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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여, 화이트데이를 거부하라.


 한국에서는 무슨 데이가 많이 있다. 이게 서로 양면성을 띠면서 발전되어 왔다. 2월 14일 성 발렌티노 축일, 즉 발렌타인 데이를 시작으로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삼겹살 데이, 삼각김밥데이, 빼빼로 데이 등 상업성이 강한 날이 있는가 하면, 시민사회단체가 만든 애플데이가 있다. 이런 데이들을 보면 이들은 연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벤트라고 하겠다.

 

 발렌타인 데이가 대표적으로 비판을 받는다. 일본에서 나온 쵸콜릿 상술로 진정한 의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발렌타인 데이의 유래를 알게 되면 단순히 쵸콜릿을 주고 받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군인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발렌티노 신부가 탈영한 군인을 도와줬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병역거부의 그리스도교적 전통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만든 데이가 이벤트성이 매우 강하다. 또한 평등적 의미도 포함이 된다. 특히 블랙데이의 경우, 솔로들끼리 함께 자장면을 먹으러 간다는 것은 균형감을 잡아주는 듯하다.

 

 문제가 되는 데이도 있다. 빼빼로 데이이다. 유명 제과업체의 상술로 시작된 날이다. 어느 고등학생 소녀들이 서로 빼빼로를 나눠먹었다고 해서 시작이 됐다고 한다. 이것을 노린 제과업체는 이날을 빼빼로 데이라고 대중매체에 선포했다. 덩달아 떡업체들은 경쟁을 위해서 가래떡데이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이날은 농민의 날이었다. 89년 노태우정권이 만든 날이기도 하다. 늦게 만들어진 게 영향력이 강했던 것일까 농민의 날은 결국 빼빼로데이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이다. 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발렌타인 데이에 쵸콜릿을 준 여자에게 남자가 사탕으로 보답하는 날이다. 이제는 화이트데이에 종말을 고하노라. 이는 감사를 독으로 답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여자 보고 "줬으니 고맙다. 죽어라."는 뜻과 같다. 이는 이별의 날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보면 화이트 데이는 남성 중심의 상업권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탕을 주면서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라는 것은 폭력화 된 상술이다. 사탕이라는 딱딱하고 화학첨가제 투성이가 여성의 몸을 위협하는 폭력이다. 이런 의미는 무의식적으로 여성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사탕은 쵸콜릿에 비하면 아무 쓸모없다. 달기만 할 뿐 우울증에 효과적인 물질이 없다. 설탕에 버무려진 맛은 달콤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독성물질은 위험한 것이다. 설탕이 독이 될 수 있지만 맹독인 화학성분을 담은 식품첨가물이 바로 그것이다.

 

 식품운동가 안병수 씨에 의하면 사탕에 들어간 것이 화학 물질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청색 몇 호, 황색 몇 호, 등등의 알 수 없는 독성물질이 사람의 몸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화이트데이에 쓰이는 사탕들이 위험할 수 있다. 알 수 없고 불법적인 업체가 많아 관리 감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암암리에 마트와 문구점으로 많이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설탕 가운데 백설탕은 달콤하지만 노화를 강화시키고, 많이 먹으면 당뇨에 걸릴 수 있다. 재료가 사탕수수나 사탕무로 만든다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은 제조원가가 비싸서 사탕제조업체가 못 구한다. 그래서  제조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화학성분이 들어가게 된다.

 

 (물론 쵸콜릿도 역시 마찬가지다.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불공정 무역으로 들여온 카카오를 먹는다는 것은 즐겁지 않다. 얼마 전에 쵸콜릿 안의 벌레 사건은 제조과정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엿을 줄 순 없다. 미국어화된 말 "엿 먹어라."는 이미 욕이 된 지 오래이다. 우리 엿을 주면 좋겠는데 말이다. 그러나 엿도 줄 순 없다. 엿에 강한 밀도가 치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엿 같은 재료는 치아에 달라붙어 문제 생긴다.

 

 여성들이여. 화이트데이 사탕을 거부하라. 사탕을 준다면 헤어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라. 그것이 당신들이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인간은 보상을 추구하는 유기체다. 하나의 대안은 연인들이 함께 비누를 만드는 것이 낫다. 그러면 서로의 건강도 챙기게 된다. 그래도 간식으로 하고 싶다면 제과점에서 케이크 한 조각을 사다주는 것이 낫다. 받는 것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그 마음이다.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지 말고 서로를 생각하면서 문자 한 통,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한국의 모든 연인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참고문헌-안병수,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국일미디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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