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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물론 그렇다. 박근혜의 말이 맞다. 유승민의 정치는 '배신의 정치'다.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 자체가 배신이 될 수 없다. 경제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을 말한 게 신뢰를 어기는 배신일 수는 없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박근혜 정권의 국정 능력 상실이 입증된 때였다. 이때 유승민의 발언이 있었고 국회법 개정 등 정치적인 행동이 있었다. '배신'을 해도 '별일이 없을 거'라는 게 '기밀' 누설이다. 이게 유승민 배신의 본질이다.
박근혜는 참을 수 없었다. '아니다' 했어야 했고 '별일이 있다' 증명했어야만 했다. 그래서 결국 '찍어냈다'.
결과 박근혜 정권의 취약성 혹은 본질, 즉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가 전면화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승민은 승자의 길로 들어섰다. 조.중.동까지 '보이지 않는 손'의 공천 학살을 멀리하고 있다. 아니 더 나서서 비판하고 있다. 유승민의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를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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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1)
박근혜: "정치적으로 선거를 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발언 2)
이한구: "당 정체성과 관련해 심하게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은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게 해야 한다."
발언 3)
유승민: "저는 2011년 전당대회 출마선언, 작년 4월 국회 대표연설 다시 읽어봤습니다. 몇 번을 읽어봐도 당의 정강정책에 어긋난 내용은 없었습니다."
발언 4)
이한구: "당을 모욕하고 침뱉으며 자기정치를 위해 떠난 것이다."
주석 1)
에피메니데스: "나는 크레타인이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
주석 2)
파스칼: "정신이 나간 [규범이 몰락한] 사람들이 정신이 멀쩡한 [규범을 지키는] 사람들을 두고 당신들이야말로 본성에서 뚝 떨어져 나간다고 말하고, 자기들이야말로 본성을 따른다고 믿는다. 이는 마치 배를 탄 사람들이 부두에 있는 사람들을 두고 그들이 뺑소니친다고 믿는 것과 같다." („Ceux qui sont dans le dérèglement disent à ceux qui sont dans l’ordre que ce sont eux qui s’éloignent de la nature, et ils la croient suivre : comme ceux qui sont dans un vaisseau croient que ceux qui sont au bord fuient.“ 팡세 383번, 브룬슈빅 판)
박근혜의 말이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르겠다. 결과는 맞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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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책하면 늘 그러듯 짝지는 어제 역시 느닷없이 동요를 부르기 시작한다.
“같은 하늘 밑에서 사는 우리들
우리는 송이 송이 나라 꽃송이
너희 고향은 어디냐 너희 고향은 어디냐
함경도다 전라도다 평안도다 경상도다
황해도다 충청도다 강원도다 경기도다
그리고는 제주도다 ”
가사가 맞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그러니까 국민학교 다닐 때 배웠다고 하는데, 난 아무런 기억이 없다.
2.
문득 작년 말 별세한 전 독일 총리 헬무트 슈미트를 기리는 <슈피겔>의 표지가 떠오른다. 얼굴과 손이 어우러진 인물 사진이다. 밑에서 위로 비스듬하게 올려 찍은 사진이 손을 강조하고 있다. 상황이 요구할 경우 신속하게 결정하고 냉철하게 추진한다는 'Macher'('행동으로 옮기는 자, 그리고 그런 능력이 있는 자')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겼다. 담배를 피고 있다. “의지, 사람은 이게 있어야 해. 플러스 담배“라는 슈미트의 재담이 버팀목이 되어 손 쪽으로 치우쳐진 머리로 인해 불안정해진 삼각형 구도가 안정감을 되찾는다.
담배가 의지와 함께 이성과 실천의 조화를 이루는 버팀목의 요소?
공적 공간에서의 금연 논쟁이 한참 진행 중일 때 독일 정치 풍자 개그맨 디터 힐데브란트(Dieter Hildebrandt)가 흡연을 - 좀 익살스럽지만 - 호평했던 게 생각난다. 담배는 인디언의 생활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그 이상은 평화라고 했다. 전시 두 족장이 만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담배만 피우는 게 평화의 첫 걸음이 되었다는 것. 이런 '말'의 유보에서 평화가 싹텄다는 것.
데리다의 “차연“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담배? 아니면 헤겔의 “매개된 직접성”(„Vermittelte Unmittelbarkeit“)이 더 어울리나?
3. 박근혜 대통령의 '외로운' 결정 vs. 헬무트 슈미트의 “大위기[상황]스태프”(Grosser Krisenstab)
1977년 가을 헬무트 슈미트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다. 독일 적군파가 독일 연방고용주협회장 겸 독일 연방산업협회장 마르틴 슐라이어를 납치하고 수감된 적군파 전원 석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PLO도 가세하여 독일 루프트한자 여객기 '란쯔훗'(Landshut)을 납치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헬무트 슈미트는 유관 부장, 야당 총수, 그리고 유관 경제계 인사를 망라한 “대위기[상황]스태프”를 소집했다. 이렇게 '국론'을 하나로 모았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의 '외로운' 결정이 국론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깡지지' 보수 언론까지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다.
4.
그나마 다행이다. 오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회연설”이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보수 언론이 요구하는 “대국민담화”의 포퓰리즘을 피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국민심판론 등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를 우회하는 통치를 두고 볼 때 결코 밝게 전망할 수 없는 상황이다. 포퓰리즘의 본질이 “직접성”에 있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매개된 직접성”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문제를 두고 모든 야당과 소통해야 한다.
5.
자타 모두 헬무트 슈미트의 정신적 지주는 포퍼 경과 칸트라고 했지만 생중계된 국장(國葬)을 보는 중 그건 보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죽음을 넘어서 국장 순서와 배열을 세심하게 지시한 슈미트는 포퍼 경과 칸트를 넘어서 삶의 아픔에 시달리는 '인민의 정서'를 갖춘 사람으로 다가왔다. 그가 원했던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저녁노래/Abendlied>의 마지막 연 연주에는 눈시울이 좀 뜨거워지기도 했다.
Und laß uns ruhig schlafen!
Und unsern kranken Nachbar auch!
(그리고 우리가 편히 잠들게 해 주세요! 우리뿐만 아니라 병든 우리 이웃까지)
'말'과 이성의 외곽에 있는 뭔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뭔가 성스러운 것, 손대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게 슈미트의 선곡이 의도했던 것일까? 국장에서는 의례 군인들이 관을 들고 나가지만 슈미트는 먼저 민간인이 관을 들고 교회 밖으로 나가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 비로서 군인이 관을 위임하도록 했다. 국가 권력에 선행되는 성스러운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6.
한반도 상황에서 손을 대서는 안되는 성스러운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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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은은
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 대량살상무기 개발
2.
박근혜는
WMI (Weapons of Mass Instruction) 대량세뇌무기, 별칭 국정교과서 개발
(베를린, 테러의 현장(Topographie des Terrors) 전시장)
2021/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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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6 |
박근혜의 이른바 '국민대통합' 행보에 하인리히 4세의 카노사 행이 겹치는 것은 왠 일인가?
교회공동체에서 쫓겨나고 왕자리까지 내놓아야 할 처지에 빠진 하인리히 4세가 눈 내리는 겨울 카노사 성 앞에서 맨발과 누더기만 입고서 그레고리우스 7세가 그의 회개를 인정하고 다시 교회공동체 안으로 받아 주기를 기다린 것은 아마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진정성이 없었을 것이다. 그걸 모를 정도로 그레고리우스 7세가 멍청하지 않았고. 그래서 "넌 교회 안으로 두 번 다시 들어올 수 없어"하고 금을 확실히 그어놓고 전혀 지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데, 카노사 성의 주인 (여)변방백작 투스치엔의 마틸데가 그가 교항으로서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진정성이 문제가 아니라 회개하고 교항 앞에서 머리를 쪼아렸으니 하인리히 4세를 다시 교회 안으로 안 받아 줄 수가 없다고 한다. 교회공동체가 안과밖을 엄격하게 구분하지만 그 경계선이 그물망이 되어야 교회공동체가 불어나기 때문에 그 경계선을 그물망으로 만들어 주는 회개를, 그것이 아무리 외식으로 보일지라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고 한다. 안 그러면 교회공동체에도 손상이 온다는 것. 순수하고 순진한 마음을 가진 신자들을 염두한 전략적인 접근이다.
박근혜의 김대중, 노무현 묘소 참배, 전태일 재단 방문 시도 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박근혜의 진정성을 문제시해야 하는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쪽과는 아예 선을 긋고 절대 넘어오지 않을 사람들을 의식한 고육지책임을 모를 사람이 있는가? 다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진중권의 "박근혜, 전태일 재단 전에 쌍용차 노동자 만나야"가 답인가? 이건 박근혜가 짜놓은 틀 안에서 놀아나는 꼴인데? 그래서 "그거라면 적극 지지해 드리죠"라는 발언도 가능한가? 박근혜보다 더 재치있게 정치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나온 말 같은데 마스터가 만들어 놓은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항상 마스터의 승리라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틀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자본의 꼬봉 박근혜가 자본의 오야봉이 되어 쌍차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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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대통령 후부 수락 연설문을 읽어 내려가는 중 문득 좌파가 이번 대선과 그 후 첨예한 위기에 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박근혜의 레토릭에서 20세기 초 이태리 파시즘의 레토릭이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1. 지도자와 국민이 하나 되는 파시즘적 국가 코포라티즘
이태리 파시스트 코포라티즘은 국가 주도아래 생산력을 완전히 통제하여 국민의 행복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박근혜를 보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당원동지 여러분! (...) 오늘 저의 승리는 당원 여러분의 승리이고, 국민 여러분의 승리입니다. [...] 저의 삶은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오늘까지 제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국민여러분이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제 삶에 마지막으로 주어진 무거운 책임을 안고, 국민 여러분과 함께 가고자 합니다. 제가 가는 이 길 앞에 수많은 고난이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진실과 정의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저의 가족인 여러분이 계시기에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민 여러분”에서 “당원동지 여러분”으로 올라오고, 다시 “당원 여러분”에서 “국민 여러분”으로 내려가고 국가를 가정과 비교하는 대목에서는 김일성의 주체사상까지 오버랩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서문>에 이렇게 쓰여 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여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고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시였으며 숭고한 인덕정치로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이끄시여 온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전변시키시였다.”
2. 이태리 파시스트 코포라티즘 구상의 관철 절차
- '제3의 변화'란 시대해석의 사령탑(Deutungshoheit) 선점.
“여러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우리 대한민국은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산업화로 기적의 ‘경제 성장’을 만들었고, 민주화로 성숙한 ‘정치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이제는 산업화 시대의 성장 패러다임, 민주화 시대의 분배 패러다임을 넘어서 새로운 제3의 변화, 국민행복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 민주주의 정치제도 외의 정치조직체(polity) 도입
“여러분, 저는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5천만 국민행복 플랜’을 수립하여 추진하겠습니다. 각계 전문가와 국민대표로 ‘국민행복추진위원회’를 구성해서 국민행복 청사진을 마련하겠습니다.”
3. 국체(Volkskörper)에서 ‘이물질’ 배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가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이라면 그 누구와도 힘을 모으겠습니다. 100% 대한민국을 만들어, 5천만 국민의 역량과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새누리당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우리는 승리합니다. 이번 대선은 종북세력과 그 연대세력으로부터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는 역사적 사명이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경쟁정당을 정치경쟁자가 아니라 전쟁을 치러서라도 없애야 하는 [외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2021/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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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6 |
내가 갖고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아마 초등학생에게나 어울리는 이미지일 거다.
통 큰 사람.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된 배경은 아마, 물가에서 무를 다듬는 아낙네들이 왜 저런당가 도체 이해할 수 없는, 마을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내전으로 점철된 한국사회의 모순을 몸으로 체험한 어른들의 말없는 바램일 거다. 아마 그런 바램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잡은 결과일 거다. 통 큰 사람이 나타나 모두를 다 담는 화해자가 대통령이 되기를, 화해자가 아니면 최소한 그런 중재가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 결과일 거다.
박근혜가 이런 통 큰 사람?
지배자/승자가 베푸는 ‚망각’(Amnesty/사면, amnestein/망각되다)과 정의 실현에 전제되는 피지배자의 밝힘(진실) ‚추모, 그리고 평가 사이를 부동하는 화해에 대하여 해야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선 박근혜의 통과 관련해서 두 가지를 지적해 보고자 한다.
1. „본의아니게“ 망언 관련
갈라진 사회가 통합을 향하는 길목에는 „transitional justice“란게 있다. ‚과거를 청산하는 과도기적 정의’ 정도로 번역되는 용어인데, 뭔가 아닌 것 같다.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transitional justice“와 함께 „과도기적 정의“란게 뭔지 알쏭달쏭하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넘어간다는(transire) 말인가? 시대흐름이 일정기간을 통과한다는 말인가? 그럼 달라지는 것이 뭔데?
시대연속성의 단절이 아닐까? 기존의 관행을 잠정적으로나마 유보하는 것이 아닐까? 기존의 관행이 자신을 넘어서, 자신이 같혀있는 틀에서 벗어나 지난 일을 밝히고 평하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물가에서 „무를 다듬고, 총기로 더렵혀진 땅을 빨래질 하는“ 아낙네들의 ‚그람 모써’가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에 비해 „본의아니게“란 망언에는 – 프로이드적인 실수행위론에 입각한 분석은 차치하고 - 군사적, 정치적, 법적, 철학적 기존 관행과 참조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협소한 시각이 스며있다. 자기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없이, 자신의 협소한 세계관에 같혀 과거를 좀 단장해서 현재로 넘어가겠다는 말이다. 아낙네들이 바라는 통 큰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작전 수행 능력은 탁월하지만 조준선 한 치 옆을 보지 못하고, 그런 건 ‚콜래터럴 데미지’라고 하는 시야 좁은 마인드에서 나온 말이다.
2. 박상일•이영조 후보의 공천 전격 취소
„본의아니게“ 망언과 박상일.이영조 후보의 공천 전격 취소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본의아니게“ 망언과 박상일.이영조의 발언은 사실 같은 선상에 있다. 근데 왜 박상일.이영조만 쫒겨났지?
새누리당은 후보의 도덕성과 공천의 투명성, 원칙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건 내용이 공허한 강령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좋게 말하면 절차에 충실하겠다는 말이다. 그럼 위 공천 전격 취소는 뭔가?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인가? 내용도 없고 절차도 개판이란 말인가?
내용없이 크게만 그려 놓은 원을 절차로 채우겠다는 새누리당의 뻥튀기가 제대로 될일이 없다. 충실한 내용을 축으로 하여 모순과 논쟁을 거쳐 통합으로 향하는 큰 통이 되는 작은 씨앗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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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4세와 그레고리우스 7세의 뒷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교회 안으로 다시 들어와 왕권을 다진 하인리히 4세에 의해서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교황자리에서 쫓겨나 객사한다. 누가 이긴 것인가? 개인적으로야 그레고리우스 7세가 졌지만 교회차원에서는 그레고리우스 7세가 이겼다. 최소한 무승부였다. 하인리히 4세의 교회공동체에서의 제명이 고집되었더라면 아마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더 일찍 일어났을 것이다. 마틸데의 탁월한 전략적인 접근으로 인하여 하인리히 4세가 '교회'의 범주에서 이탈하지 못하고, 그 결과 교회가 최소한 프랑스 혁명까지 그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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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판 '국민대통합'을 뒤집는 구호(Parole)가 안 보인다. '국민대통합'을 견제하는 논리(langue)의 정립과 함께 '의자놀이'와 같이 상황을 한폭의 그림으로 압축해서 뒤집어 주는 구호가 아쉽다. "¡No pasarán!"만을, '그들은 넘어올 수 없어'만을 고집할 때인가?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