의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파쇼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도올이 관철하고자 하는 새만금사업 저지투쟁이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대한민국 시스템이라면 입법부나 행정부나 사법부는 도울의 발 아래 놓인 것이며 불필요한 시스템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을 밟고 자기주장을 관철하려는 파시스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산업화가 되면서 환경조건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고, 그리하여 환경보전은 과거에도 물론이고 지금도 미래에도 중요한 문제라는 것은 충분히 인식한다.
 
 하지만 그간의 시행된 여러 간척사업 중에서 유독 지역적으로 특히 낙후된 전북의 지역개발과 관련된새만금사업이 표적이 되어 시스템외적인 수단을 통해 결사적인 저지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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