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전 회장 사면 유감

2009/12/30 22:33

과연 이건희 전 회장이 정당한 죄값을 사면받는다고 해서 우리나라 경제가 살아날까?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다시 한 번 인정받는 이 시점에 대한민국에 산다는 게 피곤하다.

 

인재 한 명이 천명을 먹여살린다는 이건희 전 회장의 주장이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씁쓸하기만 하다.

 

이상호 기자나 최근 무죄 선고를 받은 노회찬 대표가 이럴 줄 알면서 그리도 노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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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비교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태인 교수와 이명박 대통령.

한 분은 방송을 통해서 한 분은 직접.

 

 우선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연설은 착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치적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대통령 감을 '퍼펙트 남'에서 '자기 의사표현을 잘하는 정치인'으로 낮췄다는 겁니다. 

오늘은 그나마 나아질 줄 알았더니 가면 갈 수록 심해지네요.

듣는 내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남는 거라고는 트랜스 피쉬 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그 전에 있었던 정태인 교수와의 인터뷰는 재미있었습니다.

녹취하는 입장이라 쓰는 데 집중하느라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그의 이야기에 이론과 유머러스 둘 다 가득 차 있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DJ를 할 만큼의 달변은 분명 이명박 대통령의 그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 거 같습니다.

 

P.S 오늘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정태인 교수의 강연은 듣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듣고 싶었던 강연회였는데 너무나도 아쉽네요.

그리고 올 해 경제학을 부전공으로 하게 할 만큼 재미를 느끼게 한 사람이 정태인 교수였는데

5시간 이상을 같이 하고 같이 차 마시고 같이 밥 먹었으면서 고맙단 얘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 놈에 낯가림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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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기 이전에 저는 진보신당 당원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임종인 후보가 이번 선거에 나온다고 했을 때 부터 지지했던 네티즌 중의 한 명입니다. 아무래도 한 쪽에 치우친 글이 될 거 같아서요. 설명문 보다는 논설문이 될 거 같습니다.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김영환 후보의 글이 있더군요. 직접 김영환 후보의 홈페이지에 가서 그 글이 맞는지 확인했습니다. 제목이 '후보단일화에 대한 저의 입장' 이란 성명서네요. 읽으면서 씁쓸해지는 글의 목록이 한 편 더 늘었군요. 직접적으로 김영환 후보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뭐가 그렇게 자신있는지 말이죠?

 

"아무리 군소 야당들이 지지하고 있다고 해도 무소속 후보일 수밖에 없는 임종인 후보가 공당이며 제1야당인 민주당을 상대로 후보단일화를 요청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상식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공정한 경선과정을 거쳐 안산시민의 선택을 받아 민주당 후보로 공천된 저와의 후보단일화를 요청하는 것 역시 사실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김영환 후보가 오히려 상식에 어긋난 거 같습니다. 오로지 힘의 논리로 모든 걸 결정한다는 김영환 후보의 생각은 '내 안의 이명박' 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네요. 과연 민주당 앞에 모든 야당이 무릎 꿇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실 수 있는 지 궁금하군요. 작년 12월에 정세균 대표가 '경제·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제정당·시민사회단체·각계인사 연석회의’ 에서 참석한 사람들과 함께 머플러 들고 사진 찍었다는 건 함께 참여하는 정당, 시민단체와 동등한 파트너로 삼겠다는 의미 아니였습니까. 그런데 1년도 안 지나서 김하늘이 김래원을 때리듯 "난 민주당이고 너는 마이너야" 를 외치며 때리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17대 국회 때 안산 상록을 국회의원은 누구였던가요? 김영환 후보의 홈페이지에 있는 문구인 '안산이 키운 검증된 인물' 은 임종인 후보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김영환 후보가 공정한 경선과정을 거쳐 안산시민의 선택을 받았다면 임종인 후보도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과 안산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지지를 얻으며 안산시민의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안산시민의 선택을 받은 후보가 명분이 같은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하는 게 뭐가 그렇게 무례한 겁니까?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김영환 후보가 무례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광주민주화운동유공자로 망월동 민주열사 묘지에 묻힐 것이 예약되어 있고 민주개혁세력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신다구요? '과연 박광태 시장이 민주개혁세력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라는 말과 함께 고민할 거리를 제공해 주는 거 같네요.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유공자인 분들이 탄핵으로 인해 2004년 4월 정치적 심판을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영환 후보도 그 중 한 명으로 알고 있구요.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그 분의 정신을 받들겠다며 거치식까지 한 정당에게 그에 대한 심판은 아직 유효하다고 이야기 하는 건 제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데요.  

 

 올 해 야당에 첫 승전보를 올렸던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은 경기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지지를 받아 승리했습니다. 연대에 의한 승리였기에 파토스까지 느끼게 만들었지요. 저는 이번 선거에서 그 감동을 다시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은 임종인 후보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환 후보의 당선은 민주당 의석 하나 늘려줄 뿐이지만 임종인 후보의 당선은 '반MB 및 개혁진보진영의 승리' 라는 상징성을 지니기 때문이지요. 그런 상징성을 무시하고 '내 밑으로 다 조용히 해' 라는 이야기는 ♪내 귀에 한약 약처럼 씁쓸해♪ 로 들립니다. 진심으로 ‘야권연대를 통한 반MB연대’의 진정성을 믿는 다면 이런 자기 중심적인 이야기는 다시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P.S 진보진영을 안 좋게 보는 수구 어르신들의 특징이 진보정당하면 '민노당'밖에 모르던데 어쩜 그렇게 토씨 하나 안틀리게 그러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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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4월 1일 나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진보신당에 입당한 이유는 설명할 수 있지만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이유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물어보면 "이 분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고 내가 지지하는 분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 이라고 할 뿐이다.(근데 세상 일이 한 가지 이유로 되는 건 아니다.) 원내진출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말과 함께.

 

 

 민주노동당에 대해 알게 된 건 안티조선을 했다거나 정치캠프에 참가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냥 노사모였던 스승과 친구들 덕분에 '전라디언'이란 말을 듣는 내 주위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그 쪽을 지지했던 게 '레드 컴플렉스' 에 조금은 자유로웠던 거 같다. 그리고 97년 딱딱하게 TV 연설을 하고 있던 한 후보를 향한 아버지의 극찬과 "경험이 많았어도" 라는 탄식을 기억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아버지는 다른 후보를 뽑았다. 아니 한 번도 진보정당을 찍어본 적이 없다. 활동가들의 글을 보면 한 번씩 나타나는 '자신의' 후보를 찍지 않는 조합원 중의 한 분이시다.) 덕분에 2002년 '이회창이랑 노무현은 알겠는데 그 옆에서 같이 토론한 사람은 누구야?' 라는 친구의 질문에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이유들이 민주노동당을 더 친근하게 느끼게 하고 입당까지 하게 만든 거 같다.

 

 

 민주노동당이 분당했을 때 수도 없이 나온 두 단어를 기억하는지? 바로 '자주파'와 '평등파' 말이다. 이런 구분이 좋다거나 정확한 건 아니지만 이분법적으로 선택하라 한다면 나는 '평등파' 계열이였다. 지인따라 노선이 결정되는 우리나라 운동권의 한계에 빠졌다라고 한다면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철저한 에고이스트인 내가 체감하기 힘든 통일담론 보다는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곳이 더 좋았다. 그리고 성장 가능성도 그 쪽이 더 크다고 생각되었다. 그랬기에 나는 정당한 방법으로 평등파 계열이 당권을 가져야 민주노동당이 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수로 노회찬 의원이 되길 소망했다. '불판'으로 시작한 촌철살인 멘트들로 민주노동당의 존재를 알게 했고 선거 당일 9선 김종필 총재를 물리치고 마지막 한 석을 얻어내며 17대 국회의 개혁성을 상징이 된 사람. 당선 이후에도 민주노동당의 대표선수로 자리매김한 의원. 나는 그를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도 자신의 생각을 설득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봤다. 그 친근함이 민주노동당을 바꿀 수 있을 걸로 봤다.(지금 생각해도 너무 순진했다. 아니 그 때도 순진하다 생각해 이런 얘기 아무에게도 안했다.)

 

 

 그 해 5월 1일 노동절에 나는 황광우란 분을 만났다. 1주일 전 방영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것과 달리 거친 이미지였다. 그의 이미지와 그가 내뿜는 카리스마로 인해 나는 주눅들었다.(덕택에 나는 아직도 황광우 선생님이 어렵다. 선생님이 싫어서 이야기를 안하는 게 아니다. 못하는 거다.) 하지만 자주 뵈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대부분 술을 마시며 ㅋㅋ) 무지한 내 머리 속을 채우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그 분이 내가 꼬맹이였을 때 노회찬의원 그리고 주대환 이란 분과 함께 인민노련이란 곳에서 함께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곧 '주대환' 이란 분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 동아리 방에 있어 읽은 적이 있던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을 수 있는가' 의 저자.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다큐멘터리 속에 나왔었지"  하지만 그가 인상깊게 다가오진 않았다. 노회찬 의원처럼 언론을 자주 타는 것도 아니고 황광우 선생님처럼 자주 볼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인 거 같다. 내가 그를 처음으로 대면한 건 10월 말에 있었던 '이재유 선생 60주기 추모식' 인 걸로 기억한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원내진출 이후 1기 지도부의 실패로 인한 우울함은 감출 수 없었다. 그 슬픔이 그가 전해 준 보드카로 전이되어 나는 원샷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2005년 '인천 트로이카' 라고 들었던 세 분에 대한 기억이다. 4년 후 노회찬 대표는 진보신당의 대표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2005년 당시 징계를 받고 있었던 황광우 선생님은 내가 입대한 이후 징계가 풀렸고 '철학콘서트'가 대박이 나 그의 직함까지 바꿀 수 있게 되었지만... 하여튼 지금 그의 땀이 남아있는 남원 연수원을 계속해서 지키며 지리산초록배움터 대표를 맡고 있고 전남대 철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주대환 선생님은 나눠진 두 정당을 모두 버리고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하셨고 사민주의에 대해 천착하고 계시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변절자' 란 이야기까지 듣고 있다.

 

 

 거기에 진보신당 최초의 국회의원이 된 조승수 의원도 인민노련이였고 골 때리는 말과 행동을 많이 하는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도 인민노련 출신이다.(그 쪽에서도 왼쪽이라던 글을 읽은 거 같은데) 총선 때마다 대동고에 프랑카드 걸게 만드는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도 인민노련 출신인 걸로 알고 있다. 거기에 계속해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변절 하신 분 그리고 생활인이 되신 분들까지. 그 분들의 기쁨과 좌절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드라마나 소설이 나오길 소망했으나 시대가 자꾸 우회전하기에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C급 경제학자라고 쓰고 동네 착한 형이라고 읽는'(내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우석훈 박사가 인민노련에 대한 책을 쓴단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그와 같이 작업을 하게 된 hendrix님 의 블로그에 가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나라에서 우석훈 박사는 제법 발언권이 큰 좌파 학자 중 한 명이다. 그가 움직인다면 80년대의 젊음과 2000년대의 젊음을 교류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 같다. 『이상한 나라의 인민노련』을 통해 25살의 베쓰볼 키드가 25살 황광우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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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들은 대화의 한 토막.

“그럼 그 사람도 같은 기독교인이야?”

“응, 그런데 그 친구랑 나는 달라. 나는 진보적이라 타 종교에 대해 관대한데 그 친구는 보수적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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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식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면 살림살이 나아지십니까?”(사진 =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조훈현 기사가 그 전 경기를 복기하듯 자칭 진보진영에 복무한다는 분들은 이 내용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진보-보수의 기준이야 학자들이 정하는 게 교과서로 채택되겠지만 생활 속에서 통용되는 진보-보수의 기준은 ‘상대방에 대한 관용’ 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보 ‘꼴통’ 이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대한민국 진보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총에서(개인적인 생각은 그렇다.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다는 건 알지만...) 특정 정당을 향해 ‘배타적 지지’를 한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그 정당에 대한 배너만 찾을 수 있는 걸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홈페이지를 들어가게 되면 메인사진에 그 정당의 깃발이 휘날리는 걸 보게 된다.


 ‘배타적 지지’를 결정한 당시 진보정당의 필요성에 비해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인지라 그 당의 힘을 키워 줄 필요성이 있었다는 건 100번 이해하는 바이다. 하지만 한 때 제 3당이기도 했고 지금도 선거 때 기호 5번을 얻으며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이지 않는가. 재선에 성공한 의원이 두 명이나 있고 그 두 명 다 개그 소재로 활용될 만큼 인지도를 쌓고 있는 2009년에도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필요한 건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눈에는 독립한 40대 자식을 세수 시키며 코 풀어주려 하는 할머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지난 10년간의 사회적 분위기 덕택에(지난 1년 반 동안 되돌아가는 것 같긴 하지만) 그 동안 ‘금기시 되었던 사상의 자유’가 허락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하는 많은 단체들이 생겼고 그 곳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총 조합원인 걸로 알고 있다. 민주노총도 이에 발 맞춰 그 조합원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온당하다고 생각하건만. 현실은 자기네들 방식 아니면 정치 세력화 할 수 없다 라며 조합원들을 고립시키고 있다. 어찌 보면 사상의 자유를 막는 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국가보안법이 아닌지.


 지난 11일 민주노총 47차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진보정당 세력 단결과 통합 촉구를 위한 선언문’이 채택 되었다. 임성규 위원장은 그 전날 “우리 요구를 외면한다면 민주노총이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 위한 제3지대를 추진할 것” 이란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과연 누구 좋으라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노동자들을 위해” 라는 대사는 읊지 마라. 위선적으로 보인다. 가식적인 멘트 할 생각이면 차라리 생물 선생의 “생태계에서 종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라는 가르침을 기억해 내기 바란다. 그게 진보진영과 민주노총이 국민에게 인정받는 '진보' 가 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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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은 후의 서평을 쓰듯 옆에서 보며 느낀 점을 말하자면, 사실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생각하고 있는 분들의 글을 보고 생각을 들어보면서 '허공에 떠 있다'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경직되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너무 자신들의 시점에서 자신들만의 언어로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무작정 '그들이 좋지 않다' 라는 건 아닙니다. 국민들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마르크스 주의'가 오랫동안 금기시 되었던 우리나라의 현실도 한 몫 하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중정당'에 적을 두고 있는 것도 제 생각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최소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라면 그들의 의견도 통용되어야 하며 그들이 우리나라에 필요하다는 걸 저는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프롤레타리아네트워크뉴스가 있습니다. 주요 투쟁들의 소식들을 위주로 다루는 언론사입니다. 이 곳을 접속할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게 언론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 홈페이지가 없고 블로그로 운영되고 있다는 거지요. 물론 1인 미디어의 장으로서 블로그가 언론 역할을 한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무슨 이유인지 안타까워 지네요.

 

 이 블로그를 접속하신 분들께서는 한 번 이 곳의 글들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의 시간을 양보하신다면 우리나라를 좀 더 넓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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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이 올 해 8월 11일 오세철 교수와 그가 속해 있는 사노련(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간부들을 불구속 기소했었습니다.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작년 8월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했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지요. 재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구요. 이들을 무리해서라도 잡아들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헌법적 가치를 부정한다는 것 때문이죠.

 

 그런데 국가 브랜드 운운하면서 헌법의 내용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죠. 집단들이 있습니다. 헌법 제 33조 1항을 아십니까? 바로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입니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권리'를 무시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검찰은 왜 그런 사람들은 기소 안하는 지 모르겠어요. 법치를 외치면서 정작 헌법에 나와있는 내용을 무시하는 것 보다 차라리 '이 놈의 헌법' 을 외치는 게 더 나아 보입니다. 최소한 그거는 위선적으로 보이지 않거든요.

 

 죽창시위가 좋지 않다는 건 저도 인정합니다. 쌍용차 노조가 공장을 점거한 게 쌍용차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태만을 보고 국가브랜드 운운하는 건 보내기 번트했는데 아웃됐냐고 성내는 거와 같겠지요. 정부가 단체행동권을 인정했다면 과연 죽창시위가 벌어졌을까요? 故 박종태씨의 고민과 택배 기사들의 고충을 정부가 관심을 가졌다면 과연 화물연대가 파업을 했을까요? 쌍용차 사측이 용역을 고용하고 勞-勞갈등을 조장하는 걸 막았다면 과연 쌍용차 노조원들이 공장을 점거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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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6일 금속노조금호타이어지회의 광주역 집회에서 연대하러 온 금속노조 조합원의 뒷모습입니다. 등에 써 있는 글처럼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합니다.그게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사진= 진보신당 광주시당)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광주에서는 금호타이어의 파업 여부에 지역 사회가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늘 노조가 쟁의행위를 중단하고 사측이 직장폐쇄를 해제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지요. 하지만 노조 집행부 선거가 끝나는 다음 달 2일 이후에 또 다시 싸움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주요 쟁점인 '정리해고자 733명' 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저는 노조를 지지할 것입니다. 회사가 어려워진게 노동자들의 책임이 아님에도 이걸 노동자들이 참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또한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노동자들이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승리하시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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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타이어 직장폐쇄 유감

2009/08/25 12:20

 오늘 금호타이어가 직장폐쇄를 했다고 합니다.

금호그룹이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큰 손실을 봤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왜 애꿎은 노동자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무리한 정리해고가 '쌍용차의 비극'을 낳았다는 교훈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터지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쌍용차 노동자들의 구호였던 '같이 살자' 가 금호타이어에서는 이뤄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진짜 맨유 스폰서 할 돈은 있으면서 노동자에게 줄 돈은 없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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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9/08/19 09:42

 지난 일요일 충장로에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길이였습니다.

충장 서림 쪽을 지나다가 어느 분이 들고 있는 비닐 봉투를 보았습니다.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

정말 갖고 싶은 책이였기에 여자친구에게 '저거 사고 싶다' 라고 이야기 했죠.

 

 해태 타이거즈와 김대중 전 대통령.

80년 광주의 한을 풀어줄 거라 기대하던 광주전남의 두 아이콘.

야구팀이였던 해태타이거즈는 모기업의 부도로 KIA 타이거즈로 바뀌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요.

그리고 어제 김대중 前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비록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타 정당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한국과 지역의 큰 어르신을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이 느껴지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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