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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칭찬을 많이 듣는다. 착하단 얘기도 듣고 웃기단 얘기도 듣고 다소 포괄적이지만 좋은 사람이란 얘기도 듣고
편하단 얘기엔 으악 기분이 흐뭇해졌고 평생 같이 살아도 안 질릴 거 같단 얘기는 새로운 충격이었다ㅋㅋ정말 그렇단 말이지...
소금인형 싸이어리에 만세 써져있을 땐 솔직히 오그라들었다. 그래도 고맙긴 진짜 고맙다 그런 인정을 받을 줄 몰랐음ㅇㅇ
그런데 좋은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은 '진짜?', '날 제대로 알고서 하는 얘길까?'
내가 볼 때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복합성이란 게 좋은 말이 아니다.
나는 복합적이므로 언제 어디로 어떻게 튈 지 나 자신조차 모른다.
두 가지 사상이 내 안에 공존할 수 있고, 여러 가지가 얽히다 보면 정말 이상한 특성이 고개를 들 때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는 동시에 그 사람이 하룻밤만에 죽어도 개의치 않고 살아갈 수도 있다.
솔직하려고 하지만 그 솔직함이 가져오는 피해에 대해선 그저 당연하다는 생각뿐이다.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를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지만 웬걸, 나는 나의 가치를 0으로 평가하잖아?
100까지의 스칼라 상에서 끽해봤자 한 자릿수다.
엄마가 내 그릇이 감당 안될만큼 커서 미치겠다고 목놓아 엉엉 울 때 나는 아무런 무엇도 느끼지 못했다.
아빠가 너와는 앞으로 얘기하면 안 되겠다고 한숨쉬며 등 돌릴 때 나는 웃었다.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 끔찍한 공포증이 있지만 역으로 그 트라우마가 나를 죽음과 슬픔에 대해 무감각해지게 만들었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기가 막힌 일을 겪고 보고 들어도 감정이 욱 할 수가 없다.
깊숙이 억눌린 무언가를 시원하게 매듭풀어 끄집어내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그냥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싸우는 걸 오지게도 싫어한다. 군대야 가겠지만 반전주의자이며 평화주의자다.
하지만 그건 한 번 싸우게 되면 이기든 지든 그저 최대한 효율적으로, 철저하게 짓밟고 찢어발기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그런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그렇다. 이 또한 이기적인 이유에서의 사상 전환이다.
중학교 1학년 때 4월의 어느 점심시간, 같은 반 여자아이와 말싸움이 붙었던 적이 있다. 그날따라 열이 좀 심했는데
인신공격 한 방에 인내심이고 뭐고 그냥 다 벗어던지고 붙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그 애는 가방도 안 싼 채로 집에 갔고,
이틀 동안 학교에 못 나왔으며 결국은 선생님이 나를 끌고 가서 사과시켰다.
2년 반 후 한창 외고준비하느라 늦게 들어가던 8월 중순의 밤 3시 10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옆 건물 정전이나 시키고
문 닫은 시청 안으로 감시카메라 피해 들어가는 걸 함께 즐기던 친구와 열심히 문제풀다 늦는 양 알리바이 짜서 집에 가다 삥뜯겼다.
덩치 큰 고릴라 한 마리와 나만치 작은 키지만 날선 과도로 위협하던 그 두 명은 고1이랬다.
일 년 차이다. 몰래 따라가서 주머니와 가방에 든 지갑들 내용물을 죄다 뺏으려고 덮쳤다.
두 명이라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뒤를 밟은 우리는 철없었지만, 뜯긴 놈들이 곧장 추적까지 해 올 줄 몰랐던 그들에겐 잘 먹혔다.
그 후로 여러 경험을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쉽게 끝났다. 지금 돌이켜봐도 사기극 같다.
킥복싱을 아버지로부터 수년 간 배운 친구는 타고난 힘을 믿었던 길거리아가리파이터 고릴라를 눕히는 데 별 힘을 들이지 않았다.
고릴라에게 복부를 허용했을 때보다 체육관 사범하고 연습경기 할 때가 훨씬 아프다고 했다. 하긴 지금도 정말 괴물같은 놈이다.
그에 비해 나는 태권도 1품이 전부인데 돌려차기로 과도를 떨어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벽돌로 찍었다.
딴에는 소리없이 달려가서 납작한 면으로 옆통수를 후려갈겼는데 발소리가 들렸는지 팔을 올려 첫타를 막았다.
그래도 제대로 맞았는지 팔을 순간적으로 감쌌는데 그 때 거짓말 안 보태고 팔을 270도는 돌려서 때렸을 것이다. 있는 힘껏.
거짓말같이 손 한 번 못 올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최초의 극단적 폭력이 가져온 우월함은 더한 우월함에 대한 확신을 불러왔다.
올라탄 다음 어디서 본 건 있어 라이터를 말아쥔 왼손으로 오른쪽 광대뼈를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다.
세 번째부터 빨간 색으로 변하더니 스물댓번째부터는 얼굴 한 쪽이 시퍼렇다 못해 시커매지기 시작했다.
코를 때려서 코피가 샜고 열몇번째부턴 때리는 자리의 피부가 터졌다.
내 손도 벌겋게 부어올랐지만 골절상을 입었지만 그 땐 그런 걸 몰랐다. 그저 아래에 깔린 이 새끼 머리에 내 손이 닿는 게
그 생것의 느낌이 좋았다. 친구가 떼어놓지 않았으면 진짜 큰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3년 전 그때만 해도 감시카메라가 곳곳에 있는 정도가 아니었고
cctv 사각 정도야 지금도 대강 기억날 정도로 잘 알고 있었으니 벽돌이라던지 하는 증거인멸하고 우리 것만 챙겨서 슬슬 빠져나왔다.
그렇게 떡이 되도록 때려 놨는데 신기하게도 신고가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그 후로 아무 일도 없었다.
마음 한켠은 그 날의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반면, 한편으론 또 그 일에 대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국방부 소속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이 평화주의 반전주의를 주장하는 이유다. 알량하지만 부분적으론 자기구속을 위해서다.
내키는 대로 하게 냅뒀다가는 다음 번에는 누가 알까, 그러다 사람을 죽일 지. 난 감옥에 갈 마음이 없다.
그들은, 나와 친하다 일컫는 많은 이들은, 이러한 내 모습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알고도 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적절한 선에서 제어를 하고 있다. 제어하지 못할 부분은 아예 막아버린다.
그렇지만 그걸로 내가 저렇다는 게, 사실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메마르고 끔찍하다는 게
그런 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수면 위로 떠오르겠지. 그 때, 내 주위의 여러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를 따지는 건 사실 무의미하다. 예전에 어쨌건 지금은 이 꼴이니까.
나는 내 숨겨놓은 본성을 바꿀 수 있을까? 슬플 때 울어볼 수 있을까? 비폭력을 진정으로 실현할 수 있을까?
현재로썬 전망이 어둡기만 하다.
좋은 의도에서라도 가식에는 질려가는 중이니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나를 재평가해줬으면 좋겠다.
지금의 모든 관계가 사상의 누각같아서 불안해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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