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6일 오전 8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1인 밴드로 활동하던 이진원 씨가 사망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이슈가 되었던 건 한 음원 유통 플랫폼에서 그에게 비상식적인 음원료를 지불했다는 것. 이진원 씨가 항의하자 그 회사 전용 사이버 머니(도토리)를 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가 이런 처우를 받은 이유는 단 하나.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상품성이 유일한 판단 기준인 게 음악뿐이겠는가? 많은 이들에게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달했던 독립영화도 대통령 앞에서는 ‘돈벌이 수단’이 될 뿐이고 해외에 진출한 드라마가 얼마에 팔렸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리고 스포츠 스타들은 그가 흘린 땀이 아닌 그가 받는 계약금과 연봉으로 평가 받는다.
문제는 문화의 상품화가 문화 자체뿐만 아니라 공급자와 수요자의 생각이나 가치관 모두를 동일하게 만드는 데 있다. 생태계에 다양한 종이 있을수록 좋듯 하나의 사회에도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좋다. 많은 곳에서 이 다양한 의견과 방식을 문화라는 장소에서 꽃피웠는데 위대한 인물들은 그 사회에 통용되는 양식에 대해 불신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정적일 때는 양식보다 다른 의견과 방식을 따랐다.(198~199P 변형) 인류의 진보는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런데 자유로운 생각의 장이었던 문화가 ‘최소비용 최대효용’이라는 경제적 논리가 만나버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 산업은 하자 없는 규격품을 만들 듯이 인간들을 재생산하려 든다.(193P) 또한 효율성에 대한 요구는 기술을 심리 조종 기술로, 즉 인간을 조종하기 위한 방법으로 만들어 버렸다.(246p) 그리고 이런 규격품에서 벗어나려 하는 인간에게는 철저한 소외를 통해 징벌을 내린다. 순응하지 않는 별종은 경제적인 무능 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는 나아가 정신적 무능력을 초래한다.(202P) 또한 소비가 최고의 미덕임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문화 속에서 오직 진리에 호소하고자 하는 언어는 돈 버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현실의 사람들을 짜증나게 할 뿐이다.(223p)
또한 현대 대중문화의 또 다른 특징으로 너무나 가볍고 자극적이다. 문화 상품의 속성은, 제작물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민첩성과 관찰력과 상당한 사전 지식을 요구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사실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 적극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불가능하도록 만든다는데 있다.(192p) 자극적인 음식을 먹게 되면 그에 중독되며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되듯이 대중문화도 자극적인 걸 접하게 되면 될수록 더욱 더 강한 걸 찾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왜 이걸 봐야 하는가’ 또는 ‘이게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같은 성찰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결국 문화의 상품화와 그로 인한 획일화, 그리고 가벼움은 궁극적으로 정치,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대중문화의 양식에 숨겨져 있는 비밀은 바로 사회적 위계질서에 대한 순종이다.(199p) 분명 자신은 불합리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양식에 익숙해져 누군가에게 순종하게 된다. 또한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며 자신의 이해관계를 배신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 201P의 한 문장을 조금 틀어서 본다면 문화 독점으로 가는 경향을 잡지 못해 파시즘을 잡지 못했다. 1930~40년대 유럽이 그러했고 현재의 대한민국이 그러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민주화 정부 시기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대부분 재벌 2세였던 걸 떠올려 보자. 그리고 선거 즈음 스타의 소장품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고 펀드 투자에 대해 이야기 하던 MBC <일요일일요일밤에>에서 방영되던 <경제야 놀자>를 생각해 보자. 아무것도 아닌 거 같아도 이런 것들이 2007년 대선에서 ‘경제=성공’ 이라는 프레임을 작용시켰다. 그리고 그 프레임의 최대 수혜자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무엇이 있을까? 개인이 참여하는 ‘대중문화’를 지향하는 건 어떨까? 책에는 청취자들을 서로 엇비슷한 방송 프로그램들에 권위적으로 복종시키는 라디오는 그들을 수동적인 객체로 만든다고 (185P)나와 있지만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인터넷의 발달로 피드백이 가능하며 기술과 장비의 발달로 자신이 직접 창작하는 UCC 물들도 많아지고 있다. 여기에 블로그,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이용해 자신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이나 사는 이야기들을 알리는 1인 미디어가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것들을 통해 천편일률적이던 대중문화에 다양성을 접목시키는 게 지금까지 대중문화의 폐해와 여기에서 오는 사회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에 앞서 에피소드 하나. 저번 학기 전공 수업을 듣던 중 한 교수님이 영어공부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며 TOEIC을 볼 것을 주문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교수님의 발언에 문제제기를 했다. 그 학생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자면 ‘공무원 시험에 있는 영어 공부와 TOEIC은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나에게 TOEIC 공부는 무용하니 공무원 시험용 영어를 공부하겠다.’
물론 무작정적인 TOEIC 예찬에는 반대하지만 교수의 발언이 자신의 영어 실력을 점검해 보라는 취지의 발언 이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 학생의 발언은 위험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만 하겠다.’ 문제는 이 학생이 싸가지 없다거나 실용적인 생각을 가진 게 아니라 이 학생의 생각이 20대들의 보편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쉽게 요약하자면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와 필요하지 않은 공부를 구분하고 극단적으로 다르게 그 둘을 대하는 것.’ 그 필요하지 않은 공부가 순수학문인 경우가 많다는 데 과연 순수학문이 필요 없는 학문일까?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다.’ 라는 말로서 논어의 ‘위령공 편’과 ‘이인 편’에 공자가 이야기 한 걸로 나와 있다. 나는 인생을 더 살아본 형님에게 이 사자성어를 중심으로 한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중세시대 대학에서 가르치던 하나의 과목이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게 되었다. 결국 모든 학문은 네트워크화 되어있다. 어느 공부든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말을 들은 이후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말을 해준 형에게 고마워함은 물론이다.
여기 『어린왕자의 귀환』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재테크, 주식, 10억 모으기 등 인기를 얻을 만한 경제적 담론은 아니다. 오히려 제일 인기 없는 학문 중의 하나인 정치경제학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다. 만화로 되어 있고 경제적인 개념은 대중과 호흡을 잘하는 경제학자로 손꼽히는(개인적으로 동네 착한 형의 인상을 받은) 우석훈 박사가 해제를 써서 어렵게 다가오진 않는다.
『어린왕자의 귀환』은 어린왕자를 이용하여 우리나라의 암울한 현실과 경제학의 몇몇 기본개념들을 알려주는 책이다. 남수와 주영이 비정규직인 ‘왕자’로 취직한 이후 은하철도의 나그네에게 컨설팅을 받은 이후 자유무역을 시행했으나 실패하고 각 별을 유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극대화 시키려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안내서가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FTA, 민영화, 자유무역 같은 개념들에 대해 친절하고 설명조가 아닌 가상의 에피소드를 통한 체험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 시키고 있다.
정말 쉬운 책이고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충분히 공감갈 수 있는 경제학의 개념들을 알려 주는 책이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필독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하지만 권했던 내 주위 사람들 중에 몇 명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필요한 공부와 필요하지 않은 공부를 나누고 있는 우리세대에 가장 기피하는 만화에 순수학문의 성격이 강한 책인지라 큰 자신은 없다. 하지만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 알고 당하는 게 그래도 반격의 기회를 얻을 수 있고 피해를 최소화 시키지 않겠는가? 머리 식힌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접근해서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처음으로 정치인에게 호감을 느꼈던 적? 중 3일 때 인거 같다. 중학교 시절 절친 두 명이 자신의 담임선생님을 따라 한 정치인의 팬클럽에 가입했었다. 친구들이 팬클럽의 수련회에 다녀온 후 그를 직접 본 소감을 이야기 하였다. "너무 좋은 사람인 거 같아. 정치인 같지가 않아" 나는 이 말을 듣고 포털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검색창에 뜨는 페이지들을 보며 바보 같지만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나가는 그의 모습에 나는 그에 대한 존경을 가지게 되었다.
2002년 나는 그가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국정치사에 회자될 감동의 국민경선. 이인제 후보의 대세론과 한화갑 후보의 ‘호남 적자론’ 을 꺾으며 얻은 광주경선에서의 압승. 그 여세를 몰아 그는 본선에서까지 승리하게 된다. 그렇다. 내 생애 처음으로 좋아하는 정치인은 바로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이다. 그런 그가 5월 26일 서거하였다. 다른 분들 보다 좀 더 이른 나이에 ‘원로’가 되었으니 많은 조언들을 국민들에게 해주길 바랐는데. 비록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그에 대한 지지를 버렸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아있다.
서거 이후 사람들은 그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책이 물밑 듯이 나오고 있다. 그 중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접할 수 있었다. 2007년 9월과 10월 세 번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오연호 대표는 ‘인물탐구 노무현’을 연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인터뷰는 그가 없는 지금 ‘노무현 정신’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오연호 대표는 책의 서문에 ‘그 3일간의 대화에서 여섯 명의 노무현을 만났다.’ 라고 이야기 한다. ‘바보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정치학자 노무현, 사상가 노무현, 인간 노무현’ 우직하게 자신을 있게 해준 부산을 고집하던 바보, 자본권력과 그에 예속된 언론권력을 감시하기 위해 시민권력이 앞서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사상가 및 정치학자, 지지자들이 자신으로 인해 곤란한 일들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미안해하는 인간, 자신이 내세운 정책의 당위성을 이야기 하는 대통령 그리고 정치에서 반칙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정치인 이 여섯 자아가 어우러져 노무현이란 인물을 만들어 내었다고 말이다.
진보정당에 적을 두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정치학자 노무현을 조명한 부분을 집중해서 본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하는 지도자론 ‘지도자 또는 지배집단이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회의 윤리의식, 가치 형성에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게 돼 있어요. 그 윤리와 가치의 핵심이 신뢰입니다. 신뢰.’ 정치권력보다 시장권력이 앞선 지금 시민권력을 통해 시장권력을 통제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 그리고 그걸 위한 천착. 이 책을 읽으며 진보정당들도 ‘노무현’ 에 대해 공부하며 시민들과 함께 공유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다만 한미 FTA 부분은...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성공할 수 있는 근거로 ‘민족성’ 을 제시했던 건 그에 대한 실망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와중에 김대중 前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그는 이 책의 추천사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승에서, 자신은 이승에서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내자고 이야기 하였다. 그런 그 또한 이곳을 떠나버렸다. 각각 5년 씩 나라를 운영한 지도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화의 지도자들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진다. ‘행동하는 양심’과 ‘각성하는 시민’이란 숙제를 우리에게 남겨준 두 분께 늦게나마 감사하단 인사를 드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