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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과 헨리 데이빗 소로

 헨리 데이빗 소로의 책 월든을 본 적이 있다. 월든 호숫가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어놓은 책이다. 텔레비젼에서는 포도광고에 "콩코드"가 나온다. 그 콩코드가 월든 호숫가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 일하면서 살게 된다.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 현대 산문 문학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듯한 작품이다. 권정생은 안동시, 그것도 촌에 가까운 조탑동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마을 교회당 종지기로 일하며 글을 쓴다. 그리고 작은 오두막을 짓고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간다.

 헨리 데이빗 소로와 권정생은 신앙에 있어서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교파는 다르겠지만 개신교 신앙이다. 소로는 월든 호숫가에서 혼자서 살았던 반면, 권정생은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호숫가에 사는 생명들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긴 하나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관찰자의 입장은 한국과 미국의 당시 자연관의 차이여서 그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숲 속에 생물들을 자세히 알려고 노력하는 것은 먼저 사랑하려면 알아야 하는 서구식 사고방식이다.

 권정생은 오두막 주위에 있는 생물, 사물들을 친구처럼 대했다. 그래서 동화에서 사회적 약자들과 동물들이 나온다. 우리들의 하느님에 쥐 이야기가 나온다. 쥐와 친구가 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집필의 소재와 경험이 된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호숫가에서 있으면서 전쟁에 대한 직접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것이 시민의 불복종이라고 한다. 세금을 내지 않아 감옥에 갇히기도 했는데 친척이 보석금을 대신 물어주고 풀려났다고 한다.

 권정생은 동화로 현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 민족, 통일, 주위의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주제로 많이 썼다. 그러다 보니, 국가기관에서 권정생을 조사하기도 했다고 한다. 권정생 죽은 이후 다시 한 번 탄압을 받았다. 국가권력은 그의 산문 우리들의 하느님을 불온서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후기에 폐결핵이 생기는 바람에 죽게 된다. 반면 권정생은 젊은 날에 폐결핵에 걸리지만 70까지 오래 산다. 그리고 2007년 우리 곁을 떠났다.

 권정생에 대해선 사람들은 이름을 모른다. 그러나 강아지똥의 작가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제야 깨닫는 현실을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헨리 데이빗 소로 역시 현실도피로만 알고 있는데 현실참여인 시민 불복종 운동을 만들었다는 것은 유명하지 않다.

 어쨌거나 이 두사람을 너무 조명한 나머지 신격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 사람들의 의식이 오히려 그들에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생전에 두 사람은 자신을 밖에 너무 알리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했으니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사는 것은 "미쳤어"라는 대중가요를 떠올릴 지 모른다. 그만큼 한국 대중사회는 물질적인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적응한 대중들은 그들에게 반기를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그들의 삶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성직자, 수도자, 목회자마저 물질, 감각으로 가버린 시대다. 그들에게 이 두 사람처럼 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기는 솔직히 두렵다! 마음만 하고 싶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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