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1일 나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진보신당에 입당한 이유는 설명할 수 있지만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이유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물어보면 "이 분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고 내가 지지하는 분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 이라고 할 뿐이다.(근데 세상 일이 한 가지 이유로 되는 건 아니다.) 원내진출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과 함께.

 

 

 민주노동당에 대해 알게 된 건 안티조선을 했다거나 정치캠프에 참가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냥 노사모였던 스승과 친구들 덕분에 '전라디언'이란 말을 듣는 내 주위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그 쪽을 지지했던 게 '레드 컴플렉스' 에 조금은 자유로웠던 거 같다. 그리고 97년 딱딱하게 TV 연설을 하고 있던 한 후보를 향한 아버지의 극찬과 "경험이 많았어도" 라는 탄식을 기억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아버지는 다른 후보를 뽑았다. 아니 한 번도 진보정당을 찍어본 적이 없다. 활동가들의 글을 보면 한 번씩 나타나는 '자신의' 후보를 찍지 않는 조합원 중의 한 분이시다.) 덕분에 2002년 '이회창이랑 노무현은 알겠는데 그 옆에서 같이 토론한 사람은 누구야?' 라는 친구의 질문에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유들이 민주노동당을 더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입당까지 하게 만든 거 같다.

 

 

 민주노동당이 분당했을 때 수도 없이 나온 두 단어를 기억하는지? 바로 '자주파'와 '평등파' 말이다. 이런 구분이 좋다거나 정확한 건 아니지만 이분법적으로 선택하라 한다면 나는 '평등파' 계열이였다. 지인따라 노선이 결정되는 우리나라 운동권의 한계에 빠졌다라고 한다면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철저한 에고이스트인 내가 체감하기 힘든 통일담론 보다는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곳이 더 좋았다. 그리고 성장 가능성도 그 쪽이 더 크다고 생각되었다. 그랬기에 나는 정당한 방법으로 평등파 계열이 당권을 가져야 민주노동당이 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수로 노회찬 의원이 되길 소망했다. '불판'으로 시작한 촌철살인 멘트들로 민주노동당의 존재를 알게 했고 선거 당일 9선 김종필 총재를 물리치고 마지막 한 석을 얻어내며 17대 국회의 개혁성을 상징이 된 사람. 당선 이후에도 민주노동당의 대표선수로 자리매김한 의원. 나는 그를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도 자신의 생각을 설득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봤다. 그 친근함이 민주노동당을 바꿀 수 있을 걸로 봤다.(지금 생각해도 너무 순진했다. 아니 그 때도 순진하다 생각해 이런 얘기 아무에게도 안했다.)

 

 

 그 해 5월 1일 노동절에 나는 황광우란 분을 만났다. 1주일 전 방영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것과 달리 거친 이미지였다. 그의 이미지와 그가 내뿜는 카리스마로 인해 나는 주눅들었다.(덕택에 나는 아직도 황광우 선생님이 어렵다. 선생님이 싫어서 이야기를 안하는 게 아니다. 못하는 거다.) 하지만 자주 뵈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대부분 술을 마시며 ㅋㅋ) 무지한 내 머리 속을 채우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그 분이 내가 꼬맹이였을 때 노회찬의원 그리고 주대환 이란 분과 함께 인민노련이란 곳에서 함께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곧 '주대환' 이란 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동아리 방에 있어 읽은 적이 있던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을 수 있는가' 의 저자.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다큐멘터리 속에 나왔었지"  하지만 그가 인상깊게 다가오진 않았다. 노회찬 의원처럼 언론을 자주 타는 것도 아니고 황광우 선생님처럼 자주 볼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인 거 같다. 내가 그를 처음으로 대면한 건 10월 말에 있었던 '이재유 선생 60주기 추모식' 인 걸로 기억한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원내진출 이후 1기 지도부의 실패로 인한 우울함은 감출 수 없었다. 그 슬픔이 그가 전해 준 보드카로 전이되어 나는 원샷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2005년 '인천 트로이카' 라고 들었던 세 분에 대한 기억이다. 4년 후 노회찬 대표는 진보신당의 대표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2005년 당시 징계를 받고 있었던 황광우 선생님은 내가 입대한 이후 징계가 풀렸고 '철학콘서트'가 대박이 나 그의 직함까지 바꿀 수 있게 되었지만... 하여튼 지금 그의 땀이 남아있는 남원 연수원을 계속해서 지키며 지리산초록배움터 대표를 맡고 있고 전남대 철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주대환 선생님은 나눠진 두 정당을 모두 버리고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하셨고 사민주의에 대해 천착하고 계시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변절자' 란 이야기까지 듣고 있다.

 

 

 거기에 진보신당 최초의 국회의원이 된 조승수 의원도 인민노련이였고 골 때리는 말과 행동을 많이 하는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도 인민노련 출신이다.(그 쪽에서도 왼쪽이라던 글을 읽은 거 같은데) 총선 때마다 대동고에 프랑카드 걸게 만드는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도 인민노련 출신인 걸로 알고 있다. 거기에 계속해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변절 하신 분 그리고 생활인이 되신 분들까지. 그 분들의 기쁨과 좌절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드라마나 소설이 나오길 소망했으나 시대가 자꾸 우회전하기에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C급 경제학자라고 쓰고 동네 착한 형이라고 읽는'(내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우석훈 박사가 인민노련에 대한 책을 쓴단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그와 같이 작업을 하게 된 hendrix님 의 블로그에 가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나라에서 우석훈 박사는 제법 발언권이 큰 좌파 학자 중 한 명이다. 그가 움직인다면 80년대의 젊음과 2000년대의 젊음을 교류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 같다.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을 통해 25살의 베쓰볼 키드가 25살 황광우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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