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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에게 등급을 묻지 마라

 진보적 장애인들마저 장애등급에 대해서 물어본다. 어느 진보적 장애인 단체에서 강연을 들었는데, 수강신청서를 적는 란에 장애등급이라는 글자를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서비스 제공이나 장애인 개인을 알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는 걸 이해한다. 그러나 진보적인 장애인단체라면 장애등급을 묻는 란은 이제 없앴으면 한다.

 그들 대부분이 특수교육학과나 사회복지학과 출신이어서 그런지 이미 관습이 되어버려서 장애등급을 묻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진보운동을 해도 그렇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묻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이 싸우면서 보수를 참칭하는 박정희주의자들을 닮아간 한국 시민사회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것은 흔히 "니 몇 살이고?", "너 어디 출신이냐" 따위를 물어보는 한국인들의 무의식적인 적이 작용을 하고 있다.

 장애등급은 관료의 산물이고 전문가주의의 산물이다. 관료의 편의성으로 장애등급을 나눈다. 1에서 7까지 장애등급을 나눠놓았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악용하고, 명백히 차별을 두자는 것이다. 악용되는 것은 가짜 장애인 양산이라는 것이다. 손가락이나 다리 하나 다쳤다고 공공 사무소에다 신청만 하면 장애인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그것은 세금 면제와 자신의 이기적 편의를 위한 악용이다.

 모든 장애인들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모든 것을 보장 받아야 하는데, 번호로 매겨서 하는 건 문제가 있다. 장애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못 한다면 그 배려는 아무 쓸모가 없다. 장애인 할인만 해놓고 장애인 시설이 없는 경우가 큰 문제이다.

 장애등급은 관료의 편의주의로 인한 것이기도 하고 전문가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대부분 의사에게 판정을 받는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 구조적 이론으로 보면 의료인들이 장애인들에게 주는 호명은 개인의 인생을 결정하게 된다. 가령 "너는 지적장애 3급이니 몇 살의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은 장애인들에게 낙인화가 된다. 나이로 지능을 판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확하지 않을 뿐더러 스물 살이 넘은 장애인들에게 여전히 아동으로 살아야 하는 문제가 벌어진다.  

 세월마다 매해마다 바뀌는 장애등급은 확실성과 객관성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명칭이 바뀌고 다른 장애도 포함되기도 한다. 예전에 정신지체인인 것이 지금은 지적장애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지적장애라는 말도 문제가 잇다. 사람을 IQ라는 도구로 결정하는 것은 무리다. 어른들에게 IQ 검사를 해보라. 틀리는 것이 많이 나타날 것이다.

 법정 장애인등급에 속하지 않거나 잘못 기재된 장애인들에게는 이것이 상처가 된다.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차별로 고통 받고 있다. 잘못 기재된 장애인들은 수정하려면 전문가들에게 6개월이라는 세월과 비용을 써야 한다.

 그러니 장애등급이 몇이냐는 것은 쓸데없는 말이다. 그리고 묻지 말아야 하고 대답하지 말아야 하는 언어다. 장애인의 프라이버시이면서 또한 상처이며 낙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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