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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란히톤 - loci communes - 2 (자유의지)

1. 인간의 능력, 특히 자유 의지에(liberum arbitrium) 관하여


아우구스티누스와 베른하르트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는 자유 의지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그리고 전자는 알다시피  펠라기우스파를 대항하여 집필한 후기 저서들에서 예전에 한 말을 여러 번 철회했다. 베른하르트 [또한] 한결같이 않았다1. 이 주제에 관하여서는 그리스인들 사이에도 이런저런 애기들이 있지만 산만할 뿐이다. 나는 정말 사람들의 의견을 추종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사태를,  성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성서와 함께 동시에 인간 이성(ratio)의 판단을 충족시키기를 원했던 옛날 저자들과 새로운 저자들이 번갈아 가면서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이 사태를,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드러내고 싶을 뿐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죄를 짓게 된다고 가르치는 게 관용이 빈약하고 세련된 에티켓이 없는 무례한 놈(parum civile)으로 비치고, 자신을 악습에서 덕으로 옮길 힘이 없는 의지를 꾸짖는 게 무자비하게 비친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인간의 능력에 어울리지 않게 사실보다 더 많은 능력을 할당하는데 그 모습이 놀랍게도 천차만별이다. 이유는 성서가 이러나저러나 항상 이성의 판단과 모순 관계라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자유 의지란] 이 관점의 영역에,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철저하게 철학과 인간 이성과 구별됨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쥐도 새도 모르게(sensim) 그리스도교에 기어 들어와  자유 의지란 타락한 (impius) 도그마가 수용되고 그리스도가 행하신 선한 일들을 저 더럽고(profanus) 허구한(animalis) 인간 이성의 지혜로 어둡게 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뜻하시는 바와 판단과는 완전히 딴판인(alienissima) 자유 의지란 말(vox liberi arbitrii)이 통용되었다.  우리가 보건데, 이 말의 [덧에 걸려] 성인들조차 헛발질하고 넘어지지 일쑤였다. 여기에 플라톤의 철학에서 뽑아온 이성이라는 단어가(vocabulum rationis) 더해졌다. 똑같이 망하는 길로 이끄는 말이다. [중세] 교회에서 그리스도 대신 아리스토텔레스를 끌어안았듯이 교회가 세워지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이미 그리스도 가르침(doctrina)이 바로 플라톤 철학에 의해서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그 결과 교회에 정경[성경]외 왜곡되지(sincerus) 않은 글이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주석을 달고 전해지는 모든 게 철학 냄새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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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멜란히톤 역시 나중엔 [신학총론 등에서] 경배의 대상이라고 한 신, 삼위일체 등에 이런저런 말을 한다. 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