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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2/14
    "뼈를 깍는" 박근혜, 쿼바디스? - 2
    ou_topia
  2. 2016/02/10
    2016/02/10
    ou_topia

"뼈를 깍는" 박근혜, 쿼바디스? - 2

1.

 

산책하면 늘 그러듯 짝지는 어제 역시 느닷없이 동요를 부르기 시작한다.

 

“같은 하늘 밑에서 사는 우리들

우리는 송이 송이 나라 꽃송이

너희 고향은 어디냐 너희 고향은 어디냐

함경도다 전라도다 평안도다 경상도다

황해도다 충청도다 강원도다 경기도다

그리고는 제주도다 ”

 

가사가 맞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그러니까 국민학교 다닐 때 배웠다고 하는데, 난 아무런 기억이 없다.

 

2.

 

문득 작년 말 별세한 전 독일 총리 헬무트 슈미트를 기리는 <슈피겔>의 표지가 떠오른다. 얼굴과 손이 어우러진 인물 사진이다. 밑에서 위로 비스듬하게 올려 찍은 사진이 손을 강조하고 있다. 상황이 요구할 경우 신속하게 결정하고 냉철하게 추진한다는 'Macher'('행동으로 옮기는 자, 그리고 그런 능력이 있는 자')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겼다. 담배를 피고 있다. “의지, 사람은 이게 있어야 해. 플러스 담배“라는 슈미트의 재담이 버팀목이 되어 손 쪽으로 치우쳐진 머리로 인해 불안정해진 삼각형 구도가 안정감을 되찾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담배가 의지와 함께 이성과 실천의 조화를 이루는 버팀목의 요소?

 

공적 공간에서의 금연 논쟁이 한참 진행 중일 때 독일 정치 풍자 개그맨 디터 힐데브란트(Dieter Hildebrandt)가 흡연을 - 좀 익살스럽지만 - 호평했던 게 생각난다. 담배는 인디언의 생활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그 이상은 평화라고 했다. 전시 두 족장이 만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담배만 피우는 게 평화의 첫 걸음이 되었다는 것. 이런 ''의 유보에서 평화가 싹텄다는 것.

 

데리다의 “차연“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담배? 아니면 헤겔의 “매개된 직접성”(„Vermittelte Unmittelbarkeit“)이 더 어울리나?

 

3. 박근혜 대통령의 '외로운' 결정 vs. 헬무트 슈미트의 “大위기[상황]스태프”(Grosser Krisenstab)

 

1977년 가을 헬무트 슈미트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다. 독일 적군파가 독일 연방고용주협회장 겸 독일 연방산업협회장 마르틴 슐라이어를 납치하고 수감된 적군파 전원 석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PLO도 가세하여 독일 루프트한자 여객기 '란쯔훗'(Landshut)을 납치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헬무트 슈미트는 유관 부장, 야당 총수, 그리고 유관 경제계 인사를 망라한 “대위기[상황]스태프”를 소집했다. 이렇게 '국론'을 하나로 모았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의 '외로운' 결정이 국론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까박근혜 대통령의 '깡지지' 보수 언론까지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다.

 

4.

 

그나마 다행이다. 오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회연설”이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보수 언론이 요구하는 “대국민담화”의 포퓰리즘을 피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국민심판론 등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를 우회하는 통치를 두고 볼 때 결코 밝게 전망할 수 없는 상황이다. 포퓰리즘의 본질이 “직접성”에 있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매개된 직접성”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문제를 두고 모든 야당과 소통해야 한다.

 

5.

 

자타 모두 헬무트 슈미트의 정신적 지주는 포퍼 경과 칸트라고 했지만 생중계된 국장(國葬)을 보는 중 그건 보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죽음을 넘어서 국장 순서와 배열을 세심하게 지시한 슈미트는 포퍼 경과 칸트를 넘어서 삶의 아픔에 시달리는 '인민의 정서'를 갖춘 사람으로 다가왔다. 그가 원했던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저녁노래/Abendlied>의 마지막 연 연주에는 눈시울이 좀 뜨거워지기도 했다.

 

Und laß uns ruhig schlafen!
Und unsern kranken Nachbar auch!

(그리고 우리가 편히 잠들게 해 주세요! 우리뿐만 아니라 병든 우리 이웃까지)

 

 

''과 이성의 외곽에 있는 뭔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뭔가 성스러운 것, 손대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게 슈미트의 선곡이 의도했던 것일까? 국장에서는 의례 군인들이 관을 들고 나가지만 슈미트는 먼저 민간인이 관을 들고 교회 밖으로 나가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 비로서 군인이 관을 위임하도록 했다. 국가 권력에 선행되는 성스러운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6.

 

한반도 상황에서 손을 대서는 안되는 성스러운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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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0

1.

 

"당신들은 전혀 올 필요가 없는 곳이다." (조정로, 민주 수업, 29쪽) 너무 쓸쓸하다.


고속버스 터미널 주변 모텔에 투숙하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시내? 당연 도청 주변이다. '도청' 앞에서 내려 먼저 충장로에 들어섰다. 붕어빵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다시 빠져나왔다. <아시아문화전당>은 무인도 섬이었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데 어둡고 사람이 없다. 붕어빵을 찾아 금남로를 걸어 내려갔다. 금남로 역시 어둡고 사람이 없다. 어느 골목 모서리에 붕어빵 집이 있다. 겨우 찾았다. 붕어빵 여섯 개를 사서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너무 쓸쓸하다. 이번 여행 내내 사라지지 않는 가위눌린 느낌이 다시 엄습한다.

광주, 다시 안 가.


2.

 

'행복 국가' 만들기 몇 년이지?

 

고속버스 내 TV. 무슨 채널인지 모르겠다.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는 한국인의 모습을 그린 프로그램. 아, 이게 한국형 '행복 국가'의 본질이었구나!

 

그 본질은 봉사 활동하는 사람들의 모자에 있었다. 하나같이 이런 모습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 하얀 모자에 19세기 말 유럽 백인 아프리카 봉사자들의 하얀 모자가 겹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세기 서구의 “윤리적 제국주의”가 한국인을 지배하는 심성이 되었나?

 

 

3.

 

<더민주> 김종인의 '북한 붕괴' 발언.

마스터가 만든 게임과 룰에서 마스터를 이긴다 할지라도 진정한 승자는 언제나 마스터.

박 '세습' 정권이 만들어 놓은 판/무대에서 공을 세운 탁월한 전략가 김종인. 그를 영입한 <더민주>.

무엇이 바뀔까?

 

중앙일보 대기자 김진국의 칼럼 <공포의 균형, 평화의 균형>에 답답함이 약간 풀린다.

'윤리적 제국주의'를 벗어버리고 '윤리적 민족주의'로 가는 길? 이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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