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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07
    독일 농민전쟁 -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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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민전쟁 -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원문: http://www.memmingen.de/918.html

하늘 또는 지상권세의 윗사람에 종속되어 그들로 부터 억울하게 억눌림 당하는 농민과 소작농들의 근본적이고 정당한 [요구의] 주요 조항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글을 읽는 사람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은혜가 있기를! 현재,  집결한 농민들 때문에  복음을 모독하는  적(敵)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건 새로운 복음[종교개혁] 열매라고누구에게도 순종하지 않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분노하여 일어나 대항하고, 때를 지어 한곳에 모인 힘으로 똘똘 뭉쳐 하늘과 지상권세의 윗사람[제도]를 개혁하고 뿌리 체 뽑아버리려고, 아니 그들을 때려잡으려고 한다고이렇게 하나님을 멀리하고 모독하는 모든 변론가들에게 아래와 같이 글로 조항으로 답변한다. 우리는 우선 하나님 말씀을 모독하는 것을 파기하고, 그 다음 불순종, 아니 모든 농민의 분노를 그리스도적으로 변호하려고 한다. 첫째, 복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서 분노 혹은 동란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약속된 메시아 그리스도의 말과 삶이 오로지 사랑, 평화, 인내, 그리고 한마음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두 서로 사랑하고 온순하고 인내하며 한마음이 된다. 이런 이유로 농민들이 제시한 모든 조항의 근본은  (명백하게 드러나 있듯이) 복음을 듣고 복음을 따르는 삶을 지향한다. 사태가 이런데 어떻게 적(敵)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종교개혁의] 복음을 분노와 불순종의 원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반면, 적잖은 적(敵)그리스도인들 및 복음의 원수들이 이러한 [=복음을 따라 살려고 하는] 마음의 움직임과 열망을 거부하고 뻣뻣이 일어나 대항하는 것은 복음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가장 혐오한 원수인 마귀에서 기인된 것이다. 마귀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 사이에서 복음을 불신하는 이런 행위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마귀는 (우리에게 사랑, 평화, 그리고 한마음을 가르치는) 하나님 말씀을 억누르고 우리로부터 앗아갔다.  둘째, 농민들이 요구조항에서 [사랑, 평화, 인내, 그리고 한마음을 가르치는] 복음을 가르침과 삶의 [지침으로] 열망하는 것을 두고 볼 때 그들을 불순종, 폭동이라고 몰아붙일 수 없다. 반면, 하나님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농민들의 [소원을] 받아 들어주시기를 원할 때, 과연 그 누가 나서서 하나님의 의지를 나무랄 것인가? 그 누가 하나님의 심판에 손댈 것인가? 아니 그 누가 하나님의 존엄에 맞서 거역할 것인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소리 높여 그를 부르는 그들의 [소원을] 받아 들어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떼어 내 주시지 않았던가? 하나님이 자신에게 속하는 사람들을 이젠 더 이상 구원하시지 못한 단 말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여, 아래 조항들을 조목조목 다 읽고 난 후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

 

그 조항은 다음과 같다.

 

1조:

첫째, 우리가 우리 모두의 의지와 의견이 담긴 겸허한 마음으로 청하고 열망하는 것은 앞으로 [삶의 공동체 기초단체인] [교구]마을이 담임목사를 스스로 선택하고 임직하게 할 수 있도록 우리가 권한과 [그 권한을 관철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파워를 갖기 원하는 것이다. 또한 [교구]마을이 [이렇게 선택된] 담임목사가 주어진 몫에 어긋나게 행동할 때 그를 다시 해임할 수 있는 실질적인 파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선택된 목사의 몫이란 우리에게 성스러운 복음을 순수하고 명백하게, 즉 모든 인간적인 첨가물, 가르침과 규율을 배제하여 설교하고, 항상 참다운 믿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우리 안에서 참다운 믿음이 자라 완성되어 거주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청하는데 있어서 모범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자라 완성되지 않으면 우리는 항상 살과 피로 남아 그 외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서에] 명백하게 기록된바 우리는 오로지 참다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로만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를 앞서가는 자, 곧 목사가 필요하고, 목사란 [오로지] 이런 모범자로서[만] 성서적인 것이다.

 

2조:

둘째, 구약에서 제정된 정당한 십일조가 신약에 와서는 [이미] 충족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곡물에 대한 정당한 십일조는 기꺼이 받치려고 한다. 하지만 [성서적으로] 타당한 한도 내에서 그렇다.  성서에 따르면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서 하나님께 속하는 자들에게 배분되는 것이다. 그래서 십일조는 하나님 말씀을 명백하게 선포하는 목사에게 배분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 교회의 교구감독으로 하여금, 해당 [교구]마을이 그렇게 결정한 한해서, 십일조를 걷고 취하도록 하고, 그 일부를 해당 교구마을이 선택한 한도 내에서 목사에게  그와 그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적합한 생계비를, [교구]마을전체회의의 결정에 따라 지급하도록 한다.  지급하고 남은 것은 해당 [교구]마을에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경우 그들에게 필요상태와 교구마을의 결정에 따라 지급한다.  그래도 남는 것은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이 도래할 때 무장해야 하는 것을 예비해서 비축해 둔다. 이런 경우 가난한 사람에게서 나라[국방]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도록,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이런 [잉여]잔여금으로 무장에 관한 지출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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