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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에게 다양한 고용의 기회를...

 저번에 장애인 취업박람회가 있어서 가보았다. 부모님께 죄송하고 일자리도 찾을까 해서 가보았다. 많은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찾으려고 모여들었다. 나도 거기에 끼여서 같이 들어가서 면접을 보았다. 장애인을 고용하는 업체가 경북지역에서 많이 왔는데, 구미와 칠곡에서 많이 왔다. 그 중에서는 고령도 보이고 경주, 경산, 대구도 보였다.

 안내서를 펴보니, 업체들은 거의 공업체들이 많이 와 있었다. 주류 산업역사론으로 보면 2차산업이다. 핸드폰 공장, 종이컵 공장, 부품 공장 등등으로 거의 2차산업이다.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찾는데 무슨 불만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잘 보면 거의 이러한 고용현상은 오히려 장애인을 더 멀어져 보이게 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장애인들이 3차산업, 서비스업에 고용되 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정신지체인들 중 낮은 등급의 사람들도 함께 3차 산업에서 일한다. 이것을 보면 한국은 장애인들의 고용을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2차산업에만 집중하게 만들었을까?

 장애인들을 고용하는 업체들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에 많이 있지 않다. 대다수가 외진 농촌지역이나 산골짜기에 위치돼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게다가 기숙사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아직도 의식이 바뀌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장애인 시설들이 산골이나 농촌의 외진 곳에 위치해 있듯 고용업테도 그곳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다. 이러한 고용현실은 장애인들의 사회참여를 유도하기는커녕, 오히려 소외하게 한다.

 존재가 의식을 좌우하듯이 공간이라는 게 사람들의 의식을 좌우하는 것이다. 마치 독재자들이 예술공간들을 서민들이 다가갈 수 없는 곳에 놓았듯이 말이다.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산속에다 옮겨놓음으로써 그들이 나오지 말아야 할 사람, 가까이 하기에는 먼 사람으로 편견을 강화해 버린다.  이러한 편견의식은 장애인들이 사회로 못 나오게 하는 벽을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벽을 쌓고 장애인 고용해야한다고 막 떠든다면 위선일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수용시설 의식이라 부르고 싶다. 장애인들은 사회복지와 재활치료라는 이름으로 수용시설에 많이 수용된다. (요즘은 그룹홈이 있어서 사회복지학계에서 수용을 점점 해체되도록 하고 있다.)  이 수용시설이 주로 농촌의 외곽지역에 위치해 있어 다가가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장애인들의 사회참여는 차단이 되고 편견은 높아져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편견 때문에 한 마을에 장애인 복지시설이 생기면 주민즐의 반발이 거셌다. 감시와 처벌의 장화는 장애인들 자신들의 삶의 의식마저 비인간화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수용시설 의식은 그 후에 편견을 만들어 버리고 차별과 폭력을 동반해 왔다.  그래서 장애인들을 불쌍한 사람, 거지, 나와서는 안 되는 사람 등의 편견의식을 가져왔다. 이런 의식은 아직도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잔재로 남아있다.

 게다가 장애인들의 직업재활이고 떠드는데, 진정한 직업재활은 장애인들이 2차 산업에다가 가둬두고 산 속에만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함께 노는 것이 진정한 직업재활이다.

 예전에는 장애인들이 불편해도 자신이 할 수 있으면 일을 했다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고용전통이 우리에게 있다고 알려진는 것은 지금의 상황이 그렇게 열악한 증거가 아닐까? 옛날 장애인들은 2차 산업 뿐만 아니라 3차 산업, 1차 산업에도 종사했다.(정창권의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의 고용현실은 2차산업에만 집중할 뿐 1.3차 산업은 소수이다. 이렇게 되면 장애인 고용증가는 커녕, 실업률만 높이는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할인점이나 커피숍, 대학 내 식당들에서 장애인 학생이나 일반 장애인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있다해도 직업교육을 받고 주방 안에서만 일하는 장애인들 뿐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장애인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높다, 노인 일자리 창출하자고 하지만, 장애인 고용은 여전히 약한 편이다. 장애인들의 2차 산업 고용집중은 오히려 실업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이다. 장애인들에게 평등한 고용혜택으로 실업률을 줄이는 것이 좋다.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 진출로 인해 편견의 벽을 깨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고용확대로 인해서 실업률은 떨어질 것이다.

 경영자의 편견도 버려야 한다. 일부 경영자들은 아직도 장애인들을 고용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왜냐하면 장애인들은 느리고 부담스럼고 일을 못한다는 편견을 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비장애인의 눈으로만 편견이다. 신체의 하나가 불편하면 다른 신체 하나가 발달한다는 의학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보면 장애인들의 고용이 많이 있고 얼마나 좋은지를 모르고 있다. 단지 몸이 불편하다는 편견과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보장하라고 늘 외친다. 그렇다. 나도 그들의 말에 동조한다. 그렇지만, 일부 노동자들 역시 경영자와 다를 바 없다. 그들도 역시 자신들만 모여서 일을 하고 어울린다. 장애인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은 재수없다고 따돌리기도 한다. 이로 인해 자신들의 공고한 벽을 만들어 놓고 장애인과 외국인은 따돌리고 나서 자기 밥그릇을 챙긴다면 정말 큰 위선이다. 노동자들은 장애인과 외국인들을 하나의 인간의 띠로 묶어 생각해야 한다. 

 장애인 개인은 자신이 약한 사람, 보호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런 생각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약자로만 많이 생각하지 말고 장애를 자신의 개성으로 보는 생각의 훈련이 중요하다. 자기 발로 사회로 나와 힘차게 외치는 것이다.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실업률이 높다는 오늘, 장애인들에게 다양한 노동기회를 많이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장애인들을 하나의 사회구성원으로 느낄 때까지 많은 편견을 깨뜨려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2차 산업 집중을 해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의 잘못된 편견을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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