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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시회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사진 전시회 "Shadow Catchers: Camera-less Photography"를 소개한다.

 

근데 You Tupe에 있는 것은  어떻게 올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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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어떤 철학이 있을까.

바람소리님의 [제 7의 인간, 존버거의 시선을 느끼다] 에 관련된 글.

고민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른 생각나는 것은 Larry Sultan이 "사진작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음가짐은 tenderness다"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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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묘소에서 유럽유태인학살추모공원으로 간 이유

헤겔 묘소에서 유럽유태인추모공원으로 향하게 된 이유를 밑도 끝도 없이 불쑥 마음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였다라고만 한 것이 무성의하고 게으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래와 같이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이런 느낌은 괴테와 쉴러의 도시 바이마르에 가도 마찬가지다. 바이마르에 가면 반드시 바로 그 옆에 있는 작센하우센 유태인 수용소에 들린다. 그래야 마음이 균형이 잡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60년대 70년대에 68세대의 영향아래 독일에서 성인으로 접어든 사람이면 (Sozialisation) 어는 정도 이런 마음가짐이 있을 것이다.

 

아도르노의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nach Ausschwitz 철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화비평은 문화와 야만간의 변증법의 마지막 단계와 맞서있다: nach Ausschwitz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적인 행위다. 그리고 이런 야만성은 오늘날에 와서 왜 시를 쓸 수 없게 되었는지 목소리를 높이는 인식의 목청에도 이미 들어와 있는 상태다. (Kulturkritik findet sich der letzten Stufe der Dialektik von Kultur und Barbarei gegenüber: nach Auschwitz ein Gedicht zu schreiben, ist barbarisch, und das frisst auch die Erkenntnis an, die ausspricht, warum es unmöglich ward, heute Gedichte zu schreiben.) (Kulturkritik und Gesellschaft, (1951). In: Adorno: Gesammelte Schriften, Bd. 10.1. Frankfurt/M. 1980. S. 11-30)

 

nach Ausschwitz. 번역하기 참 힘든 문구다. 아우슈비츠 이후? 아니다. 에 지역이름이 따르면 보통 방향을 말한다. 그리고 예를 들어 에서와 같이 지역이나 도시이름이 특별한 경우에는 그 도시가 상징하는 것을 취하려 가는 그런 방향성을 말하고  이런 경우 는 거의 항상 긍정적인 면을 향해나가는 방향성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Novalis가 했던 말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가? 항상 본향으로./ 는 그냥 <집으로>라는 뜻이다.)을 이해할 수 있다.

 

nach Ausschwitz. 그러면 아우슈비츠에 가란 말인가. 그렇다. Nach Ausschwitz ein Gedicht zu schreiben, ist barbarisch. 이 말은 독일인이 아우슈비츠가서 시를 쓰는 행위는 야만적인 행위다라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아도르노는 정말 아우슈비츠에 갔다. 그리고 그는 독일의 혼이 유태인과 함께 흔적이 없이 재로 날라간 것을 보았다. 그리고 모든 긍정이 사라진 변증법을 이야기했다. 혼이 죽어버렸는데 더 이상 무슨 긍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독일의 혼이 다시 살아난다면 아우슈비츠를 통과한 혼일 것이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어린애한데 물어보듯 <헤겔하고 아도르노하고 누가 더 좋아>라고 물어오면 <아도르노가 더 좋아.>라고 대답할 것이다. 괴테보다는 파울 체란이 물론 더 좋고. 항상 내편이었던 누나 같은 의 데리다가 가장 좋기는 하지만. 그러나 헤겔이 옳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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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묘소에서 유럽유태인 학살 추모 공원으로 2

묘지에서 나와 유럽 유태인 학살 추모 공원으로 항했다. 거기를 들러봐야 뭔가 마음의 균형이 잡힐 것 같아서 그랬다. 무슨 균형이라고 물어오면 뭐라고 대답하기 뭐하다. 그냥 그렇다고 하고 내버려 두자.

 

 

멀리 연방하원이 보인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미대사관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누워서 Andacht?

 

 

 

.....

 

 

옆 Tiergarten에는 봄이 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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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묘소에서 유럽유태인 학살 추모 공원으로 1

최근에 풀 프레임 카메라 한대를 장만했다. 사진을 다시 찍고 싶어서다. 렌즈는 왜 그리도 비싼지 바디밖에 구하지 못했다. 렌즈 중고 시장에서 구닥다리 렌즈 몇 개를 구입해서 오늘 들고 나갔다.

 

헤겔이 누어있는 공동묘지 Dorotheenstädtischer-friedrichswerderscher Friedhof를 찾아갔다. 베를린시 중구에 있는 공동묘지다. 공동묘지 근방에 와서 주차장을 찾아 헤메는데 길 이름이 Tieckstrasse, Schlegelstrasse 등이다. 그러면 Novalisstrasse도 있겠지하고 돌아보니 기대했던 데로 Novalisstrasse도 나온다. Eichendorffstrasse도 나오고....

공동묘지로 들어가는 길이다.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브레히트와 헬레나 바이겔이 양지바른 구석에 나란히 누워있다.

 

아담한 공동묘지다.

 

 

하이너 뮐러의 묘소가 참 인상적이다.

 

다른 묘지 풍경

 

 

이름이 깨져있다. Fritz 누구?

 

피히테부부와 헤겔부부가 나란히 누워있다.

 

 

묘지에서 나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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