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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민전쟁 -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12조

결의:

열두 번째, [인간은 생각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염두하고]endtlyche maynung 우리는 [잠정적으로] 이렇게 결의한다. 만약 우리가 내세운 여기 조항 중 하나 혹은 여러 개가 (하나님 말씀에 위배)된다면, 우리는 그럴 거라고 믿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있다면, 하나님 말씀에 [직접] 의거해서 해당 조항이 마땅하지 않다고 보여주지 바란다. 그걸 성서에 근거해서 우리에게 명확하게 하면, 우리는 해당 조항을 [당장] 폐지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요구]조항 중 몇 개를 아무런 이의 없이 지금 바로 받아준다 할지라도 후에 그것들이 부당한 것이었다고 밝혀지는 경우, 그 해당 조항들은 바로 그 순간 죽은 조항이 되고 [반드시] 폐지되어 효력을 상실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문화된 [법]규정들을 진리의 [빛으로 비춰본 결과] 거기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웃을 억누르기 위한 다른 규정들이 [추가적으로] 찾아지는 경우, 우리는 [이들의 효력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보류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훈련하고 사용하기 원하는 우리가 [그 때 어떻게] 결정하는가에 따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주 하나님께 하나님 외에 아무도 줄 수 없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훈련되고 그 가르침을 따라 결정하는 지혜] 바로 그것을 청원한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화가 우리 모두와 함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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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민전쟁 -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9/10/11조

9조:

아홉 번째, 우리는 우리를 [범죄] 성립요건에 따라 [객관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한번은 우리를 아주 미워하고, 한번은 아주 호의를 베푸는 식으로 처벌하는 [꼴리는 데로 이랬다 저랬다하는] 천인공노할 몹쓸 짓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우리는 우리를 처벌할 경우 예부터 범죄[행위]로 기록된 기록에 [성문법에] 의거하여 재판하고 처벌해야지 마음이 쏠리는 데로 치우쳐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10조:

열번째, 우리는 많은 사람이 원래 기초단체 [전체에] 속한 목초지와 전답을 가로채어 자기 것으로 돌린 이유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이것들은 다시 우리 [모두가] 손수 관리하는 [공동소유로] 만들 것이다. 다만 [정당한]대가를 치르고 [앞뒤가 맞게] 올바르게 구입한 땅은 여기서 제한다. 반면, 대가를 치르고 구입하는데 있어서 부당한 방법이 있는 경우, [점유]자와 사태의 모양에 따라 타협하되, 호혜[원칙]에 따른다.

 

11조:

열한 번째, 우리는 죽은 사람 [시신]에 세금을 부과하여 [그 세금을 유가족들로부터, 특히 과부와 고아에게서 징수하는] 관습을 아무런 대체 없이 전면 폐지하기를 원한다. 그런 관습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으로서 금지하여 과부들과 고아들에게서 그들의 것을, 많은 곳에서 (이런 식 저런 식으로) 벌어지듯이, 하나님 [명령에] 어긋나고 또 사람임에 어긋나게, 즉 비열하게 취하고 약탈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를 보호하고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이렇게 껍질을 벗기고 [거기에 붙은 살을] 갉아내어 [챙기는데], 그 껍질까지 챙길 조그만 근거만 있었다면 아마 그것까지 챙겼을 것이다. 하나님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이런 관습은 완전 폐지하여 앞으로  아무도 [사망세를] 낼 의무가 없게 해야 한다. 그게 많든 적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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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민전쟁 -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6/7/8조

6조:

여섯 번째,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날마다 [노동 강도가] 증가하는 부역에 의한 억눌림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억누르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깨달음에 상응하여 그렇게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우리 조상들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서 부역했듯이 우리에게 관대하여 우리 [역시] 그렇게 하도록 대해 주기를 바란다.

 

7조:

일곱 번째, 우리는 이제부터 [어떤 통치자가 됐건], 그가 우리를 [적법한 수준] 이상 더 억누르게 [가만] 나두지 않을 것이며, 어디까지나 그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통치권이 맡겨진 한도 내에서의 통치에만 [순종할 것이다.] 그래서 통치자가 주인과 농민간의 협약에 따른 부역에 대한 요구는 마땅하다. [그러나] 주인은 [협약을 넘어서] 농부를 강제하거나 억압하여, [합의된 부역의 양을] 넘어서 부역하게 하거나 [합의된 부역 외의] 다른 부역을 아무런 대가없이 하도록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여 [세금과 부역을 받치고 농사 짖는] 농부가 [그가 농사 짖는] 땅을 별다른 부담 없이 사용하고 그 수확물을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주인이 [추가적으로] 요구하는 부역이 꼭 필요한 경우, 농부는 기꺼이 순종하여 [주인의 일을] 거들어야 하지만, 주인은 농부에게 손해를 주지 않는 적합한 때와 적합한 대가를 치르고 [그런 부역을] 요구해야 한다.

 

8조:

여덟 번째, 우리 [소작]농들은 많은 고통을 겪는데, [그 이유는] [임대한] 땅에서 소작료를 수확할 수 없어서 [소작]농이 자기[가 먹고 살아야 할] 것으로 소작료를 내고 죽을 지경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소작료문제를 일으키는] 땅들을 신뢰를 생명으로 여기는 사람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그 땅을 보고 [평가하게 하고] [수확량과 소작료가 형평성을 이루는] 지당한 소작료를 책정하게 해서 농부가 아무런 대가 없이 일만 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왜냐하면, 날품팔이꾼도 [마땅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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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15세기 "윗사람"(Obrigkeit)사이에 유행했던 노래

귀족출신 청년에게 고함

 

 

먹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귀족 청년이여

내 말을 따르라.

말을 타고 출입금지구역으로 속히 가라.

말머리를 숲으로 향하라!

농부가 숲으로 들어가면

여지없이 달려가 그를 잡아라.

 

그의 멱살을 잡고

잘 걸렸다고 즐거워하라.

그가 갖고 있는 것을 다 취하고,

말도 흐뭇하게 낚아채라.

뒤돌아볼, 겁낼 필요 없다.

그가 한 푼도 없으면

그의 목을 따 버려라.

 

 

 

Ratschlag an einen jungen Edelmann

 

Willst Du Dich ernähren,

Du junger Edelmann,

so folg´ Du meinen Lehren,

sitz´ auf und trab´ zum Bann.

Halt´ Dich an den Wald heran!

Wenn der Bauer in´s Holze fährt,

so renn ihn tapfer an.

 

Erwisch´ ihn bei dem Kragen,

erfreu´ das Herze Dein,

Nimm Dir, was sie haben,

spann´ aus die Pferdlein fein.

Sei frisch und auch unverzagt!

Wenn er keinen Pfennig hat,

reiß´ ihm die Gurgel ab.

 

(Zit. nach: Wolfgang Venohr, Dokumente Deutschen Daseins 1445-1945, 500 Jahre Deutsche Geschichte, Königstein/Ts. 1980, S.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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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민전쟁 -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5조

 

5조:

 

다섯째, 우리는 또한 산림사용[과 관련된 일]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지배자들이 모든 산림을 독점하고 있어서 가난한 사람이 나무를 필요로 할  경우 터무니없는 가격을 치르고 구매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 산림을 소유하고 있든, 그걸 하늘권세가 갖고 있든 지상권세가 갖고 있든,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산림을 취한 자들은 그걸 기초공동체 전체에 다시 돌려줘야 하고, 기초공동체의 적당한 규정아래 모두가 매일 [절대] 필요한 땔감을 값없이 취하고, 또 집 수선을 위해서 나무가 필요할 경우에도 필요한 나무를 값없이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초공동체가 그런 일을 관리하도록 선출한 자에게 알리고 [그의 허락아래?]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취한 산림 외의 다른 산림이 없을 경우 그 소유자와 형제[자매사랑]과 그리스도 [정신에 입각하여] 타협할 것이다. 반면, 애당초 산림을 제멋대로 취하고 팔아넘긴 경우, 그런 산림을 산 사람과 사태의 모양에 따라, 그리고 형제자매사랑과 성서를 따른 결정에 입각하여 타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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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민전쟁 -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4조

4조:

 

넷째, 여태까지의 관습은 가난한 사람이 야생동물, 야생조류, 흐르는 물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힘[Gewalt. 앞에서는 ‘실질적인 파워’로 번역. 사냥도구 소유까지 금지되어 있었다는 말인가?]이 없었고 또 그럴 권리도 없었다. 이건 완전히 부당하고 박애정신을 거역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욕이 가득 찬 것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윗사람들이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먹는 즐거움을 누리고 위해서] 많은 장소에서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람이 먹도록 자라게 한) [곡물, 야채, 과일들을] 지들 맘대로 이성이 없는 [야생]동물에게 쓸데없이 먹여도, 우리는 아무런 하소연도 못하고 [계속 굶주려야만 하는] 큰 곤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이건 하나님과 이웃을 원수로 삼는 짓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에게 모든 땅의 동물, 하늘의 새, 그리고 물속의 물고기를 다스리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럴 권리를 다시 찾으려고] 열망하지만, 누군가가 물에 대한 [권리를] [그게 모두의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일정한] 대가를 치르고 산 경우, 그 해당 권리를 그로부터 무력으로 취하지 않고 그가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지켜] [우리의 요구를] 그리스도인적으로 통찰하여 받아주기를 요구한다. 반면, 그런 권리를 충분하게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 [기초공동체인] 마을Gemeinde이 적당하게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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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민전쟁 -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3조

3조:

셋째, 지금까지의 관습은 [윗]사람들이 일관되게 우리를 지들에 속하는 사람으로 여겼는데, 이건 그리스도가 스스로 보혈을 흘림으로써 대가를 치르고 우리 모두를, 목자에서 최고권위자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해방의 대상이 되고]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해방시켜 주셨다는 사실에 견주에 볼 때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성서는 우리는 자유롭고 또 자유로워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건 우리가 어떤 윗사람권세도 허용하지 않는 자유를 원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명 안에 거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지 육신을 따라 자기 맘대로 살라고 하지 않으셨고,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즉 우리 이웃들을 대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를 주인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고, 최후의 만찬에서 우리에게 지시한 그 모든 것을 기꺼이 따르는 삶을 살라고 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 계명에 따라 살아야 한다. 이 계명이 우리가 윗사람[권세]에 [무조건] 복종해야 함을 보여주고 지시하고 있지 않는가? [물론 그렇다. 근데 윗사람[권세]란 게 뭔가? 우리가 윗사람[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은 추상적인] 윗사람권세 그 자체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춰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또 우리가 [직접] 선택하고 지위를 부여한 (우리가 보기에 그렇게 하여야만 하나님에 의해서 지위가 부여된) 윗사람권세에 [그 권세의 권한을 월권하지 않는] 모든 정당하고, 그리스도적인 문제를 다루는 한도 내에서 기꺼이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네들이 참답고 올바른 그리스도인들로써 우리를 기꺼이 우리를 구속하는 제도(농노제도=Eigenschaft)에서 놓아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아니면 복음을 근거로 해서 우리가 당신네들에게 구속된 사람들임을 증명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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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민전쟁 -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이어서)

일러두기: [  ] 역자 삽입, {  } 100% 자신이 없는 번역

 

 

한 마을이 혹은 다수의 마을이, {한 마을이 기초단체를 이루거나 여러 마을이 연합하여 기초단체를 이루는 경우를 막론하고},  큰 곤궁 때문에 십일조를 징수할 수 있는 권리를 팔았다할지라도1, 그 권리를 산 사람은 {십일조 징수권을 계속 양도하거나 금전으로 환산하여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우리가 적당한 방법으로, [그 권리의] 형태 및 사태에 따라 그와 타협하여 적당한 기한 내에 적당한 대가를 치르고 도로 찾기로 한다. 반면, 어떤 마을에 대한 그런 권리를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인수한 사람이나 그것을 [갈]취한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그들이 교회[하늘]권세건 세속[지상]권세건 간에, 우리는 아무런 의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의무를 져서도 안 되고, 또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단, 우리가 선택한 목사를 부양하고, {교구감독과 재차 정산하여 수입과 지출을 가르고}, 나아가 성서에 기록된 바에 따라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에 대한 의무만 있을 뿐이다. [이른바] 小십일조 [가축과 곡물 외의 야채와 과일에 대한 십일조]는 전혀 납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가축을 아무런 대가없이 주셨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십일조는 사람이 고안해낸 부정당한 십일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小십일조는 더 이상 납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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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세 후기에 들어서면 십일조에 대한 권리가 사고팔려, 즉 상업화되어, 목사의 몫으로 떨어지는 십일조는 보잘 것 없었다. 영주, 기사, [자유]도시, [도시] 연합체, 수도원 등이 그 권리를 행사하여 챙겼다. (Peter Blickle, Kommunalismus: Skizzen einer gesellschaftlichen Ordnung, Bd. 1 Oberdeutschland, Oldenburg 2000, S. 16 참조).텍스트로 돌아가기

독일 농민전쟁 -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원문: http://www.memmingen.de/918.html

하늘 또는 지상권세의 윗사람에 종속되어 그들로 부터 억울하게 억눌림 당하는 농민과 소작농들의 근본적이고 정당한 [요구의] 주요 조항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글을 읽는 사람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은혜가 있기를! 현재,  집결한 농민들 때문에  복음을 모독하는  적(敵)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건 새로운 복음[종교개혁] 열매라고누구에게도 순종하지 않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분노하여 일어나 대항하고, 때를 지어 한곳에 모인 힘으로 똘똘 뭉쳐 하늘과 지상권세의 윗사람[제도]를 개혁하고 뿌리 체 뽑아버리려고, 아니 그들을 때려잡으려고 한다고이렇게 하나님을 멀리하고 모독하는 모든 변론가들에게 아래와 같이 글로 조항으로 답변한다. 우리는 우선 하나님 말씀을 모독하는 것을 파기하고, 그 다음 불순종, 아니 모든 농민의 분노를 그리스도적으로 변호하려고 한다. 첫째, 복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서 분노 혹은 동란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약속된 메시아 그리스도의 말과 삶이 오로지 사랑, 평화, 인내, 그리고 한마음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두 서로 사랑하고 온순하고 인내하며 한마음이 된다. 이런 이유로 농민들이 제시한 모든 조항의 근본은  (명백하게 드러나 있듯이) 복음을 듣고 복음을 따르는 삶을 지향한다. 사태가 이런데 어떻게 적(敵)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종교개혁의] 복음을 분노와 불순종의 원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반면, 적잖은 적(敵)그리스도인들 및 복음의 원수들이 이러한 [=복음을 따라 살려고 하는] 마음의 움직임과 열망을 거부하고 뻣뻣이 일어나 대항하는 것은 복음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가장 혐오한 원수인 마귀에서 기인된 것이다. 마귀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 사이에서 복음을 불신하는 이런 행위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마귀는 (우리에게 사랑, 평화, 그리고 한마음을 가르치는) 하나님 말씀을 억누르고 우리로부터 앗아갔다.  둘째, 농민들이 요구조항에서 [사랑, 평화, 인내, 그리고 한마음을 가르치는] 복음을 가르침과 삶의 [지침으로] 열망하는 것을 두고 볼 때 그들을 불순종, 폭동이라고 몰아붙일 수 없다. 반면, 하나님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농민들의 [소원을] 받아 들어주시기를 원할 때, 과연 그 누가 나서서 하나님의 의지를 나무랄 것인가? 그 누가 하나님의 심판에 손댈 것인가? 아니 그 누가 하나님의 존엄에 맞서 거역할 것인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소리 높여 그를 부르는 그들의 [소원을] 받아 들어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떼어 내 주시지 않았던가? 하나님이 자신에게 속하는 사람들을 이젠 더 이상 구원하시지 못한 단 말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여, 아래 조항들을 조목조목 다 읽고 난 후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

 

그 조항은 다음과 같다.

 

1조:

첫째, 우리가 우리 모두의 의지와 의견이 담긴 겸허한 마음으로 청하고 열망하는 것은 앞으로 [삶의 공동체 기초단체인] [교구]마을이 담임목사를 스스로 선택하고 임직하게 할 수 있도록 우리가 권한과 [그 권한을 관철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파워를 갖기 원하는 것이다. 또한 [교구]마을이 [이렇게 선택된] 담임목사가 주어진 몫에 어긋나게 행동할 때 그를 다시 해임할 수 있는 실질적인 파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선택된 목사의 몫이란 우리에게 성스러운 복음을 순수하고 명백하게, 즉 모든 인간적인 첨가물, 가르침과 규율을 배제하여 설교하고, 항상 참다운 믿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우리 안에서 참다운 믿음이 자라 완성되어 거주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청하는데 있어서 모범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자라 완성되지 않으면 우리는 항상 살과 피로 남아 그 외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서에] 명백하게 기록된바 우리는 오로지 참다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로만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를 앞서가는 자, 곧 목사가 필요하고, 목사란 [오로지] 이런 모범자로서[만] 성서적인 것이다.

 

2조:

둘째, 구약에서 제정된 정당한 십일조가 신약에 와서는 [이미] 충족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곡물에 대한 정당한 십일조는 기꺼이 받치려고 한다. 하지만 [성서적으로] 타당한 한도 내에서 그렇다.  성서에 따르면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서 하나님께 속하는 자들에게 배분되는 것이다. 그래서 십일조는 하나님 말씀을 명백하게 선포하는 목사에게 배분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 교회의 교구감독으로 하여금, 해당 [교구]마을이 그렇게 결정한 한해서, 십일조를 걷고 취하도록 하고, 그 일부를 해당 교구마을이 선택한 한도 내에서 목사에게  그와 그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적합한 생계비를, [교구]마을전체회의의 결정에 따라 지급하도록 한다.  지급하고 남은 것은 해당 [교구]마을에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경우 그들에게 필요상태와 교구마을의 결정에 따라 지급한다.  그래도 남는 것은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이 도래할 때 무장해야 하는 것을 예비해서 비축해 둔다. 이런 경우 가난한 사람에게서 나라[국방]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도록,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이런 [잉여]잔여금으로 무장에 관한 지출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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