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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란히톤 - loci communes - 2 (자유의지)

1. 인간의 능력, 특히 자유 의지에(liberum arbitrium) 관하여


아우구스티누스와 베른하르트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는 자유 의지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그리고 전자는 알다시피  펠라기우스파를 대항하여 집필한 후기 저서들에서 예전에 한 말을 여러 번 철회했다. 베른하르트 [또한] 한결같이 않았다1. 이 주제에 관하여서는 그리스인들 사이에도 이런저런 애기들이 있지만 산만할 뿐이다. 나는 정말 사람들의 의견을 추종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사태를,  성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성서와 함께 동시에 인간 이성(ratio)의 판단을 충족시키기를 원했던 옛날 저자들과 새로운 저자들이 번갈아 가면서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이 사태를,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드러내고 싶을 뿐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죄를 짓게 된다고 가르치는 게 관용이 빈약하고 세련된 에티켓이 없는 무례한 놈(parum civile)으로 비치고, 자신을 악습에서 덕으로 옮길 힘이 없는 의지를 꾸짖는 게 무자비하게 비친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인간의 능력에 어울리지 않게 사실보다 더 많은 능력을 할당하는데 그 모습이 놀랍게도 천차만별이다. 이유는 성서가 이러나저러나 항상 이성의 판단과 모순 관계라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자유 의지란] 이 관점의 영역에,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철저하게 철학과 인간 이성과 구별됨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쥐도 새도 모르게(sensim) 그리스도교에 기어 들어와  자유 의지란 타락한 (impius) 도그마가 수용되고 그리스도가 행하신 선한 일들을 저 더럽고(profanus) 허구한(animalis) 인간 이성의 지혜로 어둡게 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뜻하시는 바와 판단과는 완전히 딴판인(alienissima) 자유 의지란 말(vox liberi arbitrii)이 통용되었다.  우리가 보건데, 이 말의 [덧에 걸려] 성인들조차 헛발질하고 넘어지지 일쑤였다. 여기에 플라톤의 철학에서 뽑아온 이성이라는 단어가(vocabulum rationis) 더해졌다. 똑같이 망하는 길로 이끄는 말이다. [중세] 교회에서 그리스도 대신 아리스토텔레스를 끌어안았듯이 교회가 세워지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이미 그리스도 가르침(doctrina)이 바로 플라톤 철학에 의해서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그 결과 교회에 정경[성경]외 왜곡되지(sincerus) 않은 글이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주석을 달고 전해지는 모든 게 철학 냄새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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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멜란히톤 역시 나중엔 [신학총론 등에서] 경배의 대상이라고 한 신, 삼위일체 등에 이런저런 말을 한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멜란히톤 - loci communes - 1

[번역: Melanchton, Loci Communes seu Hypotyposes Theologicae, 1521]

 

신학의 주요 관점(loci communes) 혹은  [본이 되는/본받아야 하는, 딤후 1.13] 전형(hypotyposes)

 

각 학문마다 보통 그 전체를(summa) 담고 있는가 하면 동시에 그 목표로서 모든 연구를 지도하는 몇몇의 주요 관점들을 정리한다. 신학에서도 옛 교부들이 이런 [관례를] 따른 걸 볼 수 있다. 다만 흔치 않고 볼품이 없다. 최근의 교부들 중에서는 다마스케누스와 롬바르두스의 [정리를 예로] 들 수 있는데, 둘 다 쓸모가 없다. 다마스케누스는 너무 철학에 치우쳐 있고, 롬바르두스는 성경의 말씀을(sententia) 전하기(referre)보다는 인간의 생각들을(opiniones) 주워 모으는데 급급하다. 앞에서 이야기했다시피, 이런 유의 대전(summa)으로 학생들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생각이야 없지만, 그래도 연구가 어느 방향으로 지도되어야 하는지 인식할 수 있도록 어떤 주요 관점들에 사태의 전체가(summa) 달려있는지 최소한 암시해 주는 게 필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과 같이 대략  신학의 주요 관점들을 정리해 본다.

 

신 - 하나님 (Unus) – 삼위(Trinus) – 창조 - 인간, 인간의 능력 (vires) – 죄 - 죄의 열매, 악습 – 벌 – 율법 – 약속 - 그리스도에 의한 거듭 태어남 – 은혜 - 은혜의 열매 – 믿음 – 소망 – 사랑 – 예정 - 성사적인 표징(signa sacramentalia) - 인간의 신분(hominum status) - 공권력(magistratus/위에 있는 권세) - 주교 – 저주[지옥행] - 복(beatitudo)

 

이런 주요 관점들 중 몇몇은 [당장은] 전혀 (prorsus/[앞으로 있을 결과를 봐야 비로소 이해되는?]) 이해할 수 없으나, 다른 몇몇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이라면 모두가 [듣고 경험한 것을 돌이켜보면서?](rursus) 최대한 엄밀하게 깨닫기를 원하신다. 신성의 비밀들은 우리가 경배해야지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신성의 비밀들을 조사의 대상으로 삼고 시험하는 건(tentari), 성인들조차 몸소 자주 경험해야만 했듯이, 항상 커다란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선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성자를 육신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보내 시사 그로 하여금 우리를 하나님의 존엄을 바라보는 일에서 육신을, 곧 우리들의 허무함을(fragilitas) 바라보게 하는 데로 인도하시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 또한 고린도 교회에 서신을 보내어(고전 1.21) 지혜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세상이 자기 지혜로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stultitia praedicationis)으로, 즉 온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 하였다. 따라서 신학의 가장 고귀한  주요 관점들, 즉 신, 유일성, 삼위성, 창조의 비밀, 성육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탐구하는데] 그토록 많은 노력을 투자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네게 묻겠는데 단지 이런 주요 관점들만 가지고 수백 년 동안 엎치락뒤치락해온  스콜라 신학들이 달성한 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이 주고받은 말들이(disceptatio),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공허한 것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평생 동안 고작 보편적인 것, 형식적인 것, 주해 등 여기 다 나열할 수 없는 무의미한 말들을 놓고 지껄이다가 그걸 기록하기만 했기에 그렇지 않았는가? 그들이 주고받은 멍청한 말들이 복음과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선하신 일들을 어둡게 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의 미련함을 가만 놔 둘 수도 있겠다. 이런 하찮은 것들을 놓고 내게 통찰력이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게 딱 내키지는 않지만, 하려고 한다면 그들이 교조적인 믿음의 증명이라고 내놓는 것들은 모두 쉽게 무너뜨릴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증명들을 제시하는 그들이야말로 [정말] 가톨릭의 교리보다 일종의  이단들을 더 지지하는 게 아닌가 한다. 그 외 나머지 주요 관점들, 즉 죄의 권능, 율법, 은혜 등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어떻게 그리스도 인이라고 칭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런 주요 관점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만 [비로소] 그리스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건 그가 행하신 선한 일들을 아는 것이지 저들이 가르치는 것, 즉 그리스도의 본성이나 그의 성육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눈 여겨 보는 게 아니다.  어떤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하셨는지 모른다면, 그 생의 줄거리를(historia) 줄줄 아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의사가 약초의 형상과 색깔을 알고 그 겉모양을 그릴 줄만 안다면, 그걸로 충분한가? 약초의 본능인 치유하는 힘을 아는 것, 이게 중요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우리는 치유제로, 성경의 말씀을 따르자면 구원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스콜라 학자들이 제시한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알고자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부터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공급 받을 수 있는지, 어디로부터 죄사함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미끄러져 넘어지는 정신을 일으켜 세워 악마와 육신과 세상을 대항하게 할 수 있는지, 어떻게 깨진 양심을 위로할 수 있는지 등을 아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 인의 앎이 될 것이다.  스콜라 학자들이 이런 걸 가르치는가?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그리스도 인의 가르침의 개요를 집필할 때 삼위일체의 비밀, 성육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능동적인 창조, 수동적인 창조 등을 놓고 철학 했는가? 아니면 뭘 다뤘는가? 그리스도의 앎을 온통 담보하는 주요 관점, 즉 율법과 죄와 은혜를 다룬 게 확실치 않는가. 사도 바울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폭넓은 앎을 얻기 바란다고 [셀 수 없이] 증언한다. 이유는 구원의 주요 관점들을 방기하면 우리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정신을 생명이 없고(frigidus) 그리스도와는 동 떨어진 논쟁으로 돌릴 거라고 미리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심어 주고(commendare), 양심을 강건하게 하고(confirmare), 정신을 일으켜 세워 사탄에 대항하게 하는 주요 관점들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자(rationem delineare)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에서 단지 덕과 악습에 관한 상투적인 지침들(locos) 만을 주문한다. 그러나 이 따위 일에 신경을 쓰는 건 철학자나 할 일이지 그리스도 인이 할 일은 아니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지 잠시 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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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1.

 

미국 극우매체 브라이트바트( Breitbart)한테서 배운 것처럼 보이는 자한당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 폄훼극에 여기 예술인생님의 포스팅이 떠오른다

 

동시에 90년대의 전환 속에서 광주는민주화운동으로폄훼되었다.“ (http://blog.jinbo.net/alternativeasia/327)

 

진리라는 생명이 있는 , 현실이 되려는 충동과 경향이 있는 거라면, 누가 진리로부터 떨어져있는지 모르겠다. 5.18 생명력을 거세한 마찬가지가 아닌가?

 

 

2.

 

저런 극이 자행될 때마다 쇼아를 부인하는 행위를 형법으로 다스리는 독일 사례가 등장한다. 5.18 광주가 그져 도살장으로 끌려간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이런 아니었던가?

 

(홍성담:대동세상)

 

 

 

3. 

 

5.18 가죽을 벗겨 자들이 어디서 주서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뼈다귀처럼 보이는 것을 보여주면서광주!“ 하는 몇몇을 이구동성멍청이 나무란다. 그러나 먹혀들어 거다. 가죽이나 뼈다귀나 생명이 없는 마찬가지

 

4.  

 

짝퉁 제국주의자“(정희진) 반열에 오른 한국에서 5.18 광주는 아마 게세당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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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5

베네수엘라 분쟁에 관한 독일방송(Deutschlandfunk/도이치란트풍크)의 평론이 사뭇 다르다. 들어가는 몇 줄을 번역한다.

 

원문

 

 

...

이건 식민지 시대로 굴러떨어지는 뒷걸음질이다. 베를린 외무성은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후안 과이도를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했다. 현직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의 정당성을 부인한 것이다. [헛것이 보이나 싶어서] 눈을 비벼본다. 지구 남반구 국가들에 대한 유럽의 온정주의자 정치의 시대가 영원히 막을 내리지 않았던가? 파렴치하게 독일 외무상 하이코 마쓰(Heiko Maas)가 베네수엘라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를, 굶주리고 의료혜택이 열악한 베네수엘라 주민들의 고통을 내세우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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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메크켈 총리의 당수로서의 마지막 연설 일부

메르켈 총리의 권력이양 계획이 잘(?)진행되고 있다. 기독민주연합 내 남성동맹인 안덴동맹의 마지막 교란사격을 잘 막았다. 당수로서의 마지막 연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이 연설에서 참 기독교인 메르켈이 보인다. 특히 복음서적인  "마음에 [가득한] 기쁨"이 정치와 삶의 원동력이었다는 고백이 참 인상적이다. 

해당 부분 원문과 번역을 올린다.

https://youtu.be/4pra6GYN5qM

(27분 30초 에서 29분 30초 까지)

 

원문:

Was wünschen wir einander?

Ich wünsche mir für uns gemeinsam, dass wir auch in schwersten Stunden, seien die Aufgaben noch so komplex und die Anfechtung von außen auch noch so stark, nie vergessen, was die christdemokratische Haltung ausmacht.

Wir Christdemokraten grenzen uns ab, aber niemals grenzen wir aus.

Wir Christdemokraten streiten, und zwar nicht zu knapp, aber niemals hetzen wir oder machen andere Menschen nieder.

Wir Christdemokraten machen keine Unterschiede bei der Würde des Menschen. Wir spielen niemanden gegen den Anderen aus.

Wir Christdemokraten verlieren uns nicht in Selbstbeschäftigung und Selbstbespiegelung. Wir Christdemokraten dienen den Menschen unseres Landes.

Die Zukunft wird von uns alles abverlangen, was wir an Kraft haben, um unsere Werte zu behaupten und zu bewahren. Die Zukunft gut gestalten können wir nur, wenn wir uns nicht mit Missmut, mit Missgunst, mit Pessimismus, sondern immer mit Fröhlichkeit im Herzen an die Arbeit machen. So habe ich es immer für mich gehalten, in meinem Leben in der DDR und erst recht und um so mehr unter den Bedingungen der Freiheit. Es ist diese Fröhlichkeit im Herzen, die ich meiner Partei auch für die Zukunft wünsche.

 

번역:

우리가 서로 소원하는 게 있다면 뭘까요? 저는 우리 모두가 다음과 같은 걸 서로 소원했으면 합니다. 힘들기 짝이 없는 시대에 빠지더라도, 주어진 과제가 감당하기 어렵게 복잡하고, 또 밖으로부터의 시련이 감당하기 힘들게 거세더라도, 기독교-민주주의의 마음가짐(Haltung)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결코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민주연합 당원들은 우리 자신을 차별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배제하지 않습니다.   

우리 기독민주연합 당원들은 실컷 말다툼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들을 몰이[사냥] 하거나 깔아뭉개지 않습니다.

우리 기독민주연합 당원들은 인간의 존엄성이 걸린 일이라면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결코 타자와 타자를 서로 반목하게 만들어 어부지리를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 기독민주연합 당원들은 자신을 지켜 자기만족과 자아 도취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 기독민주연합 당원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봉사합니다.

우리의 [이런] 가치를 주장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미래는 우리에게 있는 힘을 다 내놓으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좋은 미래 건설은 우리가 불만, 질투, 비관이 아니라 오로지 오히려 마음에 [가득한] 기쁨으로 일을 착수할 때 가능합니다. 저는 항상 그런 마음가짐이었습니다. 동독(DDR)의 삶에서 그랬고, 자유의 조건 아래에서 한층 더 그랬습니다. 제가 당이 미래에도 간직하기를 소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마음에 [가득한]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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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독일 역사블럭(Blocco Storico)의 재구성

 

제목이 거창하다.

 

유럽 통합과 함께 진행된 통독 이후 독일 정치 지형이 점진적으로 변해 왔다.  

 

정당으로 국한하자면 통독전 서독 역사블럭은 기독/기사연합과 사민당,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정권 창출의 추가 되었던 자유민주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민권에 방점을 두는 리버럴한 세력과 자유[질서]시장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이 공존하는 자유민주당에서 누가 당권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연정이 정해지고 차기 정권이 창출되어 왔다.

 

그러나 유로위기와 난민사태를 거치면서 이 기존 역사블럭이 재조직되고 있다.

 

이게 지난 총선 후, 무산되었지만 이른바 자메이카 연정으로 불리는 흑황녹 연정 협상으로 가시화되었다. 현재 진행 중인 난민사태에서 지난 2015년 가을 독일국경을 부분적으로 연 메르켈 총리가 기대고 있던 지지기반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산업예비군/전문기술자/인구구성 문제의 해결을 원하는 자본 세력(Fraktion), 유럽의 정체성으로서의 인권을 내세운 녹색당으로 대표되는 좌파리버럴 세력(Fraktion)이 [노동력/주민의 자유이동과 함께 자본의 이동에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는] 쉥엔공간을 지키자는 기민/기사연합아래 모인 것이다. 기독/기사연합, 자유민주당, 그리고 녹색당이 거의 연정구성에 까지 갔다. 녹색당 당수는 터키계 이민 2세였다.

 

이 블럭이 정권 창출은 고사하고 붕괴되고 있다. 재조직되고 있다.

 

가시적으로 그 이유는 독일대안당 AfD의 연방의회 진출에 있다. 뜬금없는 게 아니다. (관련 자세한 내용은 다음으로...)

 

독일 “민주주의”형태가 달라질 게 분명하다.

 

“헤게모니 시스템 아래 민주주의는 지도하는 그룹과 지도를 받는 그룹 사이에서 존재한다. 그 존재의 정도는 [경제 발전과 따라서] [그런 발전을 표현하는] 입법이 얼마 만큼이나 {특히 지식인들의} 지도를 받는 그룹들로부터 지도하는 그룹으로의 [분자적인] 통과를 장려하는지에 달려있다.”(그람시, 옥중수고 8,§191)

(“Nel sistema egemonico, esiste democrazia tra il gruppo dirigente e i gruppi diretti, nella misura in cui [lo sviluppo dell’economia e quindi] la legislazione [che esprime tale sviluppo] favorisce il passaggio [molecolare] dai gruppi diretti al gruppo dirigente.”)

 

지도 그룹으로 AfD의 극극우 친/네오나치 회케(B. Höcke) 등이 이동하고 있다. 독일 역사블럭으로의 이동을 지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문화 정책과 사회통합의 얼굴마담 역할을 했던 터키계 2세 독일축구 국가대표 외질이 은퇴선언을 했다.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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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난민레짐과 국가사회주의

B. 회케 :

"Wir können, wir sollten und wir werden im Kraftfeld von Identität und Solidarität operieren."  "우리는 정체성[국가국민/민족]과 연대[국민/민족연대]의 역장에서 활동할 수 있고, 그러한 사명을 받았으며, 또 그 일을 수행할 것이다."

(독일 극우 정당 AfD (독일을 위한 대안)의 극우/친나치파 대표 회케의 2018년 6월 30일 전당대회 연설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slv0xn4cvgI 2분 50초 이하)

 

Serhat Karakayali (Transit Migration Forschungsgruppe)
 

Die natioal-sozialen Zuege des Migrationskompromisses wurden unter dem Nationalsozialismus reorganisiert. (…) Neuere Arbeiten haben gezeigt, dass das “Soziale” keineswegs ausschliesslich ideologische Blendung war, sondern sein materielles Substrat in der Bereicherung und Umverteilung geraubter Vermoegen von Juden und Besatzungslaendern hatte. Die radikale Version der Unterschichtung und Ausbeutung von AuslaenderInnen als ZwangsarbeiterInnen in Deutschland durch den Nationalsozialismus kann als Teil dieser national-sozialen  Konstellation gesehen werden. Der Begriff des “national-sozialen Staats”, wie von Balibar vorgeschlagen, reflektiert eine Rationalitaet, die auch im Nationalsozialismus zur Wirkung kam. Letzteren “nur” als irrationalen Exzess oder “Zivilisationsbruch” zu kennzeichnen verhindert, sowohl den Nationalsozialismus als ein Ensemble gesellschaftlicher Verhaeltnisse zu analysieren, als auch , die systematische Unschaerfe der Grenzen zwischen freier und unfreier Arbeit zu erkennen. Tatsaechlich stellt der national-soziale Staat eine Alternative zum Nationalsozialismus dar, insofern ersterer die Widersprueche ziwischen Nationform, Kapitalismus und Klassen auf andere Weise zu loesen bestrebt ist als letzterer. (Serhat Karakayali, Gespenster der Migration: Zur Genealogie der Migration i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이민의 유령: 독일연방공화국 이민의 계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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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정 - 유럽이념사 (악셀 호네트)

이 책이다.

도이치란트풍크(Deutschlandfunk)의 "존재와 언쟁"(Sein und Streit)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소개한다.

- 해당 부분은 약 7분대에서 시작 

- 거칠게 번역함. 더 자세히 보려면 아래 옮겨쓰기 혹은 위 링크에서 듣기 

 

지모네 밀러:
최근 인정의 유럽이념사를 집필하셨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펴낸 저서 중 대표적인 몇 권을 언급하자면, <자유의 권리>, <우리 안의 나>, <물화>, <분배냐, 인정이냐> 등이 되겠다. 이런 집필을 통해서 인정 철학을 체계적으로 완성하셨다. 근데 최근 저서에서는 인정 문제를 이념사적으로 접근하셨다. 이런 관점 이동은 왜?

 

악셀 호네트:
그 동기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제자들과 수강생들을 통해서 우리가 인정이라고 하는 주체들 간의 상호관계, 즉 이성적인 삶의 형식과 자기 실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주체들이 이미 인정에 의존하고 있어야 한다는 인정의 동기와 그 핵심 개념이 다른 문화와 맥락에서는 아주 달리 평가되고 해석되어왔다는 항변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전통과 다른 관념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유럽에서 - 여기서 유럽이란 핵심적으로 다수의 유럽 국가문화 혹은 철학문화에서 프랑스, 영국, 그리고 독일 3국을 말하고 있다 - 인정이 처음부터 아주 다르게 해석되었다는 사실에 접하게 되었다. [이성적인 사회인으로서의 성장을 위해서는] 타자에 의한 인정에 이미 기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의 핵심이 무엇인지, 이게 앞의 전통들에서 아주 다르게 해석되었다. 그래서 우선 인정이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살펴보고, 그 다음 그런 사정에 어떤 특정한 사회-역사적인 원인이 있었는지 심사숙고하기를 원했다.  

 

지모네 밀러:
프랑스, 영국, 그리고 독일이란 이 세 흐름이 서로 아주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기원은 공통된 시기에 두었다. 언제 인정에 대한 질문이 사회적으로, 나아가 이론적으로도 핵심적인 사안이 되었나?

 

악셀 호네트:
진정 매우 흥미로운 사안이다. 이걸 나보다 먼저 추측한 저자들이 없는 건 아니다. 니클라스 루만이 이미 이런 추측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근본적으로 인정에 대한 질문이 의식에 등장하는 시기는 봉건주의의 고정된 신분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였다. 다시 말해서 각자가 태생 가문에 의해서, 출생에 의해서 –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  사회화에 의해서, 사회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떤 명성을 누리는지를 더 이상 확신하지 못하게 된 때였다. 결론적으로 신분을 규정하는 경직된 요소들과 함께 봉건질서가 해체되기 시작한 때였다. 이건 내가 연구한 앞의 세 문화 모두에 적용된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17세기에 이 질문이 파급력을 갖게 되었고, 내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앞의 3개국에서 아주 다르게 수용되고 소화되었다.

 

지모네 밀러:
프랑스의 흐름이 제일 뜻밖이다. 인정을 향한 인간의 분발이 궁극적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다고 평하기 때문이다. 루소에서 시작하여 궁극적으로 탈구조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론가들이 사회적 인정을 향한 열망이 자아 상실의 위험과 교차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인정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성격 규정이 뜬금없는 게 아니다는 게 제기하신 테제다. 그게 당시 몰락하는 앙시앵 레짐 프랑스의 사회적인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는 거다. 무슨 말인가?

 

악셀 호네트:
물론 매우 과감한 명제다. [인정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일찍이 프랑스 도덕주의자들에서 시작되었다. 라로슈푸코, 몽테뉴, 루소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은 사회적 인정을 향한 [각자의] 분발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회의적이었다. 인정을 향한 분발이 내가 진정 실제로 누구인지에 대한 불어나는 불확실성을 동반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내가 내 자신을 오로지 타자의 시각으로, 타자의 관점에서 지각하면 할수록, 내가 내 자신의 주체성에 입각하여 실제로 누구인지 더 알 수 없게 된다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이게 기나긴 기간 동안 프랑스 철학사에 적용된다. 추측컨대, 이건 프랑스 궁중에서의 *갑질전쟁*(구별짖기싸움)의 정도, 즉 *갑질*(구별짖기)가 사회적 지위 설정의 핵심적인 요소임과 동시에 핵심적인 수단이었던 중앙집권적인 사회와 연관이 있다. 당시 귀족 출신은, 그리고 이들의 뒤를 이어 부르주아는 무엇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이게 루소가 보기엔  - 그 이전에 라로슈푸코가 그랬듯이 - 각자가 자신은 진정 누구인지, 자기 본연의 것은 무엇이고 타자에 의해서 할당된 것은 무엇인지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는 부정적인 효과를 동반할 만큼 병적인 양상을 취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이 부정적인 모티브가 다양한 형식으로, 물론 수많은 이론적인 변신을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르트르뿐만 아니라 탈구조주의도 이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겠다. 탈구조주의를 보자면 사회를 통한 인정에 대한 우리의 의존성이 주체의  탈권력화로 귀결된다는 추측 내지는 혐의가 그 배경에 있다.

 

지모네 밀러:
(…) 저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앞 세 전통의] 관계 규정을 했다. 문제는 이념사적으로 서로 다른 이 세가지 흐름의 어떻게 고려하고 통합할 수 있을까란 란 거다. 근데 바로 여기서 헤겔의 인정에 관한 개념을 틀로 이해하고 다른 두 전통으로 보충 또는 덧붙이는 쪽을 선택했다. 그 선택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악셀 호네트:
칸트의 핵심적인 도덕철학적인 접근에서 태생한 헤겔의 [인정]개념은 다음과 같은 독특한 점이 있다. 우리가 타자에 의한 인정에 이미 의존하고 있다(Angewiesensein auf die Anerkennung durch andere)는 걸 우리의 이성적인 형성(Bildung)의 [핵심]요소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wir als Subjekte) 우리는 우리의 이성을 보여주고, 실증하고, 실현하는 것에 의존 내지는 분발한다는 거다. 헤겔이 보여주려고 했던 게 바로 이거다. 어린아이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 이성적인 자기 실현, 달리 표현하면 자신의 이성적인 주체성의 표현을 향한 분발, 이게 작동하려면 타자에 의한 인정에 이미 기대고/의존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게 인정이 훨씬 더 늦게 발생한다는 혹은 그제야 이 문제에 접근하는 두 전통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다.

 

 

Simone Miller:
Herr Honneth, auch Ihr jüngstes Buch passt hervorragend zum Thema Europa, denn Sie schreiben darin eine europäische Ideengeschichte der Anerkennung. In den letzten Jahrzehnten haben Sie in zahlreichen Publikationen – es seien hier nur schlaglichtartig „Das Recht der Freiheit“, „Das Ich im Wir“, „Verdinglichung“ und „Umverteilung oder Anerkennung“ genannt – in diesen Publikationen haben Sie also eine eigene, inzwischen auch international sehr einflussreiche Philosophie der Anerkennung erarbeitet, und das auf systematische Art und Weise. Nur aber, im neuesten Buch folgen Sie einem ideengeschichtlichen Ansatz. Weshalb nun diese Perspektive?  

 

Axel Honneth:
Das hat zunächst mal ganz naheliegende Motive. Ich bin durch Schüler, die ich habe, durch Studierende immer wieder mit Einwänden konfrontiert, dass man doch das, was wir als Anerkennung bezeichnen, also das wechselseitige Verhältnis unter Subjekten, ihr Angewiesensein auf Anerkennung, um zu einer vernünftigen Lebensform und zu Selbstverwirklichung zu gelangen; dass dieses Motiv, dieser zentrale Begriff der Anerkennung doch in anderen Kulturen, in anderen Kontexten ganz anders bewertet und ganz anders ausgelegt wird. Daraufhin habe ich dann begonnen, mich mit diesen anderen Traditionen, mit den anderen Vorstellungen zu beschäftigen, und bin darauf gestoßen, dass tatsächlich in Europa – und damit meine ich jetzt im Wesentlichen drei der vielen europäischen nationalen Kulturen oder Philosophiekulturen, nämlich Frankreich, England und Deutschland – sehr unterschiedlich ausgedeutet worden ist, von Anfang an. D.h. was die Anerkennung ausmacht, was unser Angewiesensein auf die Anerkennung durch andere ausmacht, ist in diesen Traditionen sehr unterschiedlich gedeutet worden, und ich wollte mir zunächst mal zurechtlegen, erstens wie es gedeutet worden ist und ob dafür vielleicht bestimmte sozial-historische Gründe gegeben sind.

 

Simone Miller:
Und obwohl diese drei Linien – Sie haben sie schon genannt – die französische, die englische und die deutsche – in sehr unterschiedliche Richtungen führen, nehmen sie ihren Ursprung doch in einer gemeinsamen Phase. Wann ist die Frage nach der Anerkennung sozial, aber auch theoretisch zentral geworden?

 

Axel Honneth:
Ja, das ist eigentlich ganz interessant. Es gab schon einige Autoren, die das früher mal vermutet hatten. Ich erinnere nur an Niklas Luhmann, bekannterweise, der hatte solche Vermutung mal zum Ausdruck gebracht. Im Grunde genommen tritt die Frage nach der Anerkennung ins Bewusstsein in dem Augenblick, in dem die festgefügte Statusordnung des Feudalismus zu verschwinden beginnt; in dem also der einzelne nicht mehr von Haus aus, von Geburt an, oder sagen wir mal, von Sozialisation an, sicher sein kann, wo er in der Gesellschaft steht, welches Ansehen er genießt; in dem Augenblick also, in dem das brüchig zu werden beginnt, in dem also die Feudalordnung mit ihren starren Statusmerkmalen in Auflösung begriffen ist. Das gilt für alle drei Kulturen, die ich untersuche. D.h., grob jetzt, im 17. Jahrhundert beginnt die Fragestellung virulent zu werden, und wird nun in den verschiedenen Kulturen, die ich untersuche, sehr unterschiedlich aufgenommen, sehr unterschiedlich verarbeitet.

 

Simone Miller:
Und am überraschendsten ist hier sicherlich die französische Linie, denn die bescheinigt dem menschlichen Anerkennungsstreben letztendlich negative Effekte, also von Rousseau, das zeigen Sie, bis hin letztendlich zu den Poststrukturalisten, allesamt betonen diese Theoretiker und Theoretikerinnen die Gefahr des Selbstverlusts, die mit dem Begehren der sozialen Anerkennung verschränkt sei. Und Ihre These ist nun, das kommt nicht von ungefähr, diese negative Charakterisierung, die hat etwas mit den sozialen Verhältnissen im damaligen Frankreich des zu Ende gehenden ancien régimes zu tun. Wie können wir uns das vorstellen?

 

Axel Honneth:
Ist natürlich eine seht gewagte These, und ich sehe schon die Historiker, die über mich herfallen, um zu sagen, dass das alles nicht ganz stimmt. Meine Vermutung ist, man ist zunächst mit dem Sachverhalt konfrontiert. Ja, das geht sehr früh los bei den französischen Moralisten, berühmt ja La Rochefoucauld, Montaigne, später dann Rousseau, die sind alle extrem skeptisch, was die, wie Sie schon gesagt haben, Effekte unseres Bestrebens nach sozialer Anerkennung anbelangt, weil sie die Vermutung haben, dass damit einhergeht so etwas wie eine wachsende Unsicherheit darüber, wer ich eigentlich wirklich bin. Desto mehr ich mich also nur noch aus dem Blick der anderen wahrnehme, aus der Perspektive der anderen, desto eher oder desto weniger weiß ich, wer ich wirklich meiner eigenen Subjektivität nach bin. Das ist der Befund. Das gilt für eine lange, lange Phase der Philosophiegeschichte in Frankreich. Meine Vermutung war und ist, dass das mit den Ausmassen der Distinktionskämpfe am französischen Hof, mit einer sehr zentralisierten Gesellschaft  (zu tun hat), in der die Distinktion das zentrale Merkmal und das zentrale Mittel der sozialen Verortung ist. Ich muss also lernen, vor allen Dingen erst der Adel, dann das Bürgertum sich zu distinguieren, sich von anderen abzugrenzen. Das nimmt so pathologische Züge an, aus der Sicht Rousseaus, aber schon La Roche Foucaulds, dass damit der negative Effekte einhergeht, dass die Einzelnen am Ende gar nicht mehr recht sicher sind, wer sie selber eigentlich sind, was ihres ist, was nur das ihnen zugedachte ist. Und dieses Motiv, also ein negatives Motiv hält sich dann interessanterweise in ganz verschiedenen Formen, natürlich mit vielen theoretischen Wandlungen, bis in die Gegenwart fort. Man kann an Sartre denken, der eine sehr prominente Rolle in der Hinsicht gespielt hat, aber auch, wie Sie erwähnt haben, an den Poststrukturalismus, bei dem auch irgendwie im Hintergrund immer die Vermutung ist, der Verdacht ist, unsere Abhängigkeit von der Anerkennung durch die Gesellschaft, durch die anderen, führt zu so etwas wie der Entmächtigung des Subjekts.

 

Simone Mille:
Und so wie Sie das für Frankreich herausgearbeiten, lassen sich auch die englische und die deutsche Denklinie in einen je spezifischen sozialen, sozialhistorischen Kontext stellen. Am Ende des Buches steht allerdings eine Verhältnisbestimmung, also vor allem die Frage: Wie kann eine Anerkennungstheorie diese drei sehr verschiedenen ideengeschichtlichen Linien gemeinsam integrieren, diesen allen drei gleichermaßen Rechnung tragen? Und an diesem Punkt entscheiden Sie sich dafür, die Hegelsche Anerkennungskonzeption als Rahmen zu begreifen, der durch die anderen beiden Traditionen ergänzt und bereichert werden kann. Und selbstverständlich lassen sich jetzt die Gründe hierfür, die lassen sich nicht in 2 Minuten erläutern. Aber vielleicht könnten Sie uns doch den allerwichtigsten Grund für diese Vorrangstellung der Hegelschen Ideen skizzieren.

 

Axel Honneth:
Ich meine, das klingt erst mal ein bisschen nach nationaler Vorliebe, ja der Vorliebe für die eigene Herkunft und die eigene philosophische Tradition. Und ich hoffe, dass ich zeigen koann in dem Buch, zeigen konnte oder kann, dass dem nicht so ist. Ich glaube, das Hegelsche Konzept, das im Grunde genommen, wie ich auch versuche darzulegen, aus dem Kantischen, einem sehr zentralen moralphilosophischen Ansatz hervorgeht, hat folgendes für sich, dass es nämlich unser Angewiesen-Sein auf die Anerkennung durch andere als so etwas versteht wie etwas, was zu unserer vernünftigen Bildung gehört. D.h. Hegel möchte zeigen, dass wir als Subjekte angewiesen sind auf oder danach streben, unsere Vernunft zu demonstrieren, zu zeigen, zu realisieren, zu verwirklichen. Das lässt sich schon bei den Kleinkindern zeigen, die dieses Streben besitzen, und dass dieses Streben nach der vernünftigen Selbstverwirklichung, wie man sagen könnte, nach der Artikulation der eigenen vernünftigen Subjektivität, eigentlich nur funktioniert, angewiesen ist auf die Anerkennung durch andere. Das ist viel grundlegender als in den beiden anderen Traditionen, die in der Hinsicht die Anerkennung viel später sich entwickeln lassen oder überhaupt ansetzen. Ist das bei Hegel so grundsätzlich, dass man sagen könnte, für ihn ist die Sozialität, soziales Leben zutiefst durch so etwas geprägt wie das wechselseitige Anerkennen als vernünftige Subjekte. Und insofern begreife ich diese Hegelsche Anerkennungstheorie als einen Sockel, den man benutzen kann, um sich zu fragen, was sind nun die Vorzüge oder die besonderen Errungenschaften der anderen Traditionen. Ich versuche also tatsächlich etwas dazu zu unternehmen, was ich als Integration bezeichnet habe, diese drei Traditionen zu integrieren, allerdings in den Rahmen dieser sehr grundsätzlichen, tiefansetzenden Hegelschen Anerkennungstheo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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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Le jour de gloire est arrivé !

Liberté, Égalité, Mbapp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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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리데 옐리네크 - 법의 보호를 받는 자들 (Die Schutzbefohlenen) - 1

짜집끼 글의 짜집끼 번역

 

엘프리데 옐리네크 : 법의 보호를 받는 자들 (원문은 여기)

 

우리는 살아 남았어. 우리는 살아 남았어. 뭘 더 바래, 살아 남았다는 것 말고. 그래, 살아 나았다는 것 외 남은 게 없지, 신성한 고향을 떠난 삶에. 아무도 우리의 행렬은 자비롭게 내려다 보지 않아. 하긴, 우리를 [깔아] 내려다 보긴 하지. 우리는 피난 길에 올랐어. [천인공노할 짓을 하고] 민족[공동체]의 심판을 받은 게 아닌데 [어딜 가나] 모두 우릴 죄인으로 취급해, 저기서, 여기서. 우리 삶에서 발생하여 스스로 지(知)로 등장할 수 있는 게 다 소멸되었어, 이런 저런 [호출과 허접한 지(指)적] 가상에 층층이 눌려 질식해 버렸어.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지(知)의 대상이 아니야. 지(知)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무언가를 개념으로 취하려는 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우리는 낯선 법령들을 읽으려고 노력하지. 그러나 아무런 말이 없어.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해. 우리는 [상품처럼] 주문 되지만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 우리는 호출되면 출두해야 해. 여기서 출두하고 나면 다시 저기서 출두해야 해. 우리가 밟을 수 있는 땅이 과연 있을까. 그런 나라가 있다면 이 나라보다 더 자애 깊은 나라여야 할 터인데, 우린 그런 나라를 아직 접해본 적이 없어. 없어. 우린 밟힌 채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야. 우리는 다시 돌려 보내지지, 꺼지라고 해. 우리는 교회의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눕혔어. 그러다가 우리는 다시 일어서지. 우리는 아무것도 안 먹어. 안 먹어선 안되는데, 최소한 마시기는 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지. 여기 평화를 탄원하는 나뭇가지 더미가 있어, 기름 종려나무 가지인가, 아니야, 올리브 나무에서 끊어온 거야. 맞아. 아 여기도 있네. 다 글이 새겨져 있어. 우린 이것 말고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어. 말해주세요. 이걸 누구에게 건네주면 되죠, 이 더미를. 2톤이나 되는 이 종이를 하나하나 다 글로 채우고 모았어요. 물론 도움을 받았지요, 당연하지요. 그래서 지금 탄원하는 자세로 올려 드립니다, 이 종이를. 뭐라고요, 네 아닙니다. 체류허가증[종이들은]은 없습니다. 이 종이 한 장 뿐입니다. 이걸 누구에게 건네주면 되죠? 님께? 받으세요, 여기 있어요. 하지만 가지고 가신 뒤 아무 것도 안 하시면 우리는 다시 다 복사해야 해요, 인쇄해야 하고요. 그건 알고 계시죠? 저기 저 하늘 높이 계신 분들 좀 보세요.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어요. 고개를 돌리지 마세요. 바로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말입니다. 늘 하시는 데로 좀 내려다 봐 주세요! 우리는 여러분들께 탄원합니다. 시와 농촌과 도나우의 빛나는 강물을 소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민] 여러분, 아니 관청에 계시기에 더 주인처럼 보이고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벌로 내리시는 [관료]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에게 이번에는 이래라 했다가 다음번에는 저래라 합니다. 우리에게는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사실은 여러분들이 마땅하지 않아요. 천사 여러분, 그리고 하늘의 아버지이신 님! 여러분들을 대항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할 수 없는 게 없고, 다 해도 괜찮지요. 저기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누가, 어떤 신이 여기에 계시고 주관하시는지? 여기 이 교회에서는 그게 누군지 알아요. 하지만 다른 곳에는 어쩌면 다른 이들이 있겠죠. 대통령이 있고, 총리가 있고, 여성 장관이 있고. 그러지요. 그리고 물론 벌을 주는 분들은 따로 있죠. 이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기 저 땅 밑 저승이 아니라 모두 다 바로 우리 옆에 있다는 걸. 예를 들자면 바로 님이죠. 그게 누구냐고요. 바로 님이어요. 님이 누구든 간에, [여기의] 님이든, [저기의] 님이든, 예수든, 메시아든, [이것 저것 다 보관하는] 메시든, 다 벌을 주죠. 집안일과 가문과 모든 경건한 자들을 챙기시는 님이시지만 우리는 거두어 주시지 않아요. 맞아요, 우리는 불러서 온 게 아녀요, 재발로 알아서 왔죠, 님의 교회에 왔죠, 탄원하는 행렬로, 제발 우리를 도와 주세요, 하나님,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 우리 발이 당신의 강변을 밟았습니다. 우리들의 발 중 운이 좋은 발은 이와 완전히 다른 강변을 밟았습니다. 근데 이제 앞으론 어떻게 되죠? 바다가 우리를 거의 집어삼켜 뻔했어요, 산속에 거의 묻힐 뻔했어요. 이제 우리는 이 교회에 있어요. 내일은 그 수도원에 있게 될 겁니다.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인해서, 대통령의 도우심으로 인해서. 그 [대변자의] 자리에 앉혀진 그들이 애써 대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일 모레 어디에 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디에서 누울 자리가 허용되지 않을까, 어디에서 누울 자리를 강요할 수 있을까, 어디에서 다시 쫓겨날까, 어디에서 우리의 뼈를 묻을 수 있을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물론 우리가 아니죠. 그 누가 이 모든 걸 할 것인지, 누가 우리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할 것인지, 누가 우리를 동등한 현존자로 취급하고 쳐다 볼 것인지, 혐오감 없이, [우린 몰라요]. 고향의 개울가에서, 바닷가에서, 우거진 숲에서 내몰림을 당한 자들을, 잃어버린 고향의 아픔에 쌓여 탄식하면서, 모태 고향의 노여움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자들을, 이런 사람들을 여기 님은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와 있는 우리 중 아무도 [이곳] 누구와 같은 혈통이라고 우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런데, 말해봐요, 왜, 왜 님까지 우리를 노여워하죠? 이걸 우리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픔과 한 짝이 된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정말이에요. 근데 우리가 뭘 했길래 우리를 두려움 안에 가둬 두시죠? 어딜 가나 두려움입니다. 내가 하는 수 없이 다시 돌아가 두고 온 고향 사람들을 다시 마주하는 두려움, 이 보다 더 큰 두려움을 님 앞에서 느낍니다. 하는 수 없이 당신이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하는 , 머무르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두려움. 이렇게 말하는 저에게 님은 서슴없이 너 말 잘했다 하시겠죠. 예 틀림없이 그러시겠죠.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당신은 모든 곳에서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시는데, 그럼 왜 여기에 오셨죠? 새로운 두려움을 맛보려고, 다시 한번? 우리는 지금 아니면 쓰지 않는 야만인의 말을 합니다. 우린 그런 언어가 있는 줄 몰랐어요, 사용할 줄도 모르고요. 항상 그렇죠,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이방인 사이에 있으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죠, 지금 아니면 일어나지 않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죠? 우리는 이 언어로, 우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사용할 줄도 모르는 이 언어로, 우리와 달리 님이 자신처럼 구사하시는 이 언어로, 탄원하고 외칩니다. 쓸쓸한 간이역 신문을 들추며 비통을 삼키는 심정으로 우리를 좀 봐 주세요, 좀 노력해 보세요, 님이 절대 알 수 없는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제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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