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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의 행복

 

 삼성전자서비스 지회 최종범 열사가 돌아가시고, 며칠 뒤 추모문화제 때 였다. 갑자기 금속관료 한 사람이 ‘사람이 죽었는데 이런 방식으로 투쟁할 수는 없다.’ 며 모두 천안 두정 삼성전자서비스 센터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사장, 이 새끼 나와!” 모두들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고, 각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사장놈을 찾느라 사람들은 신이났다. 아니, 흥분상태 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사장, 이 쥐새끼 같은 놈 어디로 숨었어?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어여 나와 개xx야.” 사장은 없었다. 특히나, 일요일 이어서 근무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일요일 이란 걸 알고 안으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각 방을 뒤지다가 사장이 없으니 사람들은 분이 안 풀렸다. 아마 그 당시 안으로 들어가자던 금속관료 또한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흥분상태가 덜 가신 금속관료 두 명은 지침을 내렸다.“ 우리는 지금부터 여기 천안두정센터를 점거할 것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SNS로 전국에 계신 동지들께 이 상황을 알려주시고, 전국의 많은 동지들이 이 곳 천안센터로 집중하길 바란다는 내용을 전달해 주십시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사람들은 ‘아 이제 금속관료들도 변하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몇 날 며칠 끌려가고 구속 되더라도 끝까지 버틸 자신이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죽은 동지들한테 부채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 이었다. 윤주형과 박정식과 최종범을 안타깝게 보내야만 했던 사람들 이었다. 우리는 행복했다. 제발 원 없이 투쟁해서 열사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었다.

 

 그러나, 웬걸? 40분이 지나자 흥분상태가 가라 앉았는 지, 내부 여론에서 온건파가 득세 했는지도 모른다. 잠시 관료들끼리 회의가 끝나자, 그들은 2층은 철수 하고 바깥에서 분향소와 천막을 치겠다고 하였다. 다음기회에 점거농성에 돌입 하겠다고 말했다. 점거농성은 이제 ‘빛 좋은 개살구’ 가 되어버렸다. 사람이 죽어갔는데 투쟁이 무슨 장난인가? 우리는 모두 SNS를 지웠고, 다들 장례식장이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자들, Sjm 사건 때는 휴가가고, 천안에서는 이렇게 기회주의적으로 투쟁하던 금속관료들이 강남역 삼성 본관 투쟁에도 개입하였다. 나중에, 삼성전자 서비스지회의 평가에서도 나왔지만, 금속이 개입함으로써 투쟁은 완전히 승리하지 못한 채 경총과의 타협을 통해 접어야만 했다. 삼성서비스전자 지회 동지들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면, 앞으로도 제발 금속관료들. 민주노총 관료들을 믿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런데, 강남경찰서는 삼성본관 노숙 농성때 남대문의 최성영보다 더 했다. 추운 겨울날 농성하는데 침낭도 반입금지 시켰다. 비닐 한 장에 의지하여 잠을 청해야만 했다.

 

1970년대나 2013년이나 배고프고 지옥 같은 노동의 현실은 변함이 없는 거 같았다. 오히려, 부자 놈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죽음으로써, 분신으로써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회, 이 비정한 사회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삼가 최종범 열사의 명복을 빕니다. 가난도 차별도 없이 평등한 세상,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동해방세상에서 고이 영면하소서. 우연치 않게도 최종범 열사의 묘지는 마석. 윤주형 열사의 묘지 근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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