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획득 자체가 나쁜걸까??

2011/07/08 23:29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보수쪽이 설정해 놓은 프레임에 말려들지 말라’ 이다. 격렬하게 저항해 봐야 적이 놓은 프레임 속에 있으면 적에게 이롭게 되기 때문이다.

 

요새 취업준비하며 드는 생각인데 ‘스펙’이라는 단어가 저런 경우의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굳이 진보진영 활동가가 아니더라도 현재 20대의 문제에 공감하며 청년들과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이력서를 조금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자격증 취득, 어학능력 향상 등에 필사의 노력을 다 하는 현재의 대학생들을 안쓰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런 노력들이 상당히 가치 있는 일인데...’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이 그와 관련된 능력이 있다는 걸 인증 받았다는 걸 의미하고 그건 그대로 자신의 실력이 된다. 과연 개인이 자신의 실력을 쌓는 게 문제가 되는 걸까? 이게 ‘누구에게 쓰임 받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문제가 되는 건데 몇몇 분들은 자격증 획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거 같다.

 

단체에 필요한 업무 중에 컴퓨터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 활동가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컴퓨터 활용 능력은 필수일 것이다.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할 때 활동가가 외국어 능력이 된다면 연대에 좀 더 좋은 환경이 될 것이다. 어떤 면에 있어서 활동가에게 실력은 꼭 갖춰야 할 요소이다. 그런데 ‘실력’이 ‘스펙’이란 단어로 바뀐다면? 거부감이 든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면 “본질이 나빠.” 라는 말 대신 ‘아’만 쓰고 ‘어’는 쓰지 않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공교롭게도 후배 중에 운동을 하는 친구는 없어 이런 조언을 오프라인에서 할 일은 없다. 그리고 다들 잘 할 거 같기도 하고. 그런데 만에 하나 자격증을 따거나 외국어 공부를 한다는 것에 러다이트 운동 수준으로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생각을 고치라고 말 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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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ㅂㅂ 이젠 너무 질린다.

2011/07/05 16:51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 시즌1 시절 받았던 상처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창당 이후 얼마 동안은 당내 조직이 없었다.

 

전진 논쟁이 있긴 했었지만 해체한 거나 마찬가지였고 몇몇 동호회가 생길 뿐이었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 였다고 할까??

 

 

당 게시판도 조직의 입장 같은 성명서나 논평 조의 글보다는

 

‘뭔가 해보자!!’ 라는 제안이나 ‘으쌰 으쌰!!’ 이런 분위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런 건강했던 판을 깬 사람이 아마 ㄷㅂㅂ이 아닐까 싶다.

 

긴 글에 맞지 않는 맞춤법 그리고 모든 걸 꿰뚫어 본다는 식의 논조.

 

문제는 ㄷㅂㅂ의 아류가 많아져 당게에 있던 건강함마저 잡아 먹어버린 것.

 

진보신당에게 닥친 비극에 시작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당의 학출 출신 엘리트주의와 싸우는 영웅인 양 글을 쓰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과대망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아고라에 뭘 올리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뿐이다.

 

 

최근 ㄷㅂㅂ이 중앙당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분을 지지한다며 글을 올리고 있다.

 

제발 정신 차리자.

 

당직자는 절대악이 아니라 당의 실무를 책임지고 시행하는 자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위를 할 권리는 있지만 비흡연자 앞에서 담배를 피고

 

큰 소리로 노래를 틀며 당직자가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박탈할 ‘권리’는 없다.

 

‘이런 권리를 박탈하는 건 당연한 거다’라고 생각하는 건 진보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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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이제 어디로 갈까??

2011/06/28 19:03

진보신당은 ‘샌드위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진보진영의 우측에 위치한 민주노동당과 좀 더 왼쪽에 위치한 사회당 사이.

 

덕분에 민주노동당, 사회당 대의원 대회의 축제 분위기는커녕 한 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민주주의에서 마찰과 논쟁은 항상 있는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는 건 정말 지친다.

 

‘2개월 후 당 대회를 통해 진보대통합에 대해 결정한다’는 결론이 탁월한 선택 같으면서도

 

당 내 싸움을 어떻게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내 의견이 ‘진보신당 역량 강화’에 강하지만

 

지난번의 아픔 때문에 통합파의 의견도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무엇보다 ‘진보신당 하나로’를 사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니 더욱 더 혼란스러운 걸까?

 

(쓰고 보니 박쥐같아 보이네.)

 

 

P.S <CINE 21>이 ‘영화를 뛰어 넘어 대한민국을 보여주는 영화잡지’ 라고 생각하며

 

<한겨레 21>가 최고 수준의 시사주간지라고 생각하지만

 

일간지로서의 <한겨레>는 신뢰하지 않는다.

 

왜 이 얘기를 하는 지는 대부분 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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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맞짱 토론 무산이 아쉽다.

2010/12/19 12:03

어제 무산된 오세훈 시장과 이인영 최고위원의 맞짱토론.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같은 경우 '오세훈 시장의 노림수에 이인영 위원이 왜 놀아나는 지 모르겠다' 며

 

트위터에서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기대를 가지게 했었다.

 

언론이 주목할 만한 맞짱 토론 제안이 이번 정부들어 처음으로 성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말기 정말 많은 공개 토론 제안이 오고 갔었던 걸로 기억한다.

 

비록 성사된 건 별로 없었지만 (정태인 - 노무현 공개토론, 노회찬 - 이석행 맞짱토론은 꼭 성사되길 바랬는데...)  

 

그 제안 자체만으로도 미디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던 거 같다.

 

이명박 정부 이후 소소하게나마 맞짱토론이 주고 간 걸로 알고 있긴 하지만

 

큰 이슈를 가지고 당사자 중 한 명이 공개토론을 제안한 건 없었던 거 같다.

 

이번 토론이 성사되고 흥행에 성공했다면 이후 더 많은 공개토론 제안이 나올 거 같고

 

이게 나름 대한민국에 침체되고 있는 소통 문화에 또 하나의 계기를 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조금은 어이 없는 이유로 이 토론이 성사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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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리영희 선생님의 타계 소식을 들었습니다.

 

2005년이었죠.

 

제가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고 학생당원들과 했던 첫 세미나가

 

리영희 선생의 자서전인 '대화'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직접 뵌 적은 없었지만 그 책의 인연으로 최근 선생님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을 졸여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꼭 계셔야 하는 시기에 떠나보내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아픕니다.

 

비록 선생님께서 저희와 작별을 고하시지만 저희와 함께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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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고민, 삼성

2010/11/13 17:02

최근에 사회과학방법론 수업을 들으면서 접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복잡계 경제학이다.

 

이 수업에서 복잡계를 이론적 토대로 가지고 계신 교수님이 특강을 하며

 

이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가 ‘자기 조직의 경제’자기 조직의 경제라는 복잡계 경제학의 설명서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복잡계 자체에 대해 알고 싶어 책 검색에 ‘복잡계’를 쳐 봤다.

 

내 목적과 딱 맞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복잡계 개론’

 복잡계 개론 - 세상을 움직이는 숨겨진 질서 읽기

 

 

그런데 출판사를 보니 ‘뜨억!’ 삼성경제연구소다.

 

사고 싶어도 김상봉 교수님 얼굴이 생각나니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지난 지방선거시기에 한 번 있었다.

 

‘경제가 좋아졌다’고 주장하는 한나라당 후보에 맞서기 위해

 

서민의 체감 경제에 대한 통계를 찾고 있었다.

 

딱 우리의 입맛에 맞는 통계가 하나 있었다.

 

‘경제행복도 지수’

 

그런데 이걸 만든 곳을 보니 ‘뜨억!’ 삼성경제연구소였다.

 

후원회장이시던 김상봉 교수가 토론회에서 ‘우리 안 뽑아도 좋으니 삼성 불매’를 외쳤는데

 

그 후보는 삼성경제연구소 자료를 썼다는 비아냥이 무서워 보고 안했다.

 

 

이와 같은 딜레마에 빠질 때가 종종 있다.

 

여자친구가 디지털 카메라를 살 때 삼성 제품은 ‘No' 했다가 핀잔 받았고

 

내 동생이 YEPP을 샀을 때 안 좋게 이야기 했다가 좋은 말 듣지 못했다.

 

그리고 나 같은 경우 부끄럽지만 신한체크카드가 CGV 포인트 카드 기능도 하고 있다.

 

 

진보신당 당원인 나야 삼성제품을 최대한 안 쓰는 건 감수할 수 있지만

 

당원인 아닌 사람들에게 ‘삼성 불매’를 요구하는 게 불편함을 가지고 살라고 강요하는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곳곳에 삼성의 손길이 느껴진다.

 

거기에 ‘E마트 피자’ 논란처럼 경제적인 면을 봤을 때

 

삼성 제품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기기도 하고.

 

전선이 너무나 불리하게 느껴지니 조금은 슬퍼지려 한다.

 

 

 

(그나저나 ‘복잡계 개론’ 사야 돼 말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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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블로그 선언

2010/04/16 11:29

기본소득 블로그 선언



이 도시에 남은 것은 성장주의 체제와 그를 보호하기 위한 과시적 통치 뿐이다. 이 나라의 모든 도시는 외환위기와 금융자본주의의 과도기를 지나며 저마다 상표가 붙여졌고, 모든 공기업은 공공성이 아닌 매출액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개인의 주거권, 사회권, 참정권은 물론이고 목숨 그 자체마저도 손익률에 기준해 평가되는 지금, 모든 도시민 역시 성장연합의 상업적 소유품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수탈 체제는 모든 사회공공성을 파괴하고 개인의 삶마저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탈당하는 것은 현재와 과거 뿐만이 아니다. 고작 1년 동안, 10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금융채무자라는 굴레를 덮어썼다.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빠르게 수탈당하고 있다. 아비규환의 땅 위에서 정권은 이 나라가 선진국의 국격을 이룩했다며 축배를 들고, 우리가 쌓아올린 것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 아니다. 가당치 않게도 민주공화국이란 상표로 포장된 이 나라에서, 우리는 정치경제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모두는 오로지 자산이고, 자원이며, 상품일 뿐이다.

생계를 잇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쌓여가는데도 지배자들은 우리에게 더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파업하지 말고, 투쟁하지 말고, 노동조합조차 만들지 말고, 눈을 낮추고, 일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우리에겐 일할 자리도 없다.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어떠한 공공재도, 어떠한 자연적 유산도 허락하지 않는다. 교통과 역사를 자본에게 넘겨주고, 강과 산을 개발산업에게 제물로 바치고, 급기야 사람마저도 생산하려 든다. 자녀를 생산하지 않은 게으른 부모에겐 복지를 제한하고, 지하철 역사에는 자녀를 많이 생산하지 않은 자를 죄인으로 묘사하는 광고를 붙이고 있다. 우리에겐 사회권도, 주권도, 생존권도, 그 어떠한 인격도 없다. 경제적으로 배제된 모든 이들은 인간사회로부터도 배제되었다.

봉쇄된 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배제된 인격에게는 등가교환의 시장적 권리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법과 원칙’이라는 칼날을 들이대지만, 있는 자는 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지난해 정권에 의해 단행된 이건희의 단독특별사면은 만인이 법 앞에 불평등하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을 역사에 각인했다. 만민의 자유를 탈취한 자들은 스스로에게 자유주의라는 기만적 명분을 휘장 삼아 두른다. 그 휘장 아래에서 빈민의 자유는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상의 자유는 법적으로도 통제당한다. 그들은 심지어 자유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지키자고 주장한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지배할 자유이며, 착취할 자유이고, 수탈할 자유다. 피지배자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통제당하는 그들만의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독립되지 않은 그 어떤 누구도 법의 주인이, 국가의 주인이, 사회의 주인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법의 주인, 국가의 주인, 사회의 주인, 자신의 주인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기에.

공화적 자유는 타인의 지배와 간섭 위에서는 보편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사회의 오랜 역사가 이를 실증해 왔고, 오늘날 정권이 노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용산 남일당에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난입한 경찰과 용역들은 지배자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과 맞서 싸운 구사대는 자본가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침략전쟁에 나선 파병군인들은 관료들이었던가? 아니다. 모두가 빈민, 부자유한 자, 그리고 노동자였다. 상처를 주는 역할도, 상처를 받는 역할도 부자유한 자들의 몫이다. 부자유한 우리는 점점 더 악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본질적 모습이 아니다.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습일 뿐이다. 물질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들에게 지배와 간섭은 일상이다.

수탈당한 자유와 권리는 구걸로 돌려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흥정으로 돌려받을 수도 없다. 애시당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수탈당한 우리가 흥정할 자산이 어디에 남아있는가? 수탈당한 모든 것을 돌려받을 방법은 역수탈 뿐이다. 이윤으로 전환된 모든 개인의 삶, 기여 없이 증식하는 자본가치, 이 모든 것은 보편적 개인이 돌려받아야 한다. 모든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은 강제적 환수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사회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삶에 필요한 제반요건을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부자유는 오직 ‘탈취의 부자유’ 뿐이다. 오직 우리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1조는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나라이며, 모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실질적 자유를 가지는 나라이다. 국민주권은 국민 모두의 복지라는 사회경제적인 기본 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보편적이고 충분한 복지는 민주공화국의 기초적 토대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모든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노동이나 자산, 가족관계나 그 어떤 것도 민주공화국의 복지를 위한 거래대상이 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의 복지는 보편적이며, 조건이 없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모든 국민은 그들이 실질적인 주권자가 되기 위하여 물질적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억류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이며,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요구이다. 억류된 자유를 해방하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라.


2010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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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때 일했던 시민단체와 좋아하는 형이 주축으로 일하는 교육운동단체가 KBS 광주 총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공부의 신>이 함량 미달이라는 것이었다.

 

이 기자회견을 기사로 작성한 미디어스 홈페이지를 보니 댓글이 장난 아니다.(여기) 기자회견의 내용과 관계없이 이 단체들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이런 공격을 받는 데 마음이 아프다.

 

물론 나도 이 기자회견을 연 건 실책이었다고 생각한다. 항의 할 거였다면 서울 원정을 가야하는 거 아니었을까? 두 곳 다 광주에만 있는 단체가 아니고 전국적인 시민단체의 광주지부다. 전국의 지부 모두가 모여서 이에 대해 항의하고 제작진을 만나는 시도를 하는 게 더 생산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댓글을 단 사람들 말처럼 시청자들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해하지 말자.' 라는 생각이 더 강하다.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더 고민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너무 투박하게 접근했다.

 

하지만 전술이 잘못되었다고 이 전투의 명분이 훼손당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들이 왜 이런 기자회견을 열게 되었는 지에 대한 배경을 한 번은 생각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호적인 제 3자의 입장에서 이들에 대해 변론을 하고자 한다.

(제목에 '변론'이란 단어를 붙인 것과 '우호적' 이라는 단어를 붙인 건 주관적으로 이야기하겠다는 거다. 주관적으로 이야기 하는 거니 필자의 글에 대해 비판하셔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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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의 기자회견을 담은 사진.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출소자란 단어는 반감을 살만 하다. 출연 배우들의 팬들이 분노시키기 때문이다.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근본주의자(?)들의 지적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려운 사람에 대해 도와주는 봉사가 전부가 되어야 하는가? 일시적인 원조뿐만 아니라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모순을 고치는 것도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는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미담을 소개 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들을 없애는 행동도 같이 선행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사회복지와 관련된 학과를 다니며 강단에서만 배우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 준 이야기였다.

 

교육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대학 진학으로 인한 좌절을 없애는 건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다. 더 좋은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여 상위대학이라고 규정받는 곳으로 진학시키려 도와주는 미시적인 방법과 대학을 서열화 시키는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을 바꾸는 거시적인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그 형은 거시적인 방법에 천착을 한다. 강준만 교수는 책에서 '진보적 근본주의자'로 표현을 하던데 하여튼 뭐 그렇다.(개인적으로 이런 딱지가 붙는 데 찬성하지 않는다.) 그런 형이 보기에 강석호 변호사의 해결책은 불편했을 것이다. 최고라고 불리는 천하대 진학을 전제로 깔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의의 달인을 붙여논다고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 건 매한가지다.

 

산을 오르는 데 등산로로 간다고 해서 편하게 간다고 뭐라 할 수 없고 암벽등반으로 간다고 해서 겂 없다고 뭐라 할 필요는 없다. 이해할 순 없더라도 '다른 생각도 있군' 하고 그냥 지나쳐 주거나 근본주의자(?)들의 의견에 관심을 가져주면 감사할 거 같다.

 

드라마의 파급력을 무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드라마인데' 라는 이야기에 무조건 적으로 동의하긴 힘들다. E.H 카는 <역사는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이야기 하였다. 대중문화도 마찬가지다. 대중문화도 작품과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비틀즈의 'Let It Be'가 좋은 경우일 것이다. 베트남 전에 대한 반전 분위기는 비틀즈가 'Let It Be'를 부르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반전의 메세지를 고조시켰다. <불멸의 이순신>이 독도 논쟁, <주몽>이 동북공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좋은 예일 것이다.

 

<공부의 신>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를 보며 수험생들에게 '할 수 있어!' 라는 의지를 일깨워 줄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이 드라마의 긍정적인 면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자칫 대한민국 교육의 '1등지상주의'라는 모순을 미화시킬 수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하기 힘들다.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준)과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는 게 죄라면 죄이다.

 

올해 5월 방영 예정에 있는 <자이언트>도 이런 이유로 일어난 논란일 것이다. 본래 시놉시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드라마 소재가 바뀌었고 그 소재가 6~70년대 도시개발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 현 대통령이 언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방영예정시기가 지방선거가 최고의 이슈가 되는 시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캐스팅 물망에 오르는 배우의 팬들이 반발하고 피디가 그 배우의 갤에 글을 남기는 사건은 드라마를 드라마로만 본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개인적으로 황정음씨 팬인데 맘 같아서는 도시락 싸들고 말리고 싶다. 꼭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것이 필자가 이 기자회견에 동의하는 이유이다. 이상 변론을 마쳤다. 이에 반대하시는 분들은 코멘트를 날려 주시길 바란다.

 

P.S 다만 지역드립은 안 해주시길 바란다. 광주전남이 전교조의 고장이라는 말은 여기서 처음 들어본다. 이는 태어나고 사는 게 하필 이 곳인 사람들에 대한 모욕임과 동시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타 지역의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스에 기고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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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 전까지 진보대통합의 공동합의문을 만들겠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오늘 '레디앙'에서 이수호 최고위원이 '진보정치 대통합 추진위원회(통추위)' 위원장을 맡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쪽 동네에서 일어나는 인사이동이야 내가 언급할 이유가 없다만, 자꾸 지방선거 전 진보대통합을 하자는 저 쪽의 주장이 이해가 되지 않기에 이렇게 글을 올리려 한다. 과거 패권주의 이야기 해 봐야 소득없이 얼굴만 붉히는 이야기가 될테니 하지는 않으련다.

 

그리고 진보신당의 당원 분포를 보면 탈당파 보다 촛불당원이 많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겠다. 이미 많은 분들이 반대의 이유로 많이 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주장에 동의 할 수 없는 부분이 두 가지 정도 있다.

 

우선 첫번 째 통합의 목적은 '1+1=2+@'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랑 진보신당이 합치면 2+@가 될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은 이걸 너무 간과하는 거 같다. 우선 '분당에 찬성했건만 다시 합친다니 떠나야 겠다'고 맘 먹는 활동가들이 존재할 거다.(아마 선도 탈당파라고 불리던 분들 중에 이럴 분들이 많을 듯.) 또한 지못미 당원 중 통합 이후 기존 운동권 문화에 적응을 하지 못해 떠나는 분들은 분명 통합한 당에 -@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통합의 이유로 자주 등장하는 '분당 과정에서 둘 다 선택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분'들이 기계적으로 통합한 당에 들어올리 만무하다. 너무나도 쉽게 그려지는 상황을 왜 생각 안하는 지 모를 일이다.

 

두 번째 과연 국민들에게 두 당의 합당이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민주노동당에 민주노총 국민파 분들이 참여하는 걸로 알고 있다. 국민파의 어원이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라던데 정작 노동운동이 아닌 정치에서는 국민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는 지 모르겠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열린우리당과 합당했을 때,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당했을 때 둘의 공통점을 아시는지? 국민들에게 '도로' 라는 비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한 당에서는 '도로 민주노동당' 이란 비판을 피할 수 있을까? 그들과 달리 명분이 있다고? 웃기지 마라. 국민들 눈에는 강기갑, 이정희, 노회찬, 조승수 다 좀 더 정직하고 열심히 하는 정치인일 뿐이고 당을 합친 것도 정계개편 속에서 일어난 일로만 볼 것이다.(양파의 껍질만을 본다는 거다.)

 

2006 지방선거를 염두해 두고 1년 가까이 준비했던 국민중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급박한 통합논의는 국민중심당보다 더한 몰락을 가져다 줄 거 같다. 하늘이 진보에게 준 기회를 이렇게 놓칠 순 없지 않은가. 개그콘서트에서 강기갑 대표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는 박성호씨의 대사처럼 "괜히 통합하자 했어, 괜히 통합하자 했어."라고 외치는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미리 심사숙고 하고 내뱉자.

 

P.S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속에 있는 기사를 보니까 필명 '바위처럼'님이 중앙대의원이 되었다고 나와있네요. 그런데 그 분을 소개하는 부분에 '대표 필진' 이라고 나와 있던데. 논객이라 불리우는 자는 최소한 깊이로 어려움을 주지 번잡함으로 어려움을 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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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0/01/09 13:26

제게 용산은 용산역이 있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습니다.

휴가 나올 때 KTX를 타야 하기에 지하철을 통해 역사로 들어갔지요.

덕분에 역사 밖으로 나간 거라고는 말년 휴가 복귀 때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내려간 것 한 번뿐이었습니다.

최소한 2009년 1월 20일까지는 용산은 용산역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2009년 1월 19일 어느 언론사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단신을 접했습니다.

용산 철거민들에 대해 경찰이 진압을 할 계획이라는 이야기였지요.

추위와 용역들과 경찰들의 괴롭힘에 괴로울텐데 별 일 없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컴퓨터를 켜 보니...

 

오늘 355일 만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사회모순으로 인해 사람이 죽었고 1년 가까운 시간동안 치루지 못했던 장례식임에도 불구하고 생방송으로 이를 국민들에게 알려주는 방송사가 없네요.

이런 글을 올리고 있는 저조차도 제 앞길이 바쁘다는 핑계로 유족들의 투쟁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으니 방송사들을 욕 할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다만 이번 장례식이 이번 용산 참사-백기완 선생님은 '용산 학살'이라고 표현하시더군요. 그 용어가 극단적으로 들리지 않습니다.-해결의 끝이 아니라 중간 단계에 와 있다는 걸 이 블로그를 들어오시는 분들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만약 끝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자체가 하나의 망루가 되어 국민들이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다섯 열사분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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