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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소피스트, 역사적 소크라테스

(*)[서양고대철학]수업에 제출한 레폿.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관계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수고를 조금 덜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기전 5세기는 서양고대철학사에서 있어 하나의 중요한 단절로 간주될 만한 시기이다. 물론 그 단절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 단절이 이전과 이후 시기와 어떤 연속성도 가지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새로운 사유 운동이 등장했다는 것 자체는 부인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거스리를 따르자면 이전 시기의 탈레스부터 다원론자(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원자론자)들에 이르기까지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자연학과 우주론과 같은 사변적이라 할 수 있는 주제들에 집중을 해왔다면, 이 시기에 등장하는 사상가들, 즉 소피스트들은 ‘정치’와 ‘도덕’과 같은 인간 사회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들에 보다 직접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거스리는 이런 사유의 경향을 가리켜 “휴머니즘으로 향한 반발”이라고 칭한다.[footnote]W.K.C 거스리, 박종현 옮김, 『희랍 철학 입문』, 서광사, 2000, 4장「휴머니즘으로 향한 반발」.[/footnote] 아테네를 활동 무대로 삼았던 소피스트들은 이오니아 학파와 엘레아 학파와 그 계승자들을 제치고 이후 소크라테스가 등장할 때까지 서기전 5세기를 긍정적인 의미에서건 부정적인 의미에서건 자신들의 시대로 기억하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유의 경향, 커퍼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운동”[footnote]조지 커퍼드, 김남두 옮김, 『소피스트 운동』, 아카넷, 2003, 10쪽. [/footnote]이 성공을 거두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순수철학사적인 관점에서 우리는 사유의 독창성이 우선적으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론적 차이만으로 철학사를 구성하는 작업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사후적인 것으로 자칫하면 뒤에 등장하는 특정 철학적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철학사의 어떤 부분을 축소하고 왜곡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게 그랬고,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플라톤이나 헤겔이 소피스트들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그리고 또한 그런 작업은 사유들이 이론적 동인(動因)뿐만이 아니라 실천적 동인 역시 가지며, 그 사유가 특정한 역사적 조건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간과할 위험도 가지고 있다. 물론 사유의 성격 일체를 사상가들이 놓인 역사적 조건에서 연역되어 나오는 것으로 간주할 수 없음에도 어떤 사유를 깊게 이해하기 위해 그 역사적 맥락을 따져보는 작업은 중요하다. 특히 이전 철학자들의 사변적 성격에 대한 비판을 주요한 특징으로 가진 소피스트와 그 이후의 철학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이런 문제의식 아래 우리는 우선 소피스트라는 사상운동이 어떤 사회적 ․ 역사적 배경 아래에서 등장했는지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배경 아래 흔히 알려져 있듯이 소피스트와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소크라테스의 관계를 극단적인 단절로만 바라볼 수 있는지의 여부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것이다.

 

 아테네에 있어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끝난 후 찾아온 이른바 ‘50년기’라 불리는 시기(서기전450~400년)는 가장 번창했던 시기였다. 페르시아인이 파괴한 신전을 전례가 없는 대규모로 복원하겠다는 공공건축계획이 세워졌으며, 투키디데스(Ⅱ.38)에 따르면 일상적인 삶에서의 물적 풍요 역시 다른 그리스 시대나 초기 그리스에 비해 훨씬 컸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경제적 번영은 소피스트들의 수업료와 후원금을 부담할 물질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어째서 그렇게 많은 소피스트들이 하필이면 아테네로 모여들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또한 같은 질문을 조금 다르게 던져보자면 어째서 경제적 자원이 다른 곳에 쓰이지 않고 소피스트들에게 지불되었는지 역시도 알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소피스트들은 아테네인이 아닌 이방인이었다. 키케로가 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언급에 따를 때, 그들이 주로 학생들에게 가르친 수사학은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고 15년이 흐른 뒤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시라쿠사의 참주들이 몰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로부터 재산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탄생한 것이다.[footnote]자클린 드 로미이, 이명훈 옮김, 『왜 그리스인가?』, 후마니타스, 2010, 131쪽.[/footnote] 즉, 아테네가 처음부터 소피스트들의 본거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페리클레스의 주도 아래 대대적으로 시행된 정치제도의 민주주의적 개혁이다. 물론 아테네 민주주의의 전통이 이 시기에 급작스럽게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를 추방하며 서기전 594년부터 시작된 솔론의 시대에서부터 아테네의 민주주의적 제도들은 조금씩 발전해왔다. 하지만 참주정의 형태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니었고 일부 지도적 가문들의 지배력은 잔존해 있었다.[footnote]『소피스트 운동』, 32쪽. 『왜 그리스인가?』, 121쪽.[/footnote] 민주주의가 막연한 원칙이 아닌 국가의 제도로서 구체화될 수 있었던 시기는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고 나서였다. 서기전 462-1년에 시행된 페리클레스의 정체 개혁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 시행된 다양한 제도적 변화들은 특권층의 지배를 억제하는 동시에 인정하는 양면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억제의 측면에 있어서는 우선 공직이 모든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공직의 개방은 공직 수행에 필요한 수당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가난한 계층에게 원칙적일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공직의 선출은 추첨을 통해 이뤄졌고, 민회가 행정관을 통제할 권한을 가지게 되는 등 보다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반면 인정의 측면에서는 군사직이나 재정직의 고위직은 추첨에서 제외, 인물의 능력에 따라 선출된다. 역설적이지만 페리클레스 자신이야말로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아테네에서 페리클레스의 권력은 거의 무제한적인 것이었다.[footnote]『소피스트 운동』, 32-3쪽.[/footnote]

 두 측면 모두 아테네에서 소피스트의 수요를 증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치적 권리에 있어서 평등의 원칙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연설 기술에 대한 수요가 크게 확장된다. “모든 조건에 힘입어 연설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으며, 최고의 권한을 갖게 되었다. 연설은 민회에서도 필요하고, 평의회와 법정에서도 필요하며, 행정관의 관리 업무에도 필요했다.”[footnote]『왜 그리스인가?』, 125쪽.[/footnote] 특히 법정의 경우는 수요의 확장 범위를 잘 보여준다. 사실 평민들은 민회에 참석은 해도 그리 발언의 빈도가 잦지 않았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변호하기 위해서 연설의 능력은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footnote]『왜 그리스인가?』, 128-9쪽.[/footnote] 토론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정체 개혁에서 촉발된 변화는 사회문화적으로 깊숙이 들어와 개인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따라서 연설을 가르치는 소피스트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커퍼드에 따르면 이런 가능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생각으로 보인다. “소피스트들이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대중의 교육에 대한 기여는 아니었다. 그들의 정치와 공적인 일에서 널리 출세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가치를 지닌 값비싼 상품, 즉 문법과 시가와 산술, 그리고 체육에서 학교에서의 기본적 교육 이후에 배우게 되어 있는 2차적 교육을 제공했다.”[footnote]『소피스트 운동』, 33-4쪽.[/footnote] 즉, 소피스트들의 고객은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모두가 아닌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가진 집안의 출세를 꿈꾸는 청소년과 청년들이었다는 것이다. 교육의 내용은 다양했으나 “출세 지향적”이었으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설득력 있게 말하는 기술의 훈련”이었다.

 커퍼드는 여기에 페리클레스 개인의 후원이라는 요인을 좀더 부각시킨다. 페리클레스는 “지성주의적 편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양한 사상가들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아낙사고라스, 프로타고라스와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맺었으며 제논으로부터 강의를 듣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소피스트들에 대한 당시 아테네의 여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그리스인인 경우 이방인을 환영하는 전통이 있었고[footnote]『왜 그리스인가?』, 143쪽.[/footnote] 플라톤이 자랑스러워 한 “언론의 자유”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에서 학자들의 추방, 사상의 경직화, 분서(焚書)와 같은 박해 행위는 그리 낯선 것만은 아니었다.[footnote]『소피스트 운동』, 39쪽. [/footnote] 이런 상황에서 소피스트들에게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었던 페리클레스의 정치적 영향력은 큰 힘이 되어주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실제로 그는 아낙사고라스와 아스파시아를 돕기 위해 직접 개입하기도 하였다.[footnote]『소피스트 운동』, 42쪽.[/footnote]

 

 지금까지 우리는 소피스트들이 등장한 정치적 ․ 사회적 ․ 경제적 ․ 문화적 배경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런 배경들이 ‘철학사’의 핵심적인 부분을 포함되기 위해서는 소피스트들의 사상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였는지에 대한 논의가 추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거스리가 지적하듯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보다는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에, 우주론보다는 정치학이나 윤리학과 같은 보다 실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예시로서 언급될 수 있지 않을까? 출세라는 현실적인 목적이 있었으니만큼 사변적인 주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하지만 사상의 기원이 실용적인 목적에 의해 규정되었다고 해서 그것의 내용이나 효과가 저평가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클린 드 로미이에 따르면 소피스트들에 의한 “수사학의 도약”은 그리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서의 연설과 토론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법정에서 민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그리스인들은 사유를 게을리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치밀하고 정교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서양 사유의 기초를 이뤘다고 본다. 그녀는 교육(‘덕을 가르칠 수 있는가? 덕은 유전의 문제인가, 교육의 문제인가, 관습의 문제인가?’)과 정치체제(군주정/과두정/민주정을 기초로 한 다양한 변주들)에 대한 논의를 그 예로 든다.[footnote]『왜 그리스인가?』, 172-181쪽.[/footnote] 그녀의 이러한 주장은 '고액과외교사'였기도 한 소피스트를 낙관적으로 평가한 부분이 없지 않고, 소피스트만을 주요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피스트의 전통이 서양철학사 내지는 사상사에 끼친 고유한 기여를 제대로 평가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테네 민주주의라는 배경에 기초한 이러한 소피스트 사유의 세속적 특성은 어쩌면 소크라테스 역시도 공유하는 것이다. 물론 소크라테스 자신이 돈을 받고 변론술을 가르치지는 않았으며, 이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차별점 혹은 우월성의 대표적 논거로 언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론적 주장을 제시하고 이 주장을 삶의 규범으로 삼고자 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보다는 소피스트들에 보다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당시에 전래된 종교를 비판했다는 점에 있어서도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 공통점을 가진다.[footnote]프리도 릭켄, 김성진 옮김, 『고대 그리스 철학』, 서광사, 2000, 96쪽.[/footnote] 소크라테스의 사유의 가장 큰 동기를 소피스트에 대한 반대로 규정하는 플라톤의 견해와는 달리 양자는 꼭 대립하지만은 않으며 이는 아테네 민주주의라는 동일한 조건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라는 인물과 그의 철학적 태도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유명한 사례인 사형 재판이 꼭 특별한 일이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그의 죄목이었던 “도시의 신들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신을 끌어들였다”는 것은 당시 아테네의 사회적 분위기로 미루어 보았을 때 종교적 박해라기보다는 펠로폰네소스와의 패전 직후에 만연한 정치적 ․ 도덕적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반응이라고 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사회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크라테스와 같은 전통 질서에 도전하는 인물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footnote]『왜 그리스인가?』, 140-4쪽.[/footnote] 그리고 이러한 식의 부당한 재판의 예는 소크라테스 이외에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아낙사고라스는 태양을 불이 붙은 돌이라고 했다가 신성을 모독했다며 쫓겨났으며, 앞서 말했듯이 소피스트들은 전통을 부정하는 사상적 내용으로 인해 잠재적인 불안에 노출되어 있었다. 아마도 소크라테스만이 극적으로 기억되는 것은 플라톤의 고전적인 텍스트들에 기인한 바가 크다.[footnote]『왜 그리스인가?』, 308-11쪽.[/footnote]

 이렇게 역사적 배경을 전제하고 바라보았을 때, 사상적 내용에 있어서나, 삶의 양식에 있어서나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차이점은 통상적으로 생각되는 것만큼 뚜렷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주장은 교육에 돈을 받았는지의 여부와 죽음에 대한 태도와 같은 소크라테스의 삶과 사상의 뚜렷한 고유성을 부정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고유성이 개별 소피스트들의 고유성과 비교했을 때 과연 확실히 구별되는 위상을 가지는 것이 온당한지의 여부가 더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고유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어쩌면 소피스트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 자신의 사상을 섬세하게 밝히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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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것들 100513


평소에 지속해 오던 고민과 관련하여 재밌는 시사점들을 던져주는, 다시 말해 가려운 곳을 좀 긁어주는 텍스트들을 몇 개 접했다.


1. 딜런 에반스, 「라캉에서 다윈으로」, Clockoon 옮김, 2005.

이 텍스트에 대한 촌평을 달면서 평소 한국의 라캉주의(전문적인 학술집단은 아니지만 이해가 깊든 얕든 라캉의 개념을 가지고 쓰여진 담론 일반을 지칭한다)에 느낀 점들을 함께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일단 지갱프 까페에 달았던 리플을 옮겨 놓아 보자.

정신분석 관련 서적들을 (적어도 지금보다는) 열심히 읽던 때, 주변에 심리학과 친구들과 정신분석의 과학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저도 정신분석에 대해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거니와, 그 친구들 역시 심리학에 대해 마찬가지여서 '정신분석은 신비주의' VS '(자아)심리학의 전제로 평가하면 안 돼' 식의 서투른 말싸움으로 끝났더랬죠. 하지만 이후에 정신분석이라는 학문 분과의 독자적 지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인 인간의 정신을 다룬다고 하는 다른 학문분과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 소통하거나 소통하지 못할 경우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이 가지는 학문적/실천적 함의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 보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의 논리를 내적으로 철저히 설명해 정신분석의 고유성을 규명하려는 글들은 있어도, 다른 학문(대표적으로는 심리학)과의 차이점 혹은 구별되는 이론적 쟁점들을 집어가는 글들은 그리 많지 않더군요. 2005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는 정신분석 흑서와 이에 대한 자크 알랭 밀레의 지극히 '전형적인' 반응을 보면 이런 상황은 국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8300) 이렇게 서로간의 쟁점조차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신분석 이론들이 한국에 수입되어 들어오고 이것이 (학계보다는) 출판시장이나 블로그 공간들에서 '정신분석의 과학성'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들이 자주 발발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에서 Clockoon님이 번역하고 계시는 딜런 에반스의 글은 그의 논지에 찬반은 차지하고서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쓰든 번역하든 읽고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분석이 하나의 '의료행위'로서 한국 사회에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착되는 것이 아닐까요. 정신분석이 의학을 넘어 철학/사회과학/문화이론에 풍부한 이론적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학문 자체는 결국은 구체적 상황에서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탄생된 것입니다. 환자와의 만남이야말로 정신분석이 형이상학화하는 것을 막는 '근거' 내지는 '대상'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임상이 실천되지 않는 이상 이런저런 논쟁들이 결국 서로 하고 싶은 말만 떠드는, 자기에게 유리한 논거만 모아 나열하는 공론(空論)장이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습니다.

에반스의 글은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아르헨티나에서 스스로가 "지식에 대한 민족주의적 자신감"에 빠져 있지 않은지 반성하며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을 배우고 훈련하기 시작하여, 미국에서 정신분석의 "근거"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되고 그 시기 핑커나 데넷 등의 다윈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인간 정신에 대해 이해할 다른 방법을 찾게 되는 개인의 지적 여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아직 번역되지 않은 부분은 라캉이 정신분석의 생물학적 혹은 행동학적 근거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어떻게 구조언어학을 참조하며 자신의 체계를 건축하며, 이것이 이제는 진화심리학을 택한 자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문제가 있는 시도인지에 대해 논증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보았을 때 이 텍스트가 던져주는 흥미로운 시사점들은 이런 것들이 있지 않나 싶다.

1)지리적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라캉주의의 위상. 에반스는 지적 여정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중 하나는 국가별로 너무 달랐던 라캉주의에 대한 지적 분위기와 정신분석의 사회화 정도였다. 항상 어떤 지식이 주목받는 것은 그 지식의 내적 논리의 치밀함이나 보편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외적인 상황(지식수입상의 관심, 어떤 학문이 들어오는 역사적 계기들, 정신분석의 경우에는 임상 실천의 사회화 정도)에 의한 경우가 많다.
 프랑스나 아르헨티나에서 정신분석이 엄연한 분과학문으로 인정되는 것은 그만큼 정신분석가 훈련 과정이 제도화되고 정신분석 임상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서 정신분석의 이론적 위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할 일은 정신분석의 진리를 강변하는 것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정신분석이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잘 되고 있다면 왜 잘 되는지 문제가 있다면 왜 문제가 있는지 따져보는 작업이 아닐까.

2)라캉 텍스트에 대한 신비화. 현재 라캉을 직접 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라캉의 개념들 상상계, 상징계, 실재, 큰타자, 대상a, 주이상스 등등을 이런저런 글에 쉽게 활용하는 예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라캉이 일종의 지적 악세사리가 된 셈인데 이렇게라도 라캉이 대중화되면 좋은 것이 아니겠냐는 관점을 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런 논의들이 지극히 불철저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훨씬 돌아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는 라캉주의자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에반스는 그 사례다.
 라캉의 모호함에 부딪쳤을 때 에반스의 경우에는 진화심리학이라는 다른 길을 걸어갔지만, 오히려 라캉에 대한 더 철저한 독해로 방향을 트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작년에 철학아카데미에서 이성민 씨가 강의한 로렌조 키에사의 [주체성과 타자성](강의를 진행하면서 번역은 모두 끝났고 아마도 올해 안에는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같은 책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상상계/상징계/실재 이렇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유행하는 해석과 달리 특정 세미나(이를테면 7, 11, 20)를 특권화하지 않고 나와있는 라캉의 모든 세미나와 텍스트들을 인용하며 라캉의 이론적 전개를 일관성을 가지고 철저히 추적하려는 작업이다. 우리는 여기서 키에사가 과감하게도 상이한 텍스트 전거를 들며 라캉의 '혼동'을 지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라캉을 기각하는 것이 아니라 라캉이 말하고 싶었지만 좀 더 구체화해서 말하는 것을 시도한다.
 만약 에반스가 미국 비교문학과에서의 라캉 수용에 위화감을 느꼈을 때 키에사와 같은 성실한 연구자 동료를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가정과 별개로 에반스가 진화심리학과 라캉주의를 이론적으로 비교하는 대목도 흥미로운 부분 같다. 그리고 과연 라캉이 생물학적인 요소를 자신의 이론에 모두 삭제하거나 부차적인 계기로만 축소했을까? 이것 역시 흥미로운 질문일 것이다. 라캉은 과연 생물학적 논거를 결코 가질 수 없는지...

3)라캉주의자들의 냉소적인 태도. 물론 라캉이 옳았고 진화심리학이든 뭐든 그에 반대하는 학문들 자체가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학문이 얼마나 옳았든 간에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그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헌데 에반스가 역으로 되돌려 받은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진실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라캉주의적 "진실"의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이래저래 전개할 수 있지만, 그런 이론적 입장과 좀 더 상대의 이해를 고려하는 소통 방식 자체가 과연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이건 듣는 이의 기분을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말하는 이의 생각을 널리 공유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지점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지만은 않은 라캉주의자들은 라캉에 대한 비판을 상대의 지적 한계 또는 실존적 입장의 맹목에서 오는 "징후"로 받아들이곤 한다. 한국에서 엄격한 임상의 부재는 이렇듯 라캉을 읽은(그것도 살짝) 이들을 '분석가 놀이'에 빠지게끔 방치하였다.

4)정신분석은 의학인가 철학인가. 에반스가 라캉을 비판하는 주된 논점 중 하나는 생물학적 근거가 불철저하며 논증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학문의 정당성이 생물학적 논거를 가져야 할지는 굉장히 어려운 주제이며 나는 만약 라캉주의적 임상이 효과를 발휘한다면 그것을 자신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라캉주의는 의학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에반스는 라캉주의적 임상이 그닥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개인적이지만) 임상의 결과 역시 함께 라캉 비판의 논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만약 라캉을 '철학'으로 읽는다면 생물학적 논거뿐만이 아니라 의학적 논거 역시 들지 않아도 될런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날 담론시장에서 라캉이 유행한다면 이런 의미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이 의학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인하면서 과연 존립할 수 있을까? 의학으로서의 지위를 분명히 하는 것과 철학으로서의 지위를 분명히 하는 일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일까?

에반스의 라캉주의자에 대한 묘사는 정말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당장 머릿속에 나를 포함한 몇몇 얼굴들이 곧바로 떠오른다. 이렇게 이론적으로나 인성적으로나 맹목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 라캉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불만을 갖게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라캉주의를 옹호하고 싶다면 사람들을 '반지성주의'라고 매도할 것이 아니라, 라캉주의에 대한 질문들이 공격적이고 거칠더라도 그것을 자신을 반성할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대중들 앞에서 지적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자신의 유효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모든 학문에 요구되는 의무는 라캉주의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2. 대니얼 데닛, [[자유는 진화한다]], 이한음 옮김, 동녘사이언스, 2009.

데닛은 여기서 생물학적 환원론을 비롯한 결정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한다(혹은 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인간의 삶이 생물학적 과정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는 자연주의적 전제는 인간의 자유를 봉쇄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은 판단을 위한 인과성의 인식을 가능하게 하기에 인간의 자유를 증진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비결정론은 흔한상식과 달리 오히려 자유의 가능성을 파괴한다. "전적으로 무질서하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는 진짜 눈 먼 행운 외에는 회피할 수 있다는 희망이 전혀 없다."(72쪽) 물론 반대자들은 결정론 하에서의 자유는 가짜 자유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데넷이 보기에 가짜 자유와 진짜 자유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비결정론의 옹호자들이 후자를 강조할 때, 이 자유란 마치 신과 같이 세계를 맘대로 할 전능한 자유를 의미하는 매우 과잉된 개념일 것이다.

"자연주의는 결코 자유의지의 적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의지에 긍정적인 설명을 제공하며, "모호하고 전전긍긍하는 형이상학"으로 자유의지를 과학의 마수에서 보호하려고 시도하는 견해들보다 사실 자유의지의 당혹스러운 측면들을 더 잘 다룬다."(36쪽)

"마지막으로 '피할 수 있음'이 결정론과 양립할 수 있는 것처럼, 불가피성도 비결정론과 양립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해 두자. 무언가에 관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불가피한 것이다. 당신이 결정되지 않은 번개에 맞아 죽는다면, 돌이켜 볼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사전 경고를 전혀 받지 못했다. 사실 번개가 칠 벌판을 가로질러야 하는 상황에 처할 때, 번개가 치는 시간과 위치가 무언가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편이 당신에게는 훨씬 낫다. 그러면 당신이 예측할 수 있고, 따라서 회피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결정론은 불가피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친구이지 적이 아니다."(95쪽)

여기서 데닛이 시도하는 것은 생물학주의로 돌아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초자연적인 영혼"을 "자연적인 영혼"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자유의지는 "영구적이고 변함없는 안정하고 비역사적인 구성물"이 아니라 생명의 여명기에서부터 시작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며 형성되온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자유의지 대 (생물학적) 인과과정>이라는 오래된 대립을 해체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이 책에 굉장히 고무되었던 것은 데닛의 논리가 그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사회에 법칙이 있다고 상정한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부정된다고 보는 자유주의적 자유 개념을 비판하기 위한 주요한 논리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과연 구조주의나 마르크스주의 등 사회를 일관적인 법칙에 따라 설명하려는 시도들을 인간의 자유를 철학적으로 방어한다는 입장에서 반박하는 논리들을 볼 때마다 이들이 말하는 자유 개념이 매우 추상적이고 오히려 부정적(억압의 반대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이고 소극적인 규정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구조주의나 마륵스주의자들 중 일부는 숙명론적 비관주의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이들의 편을 들기도 하였다.

데닛의 논지는 이런 경향들을 지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훌륭한 발판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또 한편으로 인간을 철저히 자연에 '내재적인 과정'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이런 입장이야말로 신을 인간의 영혼이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는 무신론의 유일한 가능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물론 이런 기대들은 독서를 통해 검증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3. 한국에서의 탈식민주의 수용에 관한 술자리 이야기 하나

술자리인지라 레퍼런스는 없지만 인상적인 이야기여서 한번 기록해 놓아 본다. 일제 시대 어떤 제주도 해녀 분이 행정기구를 비판하는 무언가를 했다고 한다. 해녀 분은 일제에 대항한다는 민족적 사명의식을 가졌다기보다는 어떤 행정적 부조리에 저항을 한 것이라고 한다. 헌데 이를 연구하기 위해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찾아왔고, 이 투쟁을 일제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투쟁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연구 결과가 공표되자 그 지방에 있던 우익들이 엉뚱한 일을 했다며 해녀를 강간했다고 한다.

대강 이런 내용이 어떤 탈식민주의를 표방하는 학자에 의해서 발표되었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여기서 그 분이 추출한 교훈인데 민족주의를 벗어나는 하위 주체의 목소리에 민족주의적 해석을 부과함으로써 폭력적인 결과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헌데 직접적인 책임은 강간을 행한 우익들에게 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학자는 담론의 힘을 너무 지나치게 평가한 나머지 담론이 강간을 한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알튀세르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서 "하지만 무지나 혐오에 기댄 '보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마키아벨리가 이것을 잘 보여주였다. 즉 그것은 모든 군사 배치 중에서 가장 취약한 요새라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말한 세 가지 이야기들은 자기반성이 철저하지 않은 사유, 무지의 보호에 기댄 사유가 처할 수 있는 위험에 관한 사례들이라고 볼 수 없을까? 철학적 또는 의학적 합리성에 대한 반성을 거치지 않은 라캉주의, 생물학적 설명을 환원론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비결정론의 자유의지 개념, 황당한 논리로 새로운 사유를 자임하는 기묘한 탈식민주의...진영논리에 입각해 서투른 비판들에 매섭게 달려드는 것보다 남보다 가혹하게 자기를 돌아보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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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잡담


1.
트위터를 시작해보았다. 1차적인 이유는 나중에 방치할 때는 방치하더라도 일단 써보기는 해야 될 것 같아서고, 2차적인 이유는 요즘 따라 외로움이 좀 심해지고 긴 글에 좀 지쳐서 이렇게 짧게 사람들이랑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매체가 재밌겠다 싶었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동기, 방아쇠(Trigger)가 되어준 것은 내일로 예상했던 페이퍼 하나가 모레일 가능성이 80%라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영어 텍스트가 아니라 한글 논문을 읽고 뭔가 쓰는 것이 될지도. 그래봤자 이틀 연기이고 내일 세미나 준비랑 금욜 레폿 준비 토욜 발제 준비로 당장 눈앞에 읽어야 할 것이 쌓여 있지만 여유가 생겼다는 착각이 들었고 이것이 트위터질을 하게 했다.


2.
외로움에 관해서 조금 덧붙이면 최근 가졌던 술자리 몇 개가 도저히 개운하지가 않아서 그랬다. 아무리 술자리라고 하지만 논의가 뱅뱅 도는 느낌이고, 거기서 스스로가 정신을 챙기고 뚜렷히 논점을 집어가며 말을 했어야 되는데 논리보다는 인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사실은 '미뤄두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도저도 아닐 때는 그냥 속으로 분을 삭히는 식으로 넘어갔다. 다행히 그를 만회할 만한 자리가 또 몇 번 있기도 했지만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 부족함은 술자리로는 당연히 해소가 안 되는 것이고 조금 긴 글을 써보는 것으로 살풀이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적 일정으로나 주변인들의 대화 주제 분위기에 있어서나 시기가 딱 맞지는 않고 지금 당장 써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만족할만한 논지를 뽑아내려면 좀 몇 가지 읽어두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아마도 머나먼 일이 되겠지만 정치철학, 이데올로기론, 정치평론, 문화평론의 경계와 접점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다.


3.
오늘 노이즈 밴드 '불길한저음'의 홍철기 씨가 [현대정치철학의 모험]의 홍철기 씨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 바닥이 좁구나'라는 생각은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귀찮을 정도로 많이 떠올렸고...주말에 만나게 된 한윤형 씨가 (길거리에서 나눈 대화답게 범주는 모호하지만) 진보적인 청년 집단과 주로 홍대에 서식하는 문화집단이 최근에 만나게 되었고 이게 소통 상의 난점(꼭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을 한 것이 떠오른다.

나는 대강 어쩐 축일까? 1학년 때는 직접 밴드도 해보고 싶었지만 결국 홍대와는 거리가 좀 멀어졌고, 2학년 때까지 운동권과 무관한 과반 학생회에 주로 일했고, 3학년 떄부터는 거의 학내든 학외든 세미나실에서 출판시장의 최신 비판적 인문학 담론을 학습했다. 지젝이 한 번 번역되면 3천부는 기본으로 나간다고 하던데 교수급을 제외하더라도 이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을 모으면 적어도 홍대 인디씬에 떠도는 사람들만큼의 머릿수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이제 세 부류가 있는 셈이다. 뭐 더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에는 머리가 너무 아프고, 대강 이런 그림 정도만 그려놓는 선에서 잡담을 마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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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의 공감 문제


1.
마지막 학기의 중간고사가 끝났다. 학부 생활에서 이렇게 매번 시험을 칠 때마다 불변하는 마음같은 것은 없다는 관념론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험 도중에는 시험 공부만 아니라면 세미나 공부, 개인적인 관심사 공부, 어학 공부 모조리 다 밤새면서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시험이 끝나고 그런 긴장감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고 소덕(소녀시대 덕후)질로 며칠을 보냈다.

지금 눈앞에 닥친 것을 한 번 정리해 보면 뭔가 써야 되는 것은
1)<자본>발제
2)에피쿠로스 발제
3)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관계를 당시 그리스의 정세와 연관지어 정리하는 레폿
4)가세트 책 요약 레폿
5)구조주의 정리 레폿
6)다른 시험 준비
이렇게 6가지이고

일단 읽어는 놔야 하는 것들은
1)몸사회학 참고자료 읽기
2)보르헤스 세미나 준비
3)랑시에르 <불화> 읽기
4)근동이물 세미나 준비

이 정도쯤 되지 않나 싶다. 어학 공부를 추가하고 싶지만 학기 내에는 아무래도 무리다. 단어 정도는 외워볼 수 있을까... 아마도 여기에 서양현대철학특강 레폿이 하나에서 두 개 추가되고, 프리모 레비 읽기 모임까지 일단락되면 일단 이번 학기는 끝이다. 그리고 대학생활도 끝이다. 이제 어디 가서 "어이구, 학부생이세요?"같은 소리를 들을 날도 그리 남지 않았다.


2.
무언가 끝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시작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보는 것은 상투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같다.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 모 후배의 증언에 따르면 펑크락커를 장래희망으로 가지고 있었고, 도중에는 혁명가 내지는 그에 연관된 일을 꿈꿨던 나는 지금 먹물로서의 삶을 준비해 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에서 예상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책을 읽고 뭔가 실컷 떠들겠다는 점에서 봤을 때 학창시절부터의 경로를 꾸준히 따라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나는 몸으로 사는 사람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사람이다. 축구는 지독히 싫어했고 싸움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언젠가 선빵을 맞고 그 친구의 눈을 쳐다보며 얘가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이해해보려 한 적은 있다). 좌파를 공부했지만 좌파로서 시위에 나간 적은 그리 많지 않고 나갔다할지라도 선봉에 서기보다는 후측이나 측면에 서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렇다고 소심하게 살아온 것과는 좀 거리가 있었던 시기들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이렇듯 몸으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조금 읽고 많이 생각하는 식으로 보냈던 것이 지금까지 내 삶의 전반적인 성향이었던 듯싶다.

이런 점들이 때로는 스스로를 가련히 여기게도 한다만 그런 좌절감은 지칠 정도로 생각을 해봤고 이제는 그저 역발상일련지 모르겟지만 사회에도 필요하고 나 자신이 할 수도 있는 그런 일이 있다는 확신이 들고 있다. 작년 즈음에 줄곧 했던 '내가 아는 것을 이 세상 사람 몇 천 명 정도만 안다면 세상은 달라질텐데...'와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그러한 확신이 든다(고 믿어 본다). 누가 뭘 모른다고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도 손쉬운 일이다. 비판만 하는 사람들을 비판만 한다고 비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덕주의는 반도덕을 규범으로 삼는 도덕주의가 될 수 있으며, 냉소주의에 대한 격한 비판 역시 '저 사람'과 나의 관계를 부정하는 냉소주의의 또다른 양태가 될 수 있다(요새 여기저기서 회자되는 탈정치 운운하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책임을 지는 일이다.

내 경우에는 내가 같이 살기를 원하는 누군가들이 알아야 할 것을 알게 한다는 것이 이에 해당할 것 같다. 지식인/대중의 이분법에 반대하면 근원적인 지적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만,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의 투자가 요구된다. 비록 의식주를 생산하지는 않는다만 어떤 것들이 알려지지 않는 이상 대중의 역량 역시 온전히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지금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를 위해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을 알아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학문 역시 '사회적 노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런 태도를 말로 지키는 것과 이대로 살아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것이다.


3.
좀 이상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소녀시대를 보면서 하게 되었다. 내가 그녀들을 보면서 얻는 정서적 이익들에 대해서 매번 고맙고 뭔가 그녀들에게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활동을 행함으로써 '보답'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비록 개인의 결정권이 고려되는 상황은 아니다만, 하루하루 스케쥴을 소화하는 또래의 이 친구들을 보면 나도 내 분야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철수같이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이나 내가 존경하는 선배 학자들을 볼 때에는 이런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내 정서적 공감능력이 생각보다 꽤나 협소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논리로는 노동자의 고통이 왜 정당한지 왜 정치는 항상 보편주의적이어야 하는지 말할 수 있지만, 뭐랄까... 참 부도덕하지만 뭔가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정말로 들지 않는다. 그들과 그녀들과 함께 웃고 울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 거리감이 꼭 무관심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변명이 아니다. 오히려 그 거리감 때문에 괴롭고 피곤하다. 내가 저 사람들과 공감해도 좋을까 공감해도 저 사람이 나를 보고 뭐라 하지 않을까 같은 고민들이 이 기묘한 거리감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 어떤 분은 저번 술자리 후기에서 나에게 "연애의 감수성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을 해주셨는데 아마도 나의 이런 보잘 것 없는 정서 공감 능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인상을 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보다 이질적인 경험과 인생들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까(하지만 어떻게?), 아니면 이런 간극을 인정한 채로 나 자신이 그들과 나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 좋을까?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나의 선택은 아마도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개념적인 반성은 미뤄둔 채로 일상적인 용법에서, 그래서 나는 감정보다는 이성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감정은 언제나 나에게 당혹스럽다. 그리고 감정이 항상 불충분하다고 느끼는 나로서는 파토스가 가득한 운동의 현장이 매우 당혹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의를 보면 화를 내지 못하고, 억울한 일들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또 아닌데...아무래도 사람들과의 물리적 접촉을 늘려가면 쉽게 해결이 될 그럴 문제일런지도 모르겠다. 성품보다는 습관을, 적성보다는 근성을 믿는 유물론자라고 스스로 자처한다면 그렇게 해나가야 되겠다 싶기도 하고...아무래도 졸업 전에 할 일들에 좀더 많은 술자리 정도는 포함시켜 놓아야 겠다.


4.
윗 이야기는 내 개인적 이야기는 하다만, 어쩌면 소녀시대를 사랑하는('열광하는'이라는 표현은 이미 부정적 가치평가가 전제되어 있다) 내 또래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놓고 탈정치적이다, 무뇌다라고 비판하는 것은 옳은 비판이지만 무책임한 비판이기도 하다. 남의 삶에 대한  공감의 욕구는 모두에게 존재한다. 이런 공감의 욕구를 제한된 경로에서 찾아야 되는 상황 자체가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런 작업을 수행하는 데 요구되는 인내심을 심판자의 입장에서 이것저것 훈수놓기 좋아하는 (진보를 표방하지만) 보수적인 문화비평가들에게서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으니 목마른 자로서 우물을 한 번 파보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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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와중에 메모들 -전역 촘..., 문대생들의 근친상간


1.
어제 천안함 사고(?) 추모 공연이 TV를 통해 방송되었는데 거기서 반복적으로 나온 이미지 하나가 매우 눈에 걸렸다.

지금 이미지를 찾지는 못하겠는데 "군대, 솔직히 너무 좋다"라고 써놓은 다이어리가 그것이었다.

'군의 조작'이라는 식의 음모론을 전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분이야 군 생활이 즐거워서 그런 문구를 써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왜 그걸 꼭 굳이 반복해서 사람들한테 보여주냐는 것이다.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것과 이런 활동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 이미지를 보면서 나는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거 보아라, 실종자들은 군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애꿏은' 군 탓만 하지 말고 블라블라...'

과연 실종자들은 군인으로 죽길 바랬을까, 사랑하는 부모님의 자식으로 죽길 원했을까, 아니면 당당히 자립한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다 죽길 원했을까? 누구의 이야기가 현실성이 있는지는 개인 시간에 토익을 공부하고 전역일 계산기를 다운받아 돌리는 장병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목숨까지 잃었는데 이제 그만 전역 좀 시켜주지,
미니홈피같은 사적인 공간까지 파헤쳐가며 뭔가 자신들에게 이로울 자료를 찾아내는 이런 세심함
씁쓸하다.

P.S)이런 맥락에서 공감하는 포스트 중 일부를 옮겨 놓는다. 강조는 퍼온이가.
"사망자들은 딱히 “강한 군대”와 “철통 같은 안보”를 위해 “강한 정신력”으로 돌진하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측하지 못한 원인불명의 침몰로 가라앉았고, 군의 구조활동 실패로 죽었을 뿐이다. 죽은 자에게 영혼이 있다면, 이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는 자랑스런 천안함 용사” 어쩌고 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왜 죽어야 했느냐”며 억울해하고 있을까?

“조국”과 “정신”을 강조하며 죽음을 칭송하는 자들, 그들의 눈길은 죽은 자들을 관통해 산 자들을 지목한다. 산 자들, 혹은 아직 죽지 않은 자들. “조국을 위한 아름다운 죽음”에 장미꽃을 뿌려대며, 그들은 산 자들에게 은근한 눈빛을 뿌려댄다. 아름다운 ‘순국’으로, ‘선열’이 되어 국립묘지에 묻히는 삶을 권장한다. 물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순국’하건 간에 그들은 다칠 일이 없다.

이 대통령의 귀에는 “대통령의 호명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관등성명을 대면서 우렁차게 복창하는 소리”가 선하단다. 죽은 자에게서도 군복을 벗기지 않는 이 나라의 모습은 얼마나 악착 같은가. 일제강점기에는 대표적인 친일파의 첨병으로, 해방 이후에는 대표적인 우익의 첨병으로 살았던 시인 모윤숙은 그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에서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를 칭송했다. 죽어서마저 군인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통령의 호명에 관등성명을 대야 하는 이들의 신세에서,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가 역하게 풍긴다."

-Stcat, "어디서 피 냄새가 난다" [원문 링크]


2.
최근에 김예슬 씨와 관련한 학내 토론회가 있었다. 주최측은 이를 '대학의 기업화' 문제와 연결시켜 이야기하고자 했고, 김예슬 씨 본인이 이를 격렬하게 대자보에서 비판했던만큼 적절한 문제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예슬 씨 본인의 코멘트를 떠나서라도 현 정세 상에서 보아도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문제라면 문제랄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랄까 싶은 점은 '대학의 기업화'에 반대하는 패널을 사전에 구하지 못해 찬성 4명을 놓고 토론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 4명의 논점도 조금씩 다르면 좋을 텐데 '문대계열+운동권+사회과학지식' Stereotype 네 명이 모였었다(그 사람들의 개인적 면모를 떠나 발언의 내용으로만 보았을 때).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그야말로 전형적인 비판들(대학은 학문의 전당이고, 공공재이고 등)이 오갔는데, 원론적인 입장에서는 반대하지 않는다만 문제는 이게 내부 토론회가 아니라 (일단 명목상으로는) 학내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한 대중'아고라'였다는 것이다. 원론적인 차원에 문제가 아니라 너무 이야기가 원론적이기 때문에 문제였다. '대학의 기업화'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정말 기업이 대학이 항상 반목해야만 하는지, 그냥 상대적 자율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 정도의 이야기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인지 등등의 이야기가 따라야 하는데 '대학의 기업화'라는 추상적인 문제설정 언저리에서만 맴도는 느낌이 있었다.

'추상'은 잡다한 현실세계를 일관성있게 파악하게 해준다는 장점을 가지지만, 구체적인 상황의 심각성을 전달하지 못하고 제도적이건 비제도적이건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력하다는 단점을 가지기도 한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는 그러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공계 학생분의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논지인즉슨 '자꾸 학문과 기업의 후원을 배리되는 관계로 설명하는데, 이공계의 어떤 학과들같은 경우에는 연구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에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으면 학문 자체를 하지 못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대답이 참 재밌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는데 '기술의 발전과는 별도로 기술이 어디에 쓰이는지, 기술의 목적이 어떠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게 그분께 충분한 답이 되었을까? 그랬을 리가 만무하다. 한명이 화성에서 오고 한명이 금성에서 온 것도 아니고 둘다 같은 지구, 그것도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태어났지만 이야기가 완전히 만나지를 못했다. '문과대생' 패널은 '이공계생' 학우의 지극히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질문을 '기술의 목적'이라는 사회과학적인 주제로 환원해 버렸다. 어떤 악의가 있었다기보다는 이런 식으로 말을 돌리는 게 아무래도 본인이 이야기를 하기 편했기 때문에,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래저래 훈수를 놓기에 편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이런 장면이 처음은 아니다. 꼭 학생들 모임뿐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나이든 교수들 학회 가서도 많이 보았던 태도다. 자연과학, 경제학, 경영학은 '진정한 학문'이 아니며, 인문학적 소양은 '마땅히 인간으로서' 터득해야 할 미덕이라는 태도. 문제는 이런 태도가 '거만하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비현실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문대생(학생뿐만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학회에서 마련한 다과를 씹으며 비인문학이나 취업자나 고시생들의 천박함을 비웃을 때, 그들은 사회의 부를 재생산하고 증진시키는 노동을 한다(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의 구분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차지하자). 이러니 비웃음을 사는 것도 당연하다. "삼성에 못 들어가니, 고시에 합격하지 못하니, 능력이 안 되니 책이나 들여파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현실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면을 보여주고, 일단 현실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문대가 자폭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인문학이 쓸데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쓸데없이 다른 분과를 비웃는 것을 지양하고 자신들이 그들이 생산하는 것만큼 사용가치를 가진 것(지식이든 뭐든)을 생산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시작했을 때, 인문학, 그리고 주로 문과대생들로 구성된 '진보' 세력들은 문과대생들의 근친상간을 벗어나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모두가 함께하는 학문이나 정치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경영대생이나 이공계생들도 모두 자존심이 있는데 왠 맨날 졸(卒)이 되는 판에 가서 놀려고 할 턱이 있겠는가.(*1) 이공계생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해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판을 좁혀 오지는 않았는지 깊게 성찰해 볼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개인들의 도덕적(혹은 윤리적) 나태를 비판하기보다는 구조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는 유물론자(*2)의 길일 것이다.
(*1)경제학과는 어떨까?
(*2)꼭 유물론자일 필요가 있냐는 이야기도 가능할 것인데 왜냐하면 '유물론'이라는 것도 맑스주의적(이것도 좀 모호한데) 성향의 인문학도들의 주된, 하지만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쓰이곤 하는 레토릭이기 때문이다. 이를 해명하는 일에 대해서는 후일을 기약해 본다.

3.
2번 메모에서는 학교와 사회, 학생과 사회인, 학문과 진보 간의 관계가 모호하게 쓰인 감이 있다만 내용을 전달하는 데 크게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구분해서 이야기하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일단 정리할 짬이 없고 큰 문제는 없겠다 싶기에 그대로 방치해 놓는다. 이런 변명을 하면서 보다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이런 '근친상간'은 학생들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정반대로, 비인문학이나 비진보 계열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이쪽의 경우만 말을 하는 까닭은 우선 내가 이쪽에 서있고, 또 다른 쪽에 말을 걸 것 같은 사람들이, 우물을 파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쪽에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목마른 쪽이 이 쪽 같기도 하고...

4.
근친상간으로 검색해서 블로그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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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들 스크랩

짤막한 촌평도 달기 힘들지만, 그래서 무작정 퍼오는 게 좀 무책임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놓치기 아까운 포스트들이 있어 스크랩해놓는다. 언젠가는 여기서 제시된 화두들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1. 예술인생 님의 포스트. 포스트 이름은 어차피 읽을 수 없으니 생략...

"얼마전 사회문화연구소의 석사반에 재학 중인 티와라는 이주노동자운동단체의 활동가의 논문계획서 공개심사가 있었는데, 수차례 '경험이 풍부한 활동가로서'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최소한의 논문요건도 갖추지 못한 페이퍼를 방어하는 그녀 앞에서 소위 대만의 '비판적 지식인'들인 심사위원들이 모두 굴복당하고, 결국 '비판적 지식인'의 비판성은 사회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임을 확인해 주었다. 결국 현실참여적이길 원하는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진짜 현실은 어쩌면 매우 낯설거나 공포스럽거나 낭만적인 타자화된 형상으로만 존재하고, '운동'의 자생성에 대한 찬양으로 일관하게 된다. 결국 이론의 부재 속에서 대중의 실천이 구체적 역량으로 결정되고 사회운동으로 나아가게 될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봉쇄된다". [포스트 링크]

이론가가 활동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렇다고 운동의 자생성을 무턱대고 찬양하는 것은 확실히 무책임한 일이기도 하다. 예전에 내가 지성이 대중운동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을 때 풀 씨가 사석에서 비슷한 혐의를 제기했는데 이 문제에 대한 내 정확한 입장은 일단 대체불가능성을 인정하자는 것이지 이것을 최종적 지향점으로 삼자는 것은 아님을 이번 기회에 분명히 해두고 싶다. 아마 이론이 운동을 대체할 수 없다면 그 역도 마찬가지겠지.

만약 그렇다면 운동은 역시 이론의 지도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글쎄...요즘 드는 생각은 이론과 운동의 관계는 이런 상보적인 것, 얘는 쟤가 필요하고 쟤는 얘가 필요하고 식의 관계가 아니지 않나 싶다. 그렇게 보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사건이란 꼭 정교한 이론의 매개를 통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이론적 갱신이 운동에 의해서만 촉발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도대체 왜? 운동은 이론은 필요로 하기는 하는 걸까? 운동이 이론한테 아쉬울 것이 있기는 있을까? 이런 문제가 운동보다는 이론에 가깝게 지내온 내가 요즘 떠올리는 질문들이다. 나로서는 이론의 우회불가능성을 변호하기도 그렇다고 운동에 이행에 따르는 모든 지적 부담을 지우는 것도 부당해 보인다. 다시 말해 이론과 운동이 대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고 또 가져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보아야지.. 


2. 정병선, "PD 새끼들은 왜 그렇게 문화에 집착할까?"

"정치적으로 개혁(개량)주의 스탠스를 가진 좌파 문화 엘리트들--사실 계보를 따지면 PD 일반이다--이 대중의 욕망을 진단하면서 --예의 선지자 포스를 뽐낸다-- 도덕 선생을 하겠다는 태도가 나는 무지하게 역겹다. 굳이 관련해서 발언을 하고 싶으면, 사실과 가치의 문제를 짧게 적고, 자신의 지향을 겸손하게 밝혔으면 좋겠다. (…) 재미있게도, 이들의 특징은 정치는 흐리마리한데, 문화 영역에서는 엄숙하고, 칼 같은 기준--내가 볼 땐 엉터리이다--을 들이댄다는 점이다. (…) 내게는 대중의 욕망을 분석한다는 문화 엘리트들의 욕망이 보인다. 그들의 욕망은 대중에게 도덕 선생질을 하면서 승인의 욕구를 얻는 것이다. 적이 생겨도 상관없다. 경제적으로는 책장사와 매명을 해서 이름을 드높이면 좋다. 거기다 자기가 제시하는 가치가 도덕적, 윤리적으로 정당하므로 멋드러지기까지 하다. 씨발, 완벽한 그림이다. 하지만 '시장'과 '자본주의'를 지양하려는 정치적 시도는 일찌감치 제쳐놓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걸 지향하는 애송이들도 본능적으로 그리 가야 함을 알고 있다. 이 모씨 아들 모 택광이라는 자의 글을 읽고 짧게 메모해 둔다."[포스트 링크]

이택광 씨의 이름은 안 퍼놓는 게 나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 거침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공감을 할 수 있는 평가이고, 또 무엇보다도 포스트의 질감을 살리는 데 빼놓을 수가 없어 옮겨놓는다. 포스트 이름에 PD가 언급되는 데 PD가 그런지 아닌지 역시 PD가 정확히 누군지도 모르는 나로서는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정병선 씨의 지적과는 달리 요즘 '좌파 문화 엘리트'들은 '급진주의'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트집을 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지향하는 애송이들도 본능적으로 그리 가야 함을 알고 있다"는 말에서 어쩌면 이 포스트는 그런 사태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은 분량이 좀 필요하다만, 여튼 "도덕 선생"이라는 비유에 방점 정도는 찍어 놓고 싶다. 나로서는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한 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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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은 것들


병에서 회복되었더니 정신없이 일들이 몰아쳐 온다. 학교 수업은 물론이거니와 준비해야 하는(정말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하지만 공부는 거의 안 되었다고 보면 되는) 시험들이 몇 가지 있고 적어도 텍스트는 읽어가야 되는 세미나가 3개 있고 몇 가지 실무 업무 있다. 거기에다가 꽤 심각한 것이 '딴짓'에 맛이 들려서 최근에는 HOMM5라는 게임의 확장팩 하나를 클리어하고 오리지널 캠페인의 절반 이상을 진행하는 만용을 부리고 있다. ㄷㄷㄷㄷㄷ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이미 늦은 것 같다만...) 요즘 컴퓨터를 틀면 게임을 켜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다운받아놨던 MP3들을 다시 들어보는 정도로 심신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옛 MP3들을 들춰보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한 고등학교 후배의 증언에 따르면 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의 장래희망은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펑크 뮤지션"이었다고 한다. 수염을 기른 채로 새터에 가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 또는 혐오를 가지고 있던 선배들과 노엄 촘스키의 책을 주제로 술자리 대화를 나눴던 나는 대학에 진학할 때 락뉴라는 사이트의 게시판에 밴드를 구하는 글을 올렸었다. 내용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어쨌든 대강 '사회에 비판적인 좌파 성향의 펑크 밴드'를 하고 싶다고 썼던 것 같다. 그 때 내 기타실력은 메탈리카의 엔터 샌드맨을 어설프게 소화하는 정도였다.

헌데 그 때 그 허접한 게시글을 보고 연락을 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지금 밤섬해적단의 드럼 권용만이다. 나는 서울에 올라와서 고시원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홍대 근방의 합주실에 가서 권용만과 역시 지금 밤섬해적단의 베이스를 맡고 있는 폐허와 흑인음악을 공부하고 있었던 보보를 만났다. 각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스킵하도록 하자. 어쨌든 그렇게 해서 찾아간 합주실에서 이 사람들이 뭘 하고 있었냐하면 성경을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펴서 나오는 말들을 데쓰메탈 식으로 부르고 흑인음악 쨉쨉이 리프를 보보가 치면 대강 리듬을 맞추다가 블라스트 비트로 드럼을 우와앙하는 그런 것이었다.

나름의 문화충격이라면 문화충격인데 뭐 이상하게도 그때는 또 그러려니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지금은 여러 이유로 함께 하고 있지 못하지만 이 때 밤섬해적단에 가입(?)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알기 시작한 사람들로부터 온갖 바다 건너의 음악들을 전수해 들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권용만이나 폐허뿐만이 아니라 MSN친구 뉴질랜드킴과 나중에 그라인드코어 밴드 민족반역자를 같이 하기도 한 우성이 형 등등.

서설이 조금 길었는데 지금 올릴 음악들은 그 때 전해듣고 요즘 다시 듣고 있는 음악들이다.

YACOPSAE - Internetejakulator Jerkstore


Anal Cunt-Beating up hippies for their drugs at a phish concert


Gauze - 20th anniversary (곡 이름들은 잘 모르겠다...아마 [kao o arette denoashite koi]라는 앨범을 통째로 연주하는 듯]


이렇게 안그래도 없는 시간을 쪼개 포스트를 올리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만약 저 음악들이 연주된 나라들, 특히 미국에 태어났다면 저런 것을 들었을까하는 점이다. 아무래도 스포츠든 섹스든 뭐든 몸으로 노는 것에 그리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저런 동네에 다니는 친구들과 친해질 일은 드물었을 것 같다. 하지만 여기 물건너 한국에서 나는 음악을 그것이 배양된 토양과 분리해 특정한 취향으로서 즐길 수 있다.

좀 이 대목이 중요한 것 같은데 왜냐하면 이런 그라인드코어나 하드코어펑크 계열의 밴드들이 악의적으로 보여주는 히피나 정치적 올바름을 냉소하는 것은 그 바닥 나름의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음악들을 처음 접했던 때에 나는 이 음악들이 비판하는 대상들이 한국에도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따져보기에 앞서 여기서 언급되는 '병신'들의 사례를 내 주변의 평크 씬과 저 멀리의 '사회'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참 좁디좁은 바닥에서 무에 그리 욕할 게 있었나 싶다. 물론 친구들끼리의 제한적인 대화였다만 쿨한 것과 병신같은 것의 무의미한 구분을 그렇게 반복했다. 지금 펑크 클럽 스컹크는 망했고 욕할 것 자체가 없어졌다.

그에 대한 반성을 거치며 공부를 (시작이라고 말하면 너무 사후적이고) 해나갔지만 이렇게 선정적인 것에 흥분하고 이것을 현실에서 어떻게든 찾아내고자 했던 내 욕망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요즘은 이런 포스트가 많은데 내가 좀 이렇게 스스로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다 보니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개인사랑 별도로 음악들 자체는 너무 좋다. 인생의 낙을 하나 더 발견하게 되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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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포션, 나루토, RPG


혼자 지내는 게 가장 서러울 때가 언제냐면 몸이 아플 때다. 저저번 주 토요일에는 진짜 감기 때문에 죽다가 살아났다능...

1.
감기에 걸려서 골골거리고 있을 때 가장 생각난 것은 좀 웃기지만 '힐링포션'이었다. 내가 살면서 힐링포션이라는 걸 처음 본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의 리니지라는 게임에서였던 것 같다. 리니지뿐만 아니라 모든 RPG게임이 그러하듯이 거기에서 신체의 생명력은 HP(Hit Point)라는 수치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HP가 다 떨어지면 죽는 거다.

그땐 그러려니싶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여기에 재밌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RPG게임 내에서는 주먹에 맞든 칼에 찔리든 둔기로 맞든 번개에 지지든 병에 걸리든 신체에 가해진 손상들은 모두 HP의 감소로만 표현된다. 맞았으면 멍이 들었을 것이고, 칼에 찔리면 피부가 찢어졌을 테고, 번개에 맞았으면 머리털이 탔을 것이고, 병에 걸렸으면 기침이라도 할 테인데 이 모든 것은 그저 HP가 얼마 달았다는 걸로 표시된다. 따라서 달걀을 문댈 필요도, 지혈을 할 필요도, 타들어간 머리를 추스릴 필요도, 병원에 가서 어떤 병인지 진단을 받고 알맞은 처방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냥 힐링포션을 몇 개 먹으면 신체는 건강한 상태로 다시 돌아온다.

여기서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질적 차이는 사라진다. 신체의 건강이라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현실에서는 매우 많은 조치들이 필요하다. 보험도 걍 하나만 드는 게 아니라 심근경색 따로 암 따로 들어야 되고. RPG 게임은 이런 번잡한 과정이 생략된, 뭐랄까 참 '간단한' 현실을 보여준다.


2.
생각해 보면 이렇게 현실에 존재하는 복잡성을 최소화하는 문화를 나는 꽤 오래 즐겨왔던 것 같다. 게임의 경우도 그렇지만 일본 소년 만화들에 특히 그런 특성들이 두드러지지 않나 싶다. 일례로 '나루토'가 떠오르는데 거기에서 소년 닌자들은 걍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는 정도의 동작을 취하고 나무에 곧바로 올라간다. 손으로 무슨무슨 동작을 취하면 입에서 불이 나오기도 한다. 어렸을 때 한 번 따라해봤는데 역시나 당연히도 불은 나오지 않았다.

논점으로 돌아가면 만약 실제로 그 높이의 나무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근육에 들어야 할 힘도 힘이고 그 높이에서 겪어야 하는 공포감 등 골치아픈 것이 한둘이 아니다. 입에서 불을 품기 위해서는 휘발성 물질을 입에 대량으로 물고 있다든지 이빨에 부싯돌이라도 달아 점화를 하든지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루토에서는 그런 복잡한 과정들이 모두 '생략'된 채 상황이 펼쳐진다. 불에 맞고 뭐하면 참 힘들고 아픈 표정들을 짓는데 별로 공감이 가질 않는다. 팔이 끊어져도 걍 쿨하게 동여매고 싸우는데 만약 정말 팔이 부러졌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나...' '보험처리는 되려나...' 등등의 고민이 들겠지만 나뭇잎 마을은 복지 체계가 잘 되었는지(기본소득?!!) 닌자들은 생업의 걱정없이 전투에 전념한다.


3.
문득, 나 자신이 현실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 건 그리 오래 돼지 않은 일이다.


4.
아무튼 나는 힐링포션없이 신체의 저항력만으로 감기를 극복했으며(이것도 몇 살까지 가능하련지 모르겠다) 지금은 감기보다는 해야될 일들에 시달리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 힐포는 됐으니 언제 뜨끈한 보쌈에 소주나 한잔 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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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철학의 과부하, 공부에의 용기, 진로고민

1. EM님의 최근 포스트 경철수고, 또는 마르크스의 지적발달에서 정치경제학의 의의에는 이러한 코멘트가 나온다.

"순이님이나 냉커피님의 충분히 반성되어 있지 않아 보이는 "반(anti)-경제학 환원주의"적 태도가 우려스러운 것도 대체로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학 대 비경제학" 또는 "경제학 대 사회학 대 정치학 대 ..."와 같은 대립구도를 타파하는, 즉 근대분과학문 체계를 전제한 물신화된 사고로부터 벗어남과 동시에,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요구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은 바로 그런 과정에서, 경제(학)의 본질에 대한 위 질문은 핵심적인 것으로서 제기될 것이다."

EM님의 해당 포스트에 본격적인 의견을 달 의지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 일단 EM님의 이러한 코멘트를 보니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어 메모해놓아 보려 한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찌하다보니 이 블로그에 올리게 되는 글들의 주요 테마는 이데올로기론,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데올로기론의 '지위'에 관련된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뭔가 끄적거리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1)주로 정신분석학, 프랑스의 정치철학, 이데올로기론에 기반을 둔 (학계라기보다는) 대중 인문사회과학 출판시장의 경향성에 대한 문제의식과 2)이를 읽으며 급진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고 자임해 왔던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이 그것이다.

그니까 도식적으로 나누면 사회적이라 할 계기 하나, 개인적이라 할 계기 하나가 있다. 하지만 두 계기의 내용은 대동소이한데 그것은 현재 주목을 받고 있는 현대정치철학 담론들이 경제적 환원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나치게 가진 나머지 철학 혹은 이데올로기론 내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불모적인 작업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를 조금은 비꼬아 "이데올로기 환원론"이라고 불러본 적이 있다.

"내 질문은 이렇다. 경제적 환원주의가 있으면 이데올로기 환원주의도 있는 것이 아닐까? 경제학과 정치학과의 연관 속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연구 범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뚫으려는 몇몇 이데올로기론들의 야심찬 기획은 사실은 그들이 그리도 학을 띠는 경제적 환원주의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근본적인 문제는 ‘환원주의’라는 개념적 도구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닐까?"[출처 링크]

어쩌면 환원주의란 경제든 이데올로기든 특정한 범주를 중심으로 현상을 모두 설명하려는 시도라기보다는, 더 정확히 말하면 경제와 이데올로기같은 분석 범주들 간의 관계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그런 작업을 가리키는 말로 쓰여야 하지 않을까? EM님의 "근대분과학문 체계를 전제한 물신화된 사고로부터 벗어"나야한다는 주문을 나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 보고 싶다. 중요한 것은 경제학이 잘났네 이데올로기론이 잘났네라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대상에 적절한 개념적 도구들을 이용해 문제를 설정하고 탐구하는 것이 아닐까.


2. 이런 맥락에서 왜 맑스가 철학자로 평생 살지 않고 (정치)경제학자로 전환했는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무리 정치학, 철학, 경제학 그런 걸 한사람이 커버하는 게 이상하지 않았던 시대라지만, 전공을 바꾸는 것이 학자에게 그리 쉬운 일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것도 헤겔을 읽다 스피노자를 읽는 식이 아니라 철학을 하다가 경제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사실 원래 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은 맑스가 아니라 그의 친구 엥겔스였다고 한다.

왜 마르크스는 자신이 이해도 앞서 있고 사람들한테 잘난체도 하기 쉬웠을 철학에 관심을 줄이거나 끊고, 익숙하지 않은 분야인 그래서 자칫하면 무시도 당하기 쉽고 어쩌면 별 소득도 보지 못한 채 학자로서 패가망신할 수도 있을 새로운 판인 경제학으로 뛰어들었을까? 내 생각에 이 전회는 그가 정말 자신의 '문제'에 정직했던 학자였음을, 알고 있는 지식이나 모아둔 장서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에게 과제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찾아가는 데 용감했던 사람임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 싶다.


3.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기 앞서 나 자신이 그러한 용기가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하지만 이런 자기 성찰에 남에 대한 비판이 섞이지 않을 수는 없겠지..). 생각해 보라. 학자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나이 마흔에 이르러 갑자기 자신들이 익히고 사용해온 개념적 범주들이 문제를 탐구하는 데 있어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고. 연봉 몇 천만원짜리 일자리를 버리고 지금 와서 학부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며 새로운 분과에 도전할 수 있을까? 난 자신이 없다.

그리고 불행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포기할 수는 없고 뭔가 쓰기는 써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그의 개념들은 자신이 풀 수 없는 문제들을 어떻게든 설명할 것을 요구받게 된다. 과부하에 걸린다. 말들은 점점 복잡해 지지만 정작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은 없다. 소의 되새김질처럼 볏단이 가래침이 될 때까지 씹고 뱉고 씹고 뱉게 된다.

가끔 그러한 글들을 보게 된다. 특히 철학이나 정신분석학과 관련한 대중서적들이 그런 생각들을 하게끔 한다. 또 그런 글들이 나오는 장(場)의 특성이 이 사람 저 사람 쉽게 갈아탄다는 것이다. 맑스가 아니니까 들뢰즈, 들뢰즈가 아니니까 네그리, 네그리가 아니니까 지젝, 지젝이 아니니까 랑시에르, 랑시에르가 아니니까 바디우나 발리바르, 그 다음은? 이런 사상가의 이름들의 인플레 속에서 잊혀지는 것은 바로 이들이 탐구했던 문제의 이름이다. 유럽인의 이름들의 인플레 속에 잊혀지는 것은 우리의 사유와 실천의 조건을 구성하는 장소(아시아이든 뭐든)의 이름이다.

이런 짓을 계속할 거라면 공부는 일찌감치 관두는 게 좋겠다는 것 정도가 그나마 분명한 자신과의 다짐인 듯싶다.
 

4. 최근에 인상깊게 읽었던 글 중 하나가 진보평론 40호에 실린 정성훈 선생님의 하버마스와 루만에 관한 글 한편이었는데 그 글 마지막 부분에는 이러한 코멘트가 나온다.

"필자가 볼 때 한국의 좌파 담론은 현재 '과학 없는 비판'과 '사회학 없는 정치철학'의 과잉 상태이며, 과학의 공백을 여전히 19세기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메우고 있다."

일단 내가 한국의 좌파 담론 운운할 계제는 아니며, 19세기 정치경제학 비판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문제제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모르겠다는)는 점을 밝혀두어야 겠다. 내가 꽃힌 것은 '과학 없는 비판'과 특히 '사회학 없는 정치철학'이라는 말이 위에서 언급한 문제, '철학(혹은 이데올로기론)의 과부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주어서였다.

그렇다고 내가 철학과 이데올로기론을 모두 경제학, 사회과학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부하를 벗어나 자신의 범주를 잘 제한했을 때, 다시 말해 스스로가 할 일이 뭔지 정확하게 찾았을 때 정치철학이나 이데올로기론의 작업도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왜 일도 한 번에 여러 가지 하면 결국 아무 것도 못하게 되지 않는가. 하나하나 차근차근 자신이 풀어갈 수 있는 문제들을 치워나갈 때 그 때 작업의 능률도 좋고 뭔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납득이 가능한 생산적인 작업이 진행된다. 

아무래도 요즘에는 스스로가 한 명의 '연구자'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이런 고민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만 대단한 것이 아닌 모두에게 읽힐 수 있고 도움이 되는 연구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자신의 축적된 지식에 고착되지 않고 문제의 답만을 쫓는 공부란 무엇일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그런 공부를 하기 위해서 어떤 물질적 기초 위에서 살아갈 것인가. 아카데미에 들어갈 것인가. 돈은 별도로 벌면서 공부를 진행해 나갈 것인가. 예전에 주류 아카데미에 대한 막무가내 식의 반항심과는 다른 맥락에서 "어디에서 공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이렇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근데 답은 공부랑 관련된 곳과는 좀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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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바리케이드 위에서」


죄 있는 피와 죄 없는 피로, 씻기고 붉게 묽든
포석 사이의 바리케이드 위에서,
열두 살 소년이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 촌놈, 너도 이 녀석들과 한패냐?" 아이는 답했다. "우리는 동지다."
"좋아."하고 사관이 말했다. "총살시켜 줄테니. 네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
아이는 보았다. 총구가 확 불을 뿜고, 동지들이 모두, 담벼락 앞에 쓰러지는 것을.
그때 아이는 사관에게 말했다. "이 시계를 집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갖다드리고 와도 될까요."
"도망갈 참이군." "돌아올게요."
"…이 녀석, 겁먹었군. 네 집이 어딘데." "저기에요, 저기 분수 옆이요. 그래도 돌아올 테니까요. 대위님."
"가 봐. 건방진 놈." 아이는 달려갔다.─빤한 속임수.
그렇게 생각하며 병사들은 사관들과 함께 웃었다.
이 웃음소리가 섞여 드는 사이로, 죽어 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숨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웃음소리가 급히 멎었다. 갑자기 그 창백한 아이가 불쑥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비알라[footnote]Joseph Agricole Viala(1780~1793): 대혁명 당시 열세 살 난 아비뇽의 소년으로 국민군에 입대해 왕당파에 맞서 싸우다가 총검에 사살되었다.─역주[/footnote]처럼 씩씩하게
벽에 등을 대고, 아이는 소리쳤다. "나는 여기 있을래요."

어리석은 처형은 수치를 부른다. 그래서 사관은 놓아주었다.

아이여, 나는 알 수 없다. 선도, 악도, 영웅도, 도둑도,
모두를 끌어넣어 흘러가게 하는 회오리 속에서,
무엇이 너를 이 전투에 끌어들였는지. 하지만 나는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너의 마음이야말로, 가장 기품 있는 마음이었음을.

─빅토르 위고, 시집 《무서운 소년》에서 <바리케이드 위에서>

*가쓰라 아키오, 『파리코뮌』,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7, 11~2쪽에서 재인용.
참 이런 걸 접할 때마다 내 자신에게 부족한 '의기'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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