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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9/05

낙서

어느 날 누군가 낙서를 했다. 그곳은 대기업의 건물 중 한 곳이었다. 한국의 1위 기업 중 하나인 건물의 계열사 입구에 누가 낙서를 했다. 그 낙서를 뭔가 달랐다. 다른 낙서 같으면 욕설을 했을 거고 그래피티라고 해서 글자를 적었을 것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건물 주위에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 두 명은 경악했다. 그 내용이 자신들과 검찰을 비꼬는 글로 보였기 때문이다. 재빨리 무전기로 위치와 낙서 내용을 알렸다. 노란 띠를 주위에 두르고 조사를 시작했다. 뒤이어 과학 수사대도 도착했다. 가방을 열어 단서가 될만한 것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형사들은 주위의 식당과 경비원을 상대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와보이끼내 그려져 있던데요."

 경비원의 말이다.

 "어제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요."

 식당 주인의 말이다.

 행인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일찍 나오는 청소부도 역시 오늘 보았다면서 놀랐다고 한다. 글자가 자신의 고용주에 대해서 놀리는 글들로 가득하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의 무전기가 울렸다. 이번에는 한국의 거대 여당과 거대 여당 당사에 낙서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자신들과 검찰, 여야당을 비꼬는 낙서로 가득하다고 했다. 이걸로 조사한다고 신경질 나 죽겠는데 말이다. 그곳이 사실 자신들의 관할이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무전기가 울린다. 이번에는 유명 언론사 건물이었다. 이번에는 덧붙여 언론사를 비꼬는 글이었다. 경찰은 난감했다. 이번엔 또 어디야? 경찰청과 검찰청에서는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벌었는지 주동자가 누구인지를 수사하려고 했지만 범인은 과학수사기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 교묘히 피해갔다. 지문도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치밀함은 뛰어난 한국 과학 수사도 피해가 버렸다. 미국CSI도 울고갈 그런 수법이었다. 경찰은 내부에 그런 인물이 있었는지를 각 지방의 과학수사연구소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검찰도 역시 자신들 내부에 그런 불만을 품고 있거나 전직 검사 중에 불만이 있었던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역시...

 "그런 사람 없는데요."

 라며 끊었다.

 

 이번에는 국회의사당에도 낙서가 발견됐다. 누가 그 삼엄하기로 유명한 여의도 국회의사당 경비를 뚫고 들어갔는지 국회의원들을 비꼬는 글을 그려놓았다. 이를 발견한 국회의장은 빨리 지우라고 했지만 여기저기 벌여놓은 난장판은 청소 전문 업체도 1년은 지나야 정리될 수가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 전직대통령 이승만 동상은 목이 잘린 채로 끔찍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 때 보좌관들이 급히 달려왔다. 자칭 보수와 진보정당의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모조리 달려와 한 목소리를 내었다.

 "의원님, 빨리 와보세요."

 국회의원들은 이 소리에 깜짝 놀라 자신들의 의원실로 갔다. 거기에도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국회의원들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진보정당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은 침착하게 자신들의 의원실을 정리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이를 두고, 여당인 N당의 J의원이 진보정당인 J당이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색깔론으로 몰았다.

 "이번 사태의 범인은 바로 J당의 사주를 받고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에 J당은 반격했다.

 "N당의 색깔론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이 논평을 발표하는 즉시 J의원실은 온통 텅 비었다. 자신이 내려고 했던 법안들이 모두 다 사라졌던 것이다. S의원의 사무실에도 누군가 자신의 미디어법안과 시위법안들을 모두 도둑 맞았다고 울상었다. 게다가 N의원의 사무실에는 유리창에 누드화에 자신의 얼굴이 합성된 사진이 크게 붙여져 있어서 너무 놀라 병원에 실려가 버렸다. N의원은 인터넷 통제법안을 발의한 인물이기도 하다.

 

 극우정당 H총재는 머리가 아팠다. 자신의 아버지를 욕하는 낙서와 자신의 과거행적들이 적힌 글이 나붙였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고 말았다.

 

 그 때였다. 뉴스에서 통상교섭본부장 G씨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받았다 병의 원인은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이었다. 그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은 쇠고기 스테이크가 미국산이었던 것이다. 아니다. 국산으로 속인 미국산 쇠고기였던 것이다.  최고급 레시토랑 측은 미국산 쇠고기가 값싸서 사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값싸고 맛있다고 해서 믿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몰랐던 통상교섭본부장은 며칠을 그 가게 단골이었던 것이다. 이 때 그의 시신이 있는 한국의 최고의 국립대 L 병원에서도 낙서가 발견되었다. 통상교섭본부장의 죽음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이 있은 지 한 시간 만에 G씨와 함께 한미 미친 협정을 이끌어낸 M 유엔대사가 괴한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검찰청에서는 자신들의 수사한 기록들을 누군가가 훔쳐갔다는 것을 알았다. 작년 촛불집회 관련, 반 한미 미친 협정 관련 사건들이 모조리 없어지고 자신들이 거대 글로벌 기업이라는 S와 연계된 사실들이 나붙였던 것이다. 벽 한 면 모두 다 도배를 했다.

 

 S사도 난리가 났다. 누가 조작했는지 모르지만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각 계열사들이 하나씩 망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소유의 놀이동산에서는 각종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광장에는 거대한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S사를 비꼬는 그런 글이었다. 자동차도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그들의 자동차들을 판매금지시켜 버렷다.

 

 늙은 보수 논객 J씨는 갑자기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뭔가 심한 공포감이 그의 마음을 짓눌렸고 자신의 이성마저 마비시키고 말았다. 글을 쓰려고 하는데 단어조합이 안 되고 손도 떨렸다. 그는 자신의 계열 언론사에 전화를 걸었다.

 "나 J인데 글 못 쓰겠어."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전화입니다."

 "이봐, 지금 장난쳐? 나 지금 심각해."

 "뚜뚜뚜"

 그는 계속 수화기를 들고 난리를 쳤다. 무슨 일이 있었냐면 Z일보도 낙서가 씌여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D일보와 U일보 역시 똑같은 일을 당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신문들이 가판대와 가정집에 배달이 됐는데 모조리 없어졌고 계열 인쇄소 도 누군가가 불을 질렀던 것이다. 누군가가 유언비어라는 걸로 인해 결국 광고도 끊기고 말았다. 게다가 S의원이 발의하려던 미디어법이 갑자기 없어지자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Z.D.U.H일보 데스크들은 한 명 씩 그 낙서의 충격 때문에 원고 수정도 못하고 쩔쩔맸다. 독자들의 항의 전화까지 와서 세 보수 신문들은 심각한 상태에 빠졌다.

 

 대통령은 국무회의를소집했지만 이상하게도 비서관과 장관들은 오지 않았다. 대통령은 이런 썰렁한 분위기에 분노했다. 게다가 자신이 즐겨보았던 신문마저 배달하지 않아 심심해 하고 있었다. 경호실장이 급히 와서 알렸다.

 "각하, 지금 밖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사채업자 D는 자신들이 빌려준 돈을 가지러 은행에 갔다. 그런데 자신들의 돈이 전부 빠져나간 것을 알았다. 사채업자는 쩔쩔매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저기... 이거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잠시만요."

 하며 남자 직원이 통장을 받고 확인을 해보았다.

 "정상적으로 했는데요."

 "한 번 더 해보세요."

 "똑같은데요."

 "그럴리가 없어"

 하며 사채업자는 은행창구에 넘어가 직원을 미치고 확인을 하였다. 그 때 경비가 달려와 그를 끌어냈다.

 "그럴리가 없어! 그럴리가..."

 옆에 있는 사채업자도 난리가 났다. 은행 지점장도 난리다. 빚이 모두 없어진 것이다. 대부업자, 캐피탈회사의 돈들이 모조리 사라진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이 빚더미에 나앉게 되었던 것이다.

 

 조폭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조폭들은 배신에 배신을 거듭해 스스로 망하고 말았다. 자신들의 이권이 모조리 없어진 것을 알고는 충격을 받아 모조리 집단자살을 해버렸다. 경찰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한참 찾았으나 이미 늦었다. 경찰은 자신들의 형제가 죽은 것을 알고 슬픔에 잠겨버렸다.

 

 문화부장관은 그 괴낙서를 조사하라고 했다. 집에 퇴근했는데 자신의 집에 낙서가 있었다. 그 낙서는 집의 끝까지 그려져 있었다. 그는 스콰팅을 엄하게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그의 집은 점거당한 채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사들인 집들과 땅도 점거 당한지 오래 됐다. 그는 주저앉아 어린애 처럼 찔찔짜며 울고 말았다. 그의 집에는 음악소리로 울려 퍼졌는데 그를 놀리는 노래였다. 화가 많이 난 그는 집에 들어가 테이프를 꺼내려 했으나 허사였다. 코드 역시 뽑혀지지 않았다. 그는 힘이 빠져 나자빠진 채로 울고 말았다.

 

 통일부는 또 다른 문제로 고민 중이다. 북한의 미사일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였다. 최근에 그 낙서가 북한에 어떻게 갔는지 북한도 골치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북한에서도 최근에 낙서가 발견돼 남한 언론에서도 공개가 되었다. 룡천 참사 이후 처음, 남북갈등 이후 처음으로 있는 언론 공개이다. 통일부는 미사일 문제를 풀려고 했었으나 북한이 낙서문제도 난리를 치자 신경질이 났다. 북한은 김정일과 그 군부를 비난하는 내용의 낙서가 최근에 발견되었다. 이대로 가다가 북한은 내외부적으로 혼란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통일부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국방부는 탈영병 문제로 골치 아프다. 각 군부대 안에서도 낙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누군가 군부대 안에 들어가 낙서를 했는지 장병들의 탈영이 계속되었고 심지어 군인 신분으로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심지어 논산훈련소에서는 전경 배치 후보 훈련병들의 집단 거부사태가 일어났다.

 

 보수적 시민단체 지도부들을 난리가 났다. 그 낙서가 자신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인 시민단체에도 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대운하 국민운동본부는 자신들의 간판을 내려야했고 바른생활시민단체는 정부전복세력으로 낙인이 찍혀버린 지 오래 됐다.

 

 건설사들은 낙서 때문에 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자연이 지금 낙서로 힘을 받아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건설장 곳곳에 풀이 무성해졌고 용역들은 공사를 시작하려다 우거진 풀숲에 발을 내딛는 순간 떨어져 대형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많이 났다. 경비업체와 건설업체의 계약을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산 하나를 폭파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자신들의 트럭이 폭파되고, 밀어붙이려고 했는데 앞도 가지 못하고 불도저가 찌그러지고 박살나는 등 재해가 극심했다. 심지어는 강해일까지 더해 건설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민영화업체도 난리가 났다. 전 직원이 낙서 때문에 정신적 혼란과 양심의 가책을 느껴 모조리 사직서를 내었다. 사장도 사장직 못해 먹겠고 더 이상 하지 못하니 제발 공공재로 하라고 했다. 수도회사에서는 갑자기 격어보지도 못한 회사 내의 물난리로 골머리를 앓았다. 전기.통신회사는 끊긴 공급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다. 의료민영화 병원도 낙서로 인한 양심의 가책으로 의료법인을 포기해 버렸다. 무상의료와 의사 공무원화 집회를 열고 있었다. 의료사고 책임자들의 연일 자살 소식으로 의료계도 공황상태가 되어 있었다.

 

 사회복지시설도 많이 줄어들었다. 낙서가 지적장애인들까지 의식화시켜 버렸다. 그 의식화는 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식화였다. 자신들이 독립을 하겠다면서 난리가 났다. 사회복지시설 여기저기에서 낙서가 나타났던 것이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과 노인, 어린이들이 지금 나가서 자립하겠다고 난리가 났다.

 

 경찰청에도 낙서가 발견됐다. 이 낙서로 경찰청은 행안부 정책에 반대하기로 했다. 이 때 경찰노조가 만들어졌다. 전경들은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자신의 국민들에게 헌법무시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상공회의소들은 문을 닫게 되었다. 그들은 주주총회를 열어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이권단체인 정경련을 해체하기로 마음 먹었다. 결국 한국에 대기업은 없어졌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 낙서로 인해 혼란 상태다. 지금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신자유주의자이자 대통령이라고 할 수 없는 전경련 대 회장 은 물러났다.

 

 그 낙서의 내용은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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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노 신부


 날씨가 봄이 다 됐는지 따뜻함이 몸에 다가온다. 발렌티노 신부는 사제관 창문을 열었다. 식복사 자매는 아직 오지 않았다. 새벽 5시 40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늦는구나! 아직 식사시간이 안 됐는데도 투정을 부린다. 신부는 수단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새벽미사를 드리기 위해서다. 이 본당에는 수도자가 없기 때문에 사무장과 함께 아니면 혼자서 준비해야 했다.

 

 제의방에서 제의를 정리했다. 마을에 사는 신자 어르신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젊은 사람 몇 명이 들어온다. 농촌 본당이라 어르신들이 더 많았다. 많아봐야 한... 30명 정도. 젊은 사람은 본당 근처 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여교사 2명, 농사 지으러 일찍 귀농한 젊은 30대 부부도 있다.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온 외국인 아낙네들과 남편들도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무장은 오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으로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려고 사제관으로 다시 들어갔다. 핸드폰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그 때 사무장 부인이 전화를 받았다. 이런 시간에 누구냐며 짜증나는 듯한 말투였다.

 "여보세요?"

 "저... 김 발렌티노 신붑니데이."

 "아, 네, 신부님요. 이 시간에 어쩐 일로?"

 부인의 말투가 환하게 변했다.

 "사무장님 계시능교?'

 "그 양반 지금 자고 있는데요."

 "죄송하지만 지금 미사 시간이 다 돼갖고 준비를 해야 되는데 사무장님 아직 오지 않아가 우예 됐노 싶어가 전활 드렸습니다. 이른 시간에 전화해서 죄송합니데이."

 "아, 뭐요. 신부님 부탁이면 당연히 들어줘야지요! 잠시만요. 여보, 일어나 보래이. 본당신부님."  

 하고 부인은 사무장에게 전화를 넘겨주었다.

 

 그런데 잠결인지 아팠는지 사무장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데 아픕니꺼?"

 "신부님요, 미안합니데이. 제가 오늘 감기 몸살 걸리갖고 성당엔 몬 가겠심더."

 "우짜노...? 감기 빨리 나으시소."

 "참말로 미안합니데이."

 그는 핸드폰 뚜껑을 닫았다. 어허! 이거 참.... 신부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핸드폰을 가볍게 책상 위로 낮게 던졌다. 사제관을 나와 성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시간이 없었다. 평소보다 좀 늦게 일어난 것이다. 원래는 4시 50분에 일어나 씻고 성무일도를 바치고 해야 하는데 말이다. 어제 면내에서 본당 청년들 7명과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늦게 잤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웬만하면 고해성사를 주려고 일부러 아침 일찍 일어난다.

 "이런... 미사 후에 고해성사 집전해야겠다."

 하며 허탈한 마음으로 제의를 입고 입장하기 전 기도를 바쳤다. 청년 교사 데레사의 풍금 반주소리에 맞춰 성가가 울러퍼지고 있었다. 데레사도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풍금소리가 평소보다 못한 것 같았다. 신부는 입당을 시작했다.

 

 성가가 끝나자 신부와 신자들은 성호경을 그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오늘 미사는 저번 주에 돌아가신 김 안토니오, 황 체칠리아를 위한 연미사이고, 김 베네딕토를 위한 미사입니다."

 그리고는 양손을 모으고 참회의 기도를 시작했다.

 

 참회의 기도가 끝나자 무심코 고개를 들어 신자석 쪽을 보았다. 뒷자리에 웬 군인이 서 있었다. 이 근처에 군대도 없고 군대 간 사람이 없는데?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휴가 맞아서 할머니 만나러 온 군인이겠지. 하고 그는 가볍게 넘겼다.

 

 미사가 끝났다. 그는 제의방을 나와 고해소로 향했다. 성당 끝에 있는 고해소는 연한 갈색으로 된 큰 나무상자 같다. 기다리는 사람이 몇 명 안 된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 빨리 마치고 바실리오 신부랑 낚시하러 가야겠다. 그런데 고해소 옆에 군인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뭔가가 뉘우치려는 듯 그의 눈에 눈물이 떨어졌다. 좀 있다 군인의 고해 좀 들어봐야겠다. 발렌티노 신부는 문을 열고 들어가 고해성사용 영대를 걸쳤다. 작은 고해창은 작은 구멍들로 돼 있어 모자이크처럼 사람의 얼굴을 가렸다. 누군지 알듯 말듯하다.

 

 역시 시골의 할머니들의 고해답다. 내용인즉, "이눔의 영감탱이가 술을 마이 마시가...", "우리 며느리하고 말이 안 통해서 고새임더", "지난 번에 돈 몰래 까먹었심더." 이건... 음... "뭐라고예?", "나는 죄가 없는데 무슨 고백을 하라카는지 모르겠어예."

 

 더 골치 아픈 건 영어로 말하는 필리핀 아낙네였다. 발렌티노 신부는 아는 영어를 동원해서 영어로 말해 주었으나 아낙네는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정부가 농촌에 왜 하필 외국인들을 불러들였노? 하며 신부는 답답했다.

 

 이제 사람들의 고해가 끝나고 군인만 남았다. 영대를 손에 접어쥐고 밖으로 나와 보았다. 군인 옆에 한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성당에선 그들이 말하는 소리가 울러 퍼져 신부의 귀에도 들렸다. 연인인 듯한 분위기였다. 어? 체칠리아 아이가? 신부는 그 아가씨의 세례명을 떠올렸다. 어쩐 일로 둘이 저래 앉아 있노? 둘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오빠, 이카믄 내가 불편하다. 탈영을 와 하는데?"

 "나... 군대 가기 싪어! 양심에 거슬려."

 군인의 목소리를 듣고 보니, 최전방에 있는 군인인 것 같다. 그의 손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머리를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오빠, 신부님한테 고해성사 받아라."

 "내... 하...느님한테 버림받았는데 무슨 고해성사고? 흑흑..."

 하며 군인은 흐느꼈다.

 "오빠, 하느님은 무엇이든 받아주는 거 배왔제? 그러이 오빠도 할 수 있을 거야. 괜찮아..."

 하며 아가씨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했다.

 

 신부는 그들을 부르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그냥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문을 열고 가려는 순간, 군인이 몸을 일으켜 고해소로 향해 몸을 돌렸다. 신부는 황급히 문을 닫고 영대를 목덜미에 걸었다. 그리고는 성호를 그었다. 고해소 신자석의 군인도 함께 성호를 그었다. 가톨릭 신자여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군인이 말하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신부는 그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주었다.

 "괜찮아요. 고해성사는 하느님께 하는 겁니데이. 사제는 무덤에 가서라도, 총 맞아 죽어도 신자들의 죄를 말하지 않아예. 아무 염려 말고 고해하시이소."

 어느 정도 안심이 들었다 싶었는지 군인을 말을 시작했다. 군대라는 곳이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 남성들의 집단이어서 그런지 서울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말씀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고해한 지 1년 되었습니다. 그동안 성당에 잘 나가지 못했습니다. 개신교 교회당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고참들이 미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신부는 언짢았다. 아니 멀쩡한 성당 놔두고 왜 개신교 교회당에 가냐? 신자인 도리도 모르냐? 하긴... 성당 미사가 서 있다 보니 군인 입장에선 피곤할 만도 하겠지. 그냥 평소에 듣던 거라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고백이 평소와는 달랐다.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네요..."

 "네, 말씀하세요.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습니다."

 말만 이렇게 잘한다. 사제들의 거짓말이다. 아무리 들어주어도 마음에 따라서는 화가 나는 고백도 있고 기분 좋은 고백이 있기 마련이다. 대충 끝내고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김 신부는 지금 빨리 밥먹고 낚시 가야겠다는 마음 뿐이다. 

 

 군인은 한 동안 뜸만 들였다. 신부는 기다리는 데도 한계가 있는 듯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좁은 고해소의 특성상 답답하다. 군인은, 어떻게 해야할까? 이 신부가 나를 헌병에게 넘겨주면 어떡하냐? 여러 의심들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다.

 "신부님, 저 탈영병입니다."

 신부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고해사제는 어느 고해든지 침착해야 한다. 

 "제가 탈영을 한 것은 고참들의 알게 모르게 하는 괴롭힘과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고참들이 저더러 일을 못한다고 말리곤 따돌렸습니다. 그 때 전 화가 났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어디서나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형제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야, 이런 좋은 코멘트를 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신부는 속으로 무척 기뻐했다. 군인은 고백을 계속 이어갔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미친 것 같습니다. 왜 젊은이들만 살인연습을 시킵니까? 전 어릴 때부터 폭력을 무척이나 싫었습니다. 애들과 선생이라는 사람에게서 많이 맞았기 때문입니다. 전 폭력영화는 보지 않습니다."

 신부는 마음이 아팠다.

 "조금만 버티면 되잖아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줘요. 나도 군대 있을 때 힘들었지만 그게 다 인생 경험입니데이."

 사실 신부는 이런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했다. 지금 상황이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언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이 성당에 모여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 그 시간이 얼마나 낭비인지 아십니까?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요? 인생 경험이라고요? 그게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군대 나와도 맨 같은 사람, 더 나빠진 사람 많이 있습니다. 작은 것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모두 살인기계가 됩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절대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복학하면 시간이 빠듯한 선배들을 보면 막막합니다."

 답답한 신부는 고해성사용 영대를 걸친 채 고해소 사제석의 문을 열고 신자석으로 향해 가서 말했다.

 "이봐요. 여긴 성당이지. 국회가 아니야."

 군인은 놀랐으나 다시 안정을 찾고 무릅받이에서 일어나 말했다.

 "신부님, 성경에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돼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에 사람을 죄짓게 하는 자는 누구나 연자맷돌을 목에 달고 죽어야 한다, 보복하지 말라고 적혀 있습니다. 왜 이 구절을 무시하십니까?"

 고해소 앞 성당 뒷자리 의자에 앉아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 되었다. 여자친구는 멀찍이서 두 사람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  강도가 자네 집에 쳐들어 와서 물건을 뺏고 어머니와 여동생, 여친을 강간하면 어떡할 건데?"

 그 때, 군인의 여자친구가 소리쳤다.

 "신부님,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너무 기가 막히네요! 전 신부님 좋은 분인 줄로 알았는데 실망이네요!"

 "그런 말이 아니라..."

 신부는 쩔쩔매었다. 빨리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군인이 침착하게 말햇다..

 "신부님, 그런 질문 너무 어리석어서 대답할 수 없습니다. 강도가 오히려 약할 수도 있고 누구 하나가 강도와 싸울 수도 있어요. 그런 질문은 함정 질문입니다. 대답할 가치가 없습니다."

 이내 침묵이 흘렀다. 신부는 털썩 의자에 주저 앉았다. 사제가 된 지 10년만에 이런 복잡한 문제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탈영병을 대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지만 나보다 더한 신부도 있겠지. 탈옥수나 전방의 탈영병을 대하는 신부는 마음이 골치 아플 거야.

 

 고개를 숙인 신부는 잠시 기도를 했다.

 '주님, 전 지금 힘듭니다.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제발 저에게 힘을 주소서.'

 고개를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니 예수의 팔이 벌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받아들이라고... 내가 지금 미치겠는데... 신부는 어이없고 기가 막혀서 웃었다.

 "신부님, 괜찮으세요?"

 하며 군인이 말했다. 옆에 여자친구도 와 있었다. 신부는 여자친구를 보며 말했다.

 "잠깐 밖에 가 있을래요? 지금 고해성사 아직 안 끝났어요."

 "네, 그럴게요. 오빠, 힘내,"

 말하고 여자친구가 성당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해가 이미 하늘로 올라 떠 있었다.

 

 신부는 고해성사를 계속 집전했다.

 "알겠습니다. 그런 질문 이제 안 하겠습니다. 군인은 명령에 따릅니다. 그건 사제인 저도 같아요. 주교님 명령 없이 움직일 수 없는 게 사제와 군인과 같은 겁니데이."

 "네,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전 양심의 소리가 중요합니다. 전 사람을 죽이는 그 살인연습을 할 수 없습니다. 폭력을 싫어하는 것, 그것이 제 신념이고 양심입니다."

 "양심이라... 그러면 형제님의 동료들은 모두 비양심이라는 말인교?"

 "그건 양심과 상관 없습니다. 그네들은 자기 의무를 다하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양심 아닙니까."

 어이가 없고 시원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보통은 이런 질문에는 군인이나 일반 사람들은 쩔쩔매기 마련인 것이 군종사제 시절의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 군인은 뭔가 달랐다.

 "국방의 의무가 국민의 의무입니다. 그걸 아나요? 누가 쳐들어 오면 그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네, 압니다. 그러면 신부님은 국민의 기본권이 뭔지 아십니까?"

 그 때 신부는 말을 머뭇거렸다. 군인은 말을 이어갔다.

 "한국은 그동안 기본권리를 무시하고 의무만을 강조했습니다. 의무라는 게 뭡니까? 서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합의하는 것이 아닙니까. 서로 좋아서 합의한 것이 의무입니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은 절대로 의무가 아닙니다.

 최전방 부대, 어떤지 아세요? 언제 전쟁이 날 지 모르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 부대는 헛 죽음이 되는 거고, 저는 양심에 어긋나는 살인을 하게 됩니다. 사람 하나 죽이는 게 사람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는지 아십니까?

 "아, 그래도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지켜야지 탈영을 하면 어떡합니까?"

 "제가 탈영을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십니까? 저도 함께 싸우고 싶습니다. 이 나라는 도저히 평화에 대해서는 나약하다는 생각 밖에 없어요. 젊은 사람들 시간이 헛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전 평화에 대한 신념으로 탈영을 결정했습니다."

 이제 신부는 지쳐버렸다. 더이상 논쟁해 봐야 화가 나게 되고, 감정에 앞서 욕을 해대는 사제답지 않게 되는 문제가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탈영을 관용하는 수밖에... 그 군인도 지쳐버렸는지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신부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것을... 평화에 대한 복음의 말씀, 병역거부하다 순교한 무수한 성인들, 그리고 자신이 발렌티노 성인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말이다.

 

 발렌타인 데이는 상업성에 묻히고 순수함이 많이 퇴색되었다. 그 원래의 의미가 연인의 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발렌티노 신부가 로마의 어느 병사의 사랑을 보호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어느 병사가 연인과 함께 성당으로 찾아와 발렌티노 신부를 찾아왔다. 당시 로마의 법에 따르면 결혼을 하면 병역이 면제된다고 한다. 그래서 로마는 군인의 혼인을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었다. 그 어려움을 알고 발렌티노 신부는 그 병사를 혼인시키고 자신이 붙잡혀 순교를 했다고 한다.(발렌티노 신부는 감옥에서 자신이 죽기 전에 몸을 제대로 삼아 생애 마지막 미사를 드리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것이 발렌타인 데이, 즉 2월 14일 성 발렌티노 축일의 유래이다.  

 

 수단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상본 하나가 쥐어졌다. 이번에 종신서원을 하는 수사들이 본당에 준 상본이었다. 그는 본당 출신 수도자 중에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상본을 꺼내 보니, 평화의 기도가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신을 버리고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니...

 

 그 구절을 보고 신부는 깨달았다. 이사야 예언서와 복음서에도 나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다시는 군사훈련을 하지 않으리라. 그래,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말씀도 있어.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비록 국가의 법이 폭력적일지라도 하느님의 법은 사랑으로 하는 것이다. 그는 그 군인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탈영을 도와주기로 했다. 사제는 교구장 주교로부터 자신의 고해성사권을 박탈당하거나, 총이나 칼로 위협하고 고문을 당할지라도, 돈으로 매수를 당할지라도 절대로 신자의 죄를 발설해서는 안 된다.

 신부가 입을 열었다.

 "형제님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죠. 그렇지만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그것이 자유니까요.

 "정말요? 신부님, 고맙습니다.

 "보속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바치세요."

 하고 신부는 그에게 평화의 기도가 적힌 성 프란치스코 상본을 주었다.   

 

 군인은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저 여자친구와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휴가 중에 완료를 했습니다... 이젠 부부가 돼서 외국에 망명해서 애도 낳고 살려고요."

 "돈이 많이 들 텐데 준비 다했어요?"

 "네, 군대가기 전에 여자친구와 유럽여행 가기로 했었는데, 그게 망명의 비용이 됐네요!"

 "일자리는? 망명하면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아는 사람이 유럽에 일하고 있어서 그곳에 가면 될 거예요."

 "이제 하느님 앞에서 혼인을 해야 하겠는데, 밖에 여자친구 데리고 올래요."

 "네, 알겠습니다."

 "아 참, 사죄경 하겠습니다."

 "네."

 하고 군인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신부는 손을 들고 길게 사죄경 앞부분을을 외우고 십자가를 그으면서 마무리를 했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하고 신부는 군인의 머리를 손으로 갖다 대고 떼어 내렸다. 군인의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군인은 밖에 나가 여자친구를 불렀다. 여자친구는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둘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었다. 십자가의 예수는 두 팔을 벌려 두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신부는 제의방으로 들어가 혼인성사예식을 할 것들을 들고 나왔다. 군인은 제의방 앞에서 작은 탁자를 들고 제대 앞에 놓아두었다. 그리고는 반지를 앞에 놓아두었다. 반지는 5천원 짜리 묵주반지 두 개였다. 신부는 그들 앞에 놓여진 반지를 보고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을 느꼈다. 5천만 원이나 천 억 정도 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싸고 볼품 없어 보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반지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오늘의 혼인예식은 어느 혼인미사보다 더 아름다웟다. 두 신랑신부의 모습은 그냥 옷과 군복이었으나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보다 더 아름답다. 두 가난한 부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혼인 예식을 마치자 신부는 제의방으로 인도했다. 본당 뒷쪽 문으로 해서 차를 태우고 보낼 생각이다. 일단 남자은 군복부터 벗었다. 신부는 자신의 속옷과 바지와 셔츠를 내주었다. 남자가 옷을 다 갈아입은 뒤, 김 신부의 차에 탔다. 그들은 공항으로 향했다.

 

 다행히 공항에는 군인들과 경찰들이 오지 않았다. 아직 탈영기간이 걸리지 않았는가 보았다. 마침 바로 공항에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가 있었다. 남자가 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님, 정말로 고맙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 아주 급하니 얼른 가세요. 헌병들에게 붙잡히지 말고요."

 두 부부는 공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래도 아쉬운지 뒤를 돌아서 손을 흔들었다. 신부도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신부는 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지금 뭘한 지도 모른 체했다. 그냥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신학생 시절 수도원에서 피정을 할 때 어느 노 수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언젠가 학사님은 발렌티노 성인이 한 일을 하게 될 것이야.... 허허허."

 그리고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도 생각이 났다. 어느 유명한 미학자가 한 말이다.

 '진정한 인간은 탈영병이다.(진중권)'

 그 구절이 생각나자 신부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때였다. 많은 경찰과 군인들이 공항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비행기는 이륙한 지 오래되었다. 햇빛이 큰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고 있었다.

 

 신부는 배가 고팠다. 그리고 아직 숙취해소를 못했는지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마침 공항 안에 문을 연 음식점 하나가 보였다. 저기 가서 국밥 한 그릇 시원하게 묵자. 그는 그곳으로 향해 빨리 걸어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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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과 헨리 데이빗 소로

 헨리 데이빗 소로의 책 월든을 본 적이 있다. 월든 호숫가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어놓은 책이다. 텔레비젼에서는 포도광고에 "콩코드"가 나온다. 그 콩코드가 월든 호숫가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 일하면서 살게 된다.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 현대 산문 문학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듯한 작품이다. 권정생은 안동시, 그것도 촌에 가까운 조탑동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마을 교회당 종지기로 일하며 글을 쓴다. 그리고 작은 오두막을 짓고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간다.

 헨리 데이빗 소로와 권정생은 신앙에 있어서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교파는 다르겠지만 개신교 신앙이다.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서 혼자서 살았던 반면, 권정생은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호숫가에 사는 생명들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긴 하나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관찰자의 입장은 한국과 미국의 당시 자연관의 차이여서 그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숲 속에 생물들을 자세히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먼저 사랑하려면 알아야 하는 서구식 사고방식이다.

 권정생은 오두막 주위에 있는 생물, 사물들을 친구처럼 대했다. 그래서 동화에서 사회적 약자들과 동물들이 나온다. 우리들의 하느님에 쥐 이야기가 나온다. 쥐와 친구가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집필의 소재와 경험이 된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호숫가에서 있으면서 전쟁에 대한 직접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것이 시민의 불복종이라고 한다. 세금을 내지 않아 감옥에 갇히기도 했는데 친척이 보석금을 대신 물어주고 풀려났다고 한다.

 권정생은 동화로 현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 민족, 통일, 주위의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주제로 많이 썼다. 그러다 보니, 국가기관에서 권정생을 조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권정생 죽은 이후 다시 한 번 탄압을 받았다. 국가권력은 그의 산문 우리들의 하느님을 불온서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후기에 폐결핵이 생기는 바람에 죽게 된다. 반면 권정생은 젊은 날에 폐결핵에 걸리지만 70까지 오래 산다. 그리고 2007년 우리 곁을 떠났다.

 권정생에 대해선 사람들은 이름을 모른다. 그러나 강아지똥의 작가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제야 깨닫는 현실을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헨리 데이빗 소로 역시 현실도피로만 알고 있는데 현실참여인 시민 불복종 운동을 만들었다는 것은 유명하지 않다.

 어쨌거나 이 두사람을 너무 조명한 나머지 신격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 사람들의 의식이 오히려 그들에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생전에 두 사람은 자신을 밖에 너무 알리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했으니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사는 것은 "미쳤어"라는 대중가요를 떠올릴 지 모른다. 그만큼 한국 대중사회는 물질적인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적응한 대중들은 그들에게 반기를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그들의 삶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성직자, 수도자, 목회자마저 물질, 감각으로 가버린 시대다. 그들에게 이 두 사람처럼 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기는 솔직히 두렵다! 마음만 하고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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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에게 등급을 묻지 마라

 진보적 장애인들마저 장애등급에 대해서 물어본다. 어느 진보적 장애인 단체에서 강연을 들었는데, 수강신청서를 적는 란에 장애등급이라는 글자를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서비스 제공이나 장애인 개인을 알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는 걸 이해한다. 그러나 진보적인 장애인단체라면 장애등급을 묻는 란은 이제 없앴으면 한다.

 그들 대부분이 특수교육학과나 사회복지학과 출신이어서 그런지 이미 관습이 되어버려서 장애등급을 묻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진보운동을 해도 그렇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묻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이 싸우면서 보수를 참칭하는 박정희주의자들을 닮아간 한국 시민사회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것은 흔히 "니 몇 살이고?", "너 어디 출신이냐" 따위를 물어보는 한국인들의 무의식적인 적이 작용을 하고 있다.

 장애등급은 관료의 산물이고 전문가주의의 산물이다. 관료의 편의성으로 장애등급을 나눈다. 1에서 7까지 장애등급을 나눠놓았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악용하고, 명백히 차별을 두자는 것이다. 악용되는 것은 가짜 장애인 양산이라는 것이다. 손가락이나 다리 하나 다쳤다고 공공 사무소에다 신청만 하면 장애인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그것은 세금 면제와 자신의 이기적 편의를 위한 악용이다.

 모든 장애인들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모든 것을 보장 받아야 하는데, 번호로 매겨서 하는 건 문제가 있다. 장애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못 한다면 그 배려는 아무 쓸모가 없다. 장애인 할인만 해놓고 장애인 시설이 없는 경우가 큰 문제이다.

 장애등급은 관료의 편의주의로 인한 것이기도 하고 전문가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대부분 의사에게 판정을 받는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 구조적 이론으로 보면 의료인들이 장애인들에게 주는 호명은 개인의 인생을 결정하게 된다. 가령 "너는 지적장애 3급이니 몇 살의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은 장애인들에게 낙인화가 된다. 나이로 지능을 판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확하지 않을 뿐더러 스물 살이 넘은 장애인들에게 여전히 아동으로 살아야 하는 문제가 벌어진다.  

 세월마다 매해마다 바뀌는 장애등급은 확실성과 객관성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명칭이 바뀌고 다른 장애도 포함되기도 한다. 예전에 정신지체인인 것이 지금은 지적장애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지적장애라는 말도 문제가 잇다. 사람을 IQ라는 도구로 결정하는 것은 무리다. 어른들에게 IQ 검사를 해보라. 틀리는 것이 많이 나타날 것이다.

 법정 장애인등급에 속하지 않거나 잘못 기재된 장애인들에게는 이것이 상처가 된다.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차별로 고통 받고 있다. 잘못 기재된 장애인들은 수정하려면 전문가들에게 6개월이라는 세월과 비용을 써야 한다.

 그러니 장애등급이 몇이냐는 것은 쓸데없는 말이다. 그리고 묻지 말아야 하고 대답하지 말아야 하는 언어다. 장애인의 프라이버시이면서 또한 상처이며 낙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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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여, 화이트데이를 거부하라.


 한국에서는 무슨 데이가 많이 있다. 이게 서로 양면성을 띠면서 발전되어 왔다. 2월 14일 성 발렌티노 축일, 즉 발렌타인 데이를 시작으로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삼겹살 데이, 삼각김밥데이, 빼빼로 데이 등 상업성이 강한 날이 있는가 하면, 시민사회단체가 만든 애플데이가 있다. 이런 데이들을 보면 이들은 연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벤트라고 하겠다.

 

 발렌타인 데이가 대표적으로 비판을 받는다. 일본에서 나온 쵸콜릿 상술로 진정한 의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발렌타인 데이의 유래를 알게 되면 단순히 쵸콜릿을 주고 받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군인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발렌티노 신부가 탈영한 군인을 도와줬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병역거부의 그리스도교적 전통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만든 데이가 이벤트성이 매우 강하다. 또한 평등적 의미도 포함이 된다. 특히 블랙데이의 경우, 솔로들끼리 함께 자장면을 먹으러 간다는 것은 균형감을 잡아주는 듯하다.

 

 문제가 되는 데이도 있다. 빼빼로 데이이다. 유명 제과업체의 상술로 시작된 날이다. 어느 고등학생 소녀들이 서로 빼빼로를 나눠먹었다고 해서 시작이 됐다고 한다. 이것을 노린 제과업체는 이날을 빼빼로 데이라고 대중매체에 선포했다. 덩달아 떡업체들은 경쟁을 위해서 가래떡데이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이날은 농민의 날이었다. 89년 노태우정권이 만든 날이기도 하다. 늦게 만들어진 게 영향력이 강했던 것일까 농민의 날은 결국 빼빼로데이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이다. 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발렌타인 데이에 쵸콜릿을 준 여자에게 남자가 사탕으로 보답하는 날이다. 이제는 화이트데이에 종말을 고하노라. 이는 감사를 독으로 답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여자 보고 "줬으니 고맙다. 죽어라."는 뜻과 같다. 이는 이별의 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보면 화이트 데이는 남성 중심의 상업권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탕을 주면서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라는 것은 폭력화 된 상술이다. 사탕이라는 딱딱하고 화학첨가제 투성이가 여성의 몸을 위협하는 폭력이다. 이런 의미는 무의식적으로 여성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사탕은 쵸콜릿에 비하면 아무 쓸모없다. 달기만 할 뿐 우울증에 효과적인 물질이 없다. 설탕에 버무려진 맛은 달콤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독성물질은 위험한 것이다. 설탕이 독이 될 수 있지만 맹독인 화학성분을 담은 식품첨가물이 바로 그것이다.

 

 식품운동가 안병수 씨에 의하면 사탕에 들어간 것이 화학 물질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청색 몇 호, 황색 몇 호, 등등의 알 수 없는 독성물질이 사람의 몸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화이트데이에 쓰이는 사탕들이 위험할 수 있다. 알 수 없고 불법적인 업체가 많아 관리 감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암암리에 마트와 문구점으로 많이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설탕 가운데 백설탕은 달콤하지만 노화를 강화시키고, 많이 먹으면 당뇨에 걸릴 수 있다. 재료가 사탕수수나 사탕무로 만든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은 제조원가가 비싸서 사탕제조업체가 못 구한다. 그래서  제조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화학성분이 들어가게 된다.

 

 (물론 쵸콜릿도 역시 마찬가지다.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불공정 무역으로 들여온 카카오를 먹는다는 것은 즐겁지 않다. 얼마 전에 쵸콜릿 안의 벌레 사건은 제조과정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엿을 줄 순 없다. 미국어화된 말 "엿 먹어라."는 이미 욕이 된 지 오래이다. 우리 엿을 주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러나 엿도 줄 순 없다. 엿에 강한 밀도가 치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엿 같은 재료는 치아에 달라붙어 문제 생긴다.

 

 여성들이여. 화이트데이 사탕을 거부하라. 사탕을 준다면 헤어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라. 그것이 당신들이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인간은 보상을 추구하는 유기체다. 하나의 대안은 연인들이 함께 비누를 만드는 것이 낫다. 그러면 서로의 건강도 챙기게 된다. 그래도 간식으로 하고 싶다면 제과점에서 케이크 한 조각을 사다주는 것이 낫다. 받는 것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그 마음이다.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지 말고 서로를 생각하면서 문자 한 통,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한국의 모든 연인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참고문헌-안병수,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국일미디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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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과 박정희주의자들 그 자체는 인권이 없다

경영인 출신 정치인 보고 국가경영 좀 잘하길 바란다고 부자들인 경영가들과 그들에게 속아버린 서민이라는 무력감들이 뽑았다. 1년이 지나고 결국 이명박은 역시 독점 경영인이나 무기상답게 일을 벌여버렸다. 도덕성보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건 경영인들의 특성이다. 그런데 요즘 경영인들은 도덕성도 고려한다고 한다. 결국 이미 이명박은 경영인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이명박의 밑바닥에 받쳐주는 오리엔탈리스트 집단인 뉴라이트들은 분명히 한나라당과 다르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다. 결국 그들의 정체는 한나라당과 친박연대라는 렌터카 정당의 공천기구가 된 것이다. 그들은 일만 잘하고 먹을 거 잘 받아놓으면 되는 전근대 귀족이나 전기 자본주의 부르주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축소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화가 나 있다. 인권위도 반성을 해야 한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출범을 했으니 국가기구나 다름이 없게 돼버린 것이다. 차라리 유엔인권위 한국지부라든지, 사회인권위원회라고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크다. 이미 이명박은 국민권익위원회를 만들어 장악의도를 보였다, 자잘하고 사소한 것까지 접수해서 국가인권위원회를 압박하고 해체시키겠다는 야심이었다. 이는 자본으로 노동자의 생계를 갖고 노는 미친 자본가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회적 약자들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힘은 약하지만 도덕성에 있어서는 어느 국가기구 못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최고의 기관인 헌법재판소에 실망한 사람들이 찾는 기구가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이다.

 

 나는 한나라당과 박정희주의자들에게 고한다. 인권위를 없애고 싶으면 지역 당사와 자신들의 단체 사무실이나 팔아 버려라. 그리고 억압의 국가, 반인권의 국가 북한으로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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