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트 영역으로 건너뛰기

“내가 5번의 해고를 당한 이유” - 특수보조원 이명숙

“내가 5번의 해고를 당한 이유” 

 

특수보조원 이명숙

 

내 아들은 지적장애2급이다. 38개월에 언어가 늘지 않아서 찾아간 대학병원 소아정신과에서 중중의 지적장애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됐다. 아들을 교육하기 위한 기관을 찾아보니 특수 교육이 지금처럼 활성화 되지도 않은 상황이라 경제적 부담이 너무나도 컸다. 한두 군데 장애인 복지관에서 하는 30분의 언어치료, 개별치료 등 특수교육은 신청하고 대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소아정신과에서 하는 집단치료, 개별치료, 놀이치료, 언어치료는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아들은 장애인복지관 1년, 특수학교 2년을 다니던 중 많이 좋아져서 일반학교에 진학해 현재는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아들이 중학생일 때, 특수보조원이 학교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아들은 도움을 받지는 않았지만, 장애아동이 학교에 다닐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부모들이 어떤 마음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도 특수보조원이라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초수급자중에서 교육도 받고 사회적일자리 사업 중에 장애통합보조원 파견 사업이 있다, 서울에는 25개 자활후견기관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교육 후 학교에 취업을 목적으로 파견을 한다. 자활에서는 교육 후 취업을 시키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한다.

 

취업 후에도 사후관리 및 취업이 유지되도록 관리를 한다. 파견된 곳에서의 취업 성공을 위해서 1~3년씩 공들여서 여름방학이면 특수교육현장에서 필요한 지식을 공부하고 수료증도 준다. 하지만 취업현장에서는 수료증을 인정하지 않고, 경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조건은 취업이 확정되면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1주일 교육을 이수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학교를 전전하는 동료이자 경쟁자가 되어버린다. 또 몇 번의 해고를 당하다보면 이 현장을 말없이 떠나버린다.

 

나도 4번 해고를 당하고서는 떠날까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도전해보자, 정말 내게 적성이 맞지 않나 많은 고민을 했으나, 고등학교는 다르겠지 도전했으나 무참히 또 해고를 당했다. 학교에서는 책상, 컴퓨터 등을 요구하지도 못하고, 휴게공간조차도 이 교실 한 구석에서 쉬어야하며, 일을 하는 동안에도 ‘보조샘’일 뿐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데도,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부모, 학생들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인사도 시키지 않고, 어떤 일을 지시하거나 회의과정에서도 배제된다. 현장학습 등의 일정도 우리가 함께 참여하는데도 미리 알지 못한다. 또 학부모와는 잠시도 만나서도 안 되고,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어도 안 되고, 이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은 교권침해라 한다. 우리는 청소나 하고, 특수교사 잔심부름이나 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다 다쳐도, 다친 걸 걱정하기보다는 지시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핀잔을 듣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누구도 아동개인의 장애유형이나 특성을 설명해 주지 않아서 스스로 대처해야하며, 특수보조원에게는 아동이 버릇없고, 문제가 되는 행동을, 말을 잘 듣지 않아도, 훈육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문제행동들이 방치되어서 아동을 접하는 우리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힘들다. 그런 경우 특수교사의 역할이 중요 하지만 귀찮아하는 경우도 많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내가 잘 할 수 있고, 부모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지를 잘 알았기에 기대가 컸다. 특수교사의 생각은 우리들의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초등학교 2곳, 중학교 1곳에서 2번 해고를 당하는 과정 속에서도 사회복지사, 보육교사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고등학교에 특수보조원으로 취업을 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근무를 하고, 보람도 느꼈다. 그리고 고용안정을 위해서 노조에도 가입을 했다. 하지만 역시나 1년 만에 구두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더 다니고 싶다고 했더니 계약만료라서 더 다니고 싶으면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내라고 한다. 최저임금의 국민기초수급자이고 한 집안의 가장인 내가 해고를 당하는 것은 너무 간단했다. 사회경험이 많고, 인정도 받았고, 또 취업이 되는 데도 매년 해고되는 것은 무엇이 문제일까. 다름아닌 특수교육현장이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관행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특수보조원에게 문제를 전가시키고 있기 때문이고, 특수교사의 변화 없이는 12월 해고의 바람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불 것이기 때문이다.

 

특수교육대상자의 인원 변동에 따른 해고가 되지 않도록 인력풀제가 꼭 시행되어서, 고용안정이 보장되어야 기초수급자도 자립할 수 있다. 하지만 특수보조원의 현실은 최저생계비에 지나지 않은 적은 임금에도 매년 해고를 당하는 구조이다. 토요유급화와 인력풀제가 시행되어서, 기초수급자에서 소득초과로 잘리고 자립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생활임금쟁취!여성비정규직 공동투쟁연대 소식지1호 (2/1발행)

[생활임금소식지1호_0201.hwp (1.21 MB) 다운받기]

 

생활임금쟁취!여성비정규직 공동투쟁연대 소식지1호 (2/1발행)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선전물] 목구멍에 풀칠하는 '생계비' 대신, 인간답게 살기위한 '생활임금'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1월 18일 생활임금쟁취!비정규직철폐!공공운수노조 실천단의 대시민선전전에서 사용한 선전물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결의문] 생활임금쟁취 실천단 발족/결의대회 선언문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공동투쟁으로 생활임금/고용안정 쟁취하자!



하루 10시간, 12시간을 '숨만 쉬며' 일해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자해고, 계약해지와 함께 2012년 새해를 맞이했다. 임금인상 돼봤자 물가상승을 따라잡을 수 없어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하락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늘어나고, 가계고통지수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12년 최저임금 시급 4,580원, 월 95만원. 4인 가족 월평균 생계비 494만원의 20%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야 하는 노동자가 250만 명. 그나마 이도 못 받는 노동자가 또 그만큼이다. 결국 노동자들은 돈이 없어 결혼을 늦추고, 출산을 늦추고, 생의 모든 것을 늦추고 있다.

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에 떨고, 지하철, 창고에서나 끼니를 때워야 하는 청소노동자,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면서 하루 24시간, 주 6일 연속의 살인적인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간병노동자, 아이들을 돌보느라 눈 한번 돌릴 새 없지만 CCTV 감시까지 받으며 일해야 하는 보육노동자, 수년한 학교에서 사서, 조리사, 영양사 등으로 일하고도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계약해지로 쫓겨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이들 대부분이 바로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연봉 2억 2천만 원을 받는 이명박 대통령, 억대 연봉의 장관들, 최저임금의 몇 곱절 이상을 세비로 받는 국회의원들이 최저임금이 어느 정도인지, 비정규직의 아픔이 무엇인지 신경 쓸 리가 만무하다. 2시간만 회의하면 10만원 수당 받는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은 저임금에 허덕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더 이상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으로 살 수 없어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나섰다. 청소, 보육, 간병요양, 학교비정규직 등 이 사회에 가장 필요한 노동을 하면서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우리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 생활임금 쟁취!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실천을 시작한다. 이미 2011년 홍대, 고대/고대병원/이대/연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최저임금을 넘어 생활임금으로 가기 위한 투쟁은 시작되었다. 2012년 그 발걸음을 이어 우리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 생활임금/고용안정을 쟁취하기 위해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하나, 우리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생활임금은 진짜 사용자가 책임져야 함을 선언한다.
하나, 우리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의 실천과 투쟁으로 최저임금 현실화, 생활임금을 쟁취할 것을 선언한다.
하나, 우리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는 우리의 실천과 투쟁으로 직접고용 정규직화, 고용안정을 쟁취할 것을 선언한다.

 

2012년 1월 18일 생활임금 쟁취! 비정규직 철폐! 실천단 결의대회 참가자 일동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경향] 고시원 총무, 시급 1000원대 '울며 겨자먹기'

 

 

복지ㆍ노동

고시원 총무, 시급 1000원대 ‘울며 겨자먹기’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ㆍ‘돈벌며 공부’ 절박 탓 최저임금 사각지대서 시름

대학생 박모씨(25)는 지난해 4월부터 10개월간 서울시내 한 고시원에서 총무로 일했다.

이 고시원은 100여개의 방을 갖춘 비교적 큰 규모였지만 관리자는 혼자였다. 박씨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오후 5시부터 고시원
청소는 물론 비품수리·방값 수금을 도맡아 처리했다. 고시원 투숙객들의 각종 불만을 접수받고 처리하는 것도 박씨의 몫이다. 새벽 1시쯤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박씨는 다음날 오전 7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고시원 복도 청소를 끝내야 학교에 갈 수 있다. 토요일에도 반나절은 근무했다.

하루에 9시간씩 근무한 박씨의 한 달 월급은 고작 50만원이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1900원가량이다. 당시 법정 최저임금인 4320원의 절반도 안된다. 박씨는 고시원에서 월 28만원짜리 방을 하나 사용했다.


 
 

고시원 업주는 박씨가 고시원 총무를 맡기 직전 “개인 시간이 많아 공부도 하고 일도 할 수 있는 조건”이라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박씨는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공부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박씨는 “실제 하루에 일에 집중하는 시간은 5시간 정도지만 갖가지 일이 생길 때마다 불려다녀야 하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독서실이나 고시원에서 일상 사무를 처리하는 ‘총무’들이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인력채용 전문 사이트마다 총무 월급은 40만~60만원 정도다. 대부분의 업체에서 하루 8~9시간 근무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루 9시간씩 주 6일 근무를 조건으로 채용공고를 낸 한 독서실은 월급으로 40만원을 책정했다. 올해 44시간 근무 기준 최저임금인 103만5080원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다.

독서실·고시원 측은 “업무가 많지 않아 공부하면서 일할 수 있다”며 홍보하고 있다. 일부 고시원은 총무에게 제공하는 방값을 월급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생활비와 공부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는 취업준비생과 고시생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총무를 자원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시간 중 자유시간이 많다 하더라도 법정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위법이다. 방값은 임금으로 볼 수 없다.

박문순 노무사(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법규국장)는 “비슷한 사례로 경비직 노동자들이 실제 업무를 하지 않고 대기하는 시간이 근무시간인지 휴게시간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근로시간이 맞는 것으로 판시했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은 또 임금은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 고시원 방값과 같은 다른 수단으로 지급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총무 아르바이트생도 법적 노동자임에도 업주들이 노동과 공부의 경계가 불명확한 상황을 교묘히 이용해 최저임금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겨레] 5개대학 청소 아줌마들 ‘연대’ 정규직도 힘든 집단교섭 해냈다

하청업체 대표들과 마주앉아
최저임금 등 노동조건 개선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회의실. 고려대, 고려대병원, 경희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에서 청소·경비·시설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12개 하청업체 대표자와 노동자들이 마주 앉았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집단교섭을 하기 위해서다. 올해엔 경희대와 홍익대가 참여하면서 규모가 더 커졌다. 노동자 대표는 6개 사업장의 청소노동자들이 주축이다. ‘힘 있는’ 정규직 노조들도 하기 어렵다는 집단교섭을 ‘청소 아줌마’들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유럽 등 선진국에선 산업별 교섭으로 대표되는 집단교섭이 보편화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다.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 등 정규직 중심의 일부 산업별 노조가 ‘선도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늘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청소 아줌마’들이 집단교섭을 이뤄낸 원동력은 뭘까?

우선 ‘연대와 단결의 힘’을 꼽을 수 있다. 아직 노사관계가 성숙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집단교섭은 철저히 힘의 논리에 좌우된다. 노조가 힘이 있어야 가능한 구조다. 청소노동자와의 집단교섭에 참석한 하청업체의 한 관계자는 “집단교섭에 나가지 않으면 노조가 투쟁을 할 게 뻔하다. 학교가 시끄러워지면 대학으로부터 업체가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교섭에 나간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연대도 필수적이다. 노동조건이 각기 다른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눈앞의 이익을 떠나 어깨를 겯고 함께해야 집단교섭이 가능해진다. 윤명순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고려대분회 조합원은 “개별교섭을 하면 결론이 훨씬 빨리 나고, 힘이 있는 노조의 경우 지금보다 임금을 더 많이 올릴 수 있겠지만, 노동자들이 갈라지면 장기적으로는 피해가 더 크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던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집단교섭으로 점차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 처음 집단교섭을 했던 이화여대·고려대·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보다 280원 많은 시급 4600원에 합의했다. 1년 전보다 500원가량 오른 금액이다. 또 ‘산별 교섭(집단교섭)에 참가한다’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명문화할 수 있었다.

 

이들의 집단교섭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청소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교섭 내용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노조가 없는 대학의 한 청소업체 관계자는 “여러 대학에서 임금이 한꺼번에 오르면 우리 근로자들의 불만이 커질까봐 임금에 굉장히 신경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권태훈 조직부장은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많다”며 “집단교섭을 통해 하나의 사업장을 넘어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보편적인 노동기준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겨레] 청소노동자는 유령 “교수님한테 인사했더니…”

홍익대 청소노동자 서복덕씨, 비정규직 현실에 눈 뜬 1년
‘유령’ 취급받다 당당한 노동자로…“시민들 응원이 큰 힘”

 

 
» 청소노동자 서복덕씨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 미대 회화과 실기실에서 바닥 물청소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저임금 찾아가며 일했는데 새해 첫 출근날 해고 ‘날벼락’ 49일동안 대학에 맞서 싸워 “다시 일하게 해달라” 외침에 초등생·시민들 응원 이어져

다른 비정규직도 연대 손길 재계약에 임금 교섭 ‘난항’ “싸워야하면 다시 나서야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하지만 홍익대 청소노동자 서복덕(57)씨는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화가 치민다고 했다. 2011년 1월3일, 서씨는 새해 첫 출근을 하자마자 하청업체 계약이 끝났다며 더는 일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5년 동안 업체가 바뀌어도 계속 일을 해왔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이렇게 쫓아낼 수 있지….” 분노는 투쟁 의지로 승화했다. 이 대학 170여명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49일 동안 대학과 맞서 싸웠다. 서씨는 “싸움이 그렇게 길어질지 짐작도 못했다”며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유령에 빗대곤 한다. 남자 화장실에서 여성 노동자가 청소를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 볼일을 보고, 강의실이나 회의실에서 청소를 할 때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밥을 먹거나 잠시 쉴 때도 건물 귀퉁이의 작고 허름한 ‘그들만의 휴게실’에 머물러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 서씨는 “같이 일하는 동료가 지나가는 교수한테 인사를 했는데, 그 교수가 ‘다음부터는 인사를 하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무시를 당한 것 같아 속상했다”고 말했다. 서씨는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늘 불안한 고용형태도 이들이 눈치를 보며 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홍익대에서 일하지만 홍익대 직원이 아닌 청소노동자들은 대학 관계자들과 자신들의 생존권을 쥐고 있는 하청업체의 눈치를 봐야 했다. 임금이 터무니없이 적어도, 휴일인 토요일에 나오라고 해도 묵묵히 참아냈다. 남편이 명예퇴직을 한 뒤 제과점을 하다가 그만두고 보험모집인, 호텔 청소노동자를 거쳐 홍익대에서 일하고 있는 서씨도 ‘유령’ 중 한 명이었다.

49일 동안의 투쟁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배웠다. “다시 일하게 해달라”는 외침에 세상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속에서만 보던 여배우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서씨는 “미대 학생들이 찾아오고, 다른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같이 싸워줬다”며 “울산에서 초등학생들이 찾아와 ‘힘내라’고 위로를 해주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물품 지원도 쏟아졌다. 동네 주민이 라면과 물을 내오고, 경기도 부천에 사는 한 시민은 귤을 들고 농성장을 찾았다.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은 김과 손난로, 김치, 콩나물, 생수, 밑반찬 등을 보내왔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질까? 서씨는 신기했다. “더 공정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요. 힘내세요. 이길 수 있을 겁니다.” 한 고등학생이 쌀과 함께 보낸 편지를 보고 서씨는 “포기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하청 노동자들의 현실에도 눈을 떴다. 그는 “5년을 이곳에서 일했는데 홍익대는 우리들이 대학 직원이 아니라며 대화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며 “비정규직이고 뭐고 별생각 없이 일만 했는데 해고를 당한 뒤 내 처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해보는 일도 많았다. 눈이 내리는데 거리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낯설어 우물거리기만 했던 ‘투쟁’이란 단어가 어느덧 익숙해졌다. 다른 사업장에 연대의 손길도 내밀어봤다. 서씨는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들이 싸우는 곳을 갔는데, 길바닥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자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며 “지금도 텔레비전을 보다가 비정규직 얘기만 나오면 눈이 획 돌아가고, 그 어려움을 백번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노동조건도 많이 변했다. 최저임금을 밑돌았던 임금(월 75만원)은 시급 기준으로 최저임금보다 130원 많은 4450원(월 90만원)으로 올랐다. 식대도 월 9000원에서 5만원으로 껑충 뛰었고,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명절 ‘떡값’도 5만원씩 받았다.



하지만 불안의 그림자는 여전하다. 올 3월로 예정된 하청업체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고 노사 임금교섭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다시 파업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은 지난해 ‘집단해고’ 경험이 있어 불안감은 더욱 크다.

“대학이 계속 있는 한 청소노동자들은 필요하잖아요. 요즘 수명이 길어져 노인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청소일이 노인들의 당당한 일자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웬만하면 해고하지 말고, 청소일을 해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씨는 “자식 같은 학생들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대화로 잘 풀었으면 좋겠는데, 싸워야 할 일이 생기면 다시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